20191124(주일) 주일예배 본문 고전 15:1-8 제목 그로 말미암아 구원받으리라 목적 구원의 세 시점에 대해 이해를 돕고, 부활로 오직 예수를 드러내신 진리를 선포한다. 성경은 구원을 세 시제로 말씀합니다. 첫째 시제는 이미 구원 받았다는 과거시제입니다. 예수를 믿을 때 즉시 이루어짐으로서 그 순간과의 사건이 되는 것입니다. 예를 들면 엡 2:8절입니다. “너희는 그 은혜에 의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았으니 이것은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 예수 믿을 때 어떻게 되었습니까? “구원을 받은 것입니다.” 즉 믿는 즉시 죄 사함을 받고, 의롭게 되고, 거듭나고, 하나님의 자녀가 된 것을 말합니다. 일생에 한 번 있는 일입니다. 따라서 이 자리에 계신 분들 중에 “나는 십자가의 예수, 부활의 예수가 나의 주, 나의 하나님이심을 믿고 나를 드려 따르는 믿음의 사람이라면 이미 하나님의 구원이 임한 것입니다. 죄용서와 의롭게 됨과 거듭남과 새 생명과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구원과 영생의 사건이 일어난 것입니다. 할렐루야! 둘째 시제는 구원의 현재 시제입니다. 오늘 본문 2절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너희가 만일 내가 전한 그 말을 굳게 지키고 헛되이 믿지 아니하였으며 그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으리라” 여기에서 구원을 받으리라는 말은 “현재형입니다” 헬라어에서 현재 형은 계속 진행 되는 상태를 말합니다. 따라서 “복음을 믿고 복음대로 행하게 되면 구원을 받는 다는 것입니다.” 이미 구원을 받았는데 어떤 구원을 또 받아야 하는 것일까요? 여기에서의 구원은 복음을 전해 받은 그 대로 하나님의 형상을 닮아가는 구원을 말합니다. 즉 성화로써의 구원입니다. 성화란 예수를 믿음으로서 죄에서 자유케 되고 하나님의 자녀 된 이후 이 땅에서 그리스도를 닮아가는 구원을 말합니다. 따라서 우리 모두에게 남아 있는 구원은 하나님의 형상을 회복하여 가는 구원, 곧 성화입니다. 그래서 이 성화의 구원을 받는 여정에 있는 우리를 위해 하나님은 성령과 말씀을 통해, 때로는 시련을 통해, 환난을 통해, 또는 축복을 통해 하나님의 형상을 더욱 닮아가는 성화의 구원을 주십니다. 이 성화의 구원은 자기를 부인하고, 날마다 제 십자가를 예수를 따르는데서 자라나게 됩니다. 이 과정에서 하나님과 성자 예수께서 성령님을 통해 우리를 이끌어 주십니다. 할렐루야! 셋째, 구원의 셋째 시제는 미래입니다. 미래에 완성될 구원입니다. 빌립보서 3:20에서 “그러나 우리의 시민권은 하늘에 있는 지라 거기로부터 구원하는 자 곧 주 예수 그리스도를 기다리노니 그는 만물을 자기에게 복종하게 하실 수 있는 자의 역사로 우리의 낮는 몸을 자기 영광의 몸의 형체와 같이 변하게 하시리라” 예수를 믿는 그리스도인들은 이 땅에 살고 있으나 예수 안에서 하나님 자녀요, 하나님 나라의 백성입니다. 그래서 그리스도인의 시민권은 하늘에 있다 말합니다. 그런데 구원하는 자 곧 주 예수 그리스도를 기다린다고 말합니다. 그리스도인들에게 아직 남은 구원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 남은 구원을 주실 예수를 기다린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그리스도 예수께서 주실 남은 구원은 무엇일까요? “우리 몸을 부활하신 예수님의 몸과 같이 변화시켜주시는 구원”입니다. 영화로운 몸을 덧입는 것입니다. 즉 이것은 예수님께서 재림하는 때에, 믿는 성도들에게 이루어주실 부활과 영원한 하나님 나라의 삶을 말합니다. 그토록 기다린 새 하늘과 새 땅이 이루어지고, 그 땅에서 영원히 하나님과 무한한 복락의 삶을 사는 것입니다. 이로써 죽음의 문제, 죄의 영향에서 완전히 자유한 의의 삶이 주어집니다. 