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0120(주) 주일예배 본문 시편 34:1, 15 제목 높이고 또 높이리라 하나님께 기도 할 때 하나님께서 이런 소원을 주셨습니다. “모든 성도의 가정이 얽매인 문제로부터의 자유하고 승리의 기쁨으로 충만한 2019년이 되는 소원”입니다. 하나님은 모든 악조건과 상황을 넘어 승리의 기쁨으로 즐거워하는 모습을 원하십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기뻐 뛰는 모습을 보기 원하십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좋아 죽는 모습을 보고 싶어 합니다. 모든 문제를 이기고 기뻐 뛰는 자녀들이 다 되기를 원하시는 것입니다. 할렐루야! 그러나 우리 안에 뱀처럼 똬리를 틀고 안에 있으나 밖에 있으나 늘 고민하게 근심하게 하는 것이 있습니다. 부부간의 문제, 자녀 문제, 노후 대책의 문제, 재정적인 어려움, 말할 수 없는 자신 만의 아픔과 슬픔, 자신의 무능과 미래에 대한 두려움 등, 다양한 문제들이 우리를 얽매고 있습니다. 세네카가 말했습니다. “가벼운 근심은 말이 많고, 무거운 근심은 말이 적다.“ 이 자리에 있는 우리도 태연한 척하고 있어서 그렇지 우리의 속사람은 울며 이러한 것으로부터 자유하기를 갈망하고 있습니다. 무엇이 성도님들 마음 깊은 곳에 얽어매어 기쁨과 자유를 갉아먹고 있습니까? 짓누르고 눈물짓게 하는 그것이 무엇입니까? 기쁨으로 하나님을 찬양하고 예배하지 못하게 하는 것이 무엇입니까? 오늘 본문 시편 34편의 주인공도 우리와 다를 바 없는 사람이었습니다. 어쩌면 더 어려운 처지에 놓인 사람입니다. 어떻게 그걸 알 수 있습니까? 본 시편의 제목에서 그것을 알 수 있습니다. 제목을 보니 “다윗이 아비멜렉 앞에서 미친 체 하다 쫓겨나서 지은 시”라고 적혀 있습니다. 다윗은 양치기 였지만 아버지의 심부름으로 전쟁터에 갔다가, 골리앗과 싸워 이긴 후 인생이 달라졌습니다. 이스라엘이라는 나라의 정치무대의 중앙에 우뚝 서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이것을 달갑게 여기지 않은 사람이 있습니다. 바로 이스라엘을 통치자 사울 왕이었습니다. 사울은 다윗이 앞으로 얻을 것은 “자신의 왕권” 밖에 없다고 판단했습니다. 그러자 다윗에 대한 시기와 미움이 강력하게 작동하기 시작했습니다. 결국 다윗은 하루아침에 이스라엘을 구한 영웅에서 역적으로 몰려 제거 대상이 되어 버렸습니다. 어떤 죄도, 잘 못도, 심지어 실수조차 없었고, 더 나아가 오직 믿음으로 사는데도 그에게 이런 인생의 위기가 폭풍우처럼 임한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우리가 사는 현실입니다. 결국 다윗은 사울의 아들 요나단의 도움을 받아 사울을 피해 도망을 갑니다. 그리곤 첫 번째로 피신한 곳이 이스라엘과 원수 관계에 있는 블레셋 족속의 다섯 도시 중 하나인 “가드”입니다. 일종의 망명입니다. 가드 왕은 내심 반가워했을 것입니다. 다윗이 전략적으로 가치 있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가드 왕의 장수들은 말합니다. “이는 그 땅의 왕 다윗이 아닙니까? 무리들이 춤추며 말하기를 사울이 죽인자는 천천이요, 다윗은 만만이로다 하였던 자입니다”(삼상21:11) 이 말은 “다윗이 전략적으로 가치 있는 사람이 아니라, 자칫하면 왕을 도리어 위태롭게 할 자입니다. 더 큰 화가 있기 전에 죽여야 합니다.“라는 의미가 함축 된 간언이었습니다. 사울을 피해 망명을 했지만,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적지인 블레셋의 손에 붙잡혀 죽을 운명에 빠진 것입니다. 