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0519(주) 주일예배 본문 골 3:18-21 제목 하나님이 설계하신 가정이 되는 길 목적 하나님이 설계하신 가정의 모습을 이해하고, 그 모습을 향하여 도전하고 행복한 가정이 되게 하기 위해 영상-동생 옆에서 갑자기 울음을 터트린 오빠 짧은 영상이지만 우리 가슴을 뭉클하게 하는 힘이 있습니다. 그 힘은 바로 몸이 성치 못한 동생을 사랑하는 오빠의 모습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 오빠의 깊은 사랑이 장애를 가진 여동생을 웃게 합니다. 깊은 어둠에 잠겨 있어야 할 여동생으로 하여금 행복한 웃음을 짓게 합니다. 오빠의 사랑을 받는 동생은 얼마나 기쁠까요? 사랑은 이렇게 불행의 조건을 이기게 합니다. 이처럼 가족이 조건을 넘어 사랑 할 때 그 가족은 세상에서 제일 행복한 가정, 세상에서 제일 자신감 있는 가정, 세상에 소망을 주는 가정이 됩니다. 많은 사람들이 모르고, 인정하지 않는 중대한 사실이 한 가지가 있습니다. 심지어 하나님을 믿는다 하면서도 모르거나, 혹은 알면서도 실제로는 인정하지 않는 중대한 진리입니다. 바로 “하나님께서 가정을 창조하셨다”라는 진리입니다. 창세기 1장에 따르면 육일동안 창조사역이 전개 됩니다. 빛과 어둠, 하늘, 각종 풀과 씨 맺는 채소와 과일나무, 일월성신, 바다의 생물과 하늘의 새를 창조하십니다. 그리고 육일 째 되는 날 땅의 기는 것과 모든 짐승을 창조하십니다. 그런 후 같은 날 최후로 “하나님의 형상대로 남과 여를 창조” 하십니다. 그리고 나서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 남자와 여자가 가정을 이루어 생육하고 번성하고 충만하게 하라는 명령을 하십니다. 가정의 시작입니다. 보다 구체적으로는 창조에 대한 다른 관점에서 기록된 창세기 2장 7절-25절에 발견할 수 있습니다. “여호와 하나님이 이르시되 사람이 혼자 사는 것이 좋지 아니하니 내가 그를 위하여 돕는 베필을 지으리라”(18절) “아담이 돕는 베필이 없으므로(20절 하)...여호와 하나님이 아담에게 취하신 그 갈빗대로 여자를 만드시고 그를 아담에게로 이끌어 오시니(22)... 이것을 남자에게 취하였은즉 여자라 부르리라(23절 하) 이러므로 남자가 부모를 떠나 그의 아내와 합하여 둘이 한 몸을 이룰지로다”(24절) 여기에서 남자를 창조하시고, 남자를 돕는 베필로 여자를 지으셨다고 말씀합니다. 그리고 남자와 여자가 부모를 떠나 한 몸을 이루라고 명령합니다. 즉 남자와 여자가 한 몸을 이루는 가정을 설계하신 분, 창조하신 분이 하나님이라는 사실입니다. 그리고 창세기 1장 생육하고 번성하고 충만하라는 말씀과 연결 하여 볼 때 가정의 목적은 분명합니다. 그것은 우리의 꿈을 위해서가 아니라 하나님의 뜻, 영광을 위해서 세움을 입은 것입니다. 이렇듯 하나님은 하나님의 형상대로 창조 된 남자와 여자는,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가정을 이루게 된 것입니다. 가정의 계획과 시작이 하나님의 설계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것은 중요한 명제로 이끕니다. 그것은 “가정의 주인은 하나님이시다”라는 것입니다. 그러나 너무나 많은 사람들이 이 진리를 모른 채 결혼과 가정을 단지 사회 문화적 산물로 이해합니다. 그러다보니 하나님과 상관없이 자기 멋대로 주관합니다. 하나님 없는 비뚤어진 시각으로 아내를 대하고, 남편을 대합니다. 자녀를 자기 생각대로 키웁니다. 부모를 어떻게 대해야 하는지 모릅니다. 그 결과가 무엇입니까? 사랑과 행복으로 가득 차 넘쳐야 할 곳이 갈등과 상처와 아픔으로 신음합니다. 심지어 기독교인 가정 또한 예외가 아닙니다. 