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0902(주) 주일예배 본문 엡 1:22-23 제목 교회란 무엇인가? 오늘은 온 세상의 창조자 되시고 통치자이며 우리의 주되신 삼위 하나님을 예배하는 날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일요일을 주님의 날, 곧 주일이라 부릅니다. 그래서 만사를 제쳐 놓고 우리의 존재의 근원 되시고, 존재의 목적이 되시는 하나님을 예배합니다. 기도와 찬양과 헌금을 드림으로 삼위 일체 하나님만이 우리의 주이시며 하나님이심을 고백합니다. 동시에 주되신 하나님의 말씀과 언약을 다시 듣고 마음에 새깁니다. 그리곤 나가서 치열한 영적싸움을 전개합니다. 이러한 길을 가도록 한 공동체를 이루고 서로 연대하는 집단이 바로 교회입니다. 한편 이 시간 어딘가에서는 또 다른 모임들이 있습니다. 음악회를 하는 곳도 있을 것입니다. 세계적인 연주자가 나와서 연주를 할 때 모두가 감동을 받습니다. 그리고 우레와 같은 박수로 칭송을 합니다. 혹 그 연주자가 기독교인이고, 많은 청중이 기독교인이라 할지라도 이런 모임을 향해 교회라고 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그 모임은 음악회이지 예수를 주라 고백하며 따르는 믿음의 공동체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기독교인들이 흔히 잘 못 말하고 있어서 교회의 개념이 비성경적으로 사용되기도 합니다. 예를 드리면 오늘과 같은 주일에 예배드리러 예배당을 찾을 때 보통 우리는 “교회에 간다”라는 말을 씁니다. 하도 오랫동안 이 말이 쓰여 왔고 전수되어 왔기 때문에 아주 굳을 때로 굳어져 사용 됩니다. 또 이러한 표현이 잘 못 된 것을 알면서도 하도 이렇게 써 오다 보니까 편해서 “교회 간다”라고 사용합니다. 그러나 성경 어디에도 어떤 장소를 교회라고 표현하지 않습니다. 어떤 건물을 교회라고 표현하지 않습니다. 교회는 어떤 예배 장소, 혹은 예배드리는 건물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건물, 장소는 단지 예배드리는 예배당이요, 예배드리는 장소일 뿐이지 교회가 아닙니다. 그래서 주님의 날에 예배드리러 갈 때 누가 어디가냐고 묻거든 “예배드리러 간다” 혹은 “예배당에 간다”라고 답을 해야 정확합니다. 그래야 예수를 모르고 아직 믿음이 없는 사람들에게 “건물, 장소를 교회라고 인식하게 하는 심각한 오류”를 막을 수 있습니다. 장소, 건물은 예배드리도록 구별 된 장소, 건물이지 교회가 아닙니다. 그럼 성경에서 말하는 교회란 무엇일까요? 교회라는 용어가 처음 등장하는 곳은 마태복음 16:18 입니다.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묻습니다. “너희는 나를 누구라 하느냐” 이에 베드로가 용감하게 대답을 합니다. “주는 그리스도시오,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니이다” 이에 예수께서 베드로에게 말씀하십니다. “바요나(요나의 아들) 시몬아 네가 복이 있도다. 이를 네게 알게 하신 이는 혈육이 아니요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시니라” 그리고 이어서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내가 네게 이르노니 너는 베드로라 내가 이 반석 위에 내 교회를 세우리니 음부의 권세가 이기지 못하리라” 여기에서 “교회”라는 단어의 헬라어는 “에클레시아”라는 단어가 사용 되었습니다. 이 단어는 “밖으로”라는 뜻의 접두어 “에크“와 불러내다는 뜻의 ”칼레오“라는 단어 합쳐진 단어로 ”밖으로 불러냄을 받은 모임, 공동체“라는 의미입니다. 즉 예수께서 교회를 세우시겠다는 말은 ”세상에서 불러냄을 받은 공동체를 세우시겠다“는 뜻입니다. 따라서 교회는 건물이 아니라, 세상에서 불러냄을 받은 사람들을 말합니다. 그러면 세상에서 불러냄을 받은 사람들은 어떤 사람들일까요? 베드로에게 하신 말씀에서 알 수 있습니다. “내가 네게 이르로니 너는 베드로라 내가 이 반석 위에 내 교회를 세우리라” 캐톨릭에서는 “이 반석”을 베드로로 해석을 합니다. 교회가 베드로라는 기초 위에 세워진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캐톨릭은 베드로를 교회의 최고, 궁극의 리더로 보았습니다. 