할렐루야! 구원은 이렇게 믿음으로서 즉시 이루어진 과거의 구원, 즉 죄에서 자유, 의롭게 됨, 거듭나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구원이 있습니다. 그러나 지금 이루어지고 있는 성화의 구원이 있고, 주님이 오셔서 완성하여 주실 새 하늘과 새 땅과 부활과 영생의 삶을 기다리는 구원이 있습니다. 여러분들께서는 이러한 구원 세 시제 단계에서 어디에 놓여 있습니까? 여전히 구원의 시작조차 요원한 상태입니까? 혹은 구원의 과거에 머물러 있지는 않습니까? 성화의 구원을 향하여 달려가며 있고, 오는 마지막 구원의 완성을 위해 깨어 기다리고 있습니까? 그러나 이 땅의 많은 분들이 부활의 예수님을 믿지 못하기에 예수께 나아가지 못합니다. 또 믿는다 하여도 예수의 부활을 잘 모르기에 과거의 믿음 상태에 머물러 있고, 성화의 길, 다시 오실 예수를 기다리는 소망의 믿음이 희박합니다. 그러나 바울은 오늘 본문에서 복음을 가장 간명하게 정리를 하면서 예수의 부활에 대해 분명하게 증거합니다. “내가 받은 것을 먼저 너희에게 전하였노니 이는 성경대로 그리스도께서 우리 죄를 위해 죽으시고 장사지낸바 되셨다가 성경대로 사흘 만에 다시 살아나사” 전에 말씀드린바와 같이 구원의 왕으로 오신 예수는 구약에 예언 된 대로 십자가에 죽임을 당했습니다. 모든 인간의 죄를 뒤집어쓰고 저주 받아 마땅한 죄인처럼 버림받아 십자가에 죽임 당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아들에게 모든 죄를 전가시켜 씌우고 죽음에 이르게 함으로 모든 불의의 값을 치룬 것입니다. 그렇기에 하나님은 아들 예수를 진심으로 나의 주, 나의 왕, 나의 하나님으로 믿는 자들을 다 의롭다 하시고, 자녀 삼으시고, 성령을 주십니다. 할렐루야! 그러나 이러한 은혜의 법칙은 기독교 진리 중 가장 위대한 진리 인 예수의 부활이라는 토대 위에서만 작동이 됩니다. 부활의 토대가 무너지면 기독교는 없습니다. 마귀는 기독교의 존폐가 이 한 가지 교리에 달려있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습니다. 그것을 사도 바울도 잘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이렇게 말합니다. “그리스도께서 만일 다시 살아나지 못하셨으면 우리가 전파하는 것도 다 헛것이요 또 너희 믿음도 헛것이며 또 우리가 하나님의 거짓 증인으로 발견 되리니 우리가 하나님이 그리스도를 다시 살리셨다고 증언하였음이라”(고전 15:14-15) 그리스도 예수께서 다시 살지 못했다면 왜 모든 것이 헛것이요 기독교가 무너지는 것일까요? 부활이 없다면 십자가에 죽은 예수는 그저 한 죄인의 죽음으로 끝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기독교와 복음을 둘러싼 치열한 논쟁은 “예수의 십자가 죽음”에 대한 논의가 아니라, 부활에 있습니다. 부활 여부에 따라 십자가의 예수가 구원의 주이심과 사기꾼인가가 결정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거짓말처럼 예수는 무덤에서 일어나셨습니다. 요나가 물고기 뱃속에 삼일 동안 있었던 것 같이, 스스로 예고를 했던 그대로 예수께서 부활하신 것입니다. 이로써 예수는 당신이 바로 하나님이 보내신 아들이요, 약속 된 메시야임을 명백히 드러내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아들을 살리심으로 예수는 하나님의 아들이요, 하나님이 보내신 분임을 드러내신 것입니다. 할렐루야! 성경에는 죽었다 살아난 사람들의 기록이 여럿 있습니다. 구약시대 사르밧 여인과 수넴 여인의 아들이 죽었다가 살아 난 것, 신약시대 나사로, 나인성 여인의 아들, 회당장 야이로의 딸, 유두고 등이 죽었다가 살아난 기록이 있습니다. 