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1118(주) 주일예배 본문 막1:14-15 제목 하나님 예견하는 교회 2 목적 이미 시작 된 하나님 나라를 믿는 교회임을 알게 하고, 그 나라의 영향력이 믿는 자에게 미치고 있음을 알게 한다. 나아가 삶의 각 처소에서 하나님의 통치를 받는 삶을 살게 하려 한다. 하나님의 비전을 품는다. 본문에 의하면 예수께서는 하나님의 복음을 전하셨습니다. 그리고 그 복음의 핵심을 한 문장으로 정리합니다. “때가 찼고 하나님의 나라가 가까이 왔으니 회개하고 복음을 믿으라“ 성경 전체의 복음을 이 한 문장에 담은 것입니다. 예수님은 이 말씀에서 6가지를 말씀합니다. 첫째 때가 찼다는 것입니다. 어떤 때가 찼다는 것일까요? 먼저 한 영상을 감상하겠습니다. (한오백년) 우리가 잘 아는 이 노래는 강원도 민요인 “한오백년”입니다. 이 노래의 가락과 리듬은 우리 민족만의 가락이요 우리 민족만이 느끼고 이해할 수 있는 곡조입니다. 아리랑과 마찬가지로 우리의 역사와 우리의 한(恨)속에서 울어 나온 가락이요, 가사에는 그 한이 그대로 담겨 있습니다. 인생의 눈물과 한을 고스란히 담고 있는 가삿말을 들어보십시오. (1) 한 많은 이 세상 야속한 님아 정을 두고 몸만 가니 눈물이 나네 (2) 한 많은 이 세상 냉정한 세상 동정심 없어서 나는 못 살겠네 (3) 꽃답던 내 청춘 절로 늙어 남은 반생을 어느 곳에다 뜻 붙일꼬 (4) 기구한 운명의 장난이런가 왜 이다지도 앞날이 암담한가 (후렴) 아무렴 그렇지 그렇구말구 한 오백년 살자는데 왠 성화요~ 저는 이 노래를 들으면서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 노래는 바로 이 세상의 고달픈 인생의 아픔과 신음이다.” 우리 민족의 아버지 어머니들은 인생의 쓰디쓴 짐과 한을 안고 이런 노래를 부르며 눈물과 함께 삭혀내고 삭혀냈던 것입니다. 그러나 어디 이 쓴 아픔과 인생의 길이 우리 민족만의 길이겠습니까? 죄로 망가진 이 세상 모두가 겪는 아픔이 아니겠습니까? 하나님을 버렸기에 별 가진 것도 없는 인간들이 살기 위해 짐승처럼 싸우는 세상이 되었기 때문입니다. 사랑이신 하나님을 버렸기에 사랑을 모르고 미워하고 싸우고 원수가 되어 서로를 버리고 죽이는 세상이 된 것입니다. 한 예를 들어보겠습니다. 예수님 오시기 약 58-51여 년 전 북유럽에서 갈리아전쟁이 벌어집니다. 로마와 북유럽 국가들과의 전쟁이었습니다. 8년여의 전쟁이 지속되었는데, 당시 로마 황제는 가이우스 율리우스 카이사르 였습니다. 그는 이 10년여의 전쟁을 통해 현 이탈리아 반도 북쪽 북유럽과 스페인반도 소아지역, 북아프리카 지역을 정복해 나갔습니다. 이 때 무려 800개의 도시를 정복했고, 300만 명의 적과 싸워 100만 명을 죽였고, 100만 명을 포로로 잡았습니다. 생각해 보십시오. 100만 명의 죽은 자들과 그 가족의 비극을, 또 포로 잡힌 100만 명의 현실을 생각해보십시오. 전 유럽이 비극에 잠긴 것입니다. 이스라엘도 거기에 포함 됩니다. 이 비극을 생각해보십시오. 그 속에서 내 형제 내 부모 같은 이가 속절없이 죽임당하고 대책 없이 질병에 죽어나가는 모습을 보십시오. 이것이 우리가 사는 이 세상의 모습입니다. 그런데 이러한 세상에, 그것도 지중해 연안 작은 나라 이스라엘의 갈릴리에서 예수라는 사람이 등장해서 말합니다. “때가 찼다” 어떤 때가 찬 것일까요? 눈물 흘리며 부르지 않을 수 없는 이 아픈 세상을 회복 하실 때가 되었다는 것입니다. 드디어 구약의 선지자들이 예언 했던 그 때, 즉 메시야가 올 때, 이 아픈 세상을 회복시킬 메시야 와서 회복하실 때가 다 되었다는 것입니다. 이미 2천 년 전에 말입니다. 둘째는 하나님의 나라입니다. 하나님의 나라라는 말은 “하나님이 통치하시는 나라”는 말입니다. 전능하시고 완전한 사랑이신 하나님이 통치를 하는 나라입니다. 