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1225(수) 성탄절 본문 눅 2:7-14 제목 큰 기쁨의 좋은 소식 목적 구주 오심이 큰 기쁨의 소식이 되는 이유를 알게 하고 전하게 한다. 1994년에 있었던 작은 얘기입니다. 서울 서초동 한 고시원에서 신학교 시험준비를 하고 있을 때였습니다. 주일이 되면 가까운 교회의 예배당에 가서 예배를 드렸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규모의 성도들이 모인 한 예배당에 갔습니다. 규모가 우리 보다 작은 2-30명 남짓 했습니다. 그런데 작은 규모 치곤 목사님의 설교가 좋았고, 무엇보다 성도들의 표정이 그렇게 밝을 수가 없었습니다. 지하 교회였는데도 성도들의 표정이 밝아서 전혀 어둠침침한 분위가 전혀 느껴지지 않았습니다. 그 이유를 예배가 끝난 후 알게 되었습니다. 그 교회를 섬기는 목사님의 사모께서 13년만에 그토록 기다리던 첫 애를 낳은 것입니다. 그토록 기다리며 애타하며 기도하던 일이 그날 일어난 것입니다. 그러니 그동안 함께 눈물로 기도하던 성도들이 마치 자기 애를 낳은 것 마냥 기뻐했던 것입니다. 저도 그 기쁜 소식을 들으며 오랫동안 아기 없이 지내던 목사님 내외분에게 임한 하나님의 은혜를 생각할 때 절로 기뻤고 또 놀랐습니다. 한 생명이 태어나는 것이 이렇게 큰 기쁨을 줍니다. 그리고 오늘 말씀에서도 한 아기에 대해 하나님이 천사를 통해 말씀합니다. “보라 내가 온 백성에게 미칠 큰 기쁨의 좋은 소식을 너희에게 전하노라” 온 백성이란 이스라엘을 포함하여 모든 민족과 그 사람들입니다. 당대의 온 민족과 사람들뿐만 아니라, 대대로 이어질 후세에 이르기까지 모든 사람입니다. 곧 우리와 우리의 자녀와 그 자녀의 자녀, 또 그 이후의 자녀를 말합니다. 이들에게까지 이르러야 할 될 큰 기쁨의 좋은 소식이 있다면서 하나님께서 천사를 통해서 전해줍니다. 그럼 그 큰 기쁨의 좋은 소식은 무엇일까요? “오늘 다윗의 동네에 너희를 위하여 구주가 나셨으니 곧 그리스도 주시니라.”라는 소식입니다. 무슨 뜻입니까? 다윗이 태어나고 자란 동네인 베들레헴에서 온 백성을 구할 구원자가 태어났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가 바로 그리스도 주시라는 것입니다. 즉 이스라엘이 그토록 기다리던 그리스도, 곧 구원의 왕이요, 주, 곧 하나님이 나셨다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태어난 그 아기가 실은 온 세상을 구원하여 큰 기쁨을 주실 구원자로 오신 구원의 왕이요, 하나님이다 라는 것입니다. 할렐루야! 누가는 이 놀라운 소식과 함께 누가 복음을 시작하면서 마지막 24장에 이르기까지 이 아기의 일생을 기록합니다. 이 아기는 이 후 우리와 같이 별 차이 없이 자랍니다. 그리고 때가 되자 자신의 정체를 드러냅니다. 그 내용이 눅 4:18-19절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주의 성령이 내게 임하셨으니 이는 가난한 자에게 복음을 전하게 하시려고 내게 기름을 부으시고 나를 보내사 포로 된 자에게 자유를 눈 먼 자에게 다시 보게 함을 전파하며 눌린 자를 자유하게 하고 주의 은혜의 해를 전파하게 하려 하려 하심이라” 예수님 오시기 전 700년 전에 활동했던 이사야 선지자가 한 말입니다. 하나님의 성령으로 충만한 자가 와서 가난한 자, 포로 된 자, 눈 먼 자, 눌린 자로 일컬어지는 이 땅의 고통 하는 자들에게 기쁨과 자유의 날을 주실 것이라는 예언입니다. 