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0602(주)주일예배 본문 요 4:23-26 제목 뜨거운 겨울 1- 하나님을 예배하라 목적 하나님을 참으로 예배하는 성도 교회가 되게 하려 함이다. 날씨가 쌀쌀해졌습니다. 6월이니 겨울이 시작 된 것이지요. 한국과 달리 온기가 없는 집안의 싸늘함이 영하 이하로 내려가는 한국의 겨울보다 더 춥게 느껴질 때가 많습니다. 잔뜩 움크리게 하는 싸늘함이 엄습할 때마다 어둠이 짙게 깔린 새벽녘 휴전선에서 보초를 설 때 빨리 동이트기를 바라며 동동거리던 때가 생각납니다. 엄습하는 해밀턴의 추위가 꼭 적막한 휴전선 새벽녘의 그 싸늘함과 같이 여겨지기 때문입니다. 해밀턴의 겨울은 그렇게 적막하고 싸늘하고 고독합니다. 그러나 이러한 해밀턴의 적막하고 싸늘한 겨울 속에서도 뜨겁게 사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들이 누구일까요? 하나님을 뜨겁게 경험하는 사람들입니다. 겨울이라는 계절의 추위는 물론이고, 고독과 외로움과 우울이라는 인생의 겨울을 속에서 살아계신 하나님을 만나는 사람들입니다. 어떻게 그렇게 될까요? 나를 위로하시고 사랑으로 품어주시는 하나님을 만날 때 우리 가슴은 뜨거워지기 때문입니다. 나에게 새로운 소망과 비전을 주시는 하나님을 만날 때 우리 마음은 새롭게 달궈지기 때문입니다. 죄로 말미암아 깊은 괴롬에 눌려 모든 기쁨과 거룩한 담대함이 사라져 살았으나 죽은 자 같을 때 책망 없이 용서하시는 하나님을 만날 때 우리 영혼은 다시 사는 뜨거운 생명의 역사가 일어나기 때문입니다. 진정한 생명의 삶이 하나님께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 모두가 인생의 모든 겨울을 능히 이기는 뜨거운 인생이 되기를 원하십니다. 할렐루야! 그래서 하나님은 신구약 전체의 가르침을 이 한 마디에 요약하여 가르쳐 주십니다. “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 이것이 크고 첫째 되는 계명이요”(마22:37) 즉, 네 하나님을 사랑하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어떻게 사랑하라는 것입니까? “네 마음, 목숨, 뜻을 다하여 하나님을 사랑하라”라고 말씀하십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이, 공부, 직장, 아내, 남편, 자기 자신, 심지어 죽고 못 사는 자식 보다 더 중요하다라고 말씀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데 목숨을 걸라고 말씀하십니다. 왜 그렇습니까? 그 길이 내가 살고 자식이 살고 가정이 살고 세상이 사는 생명의 길이기 때문입니다. 나와 모든 인류의 죄와 인생의 허무와 고통과 죽음의 절망이 깨트리려지는 길, 그리하여 진정으로 가치 있는 인생이 되고, 진정한 생의 기쁨이 회복되고, 영원한 생명을 사는 길이 우리의 창조자, 우리의 구원이신 하나님께 있는 것입니다. 할렐루야! 그렇기에 가장 큰 계명이라 하시며 “마음, 목숨, 뜻을 다하여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는 이 말씀으로 매일, 매순간 우리를 생명의 길로 초대하고 계십니다. 어머니께서 이른 아침부터 정성을 다한 밥을 짓고, 김이 무럭무럭 나는 맛있는 국과 반찬을 차려 놓으시고는 “OO야, 이리와서 뜨거운 국하고 밥 먹어라” 부르시듯, 하나님께서 뜨거운 생명의 길로 우리를 초대하십니다. 인생은 매일이 죄와의 싸움이요, 긴 겨울과 같은 시련과 유혹과의 싸움이기에, 그 싸움에지지 말고 생명을 거룩하게 지키며 승리하라고 부르시는 것입니다. 그 매일의 부름과 초대가 무엇입니까? 예배입니다. 