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1231(월) 송구영신예배 본문 마 6장 30-33절 제목 먼저 예수 2019년 세계경제 대한 글을 필요한 부분을 읽어보았습니다. LG 경제 연구원에서 만든 자료였습니다. 내년 세계 경제는 전체적으로 약간 가라앉을 전망이라고 합니다. 미국과 중국의 보호 무역 경제 대한 갈등의 여파라고 할 수 있습니다. 거대한 공장이라 일컫는 중국도 계속 경제상황이 움츠려 들 것이라 합니다. 그리고 국제 유가도 계속 높아질 가능성이 크다고 봅니다. 매일 쓰는 자동차 유지비가 많이 든다는 것이지요. 결국 뉴질랜드도 이 세계 흐름 속에서 자유롭지 못합니다. 산업국가 아닌 만큼 대박 날 일도 별로 없지만, 낙농·관광수익으로 먹고사는 뉴질랜드도 큰 활황을 기대하기 어렵다는 것입니다. 그저 평년 수준을 유지하는 정도가 되면 잘 했다 소리를 들을 것입니다. 이런 거시경제 흐름 속에서 개인 사업체를 운영하는 교민들의 삶은 더욱 빡빡해질 것입니다. 이언 리스-갤러웨이 작업장관계안전장관이 지난 19일 뉴질랜드 최저 임금이 내년 4월 1일부터 현행 16.50달러에서 17.70달러로 오른다고 발표했기 때문입니다. 종업원 입장에서는 좋겠지만 사업주 입장에서는 큰 짐이 아닐 수 없습니다. 무엇을 말합니까? 우리가 사는 환경은 실은 광야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하나님은 우리를 이러한 환경에서 건져내지 않았습니다. 그곳에 여전히 머물게 하십니다. 애굽에서 나온 백성들이 마주한 것도 홍해요, 홍해를 건넌 뒤에도 광야였습니다. 주님이 다시 오시기 전 까지 이 땅의 교회가 서 있는 자리, 성도가 서 있는 자리는 언제나 광야입니다. 왜 우리를 이 광야에 던져 놓은 신 것일까요? 한 가지 이유입니다. 신명기 8장 2-3절에서 이렇게 말씀합니다.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이 사십년 동안에 네게 광야 길을 걷게 하신 것을 기억하라. 이는 너를 낮추시며 너를 시험하사 네 마음이 어떠한지 그 명령을 지키는지 알려 하심이라” “너를 낮추시며 너를 주리게 하시며 또 너도 알지 못하며 네 조상들도 알지 못하던 만나를 네게 먹이 신 것은 사람이 떡으로만 사는 것이 아니요 여호와의 입에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사는 줄을 네가 알게 하려 하심이니라” 이 말씀을 통해 목적하는 한 가지는 무엇일까요? “아는 것입니다.” 하나님께 택함 받은 백성은 “떡만이 아니라 하나님의 입에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사는 존재임을 배우고 깨닫는 것입니다. 결국 광야란 학교입니다. 살 가망성이 안 보이는 광야에서 하나님을 신뢰하는 법을 배우고, 하나님 말씀을 따름이 생명의 길임을 깨닫는 신학교인 것입니다. 그렇기에 삶이 빡빡하고 꼬이고 어려울 때는 이렇게 여기십시오. “하나님께서 광야신학교 들어가 재교육 받으라고 하시구나.” 그리곤 믿음의 눈으로 그 문제를 보십시오. 그러면 길이 보일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보게하시는 것입니다. 감사하게도 하나님이신 예수님은 이 광야신학교의 총장이십니다. 게다가 총장이신 예수님은 이 세상에서 겪을 수 있는 광야의 모든 산전수전을 맨 앞에서 홀로 겪으신 분이요, 최후의 승리를 거두신 분입니다. 그러니 더 낳은 분이 없습니다. 이 광야학교의 총장님이신 예수님께서 말씀하십니다. “애들아, 공중의 새를 봐라. 