나아가 이 베드로의 교회의 최고의 우두머리 권을 교황이 계승한다고 보았습니다. 그러나 이는 잘 못 된 해석입니다. “너는 베드로라. 내가 이 반석 위에 내 교회를 세우리라”는 주님의 말씀에서 “이 반석”이란 베드로가 고백한 믿음, 곧 “예수는 그리스도, 예수는 하나님이시다”라는 고백을 말씀합니다. 따라서 “이 반석위에” 라는 그리스도시오, 하나님이신 예수님을 말씀하는 것입니다. 즉 교회는 세상에서 부름 받은 사람들인데, 예수가 그리스도이시고, 하나님이라는 믿음 위에 선 사람들인 것입니다. 즉 예수를 믿음으로 죄와 세상에서 부름을 받아 새로운 삶을 사는 사람들이 교회인 것입니다. 그래서 여기에서 예배하는 우리들이 교회인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라는 터 위에 믿음으로 서 있는 공동체가 교회인 것입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에서는 이 교회를 다르게 표현합니다. “”또 만물을 그의 발아래에 복종하게 하시고 그를 만물 위에 교회의 머리로 삼으셨느니라“ 이 말씀에서 바울은 교회가 믿음으로 서 있는 터, 즉 예수 그리스도가 누구인가를 말씀합니다. 예수는 교회의 머리입니다. 그런데 교회의 머리되신 이는 “만물을 그의 발아래 복종하게 하시는 분” “만물 위에 계신 분”으로 묘사합니다. 여기에서 만물이란 이 우주에 있는 모든 피조물을 말합니다. 모든 존재를 말합니다. 이 광대한 우주와 그 우주를 다스린다고 생각하는 모든 권세들을 포함하여 하늘과 땅의 모든 존재를 그 발아래에 두고, 그것을 다스리시는 분입니다. 더 이상 세상에는 만물을 발아래 두고 있는 존재와 맞설 수 있거나, 비교할 수 있는 존재가 더 이상 없다는 것입니다. 비교나 맞서기는커녕 그 발아래 엎드려 복종해야 할 존재에 지나지 않을만큼 교회의 머리 되신 이는 실로 엄청난 존재입니다. 이 세상의 모든 만물의 통치권을 가지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교회의 머리 되신 이는 누구입니까? 바로 십자가에 죽으시고 부활하신 예수, 승천하사 하나님 우편에서 계시며,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가지고 통치하시는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그런데 마태복음에서 베드로에게 “내가 이 반석 위에 내 교회를 세우리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on this rock, I will build My church”. 주님이 교회를 세우시겠다는 것입니다. 교회는 목사가 세우는 게 아니요, 사람이 세우는 게 아니라, 주님이 세우시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렇게 주님이 세우신 교회는 “My church” 주님의 교회인 것입니다. 어떤 돈 많은 성도가 많은 헌금을 기부해서 예배당을 세웠다고 해서 예배당에 모이는 교회가 그 사람의 교회가 아니고, 그 사람이 세운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교회는 십자가에 죽으시고, 부활하시고, 승천하시고,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가지고 통치하시는 만 왕의 왕 예수 그리스도께서 세우시는 예수 그리스도의 교회인 것입니다. 그런데 본문에서 이렇게 주께서 세우시고, 주께서 주인 되신 교회를 뭐라고 표현합니까? “주님은 교회의 머리요, 교회는 그의 몸이다”라고 말씀합니다. 이는 무엇을 말합니까? 교회의 주인은 머리 되신 예수요, 예수 몸이 된 교회는 머리 되신 주 예수를 따라 행하는 몸이라는 것입니다. 세상 밖으로 부름 받았다는 것이 바로 이것입니다. “예수를 머리로 삼고 그 머리의 명령에 따라 행함으로써 세상과 다른 삶을 사는 공동체”라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아무리 스스로 교회라 해도 예수님을 머리로 삼지 않고머리의 지시를 받지 않고 순종하지 않는다면 그것은 교회가 아닙니다. 