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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날개 아래 품는 주의 사랑2019-03-20 09:54
작성자

20190317(주일예배

본문 눅 13: 31-35

제목 날개 아래 품는 주의 사랑

목적 예수를 거부하는 세상에 대한 하나님의 사랑과 징계그러나 그 죄를 넘어 십자가 속에 나타난 사랑을 증거하려 함

 

영상-두 아들 대신 불에 탄 엄마

 

우리는 부모님의 숭고한 희생의 사랑을 대할 때마다 눈시울이 붉어집니다사랑하는 자식을 위해 모든 것을 주시는 부모님의 그 깊은 사랑이 우리 가슴을 울리기 때문입니다.

 

마찬 가지로 우리가 예수님의 깊은 사랑을 경험 할 수 있다면 우리 가슴은 뜨거워질 것입니다본문에 나타는 예수님의 모습을 통해 사랑의 깊은 은혜가 임하기를 소망합니다.

 

그러면 본문에서 나타나는 예수님의 모습은 무엇입니까?

첫째 알고도 모른 척 하고 기다리는 사랑입니다.

본문에서 바리새인들이 등장합니다이들은 예수를 늘 죽이려고 혈안이 되어 있던 자들입니다늘 예수를 반대했고 비난하는 자들이었습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을 보면 착한 모습을 보여주고 있습니다헤롯이 예수를 죽이려는 음모를 꾸미고 있으니 피하라고 친절하게 알려줍니다늘 미움만 받던 예수님의 입장에서는 간만에 위로자를 만난 것 같은 느낌이 들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본문에 등장하는 바리새인들의 실제는 그렇지 않습니다예수를 반대하던 이들은 헤롯의 핑계로 예수가 예루살렘을 떠나기를 구한 것입니다.

더 이상 예수의 모습이 보기 싫었던 것입니다그러나 예수님은 그들의 마음을 다 알고 계십니다그들은 예수를 죽이는데 앞장 설 사람들임을 알고 계셨습니다그러나 그들의 계획을 피해 달아나거나 그들을 만류하지 않습니다.

 

대신 끝까지 기회를 주십니다돌아오기를 기다리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가 여기 있는 이유는 우리 모든 속을 알고 계심에도 불구하고우리를 기다리시는 주의 사랑 때문입니다.

 

우리가 죄의 길을 갈 때 주님은 기다리셨습니다.

우리가 무지의 길을 갈 때 주님은 기다리셨습니다.

우리가 음란의 길을 갈 때 주님은 기다리셨습니다.

우리가 음모의 길을 갈 때 주님은 기다리셨습니다.

우리가 배신의 길을 갈 때도 주님은 기다리셨습니다.

 

죄를 알고 주님 앞에 엎드려 회개하고 새 사람으로 거듭나기를 소망하며 기다리셨습니다. 그렇기에 간음한 여인을 책망하기 보다는 도리어 용서하시고 다시는 죄의 길을 가지 말라 하시며 새 삶의 기회를 주셨습니다.

 

그리고 오늘을 사는 우리도 여전히 죄악의 모습이 질퍽하나 예수 앞에 주의 긍휼을 구하기까지 기다리십니다그리곤 마침내 초라한 모습으로 나아가 용서를 구할 때 우리 허물을 다 덮어 주사 새 마음을 주시는 사랑의 예수님이십니다다 나를 책망해도 주 예수님만큼은 여전히 나를 기다리시는 분이심을 믿고주님께 돌아가십시오.

 

둘째로 본문에 나타난 주님은 어떤 모습입니까?

아무도 꺾을 수 없는 사랑입니다.

32-33절의 말씀을 함께 읽어보겠습니다.

이르시되 너희는 가서 저 여우에게 이르되 오늘과 내일은 내가 귀신을 쫓아내며 병을 고치다가 제 삼일에는 완전하여지리라.

그러나 오늘과 내일과 모레는 내가 갈 길을 가야 하리니

선지자가 예루살렘 밖에서는 죽는 법이 없느니라

 

이 말씀에서 오늘과 내일 귀신을 내어 쫓고병을 고친다는 것은 예수께서 가야 할 사역의 길을 가시겠다는 것입니다그리고 삼일에는 완전하려 지리라는 말씀은 삼일이라는 자신의 때에 당신의 사역을 죽음으로 완성 하실 것임을 말씀하십니다즉 32절의 말씀은 헤롯이 어떤 방해와 음모도 예수님의 사역과 생명을 조정하거나 통제 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세상의 그 어떤 권세도 예수님의 길을 막을 수 없고꺾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온갖 이유로 이 땅에서 아픔을 겪고 있는 우리를 향한 주의 사랑을 그 어떤 것도 막을 수 없고자기 생명을 주어 우리는 구하시는 그 사랑을 그 어떤 것도 꺾을 수 없습니다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그 주권적 사랑을 그 어떤 것도 빼앗을 수 없습니다할렐루야!