그러면 어떻게 될까요? 뜻이 하늘에서 이루어진 것 같은 열매가 맺힙니다. 가령 하나님이 우리 모두 한 사람 한 사람을 다스리게 되면 어떻게 될까요? 거기에 새로운 인간이 등장합니다. 하나님의 공급하시는 은혜로 살고, 그 말씀대로 사는 사람이 나타나는 것입니다. 이러한 사람은 소금과 같은 사람, 빛을 비추는 사람이 됩니다. 미움, 시기, 질투, 원망, 불의, 부정, 싸움, 탐욕, 소유욕, 세상의 평안을 버리고 다른 삶은 사는 것입니다. 왜 그럴까요? 나를 창초하시고 자녀 삼으신 하나님의 관계 속에서 삶의 의미와 목적에 대해 분명한 눈을 갖습니다. 더 이상의 방황은 없는 것입니다. 또 하나님께서 우리를 다스릴 때 모든 좋은 것을 하나님께로부터 공급받아 풍성한 삶을 살 수 있기 때문입니다. 모든 것에 넉넉해지는 것입니다. 그래서 싸울 필요가 없고, 시기할 필요가 없고, 더 가질려 할 필요가 없습니다. 더 높아지려 할 필요가 없습니다. 게다가 죽음의 공포에서도 자유로워집니다. 영원한 삶이 하나님 안에서 주어지기 때문입니다. 나아가 하나님의 통치를 받으면 그 사람뿐 아니라, 그 사람이 가는 곳, 일하는 곳, 머무는 곳에 하나님이 통치하시는 열매가 맺힙니다. 하나님의 통치를 받아 용서와 평강과 화해와 공의의 길을 가기 때문입니다. 성 프라치스코의 기도대로 하나님의 통치를 받을 때 평화의 도구로 자신을 드리는 역사가 임하기 때문입니다. 그렇기에 인류와 이 세상이 사는 길은 바로 하나님께로 돌아가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놀라운 은혜와 사랑과 능력의 통치를 받는 것입니다. 그러면 거기에 하나님이 다스림으로 임하는 하나님 나라의 열매가 맺히는 것입니다. 물론 하나님이 통치하시는 완전한 하나님 나라는 주님이 오실 때 완성됩니다. 교회는 바로 그것을 믿음으로 예견합니다. 주님이 부활로 그렇게 증언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에서 예수께서 하나님 나라가 “가까이 왔다”고 세 번째 주제를 말씀하십니다. “가까이 왔다”는 말은 두주 전에 말씀드린 대로 하나님 나라가 시작되었지만 아직은 완전하게 임하지 않았다는 뜻입니다. 바로 이 부분이 오늘 말씀드리려는 메인 주제입니다. 결론을 미리 말씀드리면 교회는 “하나님 나라가 이미 시작되었음을 믿습니다.” 죄로 망가진 세상에, 때가 차자 메시야가 오셨고, 이 메시야를 통해서 하나님이 통치하시는 나라가 시작 되었다는 것을 믿습니다. 이 믿음에는 매우 중대한 메시가 숨겨져 있습니다. 1. 그것은 하나님 없이 자기감정, 자기 생각, 자기 탐욕, 자기 정욕, 자기 욕심대로 사는 시대는 참 된 세상이 아님이 드러났음을 의미합니다. 하나님이 없는 개인과 사회는 자기 욕심과 야욕이 모든 것의 기준입니다. 성공과 권력을 쟁취하는 것이 선입니다. 그리하여 개인은 개인대로 나라는 나라대로 이 가치를 충실히 따릅니다. 이 과정에서 힘없는 사람은 인생을 한 오백년 같은 뼈아픈 눈물과 고통의 삶을 삽니다. 그러나 그렇게 고통 하는 사람도 기회가 되어 권력을 잡게 되면, 그 권력을 유지하기 위해 형제라도 죽이는 것입니다. 이렇게 자기 탐욕과 야욕을 추구하고, 할 수만 있으면 그것을 성취하는 것이 좋은 길이요, 선이라고 말하는 세상에 대해 예수님은 그런 거짓에 속에 사는 시대는 끝이 났다라고 말씀합니다. 이것이 왜 거짓입니까? 하나님 없는 삶은 지금까지 나와 이웃과 자연을 파괴하는 죽음의 길이요, 생명이 없는 길임에도 불구하고 그런 삶이 성공한 삶이라고 호도하기 때문입니다. 요한복음에 의하면 예수님은 “그런 거짓 것을 추구하는 삶”을 “썩어질 양식을 위하여 일하는 삶”(6:27)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은 바로 이러한 세상에 오셨습니다. 그리고 하나님 나라가 가까이 왔다는 말씀을 통해 “이제 썩어질 양식을 위하여 사는 거짓 된 삶의 시대가 종말을 고하게 되었다”고 말씀합니다. 