그러나 이들은 여전히 죽음에 속박된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래서 죽음의 한계를 벗어나지 못하고 세월이 흐르자 이들은 다시 죽었습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은 이들의 다시 살아남과 달랐습니다. 다시 살아나신 후 다시 죽지 않으셨다는 것입니다. 계속해서 살아계신 것입니다. 사도 요한은 이렇게 증언합니다. “곧 살아 있는 자라 내가 전에 죽었었노라 볼지어다 이제 세세토록 살아있어 사망과 음부의 열쇠를 가졌노니”. 전에 죽었지만 지금은 살았고, 또 세세토록 살아 있다는 것입니다. 지금도 살아있다는 말은 무엇을 말합니까? 우리 십자가와 부활의 주 예수, 구원의 왕이신 예수를 믿고 찾는 자는 주 예수와의 만남의 역사가 일어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인종, 신분, 학력, 출신, 나이에 상관없이 믿고 구하고 찾는 자는 지금도 살아계신 분이심을 경험하는 것입니다. 하늘과 땅과 모든 권세를 갖고 계신 예수를 만나는 것입니다. 십자가의 그 고난과 아픔을 짊어지신 사랑의 예수를 깊이 경험하는 역사가 일어납니다. 죄가 자유케 되는 용서의 은혜가 임하고, 새로운 인생을 위한 꿈이 열리고, 영원한 나라의 소망이 생기는 것입니다. 이 증거가 사도행전에 가득합니다. 그래서 이 부활하사 살아계신 예수를 믿음으로 경험하고 깨닫게 될 때 우리는 이 땅에서의 집착을 버립니다. 오직 예수를 위한 길을 가지 않을 수 없습니다. 이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우주의 총합보다 더 크고 더 위대하신 하나님이신 예수 그리스도가 나의 주, 나의 하나님, 나의 목표, 나의 이유, 나의 비전, 나의 영광임을 알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그토록 예수를 핍박하고, 믿는 자들을 핍박하고, 교회를 핍박했던 바울이 “부활하사 살아계신 예수”를 만난 후 인생이 180도 완전히 달라졌습니다. 참으로 살아계신 주 하나님을 만났는데 무엇이 값어치 있을 것이며, 무엇이 더 소중할 것입니까? 그래서 그가 세상에서 자신이 소중하게 여기던 것을 배설물로 여깁니다. 그의 말을 들어보십시오. “그러나 무엇이든지 내게 유익하던 것을 내가 그리스도를 위하여 다 해로 여길뿐더러 또한 모든 것을 해로 여김은 내 주 그리스도 예수를 아는 지식이 가장 고상하기 때문이라 내가 그를 위하여 모든 것을 잃어버리고 배설물로 여김은 그리스도를 얻고 그 안에서 발견되려 함이니” 이 땅에서 높게 쳐주는 신분, 모든 학력, 이력, 혈통을 다 내려놓은 것입니다. 세상 소유로 고상한 척하고, 남보다 나은 척하고, 더 배운 척 하고, 또 경건한 척하고, 더 우월한 척 했던 부패한 마음을 다 내려놓고, 오직 그리스도만을 알고, 그 안에 서기를 구한 것입니다. 어디 그뿐입니까? 자신의 생명도 아끼지 않고 오직 십자가의 예수, 부활하신 예수가 참 주와 하나님이심을 증거 하는 것에 일생을 겁니다. 또 하나의 신이 아니라, 온 인류가 참으로 만나야만 할 유일한 구원의 주이심을, 온 세상의 창조자요, 영광을 받으실 하나님이심을 증거했습니다. 이 바울이 오는 본문에서 복음을 증거합니다. “내가 받은 것을 먼저 너희에게 전하였노니, 이는 성경대로 그리스도께서 우리 죄를 위하여 죽으시고 장사 지낸바 되셨다가 성경대로 사흘 만에 다시 살아나 게바에게 보이시고, 후에 열두 제자에게와 그 후에 오백여 형제에게 보이셨나니 그 중에 대다수는 살아있고 어떤 사람은 잠들었으며 그 후에 야고보에게 보이셨으며 그 후에 모든 사도에게와 맨 나중에는 만삭 되지 못하여 난 자 같은 내게도 보이셨느니라” 구약예언대로 구원의 왕, 주 예수는 우리 죄를 대신해 죽임 당했습니다. 그리하여 무덤에 장사되었습니다. 그러나 성경의 예언대로 다시 살아나셨습니다. 이 예수는 당시의 제자들과 오백 명이 넘는 사람들에게까지 나타내셨습니다. 바울이 이 편지를 쓸 그 때까지도 그들이 살아 있었습니다. 그리고 나중에 교회를 믿는 자들을 핍박하고 죽이는 데 앞장 선 바울에게도 나타내셨습니다. 