 

독일의 아우슈비치 수용소는 수많은 유대인들이 학살당했던 곳입니다그 참혹한 수용소에서 유대인들은 눈물을 뿌리면서

하나님을 향해 이렇게 외쳤습니다.

하나님지금 어디에 계십니까?

왜 이런 일을 허용하고 계십니까?”

 

그들의 피맺힌 절규는 연합군이 독일을 물리쳐 수용소를 탈환할 때까지 계속됩니다드디어 전쟁이 끝나 연합군이 탈환한 수용소를 점검하러 들어갔습니다점검하던 연합군 병사 중 한 명이 한쪽 벽 후미진 곳에 쓰여 있는 글씨를 우연히 발견하게 됩니다.

어느 그리스도인의 신앙고백인 것 같은 그 글에는 놀라운 내용이 담겨져 있었습니다.

 

그 크신 하나님의 사랑 말로 다 형용 못하네.

하늘을 두루마리 삼고 바다를 먹물 삼아도

한없는 하나님의 사랑 다 기록할 수 없겠네.

 

이 지옥 같은 수용소에서 죽음만을 기다리고 있던 한 유대인이 하나님의 사랑을 찬양하고 있음에 그 연합군 병사는 놀라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그런데 그 밑에 또 하나의 문장이 눈에 띄었습니다하나님은 여기에 계십니다.”

 

수용소에서 죽어가던 이름 없는 제자는 하나님이 안 계신 것 같은 상황 속에서도 하나님은 여전이 거기에 계심을 보았던 것입니다그렇습니다하나님이 안 계신 것은 거기에도 주님은 살아계십니다자신의 생명을 주신 그 사랑은 영원하고 변함없는 사랑이기 때문입니다.

 

그렇기에 어느 곳에서든지어떤 상황에서든지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십시오하나님께 겸손히 무릎 꿇는 그곳에서 하나님은 변함없는 사랑으로 만나 주실 것입니다그 사랑의 힘으로 회복되어 우리는 우리가 사는 이곳에서 하나님 나라를 심는 길을 가게 될 것입니다사도 바울을 통해 하나님은 약속하십니다내가 확신 하노니...어떤 피조물이라도 우리를 우리 주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을 수 없으리라”(8:35, 39)

 

셋째 날개 아래 품으시는 사랑입니다.

34절 말씀을 읽어보겠습니다예루살렘아예루살렘아 선지자들을 죽이고 네게 파송된 자들을 돌로 치는 자여 암탉이 제 새끼를 날개 아래에 모음 같이 내가 너희의 자녀를 모은 일이 몇 번이냐 그러나 너희가 원하지 아니하였도다.”

 

당시 예루살렘은 정치경제종교의 중심지 였습니다그러나 예루살렘은 하나님의 예언자들을 거절한 역사를 가지고 있습니다.

선지자들을 죽인 것이요보냄 받은 자들을 돌로 친 것입니다예를 들면 B.C. 800년대 요아스 왕이 있었습니다처음에는 선한 길을 갔습니다그러나 자신의 영적 정치적 스승이 죽자 요아스 왕은 하나님을 버렸습니다대신 땅의 풍요를 준다는 바알신의 아내인 아세라 신을 섬겼습니다그러자 하나님께서는 그에게 선지자들을 보내 경고를 했습니다그러나 그는 듣지 않았습니다.

 

이에 하나님께서는 그의 영적 정치적 스승인 여호야다의 아들

스가랴를 보내 이렇게 말했습니다. “너희가 여호와를 버렸으므로

여호와께서도 너희를 버리셨느니라 그러자 요아스 왕은 회개는 커녕 하나님의 성전 뜰에서 스가랴를 돌로 쳐 죽였습니다.(대상24:21)

 

그러나 여기에서 말하는 예루살렘은 꼭 이스라엘 수도 예루살렘만을 의미 하지 않습니다하나님을 거절하고 예수를 거절한 이스라엘을 말합니다그들은 끝없이 하나님의 말씀을 저버렸습니다선지자들을 통해 끝없이 돌아오라고 전하며 품고자 했지만 이스라엘이 하나님을 버린 것입니다그러나 하나님은 그들을 품고 마지막으로 예수를 보내셨습니다하지만 구원자 예수님까지 그들은 거절하였습니다그리고 예수도 죽여버렸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이 생전에 어떻게 하셨습니까하나님이신 예수님은 끝까지 그들을 품으셨습니다. 그리고 기다리셨습니다이 기다림과 품으심의 절정은 십자가를 통하여 나타났습니다일찍이 이사야 선지자는 BC 700년 전에 메시야의 고난에 대한 예언을 했습니다함께 읽어보겠습니다우리는 다 양 같아서 그릇 행하여 각기 제 길로 갔거늘 여호와께서는 우리 모두의 죄악을 그에게 담당 시키셨도다.”(사 53:6)