그러니까 예배는 모처럼 쉬고 싶은데 또 차려 입고 나가야 하나 하고 번폐스럽게 여겨야할 귀찮은 일이 아닙니다. 나를 살게 하려고 하나님께서 부르시는 초대입니다. 그래서 예수를 믿고 따르는 성도, 교회가 사는 진정한 길은 예배에 달려 있습니다. 그래서 교회는 죽으나 사나 예배를 드립니다. 예배가 죄와 세상과 인생의 겨울을 이기게 하는 최고의 길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많은 성도와 교회가 예배를 통하여 회복되지 못하고 생명의 힘을 얻지 못합니다. 하나님을 만나 못합니다. 왜 그럴까요?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예배를 드리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본문을 주목 해 보시기 바랍니다. 하나님께서 어떤 예배를 원하시는 지를 주 예수께서 가르쳐 주시고 계십니다. “아버지께 참 되게 예배하는 자들은 영과 진리로 예배 할 때가 오나니 곧 이 때라 아버지께서는 자기에게 이렇게 예배하는 자들을 찾으시니라. 하나님은 영이시니 예배하는 자가 영과 진리로 예배 할지니라” 이 말씀에서 예수님은 수가성 사마리아 여인에게 참 된 예배에 대해 가르쳐 주시고 계십니다. 그것이 무엇입니까? 첫째, 하나님은 참 된 예배 자를 찾으신다는 것입니다. 불행하게도 우리는 예배에 대한 많은 오해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 오해 때문에 참 된 예배 자 되지 못하고 헛된 예배를 합니다. 그것이 무엇일까요? 장신대 예배학 교수였고, 현재는 인천 주안교회를 섬기고 있는 주승중목사는 헛된 예배를 이렇게 말합니다. 1.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베푸신 구원의 은총에 대한 감격과 감사가 실종된 예배는 헛되다. 예배란 “우리가 찾아 나서는 행위”가 아니라, “하나님이 먼저 찾아와 주시는 사랑에 응답하는 행위”라는 것입니다. 즉 찾아 오셔서 베푸신 하나님의 구원의 은혜에 감격하여 마음과 목숨과 뜻을 다해 응답하는 것이 예배라는 것입니다. 그러나 많은 분들이 구원의 은혜에 감격하여 예배드리지 못합니다. 왜 그럴까요? 주승중 목사는 이렇게 말합니다. “구원의 은총에 대한 그 어떤 숙고나 기쁨 없이 습관적으로 예배드리기 때문이 아니겠는가?” 즉 나를 구원하여 주신 놀라운 은혜의 하나님, 십자가 죽음으로 나의 죄를 대신하신 사랑의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깊은 묵상을 통해 되 살아 난 감격과 기쁨 없이, 습관적으로 쉽게 드리는 예배에는 감격과 감동이 없다는 것입니다. 2.하나님께 뭔가 얻기 위해 드리는 예배는 헛되다. 사실 우리가 드리는 많은 예배가 이런 모습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래서 이것이 문제인지도 모릅니다. 주승중 목사는 말합니다. “그러나 이것은 하나님의 복을 받아 내려는 인간적 행위에 불과하다” 이러한 예배가 왜 예배가 아니고 인간적 행위에 불과 할까요? “예배의 본질은 구원 받은 하나님의 백성이 하나님의 위대한 구원 사역을 기리고 감사함으로 드리는데 있지, 결코 무엇을 받고자 드리는 행위에 있지 않기 때문”입니다. 존 맥아더 목사는 이렇게 말합니다. “우리가 주님께 예배드리러 모였다면 우리의 초점은 하나님께로부터 무엇을 받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 드리는 것에 맞추어 져야 한다. 예배는 하나님께 자신을 드리려는 타는 듯한 열망이며, 그것은 우리 자신의 마음과 태도와 우리의 소유를 드리는 것 까지 포함한다.” 예배드리는 목적이 무엇입니까? “구원의 은혜에 감사하여 하나님께 나의 모두를 드리는 것입니다.” 