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0106(주)신년감사주일 본문 삼하 22:29절 제목 나의 어둠을 밝히시리라 새해가 밝았습니다. 2019년을 사는 동안 하나님을 깊이 만나는 복, 하나님과 동행하는 복 누리시기를 축복합니다. 하나님의 은혜로 모든 광야의 시험을 이기는 복이 임하기를 축복합니다. 송구영신예배를 통하여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을 신뢰하고, 먼저 그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는 말씀을 주셨습니다. 세상은 광야이나 하늘을 나는 새와 들의 화려한 백합화 같은 하찮은 것들도 먹히시고 입히실 정도로 풍성하신 하나님이심을 신뢰하고, 먼저 하나님의 나라에 합당한 삶과 의의 길을 가라는 말씀입니다. 그러면 그 길에서 필요한 모든 것은 하나님께서 덤으로 주시겠다는 언약입니다. 그래서 이렇게 풍성하신 하나님이심을 신뢰한다면 우리는 두렴 없이 성도가 가야 할 길을 먼저 구하고 따름에 있어서 부족함이 없을 것입니다. 자식이 가야 할 길을 갈 때 필요한 모든 것은 아버지가 공급하듯이 말입니다. 그러나 우리 안에는 여전히 두려움이 있습니다. 과연 하나님이 이 말씀대로 모든 것을 공급하실 분이시며 또 정말 그렇게 하실 것인가에 대한 믿음이 부족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두려워하지 마십시오. 우리 하나님은 무에서 유를 만드시는 분이십니다. 이 온 우주를 창조하시고 통치하시는 분이십니다. 그 어떤 사람의 지식, 과학, 상식, 능력으로는 도저히 이해 할 수 없는 일을 행하시는 하나님이시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늘 부족함이 있습니다. 우리는 늘 상황을 하나님 보다 더 크게 보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래서 두려움이 몰려 올 때 그만 중심을 잃고 맙니다. 자녀 문제로, 진로 문제로, 가정 문제로 직장 문제로, 예상치 못하게 닥친 환경과 상황의 문제로 어려워합니다. 마치 하나님을 믿지만 블레셋의 골리앗이 앞에 떡 하고 나오자 두려움에 덜덜 떨던 사울과 그의 군대와 같은 처지에 놓이는 것입니다. 희망 찬 새해를 하나님께서 주셨습니다. 그러나 성도님들을 두렵게 하고 근심하게 하는 것이 무엇입니까? 앞으로 다가올 어려운 상황으로 인해 잠 못 이루게 하는 것이 무엇입니까? 새 해 첫 주일 하나님께서 말씀하십니다. “여호와여 주는 나의 등불이시니 여호와께서 나의 어둠을 밝히시리이다. 너의 어둠을 물러가게 하고 깨트리는 등불이 되리라 말씀하십니다. 너의 근심, 두려움, 어두운 전망의 날을 밝게 비춰 주시리라 약속 하십니다. 할렐루야! 그렇다면 이 약속은 정말 믿을 만한 약속일까요? 결론부터 내리면 “예스, 그렇습니다”입니다. 어떻게 그것을 믿을 수 있을까요? 오늘 본문은 사무엘하 22장 전체를 차지하고 있는 다윗이 지은 시의 일부입니다. 그런데 이 시에 제목이 붙어 있습니다. 본문 22장 1절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여호와께서 다윗을 모든 원수의 손과 사울의 손에서 구원하신 날에 다윗이 이 노래의 말씀으로 여호와께 아뢰어” 다윗은 이새의 8째 아들로 막내였습니다. 그러나 그는 여호와 하나님을 신뢰하는 믿음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홀로 들에서 양을 치면서도 두려워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이 자신을 지키시고 보호하신다고 믿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그는 실제로 양을 치면서 양을 노리는 사자와 곰과 싸워 이겼습니다. 하나님께서 그를 도와 이기게 하신 것입니다. 그리고 그 유명한 싸움, 즉 골리앗과의 싸움에서도 두려움 없이 나아가 골리앗을 물리칩니다. 그가 가지고 나아 간 것은 예리한 칼, 창이 아니었습니다. 