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0609(주) 주일예배 본문 사도행전 2:1-13 제목 뜨거운 겨울 2-성령은 누구인가 목적 성령강림주일을 맞아 열려진 성령의 시대임을 알게 하고, 성령이 누구인지를 깨닫게 하려 함이다. 몇 가지 질문을 말씀을 시작해보겠습니다. 질문을 들으면서 “맞습니다. 저는 그렇게 되기를 원합니다” 하는 거룩한 소원이 생긴다면 속으로 “아멘!”하고 하나님께 고백하십시오. -성도님께서는 정말 하나님이 어떤 분이며, 참 진리가 무엇인지, 그 사랑과 은혜가 무엇인지를 알기 원하십니까? -이 땅에서 죄와 시련을 이기고 자신을, 가정을, 자녀를 지키고 바르게 세우기 원하십니까? -성도님께서는 정말 하나님과 예수 그리스도의 그 놀라운 사랑과 영광을 드러내는 참 성도와 교회가 되기를 원하십니까? 그렇다면 우리는 성령이 어떤 분인지를 알아야 합니다. 성령의 시대가 임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성령이 어떤 일을 하시는지를 알아야 합니다. 어떻게 성령의 인도하심을 받아야 하는지를 알아야 합니다. 성도님들께서는 성령을 어떻게 이해하고 계십니까? 어떤 뜨거운 느낌, 뜨거운 힘, 어떤 능력으로 이해하시는지요? 우리는 어떤 현상으로 성령을 규정해서는 안 됩니다. 반드시 성경에서 가르치는 대로만 이해해야 합니다. 오늘 본문은 예수님이 죽으신 후 50일째 되는 날, 혹은 예수님 부활 후 40일 동안 계시다 승천하신 후 10일째 되는 날, 즉 오순절 에 일어난 사건을 보고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의 말씀에 따라 예루살렘에 머물러 성령을 기다리던 예수의 120여 제자들에게 성령님이 임하신 사건입니다. 그리고 놀랍게도 모두가 듣고, 볼 수 있는 방식으로 임하셨습니다. 2절에 의하면 “하늘로부터 급하고 강한 바람 소리가 앉은 온 집에 가득했습니다.” 급하고 강한 바람 소리가 방안에 있는 모든 사람들에게 들린 것입니다. 3절에 의하면 “불의 혀처럼 갈라지는 것들이 그들에게 보여 각 사람 위에 하나씩 임하였습니다.” 불꽃같은 것이 각 사람 머리 위에 나타난 것입니다. 그리고 그 결과도 놀랍습니다. 4절에 의하면 “다 성령의 충만함을 받고 성령이 말하게 하심을 따라 다른 언어들로 말하기를 시작 했습니다” 방언을 한 것입니다. 그런데 5절 이하에 의하면 각 나라와 지방의 말들로 말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러자 다 놀라 신기하게 여겼습니다. 거기에서 방언을 하는 사람들은 다 갈릴리 시골 사람들로 외국에는 한 번도 가본적도 없는 사람들이 각 나라의 말을 하기 시작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이 사건 후 사도들과 믿는 자들은 담대히 십자가의 예수는 부활했으며, 그 예수가 주와 하나님이시다라고 담대히 증거하기 시작했습니다. 자 오순절 이 날에 임한 성령은 어떤 분일까요? 성령은 어떤 능력이나 힘일까요? 아니면 성부 하나님, 성자 예수 그리스도와 동일한 권세와 권능을 갖고 계신 인격적인 존재일까요? 성경에서 무어라 말씀하는 지를 보겠습니다. 창세기 1장 1절에서 이렇게 말씀합니다.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 여기에서 “하나님“은 ”엘로힘“이라는 단어를 썼는데, 복수입니다. 그러면서도 단수로 취급합니다. 따라서 그래서 학자들 중에는 이를 ”성부, 성자, 성령“이 계시되 한분 하나님이심을 암시 한다고 말합니다. 그리고 창세기 1:2 절에서는 “땅이 흔들리고 공허하며 흑암이 깊음 위에 있고 하나님의 영은 수면 위에 운행하시니라” 말씀이 나옵니다. 여기에서 하나님의 영은 바로 성령을 말합니다. 이처럼 성경은 창세기 1장 1절, 2절에서부터 성령의 존재 말씀합니다. 그리고 창1:26절에선 이렇게 말씀합니다. “하나님이 이르시되 우리의 형상을 따라 우리의 모양대로 우리가 사람을 만들고 그들로 바다의 물고기와 하늘의 새와 가축과 온 땅과 땅에 기는 모든 것을 다스리게 하자” 사람을 창조하실 때 “우리의 형상을 따라, 우리의 모양대로”라는 표현을 사용합니다. 왜 “우리”라는 표현을 썼을까요? 하나님이 단순한 싱글이 아니라 복수로 존재하심을 나타냅니다. 그리고 요한복음 1장 1-2절에서 이렇게 말씀합니다. “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라 이 말씀이 하나님과 함께 계셨으니 이 말씀은 곧 하나님이시니라. 그가 태초에 하나님과 함께 계셨고“ 여기에서 “태초에 계신 말씀”이란 “예수 그리스도”를 말합니다. 그리고 예수께서도 부활 후 제자들에게 마지막 대 사명을 맡길 때 이렇게 말씀합니다.