그런데 많은 경우 우리의 목적은 드리는 것이 아니라 무엇인가를 얻는데 초점을 맞춥니다. 그렇기에 자기가 원하는 것이 주어지지 않으면 은혜가 없다고 불평하고 투덜거립니다. 그러나 분명히 알아야 합니다. 우리가 구하는 열매가 예배의 목적이 아닙니다. 복을 구하는 것이 잘 못 되었다는 것이 아니라, 내가 필요한 복을 얻고자 예배드리는 것이 잘 못 되었다는 것입니다. 참된 예배는 예수 그리스도 안에 나타난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에 대한 응답으로써 감격하여 나를 드리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참된 예배를 드리면 하나님께로부터 필요한 복이 뒤 따르는 것입니다. 복은 예배의 열매이지 예배의 목적이 될 수 없습니다. 그 밖에도 다른 헛된 예배는 “잘못 된 동기로 드리는 예배, 두 마음으로 드리는 예배, 회개함이 없이 닫힌 마음으로 드리는 예배”라고 지적을 합니다. 혹 헛된 예배를 드리고 있는 것은 아닌지 우리 자신을 주님 앞에서 바르게 살펴봐야 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찾으시는 참 된 예배자가 되어야 하겠습니다. 둘째로, 그럼 하나님이 찾으시는 참 된 예배 자는 어떤 예배자입니까? “영과 진리로 예배하는 자들이라 말씀하십니다. 예수께서 사마리아 여인에게 이 가르침을 주실 때 당시 예배는 어떤 예배 였습니까? 유대인들은 습관적으로 형식적으로 드렸습니다. 이 모습을 하나님은 일찍이 말라기 선지자를 통하여 이렇게 꾸짖으셨습니다. “만군의 여호와가 이르노라 너희가 내 제단 위에 헛되이 불사르지 못하게 하기 위해 너희 중에 성전 문을 닫을 자가 있었으면 좋겠도다 내가 너희를 기뻐하지 아니하며 너희가 손으로 드리는 것을 받지도 아니 하리라”(말1:10) 하나님의 성전에 나와 제단에 제물을 드려 예배 하지만 하나님은 기뻐하시지 않았습니다. 왜 그러셨을까요? 하나님께 대한 진정한 경외와 감사 없이 할 수 없이 드렸기 때문입니다. 그것이 예수님 시대까지 이어지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유대인들의 예배는 성전에만 국한 되어 있었습니다. 오직 예루살렘 성전에서만 드리는 예배가 참 예배라고 여겼고, 사마리아에서 드리는 예배는 헛되다라고 여겼습니다. 이방인들의 더러운 피가 섞인 사마리아인들이 사는 땅에서의 예배는 더러운 예배라고 여긴 것입니다. 그래서 참으로 예배 하려는 자들은 궁금했습니다. 예루살렘에 가야 참 된 예배이고, 여기 사마리아에서 드리는 예배는 헛된 것인가 하고 말입니다. 그래서 사마리아 여인이 예수께 “우리 조상들은 이 산에서 예배하였는데, 당신들의 말은 예배 할 곳이 예루살렘에 있다 하더이다”라고 말한 것입니다. 이에 예수께서 오늘 본문의 가르침을 주고 계신 것입니다. “여자여 내 말을 믿으라 이 산에서도 말고 예루살렘에서도 말고 너희 아버지께 예배 할 때가 이르리라” 예수님께서 무엇을 말씀하시는 것입니까? 예배의 본질은 장소의 문제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장소, 전통, 문화, 형식, 인종, 혈통에 따라 제한하고 차별하는 시대는 지났다는 것입니다. “어디에서나 누구나 하나님을 예배 하는 은혜의 시대”가 임했다는 것입니다. 할렐루야! 그리고 그 은혜의 시대의 예배의 본질은 “영과 진리로 드리는 예배가 참 된 예배”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렇게 예배하는 자들을 하나님께서 찾으신다는 것입니다. 영으로 예배한다는 것을 무엇을 말하는 것일까요? 하나님은 영이십니다. 장소, 형식, 전통 따라 이렇게 하고 저렇게 해야 예배를 받으시는 분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은 그런 겉이 아니라 “영의 예배”입니다. 