긍정적인 믿음으로 사는 삶(민13:25-14:10)
201890113(주일)/설교: 한용대 감리교 원로 목사 이미 송구(送舊)했으며, 영신(迎新)을 했습니다. 무술년을 보내고 기해년을 맞으며 오는 새해에 대한 희망을 이야기 했으면 합니다. “새해가 밝았구나. 새해를 맞으면서 반드시 그 마음가짐이나 행동을 새롭게 해야 한다”고 말하여 몸과 마음에 뭔가 변화를 일으켜 구태에서 벗어나려는 각오를 하면서, 2019년 희망찬 새 해가 되기를 소망해 봅니다.
2018년, 참으로 의미 있고 뜻 깊은 해였습니다. 함께해 주신 모든 분들에게 감사의 말씀을 드립니다. 돌이켜 볼 때 하나님의 말씀으로 제대로 살려고 신앙의 발 돋음도 해 보았지만, 만족할만한 결과를 얻지 못했던 이유로, 하나님과 사람들 앞에 안타깝기도 한 해였습니다. 교회는 과거에 비하여 분명히 인애(仁愛)하고 훌륭한 이들이 주도하는 것만은 분명한 것 같은데도 결과가 훌륭하지 못함은 무슨 이유일까요? 인애하고 선한 것만으로 만사가 해결되는 것이 아니라, 현실이 어떠한 상태인데 그것을 개선하고 바꾸려면 어디서 시작하여 어떤 과정을 거쳐 어떤 결과를 도출해내겠다는 전문성이 필요하다는 생각도 듭답니다. 정확한 현실의 실태를 파악하고 바로 실제의 일을 전문적으로 알아야 할 것이, 어디가 가렵고 아픈가를 알아서 해결해 주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현실에 발을 딛지 못하고, 공중에 떠도는 이상(理想)이나 진리(眞理)만을 좇는다고 해서야 좋은 결과가 나올 수가 없습니다. 지난 한 해, 교회는 저마다 많은 의욕을 가지고 큰 변화를 추구했겠지만 결과는 그렇게 좋지 못함이 가습 아픈 한 해였습니다. 잘못된 것은 반드시 찾고 끝까지 옳은 것을 찾아야 하고, 한 지붕 아래의 양극화의 해결도, 실제로 가능한 목회를 통해서 해결의 실마리를 찾아야 할 것입니다. 구호와 이상만으로는 절대 바뀌지 않습니다. 말씀의 능력으로 실천함이 있어야 합니다. 성도 모두가 피부로 느끼는 현실에서 옳은 것을 찾아내는 그런 새 해가 되기를 희망해 봅니다. 그리하여 모두가 우리는 과연 ‘하나님의 사람입니다’ 라는 생각이 들 수 있는 교회와 세상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자신의 마음을 지옥으로 만들고 싶은 사람은 아마 없을 것입니다. 마음을 천국으로 만들고 싶은 나 자신부터 실천하기를 강력하게 촉구해 봅니다.
그런 의미에서 오늘 부정의 절망 보다는 긍정의 희망을 가져봅니다.(민 13:25-14:10)
희망은 힘이 셉니다. 희망은 차이를 만들어냅니다. 희망은 우리에게 살아야 할 이유를 가져다 줍니다. 인간은 음식 없이는 40일, 물 없이는 4일, 공기 없이는 4분, 하지만 희망 없이는 몇 초 밖에 살수 없다고 합니다. 희망으로 가득한 2019년 한해 만들어 가시길 바랍니다.
어떤 곳에 아들 둘을 둔 할머니 한 분이 살고 계셨습니다. 그런데 큰아들은 우산 장사이고 작은아들은 짚신장사였지요. 이 할머니는 두 아들의 장사 때문에 매일 매일을 근심과 걱정으로 살아가고 있었습니다. 날이 개어 햇볕이 쬐는 날이면 큰아들의 장사가 안될 것을 걱정해야 했고, 그러다가 비라도 쏟아지는 날이라면 작은아들의 장사를 걱정해야 했습니다. 그러니 해가 떠도 걱정, 날이 흐려도 걱정이었지요. 이것을 지켜보던 한 동네 청년이 할머니를 위로하며 근심과 걱정에서 헤어날 방법을 가르쳐 주었다. "할머니, 그렇게 나쁜 것만을 부정적으로 생각하지 마시고 좀더 긍정적인 면을 생각하여, 만일 해가 뜨면 작은아들의 장사가 잘 될 것을 기뻐하고 비가 오면 큰아들의 장사가 잘 될 것을 기뻐하십시오." 그렇게 되면 비가와도 걱정이 없고 해가 떠도 걱정이 없게 된다는 말이니까요. 똑같은 현실을 어떤 관점에서 바라보느냐에 따라 그 결과가 크게 달라질 수가 있다는 것입니다.