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민족을 제자로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베풀고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 이 말씀에서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베풀라 말씀하심으로써 하나님은 성부와 성자와 성령으로 계시는 분임을 알 수 있습니다. 그리고 마3:16-17절에는 이렇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예수께서 세례를 받으시고 곧 물에서 올라오실 새 하늘이 열리고 하나님의 성령이 비둘기 같이 내려 자기 위에 임하는 것을 보시더니 하늘로부터 소리가 있어 말씀하시되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내 기뻐하는 자라 하시니라” 이 말씀에서 땅에는 예수님이 계시고, 하늘에는 성부 하나님이 계시고, 땅과 하늘사이에 성령이 임하시는 것을 보게 됩니다. 즉 이 상과 같은 말씀은 뭘 말씀합니까? 성경은 하나님은 세 존재로 계시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즉 성경은 하나님을 태초부터 성부와 성자와 성령 하나님으로 드러내고 있습니다. 그리고 여기에서 성부와 성자와 성령은 하나이시다라는 삼위일체론이 나오게 됩니다. 우리의 논리로는 이해가 불가능한 신비로서 “서로 고유한 독립적 인격을 가진 세분이면서도 하나이신 하나님”이십니다. 이 상에서 보는 보와 같이 성경은 성령을 하등한 존재, 혹은 어떤 비인격적 힘과 능력으로 묘사하지 않습니다. 성부와 성자와 동일한 권위를 가진 하나님으로 말씀합니다. 그러나 기독교 역사에 있어서 성령 하나님은 사실 많은 푸대접을 받아 왔습니다. 하지만 예수님은 성령이 어떠한 분이신지를 정확 아셨습니다. 당신이 이 땅에서 떠나신 후에 당신을 대신하여 제자들과 교회를 이끄실 하나님의 영, 성령 하나님이심을 정확히 알고 계셨습니다. 그래서 예수께서는 십자가에 못 박히신 후 삼일 째 되는 날 새벽 부활하신 후 40일간 제자들과 함께 계시고, 승천하시기 전 제자들에게 성령을 기다리라 말씀하셨습니다. “예루살렘을 떠나지 말고 내게서 들은 바 아버지께서 약속하신 것을 기다리라”(행1:4) 아버지께서 약속하신 것이 무엇입니까? 구약시대 선지자들을 통하여 성령을 부어 주실 것에 대한 언약입니다. 그 대표적인 언약이 요엘 선지자들 통하여 주신 언약입니다. “그 후에 내가 또 내 영을 만민에게 부어주리니 너희 자녀들이 장래 일을 말할 것이며, 너희 늙은이는 꿈을 꾸며, 너희 젊은이는 이상을 볼 것이며 그 때에 내가 또 내 영을 남종과 여종에게 부어주실 것이며, 내가 이적을 하늘과 땅에 베풀리니 곧 피와 불과 연기 기둥이라”(욜2:28-29) 여기에서 “내가 또 내 영을 만민에게 부어주리니”라고 언약하고 있습니다. 또 이사야 선지자를 통해서도 이렇게 언약하였습니다. “나는 목마른 자에게 물을 주며 마른 땅에 시내가 흐르게 하며 나의 영을 네 자손에게, 나의 복을 네 후손에게 부어 주리니 그들이 풀 가운데 솟아나기를 시냇가의 버들 같이 하리라”(사44:3) “나의 영을 네 자손에게” 부어주겠다는 언약입니다. 이처럼 이 성부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영이신 성령을 모든 만민에게, 이스라엘 위에 부어주실 것을 언약하셨습니다. 그리고 성자 예수께서 이 약속들을 근거로 하여 제자들에게 “아버지의 약속하신 영”을 기다리라 말씀합니다. 그리고 오늘 본문에서와 같이 기다리는 제자들 위에 성령이 임합니다. 예수의 승천 이후 고아와 같이 홀로 남은 제자들 위에 성령이 오십니다. 성부와 성자와 동일한 인격이요, 권세와 능력이요 인도자이시며 항상 함께 계실 성령이라는 하나님이 홀로 남은 제자들에게 임한 것입니다. 할렐루야! 1. 오순절 성령 강림 사건은 단순한 이적 사건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약속하신 성령이 오심으로서 성령 하나님의 시대가 열린 것을 말합니다. 즉 성부와 성자 하나님과 동일한 권세와 능력과 지혜와 사랑을 소유하신 성령 하나님이 구원의 마지막 사역을 이루기 시작했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성령 없이는 그 어떤 구원사역도 있을 수 없습니다. 또 우리가 말씀을 깨닫고, 하나님을 더 깊이 알아가고, 믿음이 자라는 모든 것이 다 성령 하나님의 역사라는 것입니다. 그러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이 무엇입니까? 