한 청년들 집회에서 조사를 했습니다. “너에게 가장 많은 아픔과 상처를 주는 곳은 어디냐” 그런데 놀랍게도 응답자의 65%가 집이라고 대답을 했다고 합니다. 이것은 무엇을 말합니까? 예수 믿는 부모라 할지라도 가정을 바르게 이끌어 나가지 못하고 있다는 것을 말합니다. 왜 이런 현상이 나타날까요? 가정의 설계자이시고, 가정의 주인이신 하나님의 설계대로 결혼 하지 않고, 하나님의 설계대로 가정을 세우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믿지 않는 사람들의 가정은 물론이려니와 믿는 사람의 가정조차 신음하며, 희망을 잃은 채 할 수 없이 살아가는 가정이 부지기수입니다. 이 자리에 계신 성도님들께서는 가정의 주인 이신 하나님의 설계대로 가정을 세워나가고 계십니까? 아니면 여전히 지금까지 살면서 여기저기서 주워들은 세상의 철학, 문화, 전통, 아집과 고집으로 이끌어 가십니까? 하나님이 설계하신 가정의 바른 모습은 무엇일까요? 첫째 남편에게 복종하는 아내가 있는 가정입니다. 18절에서 이렇게 말씀합니다. “아내들아 남편에게 복종하라” 이 말씀은 여자 분들에게는 참 불편한 말씀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이것이 하나님의 뜻입니다. “잘났던 못났던, 돈을 벌던 못 벌던, 사랑스럽던 안 그렀던”간에 남편에게 복종하라는 것입니다. 이것이 아내 될 여자, 그리고 아내에 대한 설계입니다. 에베소서에는 더 분명하게 이렇게 말씀합니다. “아내들이여 자기 남편에게 복종하기를 주께 하듯 하라 이는 남편이 아내의 머리됨이 그리스도께서 교회의 머리됨과 같음이니 그가 바로 몸의 구주시라 그러므로 교회가 그리스도에게 하듯 아내들도 범사에 자기 남편에게 복종할지니라”(5:22-24) 이 말씀에서 남편을 그리스도와 교회의 관계로 묘사합니다. 교회의 머리가 그리스도이고, 그리스도에게 교회가 기꺼이 순종하듯이 그렇게 자발적으로 남편에게 순종하되, 범사, 곧 모든 일에 순종하라는 것입니다. 여기에서 남편을 교회의 머리인 그리스도에 비유하는 이유는, 가정의 리더는 남편임을 말하는 것입니다. 그리스도께서는 우리를 사랑한다고 하여 좋은 길로만 인도하지 않습니다. 강과 불을 지나게 합니다. 광야를 지나게 합니다. 생명을 부지 할 수 없는 상황에도 이르게 하십니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믿음 있는 성도는 그리스도를 믿고 따릅니다. 당장 겪는 아픔과 시련 뒤에 있을 희망과 소망의 리더이기 때문입니다. 마찬 가지로 남편은 가정의 리더로 세우신 하나님의 뜻에 따라 남편을 존중하고 순종해야 합니다. 그렇다고 나쁜 일, 잘 못 된 일에 순종하라는 것이 아닙니다. 좀 맘에 안 들어도 큰 문제가 아닌 경우, 가족이 큰 위기에 처할 일이 아닌 경우라면 남편의 리더쉽을 존중하라는 것입니다. 그러면 거기에 하나님이 함께 하시는 복이 임합니다. 왜 그렇습니까? 남편을 존중하는 모습이 하나님의 말씀을 존중하여 하나님을 순종하는 것이 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알아야 할 것이 있습니다. 이런 말씀 들을 때 “아 그렇구나, 나도 이제 말씀에 순종해야지” 다짐을 한다고 해서 당장 되는 게 아닙니다. 왜 그렇습니까? 자존심이 상하는 것입니다. 순종하고 싶은 모습이 남편에게 안 보이는 것입니다. 그럴 때 우리가 생각해야 할 것이 있습니다. 예수님이 나 자신을 어떻게 사랑했는가를 봐야 합니다. 예수님이 나를 사랑하신 것은 나에게 어떤 좋은 모습이 있어서가 아닙니다. 몰라서 그렇지 우리는 하나님의 공의의 눈으로 보면 차마 두고 볼 수 없을 만큼 역겨운 죄인들입니다. 애초에 하나님을 버리고 아무 것도 아닌 존재로 외면하는 본성이 우리의 모습이기 때문입니다. 마치 자기를 낳아주고 길러준 부모를 욕하고 버린 패륜아 같은 그 악함의 우리의 본성인 것입니다. 그런데도 하나님은 우리를 사랑했습니다. 우리 모습은 참아 보기 역겨운 모습지만, 새롭게 거듭난 아름다운 하나님의 형상을 믿음의 눈으로 보셨기 때문입니다. 자기를 버려 살려야 할 씨가 우리 안에 있음을 보았기 때문입니다. 마찬 가지로 예수님의 눈으로 남편을 볼 때 사랑의 눈이 새롭게 열리게 됩니다.