잘 하려고 한 것이 도리어 화가 된 것입니다. 우리도 그렇습니다. 뭔가 하려고 했는데, 도리어 실패로 귀착 되고, 절망으로 다가 올 때가 있습니다. 이 때 다윗이 이 정세를 파악했습니다. 그리곤 침을 질질 흘리고, 대문을 벅벅 긋고, 헛소리를 합니다. 결국 그는 다시 쫒겨납니다. 즉 죽음의 위기에서 그가 살아 난 것입니다. 이에 그 자유의 기쁨, 그 구원의 기쁨으로 감사하고 감격하여 시 34편을 남깁니다. 구원의 은혜와 기쁨으로 벅차오르는 감격과 감사를 담아 이렇게 시작합니다. “내가 여호와를 항상 송축함이며, 내 입술로 항상 주를 찬양하리이다” 영어로 표현하면 좀 더 분명해집니다. “I will extol the Lord at all time, his praise will always be on my lips” “나는 하나님을 높일 것입니다. 하나님을 찬양함이 내 입에 항상 있을 것입니다.” “송축한다” “extol 한다”는 말은 “하나님을 칭송하고 높인다”는 뜻입니다. 즉 하나님이 내게 행하신 일과 그 일을 행하신 하나님을 높이고 자랑하겠다“는 것입니다. 마치 이런 것입니다. 자녀가 학교에서 시험을 봤는데 전교 일등을 했습니다. 누구나 다 인정하는 유명한 대학에 들어갔습니다. 이런 자녀를 둔 부모의 심정은 어떨까요? 먼저 말하긴 그렇고 누가 제발 좀 물어봐줬으면 합니다. 그러나 묻는 사람이 없어 속만 끊이다, 기회만 있으면 봇물 터지듯이 자식 자랑을 합니다. 자기 자식이 그렇게 훌륭하다고 높이고 자랑합니다. 자식을 송축, Extol 합니다. 오래전 얘기입니다. 우리 교회에 출석하시던 성도님이 한국으로 돌아갔습니다. 그런데 가신지 일 년 여 쯤 되었을 때 전화를 해 왔습니다. 안부전화 차 했다고 했습니다. 그러나 본론은 그것이 아니었습니다. 아들이 전교 일등을 했다는 말을 하고 싶었던 것입니다. 얼마나 기뻤으면 이억 만리 이곳까지 전화를 해서 그 소식을 알려주고 싶었을까요? 바로 이렇게 칭찬하고, 자랑하고 높이는 것을 송축한다고 말합니다. 다윗도 입이 근질근질합니다. 참을 수 없습니다. 나를 구원하신 하나님, 나를 얽매어 꼼짝달싹은 못하겐 그 위기에서 건져 주신 하나님을 생각 할 때 가만히 있을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그가 기쁨에 겨워 고백합니다. “나는 항상 여호와를 높이겠습니다. 자랑하겠습니다. “나는 항상 여호와를 찬양하겠습니다.” 이렇게 고백하는 다윗의 모습을 상상해 보십시오. 죽음의 위기에서 벗어난 감격에 겨워 기뻐 뛰며 영광을 돌리는 그 모습을 말입니다. 하나님은 이 놀라운 은혜가 오늘 우리에게도 임하기를 원하십니다. 이 풍성한 삶을 우리에게 주시고자 우리를 자녀로 부르신 것입니다. 그리고 그 은혜를 주실 능력과 권세가 하나님께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은혜의 길이 무엇인가를 우리에게 말씀하십니다. 오늘 시편을 기록한 다윗이 위기에 처했던 상황을 기록한 내용이 삼상 21:10절 이하에 나옵니다. 그 위기에서 다윗이 미친체를 했다고 했습니다. 그러나 그게 다 일까요? 아닙니다. 그 때 다윗이 기도합니다. 물론 이 때의 상황을 기록한 삼상 21:10절 이하의 말씀에는 다윗이 기도했다는 기록이 없습니다. 그러나 오늘 본문을 통해 보면 그가 부르짖어 기도 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예를 들면 오늘 시편 34:4절에 다윗이 이렇게 고백하고 있습니다. “내가 여호와께 간구하매” 또 6절에서는 “이 곤고한 자가 부르짖으매” 라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즉 다윗이 절체절명의 순간에 빠져 하나님께 간구하고 부르짖어 기도했던 것입니다. 