즉 죄의 가치로 득세하던 시대는 끝이 났다는 것을 말합니다. 그러나 세상은 여전히 하나님을 안중에 두지 않습니다. 이 아픈 세상을 하나님 없이 인간의 노력과 열심히 고칠 수 있다고 하면서 여전히 하나님을 배제합니다. 예를 들면 히틀러와 일본은 민족을 하나님 자리에 놓았고 2차 대전을 일으킵니다. 그 결과 7천만명이 목숨을 잃습니다. 공산주의는 노동자의 혁명을 하나님 자리에 놓습니다. 그리곤 혁명을 이유로 모든 권력을 요구합니다. 그리곤 공산당의 이름으로 그 권력을 마음껏 휘두릅니다. 그 결과 1억 명에 이르는 사람들이 혁명의 이름으로 제거 됩니다. 그리고 그 중엔 공산주의에 물든 김일성에 의해 일어난 한국전쟁으로 인해 500만 명이 죽는 비극이 일어납니다. 이렇듯 하나님 없이 이 세상을 잘 만들 수 있다는 말, 하나님 없이도 의미 있는 인생을 살 수 있다는 말, 하나님 없이 세상이 높이 쳐주는 권력, 학벌, 부, 명성을 쌓는 것이 성공한 인생이라는 말은 다 거짓이요 죽음의 길임을 역사도 증명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썩어질 것을 쌓는 길 일 뿐입니다. 비용서의 마음을 쌓고 욕하고 험담하고 필요하면 복수 비수를 꽂는 것이 시원하다고 사탄의 문화 또한 거짓입니다. 이러한 문화는 죽음을 낳습니다. 그런데도 어떤 사람들은 아직도 이러한 죽음 가치에 인생을 걸고 삽니다. 혹 여러분의 가족 중에 아직 이 삶에 빠져 계신 분은 없는지요? 그리고 하나님을 믿는다 하면서도 실재의 삶은 여전히 썩어질 거짓 것을 추구하는 삶은 아닌지요? 주님은 말씀하십니다. “하나님 나라가가 가까이 왔다. 죽음으로 이끄는 거짓이 득세하던 시대는 끝나기 시작 했다. 이제 그 시대를 곧 폐기 될 것이다” 2. “하나님 나라가 가까이 왔다”는 또 다른 메시지는 새로운 시대가 도래 했다는 것입니다. 거짓이 아닌 생명의 시대가 도래 했다는 것입니다. 인생의 한과 눈물이 닦여질 뿐만 아니라, 내가 나의 정체성과 인생의 목적을 찾고 진정으로 기뻐하는 시대가 도래 한 것입니다. 나와 이웃이 함께 용서하고 화해하는 평화의 시대가 도래 한 것입니다. 자연과 인간이 함께 살고 자유케 하는 시대가 도래 한 것입니다. 즉 우리의 존재의 이유와 목적이 되신 창조주 하나님의 통치가 이 죽음의 세상에 침투하기 시작 한 것입니다. 오늘날 수많은 사람들이 자동차를 타고 다닙니다. 그런데 그 자동차가 최적의 컨디션과 용도로 사용 되는 길은 그 자동차를 가장 잘 아는 사람일 것입니다. 마치 우리차를 우리가 가장 잘 아는 것 같이 말입니다. 하지만 우리 자신 보다 더 차를 잘 아는 사람이 있습니다. 바로 그 자동차를 만든 사람입니다. 그 사람은 자동차의 볼트 하나의 위치뿐만 아니라, 그 의미를 압니다. 그렇기에 이러한 사람의 관리를 받는 자동차는 최고 수준의 상태를 유지 할 것입니다. 혹 어디가 고장 나더라도 그 주인은 실수 없이 최적의 부품을 구입하여 원래의 수준으로 회복시킬 것입니다. 만약 부품이 계속해서 무한히 공급 될 수 있다면 그 차는 주인이 살아 있는 한 영구적으로 운영 될 것입니다. 만약 이 자동차가 우리 자신이요, 이 세상이고, 그 만든 주인이 하나님이라 한다면 어떻게 될까요? 나를 만든, 세상을 만든 주인, 그래서 나와 세상을 가장 잘 아는 하나님께서 우리를 최적의 상태로 돌보고, 그 본래의 의미와 가치를 마음껏 발휘 하도록 할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바로 이러한 주인 되심과 통치하심을 통해 비로소 위를 죄가 낳은 거짓 된 가치와 삶에서 건져내어, 우리가 창조된 그 본래의 의미와 가치와 목적에 맞는 진정한 삶을 주시기 위해 하나님께서 통치하시는 하나님 나라가 시작 된 것입니다. 바로 예수를 통해서 말입니다. 이것을 그림으로 표현하면 이렇습니다. 