하찮은 새도 아버지께서 이렇게 풍족히 기르시는데 너희는 이것들보다 얼마나 더 중하냐. 그러니 염려하지 말아라. 염려한다고 키가 자라는 게 아니다. “ 그런데 이 원리를 보다 더 깊이 깨닫도록 또 말씀하십니다. “애들아, 들의 백합화를 봐라. 그들은 내일이면 아궁이에 던져지는 들풀에 불과하지. 하물며 아버지의 아들들인 너희는 얼마나 더 영광스럽게 입히시겠느냐. 그러니 염려 할 것이 무엇이냐. 염려하지 말거라” 예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시는 요지가 무엇일까요? 예수를 따르기로 한 사람은 씨를 뿌리지도 길쌈도 하지 말라는 것이 아닙니다. 맛있는 것을 먹지 말라는 것이 아닙니다. 또 비싼 옷 좋은 옷을 입지 말라는 것도 아닙니다. 또 이러한 것들은 중요한 것이 아니라고 말씀하는 것도 아닙니다.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가를 배우라는 것입니다. 즉 이 세상 창조하신 하나님은 그 모든 만물을 당신의 그 풍성한 생명으로 채우시는 분임을 신뢰하라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 하나님은 빈약한 하나님이 아닙니다. 이 모든 만물을 지으시고 입히시고 먹이시는 풍성한 하나님이신 것입니다. 그러니 걱정 말고 먼저 그의 나라와 의를 구하라는 것입니다. 새로운 삶의 자세를 가지라는 것입니다. 먼저 예수를 구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뜻과 의를 구하는 것입니다. 먹을 것 입을 것이 걱정 되어도, 먼저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길을 가는 것이요, 그 길에 필요한 모든 것을 주실 것을 신뢰하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 아버지이신 하나님은 먹지 말라, 입지 말라 하시는 것이 아닙니다. 먹고 입는 것은 불필요하다 말씀하는 것이 아닙니다. 잘 먹어야 하고, 잘 입어야 합니다. 그러나 그것이 없다고 염려하지 말라 하십니다. 이런 것은 먼저 하나님의 나라와 뜻을 걷는 자에게는 하나님께서 알아서 채우신다는 것입니다. 할렐루야! 이러한 하나님이심을 일찍이 깨달은 사람이 바로 아브라함입니다. 아브라함이 하나님의 마지막 광야 학교에 졸업논문을 써야 할 때 였습니다. 주제는 “네가 정말 나를 사랑하느냐”라는 것이 었습니다. 그러나 요즘 시대와 달리 그 논문을 글로 쓰는 논문이 아니었습니다. 믿음과 삶으로 쓰는 논문이었습니다. 이에 하나님께서 실행과제를 주십니다. “100세에 낳은 아들을 하나님께 드리되, 번제로 드리라”는 과제 였습니다. 유일한 약속의 아들인 이삭을 하나님께 드리되, 짐승처럼 잡아서 단 위에 불사르라는 것이었습니다. 아무리 하나님이라도 그렇지 어떻게 사람을, 게다가 100세에 겨우 얻은 친 아들을 잡아서 불태워 제사를 드리라고 할 수 있단 말입니까? 이런 명령을 한다는 것 자체가 이해가 불가 할뿐 아니라, 이런 명령을 내리는 신이라면 진정한 신이라 할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런 법은 있을 수 없는 법이요, 신이라 할지라도 그럴 수는 없는 것입니다. 그렇기에 정상적이라면 이럴 때 이렇게 말하고 믿음을 접어야 합니다. “나는 하나님이 옳은 참 신이신줄 알았는데, 이런 당치도 않는 명령을 내리는 것을 보니 당신은 참 신이 아니요, 악한 영이라. 나는 더 이상 믿지 않겠소” 그런데 아브라함이 이렇게 하지 않습니다. 