예수님은 이 예언을 인용하며 말씀하시며 결정적으로 자기의 정체를 드러내셨습니다. “이 글이 오늘 너희 귀에 응하였느니라” 무슨뜻입니까? 이사야의 예언대로 이 땅의 고통 하는 모든 영혼들에게 기쁨과 자유의 날을 주실 자가 왔으니, 그가 바로 나다 라고 하시는 것입니다. 할렐루야! 가난과 질병, 사고와 재해, 끝없는 갈등과 전쟁, 인간 관계의 파괴와 스트레스, 끝도 알 수 없는 인생의 허무 속에서 모든 인간은 고통합니다. 이런 인간의 상태를 예리하게 파악한 실존 철학자 키에르케고르는 이렇게 말합니다. “모든 인간은 정신의 병을 가지고 있다” 한 사람도 예외 없이 모든 사람의 마음이 아프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아파하는 자들에게 오신 구원의 왕이시요, 하나님이신 예수는 앞선 말씀과 같이 아파하고 고통하는 영혼들의 몸과 마음과 영을 품어 주셨고, 고쳐 주셨고 자유케 하셨습니다. 한 예를 들어 보겠습니다. 눅 7장에 나인성의 한 미망인의 얘기가 있습니다. 그는 남편 없이 아들 하나를 의지하여 살고 있는 여인입니다. 그런데 그 아들이 그만 죽고 맙니다. 누가 이 여인의 마음을 헤아려 달랠 수 있겠습니까? 없습니다. 한 마디로 망연자실 절망 그 자체요 눈 물 외에 남은 것이 없는 여인입니다. 키에르 케고르는 이러한 절망을 죽음에 이르는 병이라 했습니다. 그런데 그 때 아무도 달랠 수 없는 그 여인을 보시고 불쌍히 여기시며 말씀합니다. “울지 말라” 그리곤 죽은 아들의 관에 손을 대시며 말씀합니다. “청년아, 내가 네게 말하노니 일어나라” 이에 죽었던 그 아들이 살아납니다. 절망에 이르는 병에 걸려 울음 밖에 남지 않은 그 어머니는 어떻게 되었을까요? 말 할 것도 없이 놀람과 기쁨에 감격하였을 것이요, 기쁨의 눈물을 흘렸을 것입니다. 주님은 이렇게 우는 영혼에게 울지 말라 하시며 그 눈물의 근원을 치유하시는 분이십니다. 자유와 평안을 주시는 구원의 왕이시요 하나님이십니다. 나아가 나와 모든 사람의 죄까지 짊어지고 죽으시기까지 사랑으로 우리를 품으시는 사랑의 주 이십니다. 할렐루야! 주님은 그 십자가 죽음과 부활로써 우리를 죄에서 구하사 하나님의 자녀가 되게 하셨습니다. 영원한 생명을 얻게 해주셨습니다. 무한한 하나님의 은혜로 날마다 보호받고 인도받는 복을 주셨습니다. 게다가 마침내 다시 오사 우리를 예수님 형상을 닮은 완전한 자로 구원하시고, 새 하늘과 내 땅을 주실 것입니다. 할렐루야!
그래서 예수님은 감히 아무도 할 수 없는 말씀을 하셨습니다. “나는 생명의 떡이다. 나의 세상의 빛이다. 나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다” 그렇습니다. 오늘은 바로 그날입니다. 나의 생명, 나의 빛, 세상의 길과 진리와 생명이신 주님이 나와 우리 모두를 위해 오신 날입니다. 우리의 구원이 시작된 날입니다. 이제 주님이 다시 오시면 그 구원이 완성될 것입니다. 할렐루야! 우리는 구원의 왕, 하나님이신 예수님 오셔서 나를 위해 베푸신 모든 사랑과 희생을 날마다 깊이 묵상하며 무한 감사해야만 합니다. 그리고 오직 주님만 의지하며 성령과 동행해야 할 것입니다. 나아가 죽음에 이르는 병에 벌린 모든 영혼에게 이 큰 기쁨의 소식을 이렇게 전해야 할 것입니다. “예수는 우리를 구할 구원의 왕이시요, 하나님이십니다!” 거기에 주의 평화가 임하고, 하늘에 영광이 될 것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