돌을 감아 던지는 제구와 돌맹이뿐이었습니다. 그러나 그가 가진 다른 한 가지 첨단 무기가 있었습니다. 그것은 믿음이 이었습니다. 보이지 않지만 그와 함께 하시는 살아계신 하나님을 믿는 믿음 이었습니다. 즉 다윗의 뒤에는 세상의 모든 군대와 그 화력의 총합으로도 이길 수 없는 하늘과 땅의 창조하신 하나님이 계셨던 것입니다. 그가 이 믿음으로 전쟁에 나갈 때 마다 승리했습니다. 그러자 사울이 다윗을 시기합니다. 좋다고 옆에서 내 창을 들고, 악한 영을 떠나게 하는 음악을 연주해라 해 놓고는 다윗의 명성에 두려움을 느꼈고, 죽여야 할 대상이 되어 버린 것입니다. 결국 다윗은 사울에게 쫒겨 오랜 시간을 도망 다닙니다. 심지어 이스라엘을 벗어나 블레셋이라는 이방 왕에게 망명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거기에서도 불신을 받아 죽음의 위협에 놓이게 됩니다. 그러나 하나님께 기도할 때 주신 지혜로 “미친 자처럼 보여” 살아나게 됩니다. 그리고는 마침내 사울의 모든 위협에서 벗어나게 되고, 이스라엘의 새 왕으로 기름부음을 받습니다. 다윗은 이 기막힌 자신의 인생을 돌아보고 이 시를 쓴 것입니다. 수도 없이 죽을 고비를 맞이했지만 그 때마다 기도하게 하시고, 그 기도에 응답하사 지키시고 이기게 하신 하나님의 은혜를 노래하는 것입니다. 헤쳐 나갈 길이 없어 보이는 흑암 같은 때 “하나님께 부르짖었더니, 하나님을 신뢰하였더니 하나님께서 그 흑암 가운데 빛이 되셨고, 그 흑암 가운데서 건져 주신 하나님의 그 놀라운 손기를 찬양하는 것입니다. 기름 부어 왕이 되게 하시겠다는 그 언약을 끝까지 이루시되, 도저히 안 되겠구나 하는 상황에서 조차 기도를 들으시고 이끌어 내신 하나님을 찬양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가 이 시의 첫 머리에서 그 유명한 고백을 합니다. “여호와는 나의 반석이시오, 나의 요새시오, 나를 위하여 나를 건지시는 자시오...나의 구원자시라 나를 폭력에서 구원하셨도다” 실은 다윗은 벌써 사자의 밥, 곰의 밥이 되어야 했습니다. 또 사울의 손에 벌써 죽었어야 했습니다. 숫한 전쟁에서 벌써 죽었어야 했습니다. 그러나 사무엘을 통하여 “이스라엘의 새 왕으로 되게 하겠다”는 그 언약을 지키기 위해 하나님께서 그를 건지시고 또 건져 내신 것입니다. 자 우리는 여기서 하나님은 어떤 분이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 언약을 반드시 성취하시는 분”이라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한번 따라 해주시면 고맙겠습니다. “무슨 일이 있어도 하나님은 그 말씀을 이루신다” 이사야 선지자를 통하여 하나님은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내 입에서 나가는 말도 이와 같이 헛되이 내게로 되돌아오지 아니하고 나의 기뻐하는 뜻을 이루며 내 가 보낸 일에 형통함이니라”(사55:11) 하나님께서 하신 말씀은 그대로 된다는 것입니다. 왜 그럴까요? 하나님은 상황과 상관없이 그 말씀을 이루어 가시는 전능하신 주권자이시기 때문입니다. 즉 하나님의 전능함과 주권에 맞서 그것을 무력하게 만들 세력이 이 세상은 없는 것입니다. 다윗은 자신의 인생을 통하여 바로 이러한 하나님을 만났습니다. 철저히 경험했습니다. 그리고 결론 같이 말합니다. “여호와여 주는 나의 등불이십니다.” 이어서 이렇게 고백합니다. “여호와께서 나의 어둠을 밝히시리이다” 앞으로도 여호와께서 자기 인생의 등불이 되어 주실 것이라 고백합니다. 지금까지도 그래 왔거니와 앞으로도 그럴 것이라 믿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그의 인생 전체를 통해 등불이 되어 주셨습니다. 이 얼마나 놀라운 복입니까? 게다가 “그의 몸을 통하여 날 자손을 세워 그의 나라를 영원히 견고 하게 하리라“ 언약하신 말씀을 이루십니다.(삼하7:12) 즉 다윗의 후손을 통하여 메시야를 보내시겠다는 이 언약을 약 천여 년 후에 성취하십니다. 그것이 바로 메시야 그리스도 예수를 보내신 것입니다. 