믿음의 눈(민13:25-14:10)
“제 눈에 안경”이란 말이 있듯이 각 사람의 관점이 얼마나 중요한지 모릅니다. 특히 신앙인에게 관점이 중요한 것은 믿음과 직결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신앙적 관점을 믿음의 눈이라 부릅니다. 본문은 출애굽한 이스라엘 백성들이 가나안의 문턱인 가데스바네아에 도착하였는데 여호와께서 “주저 말고 가나안에 들어가라”(신 1:21하) 말씀하셨습니다. 하지만 그들은 말씀을 온전히 믿지 못하여 12명의 정탐꾼을 뽑아 40일간 정탐을 하고 옵니다.
그런데 10명은 그 땅을 악평하였습니다. 우리는 능히 올라가서 그 백성을 치지 못할 것입니다. 그들은 우리보다 강하기 때문입니다. 그 땅은 그 거주민을 삼키는 땅이요, 그 백성은 신장이 장대한 자들이라. 우리는 스스로 보기에도 메뚜기 같으니 그들이 보기에도 그와 같았을 것입니다.
하지만 여호수아와 갈렙은 정반대의 말을 하였습니다. 우리가 곧 올라가서 그 땅을 취하자. 우리가 두루 다니며 정탐한 땅은 심히 아름다운 땅이라. 여호와께서 우리를 기뻐하시면 우리를 그 땅으로 인도하여 들이시고 그 땅을 우리에게 주시리라. 그들의 신은 그들에게서 떠났고 여호와는 우리와 함께 하시느니라. 그들은 우리의 먹이라.
여러분! 12명의 정탐꾼이 똑같은 시간에, 똑같은 장소를, 똑같이 정탐하고 왔습니다. 그런데 보고 내용이 어떻게 이렇게 정 반대일까요? 그 이유는 사물을 믿음의 눈으로 보는가? 믿음 없는 눈으로 보는가? 여기서 가장 중시해야 할 것은 여호와께서 “들어가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그런데 이 말씀을 믿느냐? 믿지 않느냐? 입니다. 사실 정탐을 가기 전에 이미 판가름이 난 것입니다. 믿음 없는 눈으로 바라보면 믿는 없는 것만 보이고, 믿음의 눈으로 바라보면 믿음의 일만 보이는 것입니다. 그래서 믿음이 없이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못하는 것입니다.(히 11:6)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사는 것입니다.(롬 1:17)
그런데도 백성들은 다수의 의견, 믿음 없는 보고를 받아 들여 대성통곡하며 원망을 하였습니다. 그 결과가 무엇입니까? 광야로 돌아가 40년을 채워야 했고, 그들의 말대로 가나안 땅에 들어가지 못하였습니다. 그러나 믿음의 보고를 한 두 사람은 그들의 믿음대로 가나안 땅에 들어가 정복하였습니다. 믿음대로 되는 것입니다. 할렐루야!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이지 않는 것들의 증거입니다.(히11:1) 여러분! 믿음의 눈으로 바라보아야 ① 하나님께서 행하신 일이 보이고 ② 하나님의 계획이 보이며 ③ 자기 자신이 제대로 보입니다.
천지만물을 창조하는 것을 본 사람이 없는데 어떻게 여호와께서 만물을 창조하셨다고 고백합니까? 믿음의 눈으로 보니 보이는 것입니다. 보아야 믿는 것이 아니라 믿으면 보이는 것입니다. 또한 믿음 없는 눈으로 보면 자신들이 메뚜기로 보였지만, 믿음의 눈으로 보면 그들이 우리의 먹이입니다. 우리들도 교회를 볼 때, 교인들을 볼 때, 주의 종을 볼 때, 자녀들을 볼 때 믿음의 눈으로 보아야 합니다. 그래야 믿음의 역사가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금년 한 해를 믿음으로 사시고 승리하시는 여러분들이 되시기를 축원 드립니다. 아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