아무리 그리스도인이라 해도 예수를 머리로 모시고 순종하지 않는다면 신분상으로는 성도이나, 그 행실로는 하나님께 나아가는 길을 막고 서서 아무도 못 들어가게 하는 대 죄인이 되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의 핵심은 이렇게 예수님을 머리로 한 예수의 몸인 교회가 어떤 위상을 가지고 있는가 하는 것입니다. 본문에 “교회는 그의 몸이니 만물 안에서 만물을 충만하게 하시는 이의 충만이니라”는 말씀이 나옵니다. 다소 이해하기 어려운 말씀입니다. 여기에서 “만물 안에서 만물을 충만하게 한다”에서 만물은 이 세상의 모든 피조물, 특히 죄와 악으로 깨진 이 피조세계를 말합니다. 언젠가도 말씀드렸듯이 이 세상은 눈물 없이 살 수 없는 세상입니다. 죄로 말미암아 모든 관계가 깨졌고, 또 계속 깨져나가기에 그 관계 안에서 도망 갈 수 없는 우리 모두는 다 아픔과 고통을 겪습니다. 그래서 여기에 이렇게 다들 거룩한 모습을 앉아 있지만 실은 한 꺼풀 벗고 속 얘기를 꺼내기 시작하면 눈물 없이는 말할 수 없는 사연이 다 저마다 있는 것입니다. 세상은 그렇게 아픕니다. 나 자신과의 관계, 이웃 간의 관계, 자연과의 관계, 하나님과의 관계가 다 깨진 세상에 우리가 살고 있기에 그렇습니다. 그런데 이런 깨진 관계, 깨진 이 세상을 회복하기 위해 오신 분이 계십니다. 바로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본문에서 “만물 안에서 만물을 충만하게 한다”는 표현이 바로 예수님이 하시는 충만한 회복을 말합니다. 즉 예수님은 피조 된, 그러나 죄로 깨진 모든 만물이 본래 되어져야 할 그 선하고 온전하고 참된 그 모습으로 충만하게 회복하시는 분이 것입니다. 고통 하는 모든 피조물을 창조된 본래의 그 아름다움과 행복과 평안과 기쁨과 감사와 사랑의 충만한 모습으로 회복시키는 이, 바로 그가 예수 그리스도이신 것입니다. 그런데 바울이 “교회는 그의 몸이니 만물 안에서 만물을 충만하게 하시는 이의 충만함이니라”뜻은 무엇입니까? 교회는 만물을 충만하게 회복하시는 이의 회복의 열매라는 것입니다. 즉 예수님께서 오셔서 하나님 나라를 시작하셨고, 그 시작의 결과가 바로 교회라는 것입니다. 만물을 회복하시려는 하나님의 그 깊은 긍휼의 구원이 예수를 통해서 무엇으로 나타난 것입니까? 교회로 나타났다는 것입니다. 이 말은 단순한 말이 아닙니다. 이 말은 만물을 본래 되어져야 할 창조의 그 모습을 회복하실 수 있는 유일하신 참 왕이신 예수께서 낮아지셨고, 그 모진 모욕과 수치를 당하셨고, 마침내는 모든 죄인들이 받아야 할 심판을 자신이 온 몸으로 받으신 그 십자가로 맺은 첫 열매가 바로 교회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교회는 예수 그리스도의 희생과 사랑의 충만 그 자체입니다. 예수님의 위대하고 변할 수 없는 충만한 사랑의 결과로 생긴 것이기 때문이요, 변함없는 사랑으로 여전히 붙들림 받고 있는 예수 그리스도의 몸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 충만의 결과로 맺어진 예수님의 그 첫 회복의 열매가 바로 교회인 우리 들인 것입니다. 할렐루야! 그리고 이런 우리는 만물의 통치자, 만물을 충만히 본래의 모습으로 회복시킬 예수 그리스도의 몸이라 증거합니다. 만물의 통치자 되시고, 만물을 창조의 형상대로 다시 회복시킬 위대하신 주 예수의 몸인 것입니다. 할렐루야! 여기에서 무엇이 나옵니까? 우리의 위대한 사명이 나옵니다. 만물을 회복시키실 위대하신 왕을 머리로 모신 우리는 그의 몸으로 만물을 회복시키시는 그 일을 수행한 지체라는 것입니다. 즉 우리는 만물을 회복시키시는 주 예수 그리스도의 동역자들인 것입니다. 즉 교회는 건물이 아니라, 예수님을 따라 만물을 회복시키는 위대한 사명을 부여 받는 공동체입니다. 그러면 어떻게 이 위대한 사명을 주와 함께 수행해 나갈까요? 첫째 먼저 진정한 사랑의 공동체가 되어야 합니다. 이를 위해 우리가 해야 할 것이 있다면 바로 물질과 시간을 내어 서로 사랑하는 것입니다. 말과 혀로만이 아니라 돈과 시간을 내어 우리 안의 형제자매를 구체적으로 돕고 섬기는 것입니다. 그래서 적어도 우리 공동체 내에서는 굶주리는 자가 없고, 경제적 빈곤 때문에 고통 하는 자가 없어야 합니다. 그럴 때 교회는 정말 지치고, 힘든 영혼들에게 진정한 위로와 용기와 소망을 주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시간을 내어 섬겨야 할 일을 수행함으로 교회의 형제 자매가 필요한 것을 채워줘야 합니다. 