즉 다윗에게 하신 말씀이, 다윗이 믿는 대로 다 된 것입니다. 할렐루야! 이런 복이 우리에게 임한다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그런데 이 소망이 어떻게 되었습니까? 예수 안에서 우리에게 이루어졌습니다. 예수 안에서 우리를 자녀 삼으신 것입니다. 할렐루야! 다윗에게 했던 것과 똑같이 아니 그 이상으로 우리의 등불이 되어주시고자 예수 안에서 우리를 자녀로 부르신 것입니다. 그렇기에 예수 안에 있는 자녀들은 언제나 문이 열려 있습니다. 그 언약을 이루시는 하나님의 약속 안에 있는 것입니다. 자기 힘으로 애쓰다 지치고 마는 인생이 아니라, 온 우주를 창조하신 하나님의 은혜와 힘으로 사는 풍성한 인생이 되게 하시려는 그 언약 안에 있는 것입니다. 그럼 어떻게 이 언약이 우리의 것이 될까요? 이 다윗이 자신이 죽을 때 왕의 위를 잇게 될 솔몬에게 이렇게 말합니다. 열왕기상 2:2-3절입니다. “내가 이제 세상 모든 사람이 가는 길로 가게 되었노니 너는 힘써 대장부가 되고 네 하나님 여호와의 명령을 지켜 그 길로 행하여 그 법률과 계명과 율례와 증거를 모세의 율법에 기록 된 대로 지키라. 그리하면 네가 무엇을 하던지 어디로 가든지 형통하리라“ 이 마지막 유언에서 무엇을 강조합니까? “지키라”는 것입니다. 모세의 율법, 즉 하나님의 말씀대로 지키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말씀을 주신 하나님을 신뢰하고, 그 말씀대로 사는 것”는 것입니다. 다윗의 결론이 무엇입니까? “하나님께 대한 신뢰와 그 말씀을 따르는 것”입니다. 말씀을 신뢰하고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에게는 그 말씀을 이루시는 하나님의 권능을 덧입게 되는 것입니다. 그럴 때 마른 지팡에 싹이 나는 역사, 기적이 일어나는 것입니다. 수십 년 집고 다녔던 지팡이, 하도 써서 쏜 때 묻고 닳고 닳아 번들거리는 그 지팡이 생명이라고는 눈곱만큼도 찾아 볼 수 없는 그 지팡이에 싹이 나게 하고 꽃이 피고 열매가 맺히게 될 줄을 누가 알았겠습니까? 아무도 생각하지 못하고, 아무도 기대하지도 않았습니다. 아니 할 수 도 없습니다. 혹시 나의 모습이, 나의 집이, 나의 처지가 번들거리는 지팡이, 아무런 기대와 소망을 가질 수 없는 마른 지팡이 같은 처지입니까?실망하지 마십시오. 포기하지 마십시오. 두루여하지 마십시오. 하나님은 마른 지팡이도 싹을 띄우시고 꽃이 피게 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나아가 마침내 열매를 맺게 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할렐루야! 예수 안에서 우리를 부르신 하나님은 아들을 주시는 그 사랑으로 우리를 붇드십니다. 그리고 그 권능으로 마른 막대기 같은 우리 인생 위에 기름 부으시는 분입니다. 싹이 나고 꽃이 피게 하시는 분이심니다. 흑암을 밝히는 등불이십니다. 수가성 여인이 예수를 만나자 그 인생의 어둔 그늘이 벗겨졌습니다. 바울이 예수를 만나자 그 인생이 새로운 복음 꽃이 피었습니다. 상황을 바라보지 마십시오. 그 상황 넘어 역사하시고 그 말씀을 이루어 가시는 하나님을 신뢰하십시오. 그리고 날마다 그 하나님을 만나는 길을 가십시오. 그 만남 속에서 마른 지팡이 같은 내 인생에, 길에 싹이 나고 꽃이 피고 열매가 맺히는 새 창조의 역사 일어날 것입니다. 하나님이 흑암 중에 등불이 되어 주실 것입니다. 할렐루야! 다윗은 고백합니다. “내가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로 다닐지라도 해를 두려워하지 않은 것은 주께서 나와 함께 하심이라. 주이 지팡이와 막대기가 나를 안위하시나이다.” 약속을 붙들고 그 앞에 머무는 자 그 하나님을 만나는 자에게 여호와께서 우리의 등불이 되어 주실 것입니다. 우리 앞에 있는 흑암을 밝히실 것입니다. 새해 이 하나님을 신뢰하고 이 약속을 붙들고 모든 상황 속에서 역사하시는 하나님을 만나십시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