이 그림에서 이 시대란 죄가 낳은 거짓이 득세하는 죽음이 지배하는 시대입니다.(김형국목사, “청년아 때가 찼다”에서 인용, p 99 도표 참고) 그런데 이러한 세상에 예수께서 오셔서 거짓에 속하는 죽음의 시대를 끝내기 시작했고, 동시에 하나님이 다스림으로 창조의 의미와 목적대로 사는 하나님의 나라가 시작 되었습니다. 이제 예수님께서 다시 오시게 될 때 이 땅의 모든 거짓된 삶은 완전히 소멸하고 하나님의 완전한 통치로 말미암는 완전한 하나님 나라, 곧 새 하늘과 새 땅이라는 하나님 나라가 펼쳐질 것입니다. 이렇게 교회는 예수님께로부터 시작 된 하나님 나라가 예수님이 다시 오심으로 그 하나님 나라가 완성 될 때를 예견하고 믿고 기다립니다. 이 세상이 하나님의 나라가 되는 날을 바라보는 것입니다. 이것이 예수께서 오셔서 주시려는 이 세상의 회복이요 구원입니다. 우리와 하나님의 관계가 회복되고, 이로써 이웃과 이웃이, 인간과 자연이 회복되어 영원히 하나님의 통치를 받으며 완전한 정의와 평화가 실현 된 나라의 삶을 사는 것입니다. 그런데 오늘 말씀에서 그 나라가 벌써 시작 되었다는 것입니다. 교회는 이것을 믿습니다. 왜냐하면 예수님을 통해서 하나님의 통치가 시작되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과 분리 된 죽음의 삶이, 예수로 말미암아 하나님께서 우리를 다스리시는 은혜가 임한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과 무관 했던 우리가 비로소 하나님의 통치를 받아 진정한 자유와 평화와 되어져야 할 내가 되고 그 목적대로 사는 생명이 우리에게 임하게 된 것입니다. 나아가 이웃과 이웃이, 인간과 자연이 함께 기뻐하며 평화를 누리는 시대가 열리기 시작 한 것입니다. 우리는 삭개오 얘기를 잘 알고 있습니다. 그는 자신의 성공을 위해 민족을 버린 사람이었습니다. 그 결과 그는 로마의 세관원이 되어 많은 부를 축적했습니다. 한 마디로 성공한 것입니다. 그러나 그를 아는 모든 이스라엘 사람들은 그를 사람대접을 하지 않았습니다. 민족을 버린 죄인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많은 것을 가졌고, 사회적 성공을 했다 해도 실은 비난 받는 실패한 인생이 되고 말았습니다. 그의 마음은 늘 우울 했습니다. 대인 기피증이 일상의 모습이었습니다. 인생이 허무했습니다. 어쩌면 그가 한 오백년이란 노래를 알았더라면 밤새 그 노래를 부르며 울었을 것입니다. 그만큼 그의 인생은 어두웠고, 초라했습니다. 돈은 벌었지만 실은 자기 정체성과 의미를 잃어버린 슬픈 인생이었던 것입니다. 그랬던 그에게 하나님의 통치하심이 임합니다. 예수님을 그가 만난 것입니다. 예수만큼은 나를 알아주시라 믿고 뽕나무에 오른 그를 주님은 아신 것입니다. 다 외면 그 그를 주님은 그 중심의 소망과 아픔을 아시고 그를 품어주신 것입니다. 그러자 그가 새롭게 거듭납니다. 지난날의 과오를 반성하여 그 상처 입은 자들에게 네 배로 돌려줍니다. 옛 삶을 버리고 예수를 붙들게 된 것입니다. 그 때 예수께서 말씀하십니다. “오늘 구원이 이 집에 이르렀으니 이 사람도 아브라함의 자손이다” 하나님으로부터 떨어진 자, 용서 받을 수 없는 것 같은 민족 반역자가 다시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회복의 구원이 임한 것입니다. 이로서 이제 삭개오는 자신의 힘이 아니라, 하나님의 사랑과 권능으로 통치를 받는 새 삶이 시작 된 것입니다. 그에게 하나님의 통치가 시작 되고, 하나님 나라가 시작 된 것입니다. 예수님이 말씀하십니다. 하나님의 통치하심이 시작 되었다. 썩어질 것, 자신이 주인 된 삶에서 하나님께로 돌아서라 하십니다. 교회는 이것을 믿고 세상과 다른 삶을 삽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