그런데 다윗은 블레셋에 망명해서 위기에 처했던 이 사건과 관련한 또 다른 시를 지었습니다. 그 시가 시편 56편입니다. 그리고 이 시 56편의 제목을 보면 이렇게 되어 있습니다. “다윗의 믹담시, 인도자를 따라 요난 엘렘 르호김에 맞춘 노래, 다윗이 가드에서 블레셋인에게 잡힌 때에” 망명한 장수로서 정당한 대접을 받는 처지가 아니라 블레셋인에게 잡혔다라고 표현합니다. 즉 다윗의 처지가 지금 어떤 상황입니까? 마치 포로와 같은 처지라는 것입니다. 블레셋에 피신했으나 도리어 붙잡혀 죽을 운명에 처해 있는 것입니다. 다윗은 이때에 자신이 처한 고뇌와 아픔을 시 56편 8절에서 이렇게 고백합니다. “나의 유리함을 주께서 계수 하셨사오니 나의 눈물을 주의 병에 담으소서” “도망하는 자의 처지를 하나님께서 다 아시오니, 나의 눈물을 담아 헛되지 않게 하사 구원하여 주소서”하고 간구하는 기도입니다. 이처럼 그 훌륭한 다윗도 우리와 하등 다를 바 없는 절망의 처지에 빠져 눈물을 흘릴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러나 그 때 절망하고 주저 않자 있지 않았습니다. 하나님께 기도를 했습니다. 그러자 하나님께서 그에게 지혜를 주사 미친 체 하게 했습니다. 침을 질질 흘리며 헛소리를 지껄였습니다. 알 수 없는 말을 대문에다 벅벅 긁어댔습니다. 기록에 없지만 어쩜 머리는 말할 것도 없고, 옷도 풀어헤쳐 정신없는 자 같이 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 미친체하는 그 모든 상황 속에서 속으로 기도합니다. “여호와여 나를 이 얽매인 죽음의 위기에서 건져 주옵소서” 그러자 블레셋 가드 왕이 말합니다. “너희도 보거니와 이 사람이 미치광이로다. 어찌하여 그를 내게로 데려 왔으냐 내게 미치광이가 부족하여 너희가 이 자를 데려다가 내 앞에서 미친 짓을 하게 하느냐 이자가 어찌 내 집에 들어오겠느냐”(21:14-15) 한 마디로 “이런 미친놈을 받을 수 없으니 내보내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만약 이 때 “이 미친놈을 죽여 더 이상 미친 짓을 하지 못하게 하라” 했더라면 다윗을 죽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은혜로 블레셋 왕이 “내 보내라” 한 것입니다. 이로써 다윗이 목숨을 구합니다. 기막힌 죽음의 위기, 죽음의 굴레에서 벗어나 생명의 자유를 누립니다. 그리고 나서 그 기쁨과 감격으로 쓴 이 시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내가 여호와께 간구하매 내게 응답하시고 내 모든 두려움에서 나를 건지셨도다.” “이 곤고한 자가 부르짓으매 여호와께서 들으시고 그의 모든 환난에서 구원하셨도다” “젊은 사자는 궁핍하여 주질지라도 여호와는 찾는 자는 모든 좋은 것에 부족함이 없으리로다.”(10) “여호와는 마음이 상한 자를 가까이 하시고 충심으로 통회하는 자를 구원하시는도다.”(18) 다윗은 이 고백을 통해 “하나님은 간구하는 자, 부르짖는 자, 찾는 자, 마음이 상한 자”의 기도를 듣는 분 구원하는 분이라 전합니다. 그리고 15절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여호와의 눈은 의인을 향하시고 그의 귀는 그들의 부르짖음에 기울이시는도다” 여기에서 의인이란 “하나님 외에는 의지 할 것이 아무 것도 없는 사람”을 말합니다. 다윗은 블레셋에 망명했지만 포로처럼 붙잡혀 죽는 일 외에는 아무 것도 할 수 없었습니다. 