그리하여 핍박자 였던 바울을 오직 예수를 위해 사는 사람으로 바꿔놓으셨습니다. 그를 통해 아시아와 유럽에 이 복음을 증거하셨습니다. 할렐루야! 헬라인들이 볼 때 미련하고 유대인들이 볼 대거리낄 수밖에 없는 십자가와 부활의 예수를 전하게 하셨습니다. 그럴 때 듣는 자들 안에 성령께서 역사 하사 그들의 눈을 열어 주셨습니다. 바울이 전하는 복음, 곧 십자가와 부활의 예수, 승천하시고 다시 오실 살아계신 예수의 복음을 들을 때 그들 안에 믿음이 일어나기 시작한 것입니다. 복음을 들을 때, 복음의 주이신 예수 그리스도 말미암아 구원 얻는 역사가 이방인들에게도 일어나기 시작 한 것입니다. 그리고 복음을 들은 그들에게도 동일한 일들이 일어나기 시작했습니다. 예수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가슴이 뜨거워지기 시작했습니다. 십자가에 죽으신, 그러나 부활하여 살아계신 이 예수는 바로 모든 사람이 믿고 따라야 할 참 하나님이시오, 주이시오, 왕이심을 깨닫게 되자 혼자 간직 하고 있을 수 없는 뜨거운 마음이 일기 시작한 것입니다. 디모데가 그 증거요, 고린도교회가 그 증거입니다. 이 예수께서 생전에 그리고 지금도 말씀 통해 이렇게 증거하십니다.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 무릇 살아서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하니하리니 이것을 네가 믿느냐” 죽음에서 부활하셨고, 모든 죽는 자의 부활의 소망이 되시는 예수 안에 우리 소망이 있습니다. 그는 꺼지지 않는 생명의 빛입니다. 진리의 빛입니다. 목마르지 않은 영원한 생수입니다. 지금도 살아계셔서 구하고 찾는 자와 의지하는 자에게 함께 하사 그 살아계심을 증거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2천 년 전에는 부활로 그것을 증거하셨다면, 지금은 예수를 믿고 부르는 자에게 응답하심으로 부활과 살아계심을 증거하십니다. 그러므로 십자가에 죽의시고 부활하사 지금도 살아계시고 다시 오실 주 예수 왕을, 주와 왕과 하나님으로 믿으십시오. 성령께서 역사하사 눈을 열어주시고, 가슴을 열어주사 죽의시고 부활하시고 살아계신 주 예수 그리스도를 뜨겁게 하고, 그리스도를 위해 사는 역사가 일어나게 하실 것입니다. 예수 믿음으로 구원 받은 성도님들의 가슴은 어떻습니까? 어느새 식어지지 않았습니까? 어느새 미지근해지지 않았습니까? 오직 주 예수를 위해 살고 있습니까? 오직 주 예수의 형상을 닮기 위해 기도하고 있습니까? 다시 오실 예수를 믿고, 죽음에서 부활케 하실 예수를 믿고 조롱과 죽음을 무릅쓰고 주를 위해 살고 있습니까? 유명한 종교개혁자인 마틴 루터(Martin Luther)도 개혁의 말기에 지쳐서 모든 것을 포기하고 싶은 유혹을 받았습니다. 그래서 사실상 그는 모든 것을 포기하고 자리에 누워 ‘모든 것이 끝났어'하며 넋두리를 늘어놓았습니다. 그 때 지혜로운 그의 아내가 상복을 입고 방으로 들어왔습니다. 상복을 입은 아내를 보고 깜짝 놀란 그는 “아니 누가 죽었소?”라고 다급히 물었습니다. 아내는 “예, 하나님께서 돌아가셨습니다”라고 말했습니다. 아내의 황당한 대답에 루터는 “하나님이 돌아가시다니! 무슨 소리요?”라고 소리쳤습니다. 루터의 아내는 정색을 하고 말했습니다. “하나님이 안 돌아가셨으면 당신이 그렇게 누워 있을 리가 없지요.” 이 아내의 말 한마디가 루터를 흔들어 깨웠습니다. “그렇지! 살아 계시지.” 그는 일어나 다시 개혁의 사명을 불태우며 그 길을 달려갔습니다. 지금도 살아계셔 역사하시는 십자가와 부활의 주 예수만이 유일한 길임을 뜨겁게 고백하고, 뜨겁게 증거하십시오. 그리고 오직 그리스도를 닮기 위한 성화의 길을 열열 하게 걸어가십시오. 아직 예수로 말미암아 이루어야 할 구원이 남아 있습니다. 거기서 멈추지 마십시오. 다시 오실 그리스도를 맞이하여야 할 완전한 구원이 남아 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