 

메시야가 우리 모두의 죄악을 담당하게 된다는 것입니다그리고 자신이 곧 메시야이심을 밝힌 예수께서는 이 예언과 같이또 오늘 본문 자신의 말씀과 같이 죽음 당하게 됩니다그 장면을 누가복음은 이렇게 기록하고 있습니다해골이라는 곳에 이르러 거기서 예수를 십자가에 못 박고 두 행악자도 그렇게 하니 하나는 우편에 하나는 좌편에 있더라”(눅 23:33)

 

이어서 이렇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이에 예수께서 이르시되 아버지 저들을 사하여 주옵소서 자기들이 하는 것을 알지 못함이니이다”(23:34)

 

지금 예수님을 못 박는 자들은 누구입니까? 예수를 반대하는 바리새인들장로들사두개인들입니다또 못 박는 군인들입니다예수를 끊임없이 욕했던 자들틈만 나면 예수를 비난 했던 자들입니다겉으로는 안 그런 척 하면서 언제고 예수를 죽이려고 했던 자들입니다그리고 마침내 끝까지 돌아오기기를 기다렸지만 결국에는 예수를 죽인 자들입니다.

 

그러나 주님은 어떻게 그들을 품어주십니까? 찢어지는 고통과 아픔벌거벗긴 채 십자가에 달리는 그 참을 수 없는 치욕 중에도 그들을 용서하는 기도를 드리셨습니다철천지원수와 같은 그들의 죄까지 짊어지고 그들을 대신하여 형벌을 받으셨습니다.

용서의 길을 가신 것입니다.

 

주 예수께서는 이렇게 용서 받을 수 없는 죄인들마저도 그의

사랑의 날개 아래 품고 십자가를 지셨습니다자신은 찢어지나 죄인들은 그 날개 아래에서 낳음을 입게 하기 위해 십자가를 지셨습니다자신은 징계를 받으나 우리에겐 죄에서 자유케 되는 은혜와 평화를 주기 위해 십자가를 지셨습니다영원토록 하나님의 사랑의 날개 아래에 거하는 은혜를 주신 것입니다.

 

이로서 고아와 같은 우리가 하나님의 은혜의 품 안에 쉴 수 있는 안식을 누리게 되었습니다세상이 다 나를 버려도 돌아갈 하나님의 품이 있는 것입니다그 날개 아래는 모든 것을 덮어주는 참 사랑과 세상이 주지 못하는 진정한 평화가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주시는 참 용서와 치유와 위로와 회복이 있습니다.

 

다윗은 이렇게 고백합니다. “그는 곤고한 자의 곤고를 멸시하거나 싫어하지 아니하시며 그의 얼굴을 그에게서 숨기지 아니하시고 그가 울부짖을 때 들으셨도다”(22:24)

 

또 이렇게 고백합니다. “여호와는 내편이시라 내가 두려워하지 아니하리니 사람이 내게 어찌할까”(118:6)

 

지금 눈물이아픔이 있습니까? 그 눈물을 멸시하지 않고싫어하지 않는 하나님의 품에 안기십시오.

 

죠지 뮬러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찬송을 받으실 그분은 절대로 우리를 떠나거나 버리시지를 않으십니다연약함이 크면 클수록 그는 자기의 힘을 나타내시려고 더 가까이 오십니다.“

 

주님 오시는 그날까지 주를 견고히 붙잡으십시오. 주 예수 안에서 하나님의 날개 그늘 아래로 들어가십시오. “인생의 여정에서 아무리 사자 같은 복병들이 함정을 파놓고 웅크리고 기다린다 할지라도아무리 독사의 혀로 나를 해치는 말을 하는 사람이 있다 할지라도 나를 위해 십자가에서 모든 것을 주신 사랑의 주와 아들을 주신 하나님께서 나의 방패가 되어 주사 모든 것을 이기게 할 것입니다.”(옥한음안아주심, p58)

 

기다리는 사랑그 어떤 것도 꺾을 수 없는 사랑십자가의 사랑의 날개 아래 곧다시 일어서게 하는 주님께 매일 돌아가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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