그가 붙들 수 있는 유일한 것은 “자기의 기도를 들으시는 하나님뿐 이었습니다. 그렇습니다. 우리 하나님은 “오직 붙들 것은 하나님 외에는 없습니다하고 눈물 흘리며 부르짖는 자의 곁에 계십니다. 그리고 그 기도를 들으십니다. 그 눈물을 닦아주시는 분이십니다” 할렐루야! 우리는 세상이 갖지 못한 강력한 무기와 힘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 세상의 그 어떤 첨단무기보다도 센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이 우주와 우리 생명을 창조하신 무한한 권능의 하나님께 나아가는 기도입니다. 다윗이 블레셋에 포로처럼 잡혀 위기에 처했을 때 그가 가진 무기란 “하나님을 믿고 구하는 기도”였습니다. 예수님께서 변화산에서 내려 오셨을 때 귀신들려 불과 물에 던져지고, 거품을 물고 이를 갈고 새파래지는 자를 고쳐 주셨습니다. 그런데 이미 그 이전에 제자들이 하려 했지만 고치질 못했습니다. 이에 제자들이 나중에 예수께 살짝 묻습니다. “우리는 어찌하여 능히 그 귀신을 쫓아내지 못하였습니까?” 그 때 예수님께서 중요한 답을 하십니다. “기도 외에 다른 것으로는 이런 종류가 나갈 수 없느니라” 내가 믿음을 가지고 있는 것으로 그쳐서는 안 됩니다. 그 믿음으로 주께 나아가야 합니다. 그 믿음으로 주님을 만나는 기도의 길을 가야 합니다. 그때 주님께서 은혜를 베푸사 나를 얽매인 것을 깨트리게 하던지, 능히 이기게 하던지 하는 것입니다. 솔로몬이 하나님을 믿는 다고 저절로 지혜를 터득했습니까? 아닙니다. 그가 왕이 되어 “이스라엘을 어떻게 이끌까 염려하는 깊은 고뇌와 간절함으로 하나님께 삼천 번제를 드리며 지혜를 구했을 때 하나님께 그의 기도를 들으사 지혜를 주신 것”입니다. 예레미야가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자 그 말을 들은 권력자들은 예레미야를 감금했습니다. 더 이상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지도 말 것이며, 우리는 듣지 않겠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 때 하나님께서 절망적인 상황에 놓인 그에게 언약을 하십니다. “일을 행하시는 여호와, 그것을 만들며 성취하시는 여호와, 그의 이름을 여호와라 하는 이가 이와 같이 이르시도다. 너는 내게 부르짖으라 내가 네게 응답하겠고 네가 알지 못하는 크고 은밀한 일을 네게 보이리라” 역사의 주인은 하나님이십니다. 이 역사를 이끄시는 분이 하나님이십니다. 그 뜻대로 언약을 이루어 가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이 하나님께서 말씀하십니다. “너는 내게 부르짖으라. 네게 응답하겠다. 네 경험, 네 생각, 네 지혜로는 도저히 길이 없다고 여겨질지라도 네가 알지 못하는 크고 은밀한 일을 네게 보이리라” 아무 것도 염려하지 말고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나가 구하십시오. 우리에겐 강력한 무기가 있습니다. 바로 하나님께 나아가 부르짖는 기도의 무기가 있는 것입니다. 쉬지 말고 항상 하나님께 나아가십시오. 오직 하나님 외에 다른 것이 없는 심정과 갈망으로 나아가십시오. “나도 세상도 아무도 모르는 놀라운 은혜의 역사가 하나님의 권능과 지혜로 펼쳐지게 될 것입니다. 그 때 우리도 다윗처럼 넘치는 자유와 기쁨으로 좋아 죽으며 하나님을 높이고 높일 것입니다. 이 은혜가 구하는 자를 위하여 예비 되어 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