겸손히 성령 하나님을 마음에 모시는 것이요, 성령 하나님의 도우심을 구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성령께서 임하시고, 우리의 눈을 열어주시는 것입니다. 2. 다른 한편으론 예수의 제자들에게 하나님과 예수 그리스도의 영이신 성령 하나님이 오신 것을 의미합니다. 요 14:16-17절에서 예수 그리스도는 이렇게 말씀합니다. “내가 아버지께 구하겠으니 그가 또 다른 보혜사를 너희에게 주사 영원토록 너희와 함께 있게 하리니...그는 너희와 함께 거하심이요 너희 속에 계시겠음이라” 여기에서 성령을 또 다른 보혜사라 가르쳐 주십니다. 나와 같이 계시고, 나를 위로하시고, 나의 믿음과 의로움을 끝까지 변호해 주시는 분이라는 뜻입니다. 그런데 이 말씀을 하실 때 “또 다른 보혜사”라고 말씀합니다. ‘또 다른’이라는 말은 이미 보혜사 있었고, 성령은 다른 보혜사라 말합니다. 그럼 성령 앞서 있던 보혜사는 누구일까요? 누가 성령 앞서 그 믿는 자들과 함께 했고, 그들을 위로했고, 그 들의 믿음을 옳다 하셨습니까? 바로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예수님께서 제자들과 3년을 동거동락하시며 그들을 돌보고 인도하신 보혜사이십니다. 그런데 예수께서 이제는 성령을 또 다른 보혜사라 말씀합니다. 왜요? 이제 예수님은 제자를 떠나지만, 성령이 오셔서 예수님처럼 그렇게 함께 계시고 위로하실 것이기 때문입니다. 즉 예수님이 안 계신 것 같지만 남겨진 제자들 안에는 누가 계신 것입니까? 예수님이 성령과 함께 오신 것입니다. 그래서 성경은 이렇게 말씀합니다. “만일 너희 속에 하나님의 영이 거하시면 너희가 육신에 있지 아니하고, 누구든지 그리스도의 영이 없으면 그리스도의 사람이 아니라” 성령을 하나님의 영, 그리스도의 영이라 말씀합니다. 즉 성령은 우리에게 성부 하나님,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우리 안에 오신 것입니다. 나를 위해 아들을 주신 성부 하나님, 나를 위해 십자가에 대신 죽기까지 사랑하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성령과 함께 우리 안에 오신 것입니다. 할렐루야! 그렇기에 성령께서는 하나님의 그 사랑, 그 능력, 그 지혜로 우리를 품어주시고, 인도하시고, 진리의 길로 인도하십니다. 죄와 싸워 이길 힘을 주시는 것입니다. 아브라함에게 성부 하나님이 함께 하셨던 것 같이, 예수님이 제자들과 함께 계셨던 것 같이, 지금 우리에겐 성부와 성자의 영이신 성령 하나님이 함께 계신 것입니다. 왜요? 믿는 자들을 고아와 같이 버려두지 않고, 하나님을 온전히 예배하고, 예수를 닮아가며 하나님 나라를 위한 삶에서 끝까지 승리하기까지 함께 하사 용서하시고, 위로하시고, 강하게 하시고, 이기게 하시려는 것입니다. 할렐루야! 프랑스 남쪽 쎄벤느(Cévennes) 국립공원에 있는 광야박물관(Musée du Désert)을 방문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든지 한 여성의 이야기를 만나게 됩니다. 바로 마리 뒤랑(Marie Durand, 1711-76)이라는 프랑스 여성입니다. 그녀는 19살이던 1730년에 단지 위그노 개혁교회 교인이라는 이유로 체포되었다. 그리곤 프랑스 최남단 에그모르트에 있는 콩스탕스 탑에 갇히게 됩니다. 무려 38년간 말입니다. 19살에 체포되어 감옥에 들어간 마리는 1768년 57살이 되어서야 풀려난 것입니다. 감옥에 있는 동안 “적당히 믿어”라고 빈정거리는 세상의 유혹, 교황의 회유, 왕으로부터의 유혹이 끝없이 다가왔습니다. 그 때마다 그녀는 옥의 바닥에 “저항하라, 저항하라”는 글을 새겨놓고 그 시험들을 이겨냈습니다. 그리고 그 바닥에 쓴 그 글이 지금도 그 감옥 박물관 전시 되어 있습니다. 그녀가 바닥에 저항하라 저항하라는 글을 새기면서 그 유혹과 억압의 그 긴 고통의 시간들을 어떻게 이겨 낼 수 있었을까요? 그것은 성령께서 그와 함께 하사 그를 격려하시고, 그를 품어주시고, 그를 용기 있게 하셨기 때문입니다. 성령님은 누구이입니까? 성부와 성자와 동일한 본질을 갖고 계시신 하나님이십니다. 그리고 약속대로 이 하나님께서 마지막 구원을 이루시기 위해 오신 하나님입니다. 나아가 믿는 자들에게 임하사 영원히 함께 하계시며 예수님처럼, 성부하나님처럼 우리를 품고 돌보고 인도하시는 분이십니다. 이 성령 하나님을 날마다 높이고 겸손히 그 은혜를 구하십시오. 죄를 이기고 시련을 이기며 하나님 나라의 사명을 능히 감당하게 하실 것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