성령을 좇아 나의 모든 마음과 나의 모든 인격을 다하여 감격하여 드리는 예배인 것입니다. 이것을 영어로 표현하는 예배라는 단어 “worship” 이라는 말과 연결해 생각해 보겠습니다. “Worship”이라는 단어는 “가치”뜻하는 “worth” 와 “신분”을 뜻하는 “ship”의 합성어입니다. 그러니까 “예배는 최상의 가치를 돌려드리기에 합당한 신분을 위한 행위”입니다. 최상의 가치를 받을 만한 신분을 가진 자를 위한 행위라는 것입니다. 그럼 누가 최상의 가치를 받을 만한 신분을 가진 분입니까? “모든 존귀 영광 찬양 감사 예배 경외를 받으시기에 합당하신 분” 곧 하나님이십니다. 그러니 이러한 영이신 하나님을 어떻게 예배해야 합니까? 성령의 도움으로 나의 전 존재를 다하여 최고로 가치 있는 예배를 드려야 합니다. 말씀 그대로 마음 목숨 뜻을 다하여 하나님을 예배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예배자로 세워지기를 축복합니다. 할렐루야! 진리로 예배한다는 것은 무엇일까요? 진리는 하나님과 하나님의 말씀을 의미합니다. 요한복음 17:17절에서 이렇게 말씀합니다. “그들을 진리로 거룩하게 하옵소서. 아버지의 말씀은 진리니이다” 따라서 진리로 예배한다는 것은 “하나님의 말씀 위에서 서서 예배드리는 것”을 의미합니다. 쉽게 말하면 성경의 진리 위에서 예배 드려야 한다는 것입니다. 성경이 말씀하는 “하나님은 어떤 분이며, 어떤 일을 하셨으며, 어떤 일을 하실 것인지”를 아는 깨달음 위에서 드려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렇기에 진리로 예배를 드리기 위해서는 “하나님의 말씀을 부지런히 읽고 묵상하고 배워야 합니다.” 이렇게 온 마음과 인격을 다해 성령을 따라 그리고 진리 위에서 서서 드리는 예배자를 하나님은 찾으십니다. 그리고 그렇게 예배하는 자는 어떤 일이 벌어집니까? 오늘 본문에서 이렇게 말씀합니다. 메시야 곧 그리스도라하는 이가 오실 줄을 내가 아노니 그가 오시면 모든 것을 내게 알려 주시리이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네게 말하는 내가 그라” 살아계신 주 예수 그리스도를 만나는 것입니다. 진리이신 하나님을 보게 되는 것입니다. 나를 살리는 하나님의 역사 내게 임하는 것입니다. 할렐루야~ 그 결과 길고 긴 인생의 겨울을 살아야 했을 비참한 사마리아 여인이 생명을 얻습니다. 과거의 부끄럼을 넘어 당한 예수의 증인되는 새 삶의 역사가 나타납니다. 평생에 그를 짓눌렀던 겨울이 깨트려지는 것입니다. 할렐루야~ 이 역사 바로 하나님을 예배하는 자들, 하나님이 찾으시는 참된 예배를 드리는 자들에게 임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어떻게 이러한 길을 갈 수 있을까요? 하나님이 찾으시는 자, 즉 성령을 좇아 온 마음과 전 인격을 다하여, 진리 위에서 견고한 믿음으로 예배드리고 준비하는 자가 갈 수 있습니다. 그래서 한 가지 숙제를 드리려고 합니다. 그것은 예배 하루 전, 혹은 주일 새벽에 일어나 하나님과 깊은 기도와 교제하는 것입니다. 이를 통하여 내게 베푸신 구원의 은혜와 감격으로 회복 된 심령으로 준비되어 하나님을 예배하십시오. 구원의 은혜와 감격이 회복 되어 드릴 때, 예배의 시설과 환경, 사람의 적고 많음, 예배의 형식과 절차와 상관없이 여기에 계신 하나님을 만나는 것입니다. 여기에 계신 하나님께 나의 모든 전 존재를 다 드리고자 예배할 때 거기에 하나님께서 우리를 고치고 회복하고 일어서게 하고 달려가게 하는 놀라운 생명의 역사가 일어나는 것입니다. 할렐루야! 하나님은 바로 이러한 예배자를 찾으십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