시간을 투자 하지 않고는 어떤 일도 할 수 없고, 되는 일도 없는 것입니다. 그러니 형제자매를 우리가 사랑한다 할 때 시간을 투자해야 하고, 이를 위해 정말 시간을 귀하게 사용해야합니다. 둘째 사랑의 교제와 위로와 회복으로 가득한 교회가 되어야 합니다. 우리는 하루하루 아픈 삶을 살고 있습니다. 이 세상이 죄와 악으로 깨져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이렇게 힘든 세상에서 치열한 영적싸움을 전개하면 상처와 배반과 부상으로 고통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이런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서로를 싸매어주고 용기를 주고 일으켜주는 위로와 사랑입니다. 그래서 나들목 교회 김형국 목사는 교회는 축구 시합을 할 때 전반전을 뛰고 들어와 잠시 쉬는 락커룸과 같아야 한다고 말합니다. 치열하게 싸우고 들어온 선수들을 격려하고, 아픈 곳을 싸매어 주고, 새로운 비전으로 다시 가슴이 뛰게 하는 락커룸이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다시 힘을 얻어 뛰어나가 후반전을 이길 수 있도록 하는 락커룸 말입니다. 교회가 이렇게 일주일 내내 치열한 영적 싸움에서 지치고 좌절하고 상처입고 비전을 잃은 영혼들에게 쉼을 주고, 상처를 싸매어주고, 용기와 새 비전을 주어 다시 세상에 나가 싸울 수 있게 하는 사랑의 공동체가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우리 연약함, 실패, 아픔이 부끄러움이 아니라, 그 모든 것을 다 받아주고 품어주고 따뜻한 숨을 쉴 수 있는 사랑의 공동체가 될 때 우리는 다시 세상의 진정한 소망을 담은 교회가 될 것입니다. 셋째로는 각 처소에서 하나님 나라의 지소장으로 살아가는 성도를 세우는 교회가 되어야 합니다. 우리는 이 세상에 살고 있으나 하나님 나라의 백성으로 살고 있습니다. 예수로부터 시작 된 하나님 나라를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것입니다. 그렇기에 우리는 이 땅의 명예, 성공, 부를 위해 살지 않습니다.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하나님 나라의 삶을 살고 있습니다. 그렇기에 우리는 가정, 특히 일하는 그 자리가 바로 하나님 나라의 삶을 실천하는 자립니다. 겉으로 봐서는 믿지 않는 사람들과 별반 차이가 안 나는 것 같이 보입니다. 그러나 결정적인 때 믿지 않는 사람들과 다른 차원의 생각과 행동을 하는 사람들입니다. 마치 스파이들이 평상시에는 아무런 표시 없이 너무나 자연스럽게 섞여 살지만, 지령이 떨어지면 그 때부터 일반 사람과는 다른 결정적인 임무를 수행하기 위해 모든 것을 버리듯이 말입니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이 땅에 심어두신 하나님 나라의 스파입니다. 남들이 의롭게 살다가도 결정적인 순간에 이기적인 모습으로 떨어지는 것과 달리, 아무도 보지 않고 몰라줄 때 조차라도 의의 편에 서서, 의의 길을 감을 통해 하나님 나라가 왔음을 보게 하는 사람들인 것입니다. 그렇기에 우리가 사는 곳, 일하는 곳이 바로 하나님 나라를 위해 심어둔 지소요, 우리는 지소장이 되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는 각각의 지소에서 결정적 시련, 유혹, 위기에 처할 때 흔들림 없이 의연하게 하나님 나라의 삶을 살도록 세움을 입은 스파이요, 지소장입니다. 우리가 이 길을 갈 때 세상은 우리를 보고 새로운 눈을 가지게 될 것입니다. 우리가 이렇게 진정한 사랑의 공동체, 락커룸 같은 교회가 되고, 가정과 직장을 하나님 나라를 위하 지소요 우리는 그 지소의 지소장이 되는 길을 걸어갈 때 세상은 우리를 다르게 보기 시작 할 것입니다. 우리로 하여금 그 길을 가게 하는 그 무엇인가를 알고 싶어 할 것입니다. 이로써 우리 교회와 우리는 세상에 하나님 나라를 소개하고 보게 하고 초대하고 누리게 하고 그 나라의 삶을 살게 하는 산 교회가 되는 것입니다. 우리 이러한 교회를 향하여 함께 꿈을 꾸고, 함께 이러한 교회로 세워져가는 교회가 됩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