그럼 어떻게 해야 이런 사랑의 눈을 가질 수 있을까요? 스스로 가질 수는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눈을 열어주셔야 합니다. 그래서 우리에게 필요한 것이 하나님 앞에 나아가는 것입니다. 남편으로 인해 상한 마음, 아픈 마음, 실망감 등 모든 것을 가지고 하나님 앞에 나아가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앞에 머물러 간절히 구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저 못난 남편을 향해 갖고 계신 비전, 그 사랑을 보게 하기 까지 구해야 합니다. 미워하고 보고 싶지 않는 마음을 넘어 하나님의 마음과 눈이 나의 마음과 눈이 될 때까지 기도하는 것입니다. 그렇게 가슴을 치며 자기를 내려놓고 구할 때 성령께서 마침내 남편을 향한 그 놀라운 꿈을 보여주시고, 사랑의 마음을 부어주시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 때 비로소 가정이 참 믿음과 복음 위에 세워지는 것이요, 하나님의 은혜가 지배하는 가정이 되는 것이요, 가정을 깨트리려는 사탄의 권세를 멸하는 가정이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자기가 옳다는 정의감을 내려놓고 먼저 하나님 앞에 나아가 하나님의 눈, 하나님의 마음으로 남편을 볼 수 있는 눈과 마음을 주시기를 구하십시오. 그리고 그 비전이 이루어지기까지 기도하고 또 기도하십시오. 하나님께서는 언약하셨습니다. “여호와께서는 자기에게 간구하는 모든 자 곧 진실하게 간구하는 모든 자에게 가까이 하시는도다”(시 145:18) 둘째로, 아내를 사랑하고 괴롭게 하지 않는 남편 상이 하나님의 설계입니다. 한 남편의 일기입니다. [하루종일 김부장에게 시달렸다. 차라리 직접적으로 내 업무 능력에 관해 말해주면 좋겠는데, 묘하게 공격을 하며 나를 못살게 군다. 어쩌란 말인가? 오늘은 퇴근 시간가지 겨우 견디다가 즐거운 집으로 직행을 했다. 문을 열고 들어섰다. 나를 개선장군처럼 반길 아이들을 상상했건만 큰 녀석은 제 방에서 나오지도 않고, 작은 녀석은 게임에 빠져 얼굴도 돌리지 않고 말로만 인사를 한다. 아내는 무슨 이유에서인지 입이 오리만큼 나와 있다. 차려 놓은 밥을 몇 숟가락 뜨고 방으로 들어와 티부이를 켰다. 한참 뉴스를 부고 있는데, 아내가 툴툴 거리며 말을 걸어온다. 매일 하는 이야기.... 아무리 궁리해도 해결책도 안 나오는 끝이 없는 이야기를 늘어놓는다. 나보고 어쩌라는 말인지.... 우리가 정말 사랑해서 결혼한 것일까?](가정, 또 하나의 천국, 김남준, P16) 전쟁 같은 삶을 힘들게 마치고 집에 들어온 남편의 일기에는 집에서 어떤 희망을 기대 할 수 없습니다. 끝없는 말로 힘들게 하는 아내를 보며 결혼에 대한 회의감마저 드는 남편을 봅니다. 이 남편이 이런 아내를 향해 “사랑해”라고 말 할 수 있을까요? 한 목사님의 설교에서 들은 우스개 얘기입니다. 목사님들이 가정 훈련을 받는 자리였습니다. 강사가 열강을 하는 중에 지금 바로 아내에게 전화해서 “여보 사랑해”라는 말을 하라고 했습니다. 하여 그 자리에 참여한 목사님들이 하나 둘 전화를 하면서 “사랑해”라고 합니다. 그런데 그 중에 유독 한분 목사남이 주저주저하고 끝내 못하였습니다. 그러자 그 자리에 있던 모든 목사님들이 거들고 부추기며 용기를 내라고 성화를 하자 할 수 없이 전화를 걸었습니다. 