이 명령을 따라 아들을 불사를 장작을 준비하여, 아들을 데리고 3일 길을 떠납니다. 그리곤 목적지에 이르자 종들은 남겨두고 아들 이삭 만을 데리고 산에 오릅니다. 그 때 이삭이 천진난만한 얼굴로 묻습니다. “아버지, 불과 나무는 있는데 번제로 드릴 어린양은 어디있어요?” 그러자 아브라함이 답을 합니다. “아들아, 번제할 어린 양은 하나님이 자기를 위하여 친히 준비하실거야. 걱정하지 말아라” 이에 이삭도 “예” 하고, 어깨에 진 장작이 무거워도 즐겁게 아버지를 따라 올라갑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곳에 당도하자, 곧 제단을 쌓습니다. 이어 불이 잘 붙도록 장작을 잘 벌려 놓습니다. 이삭은 아무리 둘러봐도 하나님이 준비한 제물을 보지 못했습니다. 그런데 이게 왠일입니까? 아버지가 자신을 묵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곤 벌려 놓은 나무 위에 올려놓았습니다. 그리곤 곧 칼을 잡아들고서는 이삭을 잡으려 합니다. 그러나 그 때 하나님께서 급하게 말씀하십니다. “아브라함아 아브라함아, 이삭에게 손을 대지 말라. 그에게 아무 일도 하지 말라. 네가 네 아들 네 독자도 아끼지 아니 하였으니 내가 이제야 네가 하나님을 경외하는 줄을 아노라” 하나님도 참 짓궂습니다. 사람 속을 이렇게 환장하게 만들어야 꼭 직성이 풀리는 것일까요? 아닙니다. 아브라함을 더 단단한 믿음의 사람으로 세우시려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경외하는 자를 위해 모든 것을 준비하시는 하나님이심을 믿는 본을 보이려 하신 것입니다. 아브라함은 이 마지막 논문심사를 통해 깨달았습니다. “하나님은 여호와 이레, 준비하시는 하나님이다” 그렇습니다. 하나님을 신뢰하고 그 나라와 의를 구하는 자에게 하나님은 여호와 이레 하나님이십니다. 예수님은 말씀합니다. “그런즉 아무 것도 염려하지 말고 너희는 먼저 그 나라와 그 의를 구하라” “하나님 나라에 합당한 길, 하나님의 뜻에 합당한 의의 길이 먼저다” 말씀하십니다. 생전 하용조 목사님이 선교가 거의 불가능한 모슬렘 지역에서 40년간 일해 오신 한 선교사님에게 물었습니다. “오늘날까지 어떻게 지내셨습니까?” 그분이 대답하셨습니다. “제게는 좋은 후원자가 있습니다. 바로 마태복음 6장 33절 말씀입니다. 하나님께서는 한 번도 이 약속을 어기신 적이 없으십니다.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 선교사님은 또 이런 말씀도 하셨습니다. “감옥에 있을 때나 사막을 걷고 있을 때나 세상 후원자가 다 끊어졌을 때에도 하나님은 이 약속을 지켜 주셨습니다.” 2019년을 주시는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놀라운 비밀을 말씀하십니다. 세상이 모르는 염려부터 자유케 되는 행복의 비밀에 대해 말씀합니다. “풍성하신 하나님을 신뢰하고, 먼저 그 나라와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빛 된 성도의 길을 갈뿐 아니라, 그 길에 필요한 모든 것은 내가 공급하마” 2019년도 광야의 길이 될 것입니다. 그러나 모든 것을 풍성함으로 먹이고 입히시는 풍성한 하나님이심을 신뢰하고, 먼저 예수를 따라 하나님 나라와 의의 길을 걷는 자에게는 그 어느 해, 그 어느 누구보다 풍성하고 행복한 해가 될 것입니다. 이것이 세상이 알지 못하는 비밀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