그러나 경상도 출신이었던 이 목사님은 죽으면 죽었지 남사스러워 “사랑해”라는 말은 못하고, 겨우 한다는 것이 “사, 사, 사...”하고는 진전이 되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모든 사람이 다 주목하고 성화를 해대니 결국은 입에서 한마디가 나왔습니다. “여보, 사, 사, 사찰집사 잘 있나?”(유기성목사 설교 중에서 인용) 목사라 해도 아내에게 “사랑해”라고 말한다는 것이 그만큼 어렵다는 것입니다. 중요한 것은 남편에 아내를 향한 사랑이 있느냐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남편의 입장에서 볼 때 “사랑할 만한 구석이 있어야 하지”라는 말이 나옵니다. 남편이 볼 때 아내에게도 한심한 구석이 많기 때문입니다. 집에 있다고 머리도 안 빚고, 세수도 안하고, 체육복 같은 옷이나 걸치고 있으면 눈 마주칠까 겁납니다. 괜히 봤다 싶은 생각이 드는 것이지요. 돈 벌어다 주면 엉뚱한데 쓰고, 게다가 시댁에게 소홀이 하는 모습을 보면 피가 거꾸로 도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런 아내를 어떻게 하라고 말씀합니까? “아내를 사랑하라” 명령합니다. 에베소서에서는 이렇게 말씀합니다. “남편들아 아내 사랑하기를 그리스도께서 교회를 사랑하시고 그 교회를 위하여 자신을 주심 같이 하라”(5:25) 주께서 조건 없이 교회를 위하여 자신의 목숨을 주신 것 같이 그렇게 아내를 조건 없이 사랑하라는 것입니다. 이때의 사랑은 연애 할 때의 그런 감정적인 사랑을 말하지 않습니다. 그런 감정도 포함 할 수 있지만 그것보다는 “아내의 못남, 허물, 부족함, 아픔, 상처 등 모든 것을 품으라“는 것입니다. 연애 할 때 “사랑해”이 개념은 “감성적”입니다. 남자대 여자로서 느끼는 에로스적 감정이 크게 작용합니다. 그럴 때 정신을 잃습니다. 감정이 이성을 압도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에로스적 사랑은 얼마 안 가는 것입니다. 신혼여행을 다녀온 뒤로부터 점점 떨어집니다. 나중에는 “내가 사랑하기는 했나”하고 반문합니다. 결혼 후에 지속 되어야 할 사랑은 에로스적 사랑이 아니라 의지적 사랑입니다. 결혼 할 때 서약한 그 서약을 충성스럽게 지키는 의지적 사랑입니다. 그래서 결혼 생활이 깊어 갈수록 “사랑해”라는 말은 “아내만 보면 마음이 뜨거워져”라는 고백이 아니라, “당신이 가 아파도, 당신이 속 썩여도, 당신이 주글주글 해져도, 당신을 떠나지 않고, 버리지 않고, 외면하지 않을 뿐 아니라, 끝까지 오직 당신을 위하고, 당신을 붙들어주고, 당신을 채워주고, 당신의 손이 되고, 당신의 발이 되겠어요” 라는 헌신의 고백인 것입니다. 즉 주님께서 우리를 위하여 “모든 것을 참고, 온유하며, 무례히 행하지 않고, 자기의 유익을 구하지 않고, 성내지 않고, 악한 것을 생각하지 않고, 불의를 버리고, 모든 것을 참고, 모든 것을 믿고, 모든 것을 바라고, 모든 것을 견딘 것”처럼, “나도 당신에게 그렇게 하겠오”라고 하는 것이 “사랑해”인 것입니다. 아내의 잘못 죄까지 대신 짊어지는 것이 하나님이 설계하신 아내를 사랑하는 남편의 모습인 것입니다. 그러니 남편이 해야 할 것이 무엇입니까? 아내의 외모, 아내의 행실, 아내의 못난 모습을 보고 사랑할 건덕지가 없네 하고 불평하고, 정죄 할 것이 아닙니다. 도리어 자신의 이기심과 오만과 형편없음을 깨닫고 겸손히 주님 앞에 나아가는 남편이 되어야 합니다. 그러면 성령께서 역사 하셔서 예수의 눈으로 아내를 보는 믿음이 생깁니다. 나를 통해 아내가 어떻게 성장하고 어떤 기쁨과 어떤 삶을 살아야 할지를 알게 되는 것입니다. 이방인이었음에도 늘 하나님 앞에서 기도하고 구제하던 고넬료라는 이탈리아 군인이요, 남편이요, 아버지인 그에게 어떤 일이 일어났습니까? 그를 통해 아내, 자녀, 친족뿐 아니라 친구들까지 다구원에 이르는 놀라운 역사가 일어났습니다. 가정의 리더인 남편은 기도해야 합니다. 주님이 새벽마다 깨어 기도하심으로 하나님의 은혜로 죄인 된 우리를 끝까지 섬기셨듯이, 리더는 기도함으로 아내를 주님의 눈으로, 자식을 주의 눈으로 보는 새 눈을 가져야 합니다. 저도 결혼 초에 아내와 맞지 않는 것이 있었습니다. 결혼 하고 보니 기대와 다른 모습이었습니다. 그래서 마음속에 잘못 한 결혼아닌가베 하는 생각이 들기도 했습니다. 그런 때는 아내와 눈 마주치는 것이 괴로워 집을 나가곤 했습니다. 그렇게 나갈 때 마다 다른 곳에 가지 않고 기도실에 가서 하나님께 기도하였습니다. 그리고 내 안에 있는 생각들, 옳은 주장들을 하나님께 기도합니다. “아내가 잘 못 되고 제가 옳다”는 것을 인정받기 위함입니다. 그러나 그럴 기도가 계속 될 때 제 마음에 기쁨이 일지 않았습니다. 평안하지 않았습니다. 그럴 땐 제 기도가 문제가 있다는 것을 말합니다. 그래서 나의 내면을 솔직하게 살핍니다. 나의 모습이 하나님 보시기에 옳았나? 이것이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모습인가? 묻고 또 묻습니다. 그러는 중에 하나님께서 제 마음에 “서로 사랑하라”는 말씀이 떠오르게 합니다. 그러나 제 마음은 아직 그 말씀에 순종할 마음이 생기지 않습니다. 아니 어떻게 아내의 그런 모습을 견뎌내라는 말씀입니까? 하고 항의를 합니다. 제가 옳다는 얘깁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계속 말씀합니다. “사랑하라”. 제안에서는 계속 갈등이 일어납니다. 많은 시간 동안 씨름과 씨름을 더하며 제 안에 완전한 평안과 기쁨이 채워질 때까지 은혜를 구합니다. 주님의 눈으로 아내를 볼 수 있을 때가지, 아니 그런 눈을 주실 때 까지 기도합니다. 저의 경우 보통 2-3시간 이상 걸렸습니다. 그런 때 그만 기도하고 싶은 생각이 들 만큼 힘이 듭니다. 그러나 그런 생각이 들 때 마다 하나님은 반드시 은혜를 주시는 분이라는 믿음으로 버팁니다. 그리고 마침내 제 자신을 주님 앞에 완전히 내려놓고 주의 뜻을 수용할 준비가 되면 그 때 평안을 주시고, 나를 통해 행복해 할 아내의 모습을 보여줍니다. 나를 통해 행복하게 하도록 붙여주신 아내를 울린 제 모습을 보고 아파합니다. 성령께서 아내를 향한 새 마음을 주십니다. 그러면 제 영혼이 살아나고 기쁨이 차고 넘칩니다. 아내의 조건과 상관없이 아내를 향한 뜨거운 기도가 나오고 헌신의 결단이 일어납니다. 그리고 아내의 눈을 사랑스럽게 바라 볼 소년이 됩니다. 우리 가정에 참 평안이 임합니다. 저는 가정의 리더로서 이렇게 우리 가정을 세우고 지켜 나갑니다. 나를 고치고 변화시키고 새롭게 하시는 예수님이 우리 가정의 반석입니다. 여러분은 어떻게 여러분의 가정을 세워 나가십니까? 가정이 하나님이 설계하신 가정, 하나님이 설계하신 행복한 가정의 비결이 어디에 있습니까? 예수 안에 있습니다. 할렐루야! 아내 분들께서는 예수 앞에 나아가십시오. 그 길에 이기적 본성을 꺾고 그리스도의 눈으로 남편 바라보는 역사가 일어날 것입니다. 남편 분들이여 이 예수 앞에 나아가십시오. 그때 오만의 본성이 꺾어지고 그리스도의 마음으로 아내를 사랑하는 눈을 가지게 되는 역사가 일어날 것입니다. 그러면 비로소 복음이 가정을 지배하고, 진정한 구원이 가정에 일어나는 것입니다. 진정한 한 몸이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나라로 행복한 가정이 되는 것입니다. 할렐루야~! 하나님이 설계하신 가정을 향하여 함께 기도하며 나아가십시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