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0715(주) 주일예배 본문 엡 5:18-21 제목 성령으로 채워지는 길 목적 성령으로 충만히 채워 쳐야 할 이유를 알고, 이를 위해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알고 도전하게 한다. 제가 예수님을 안 믿을 때 대학1학년 때의 일화입니다. 당시 과 부대표를 하고 있었는데, 가을철에 체육대회가 있었습니다. 체육대회가 끝나고 마무리로 저녁을 먹었습니다. 그리고 그런 자리에는 으레 소주가 당연하게 뒤 따랐습니다. 저는 뒷정리를 하고 조금 늦게 식당으로 갔는데, 식당에 들어서자마자 예비역 형들이 “아 오늘 수고했다”며 소주잔을 건넸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예비 형들이 “내 잔도 받으라”고 하면서 계속 주었습니다. 술맛도 모르면 주는 것을 거절 할 수는 없어서 주는 잔을 불과 몇 분 사이에 마시게 되었습니다. 그리고는 곧 바로 취해서 그 뒤로 어떻게 됐는지 잘 모릅니다. 그러나 두 가지가 기억이 납니다. 한 가지는 인사불성이 된 저를 과에서 가장 빼싹 마른 친구가 저를 업어서 집에 데려다 준 것입니다. 다른 하나는 그 보다 앞선 있었던 일인데, 한 예쁘장한 과 여학생에게 식당 앞에서 한 1분도 안되게 잠깐 얘기했다는 기억입니다. 그런데 저는 이 두 번째 기억이 문득문득 떠오를 때마다 어디 숨을 곳이 없나 하고 지금도 얼굴이 화끈 거립니다. 그 취한 사건이 있은 후 한 참 지나 같은 과 다른 여학생에게 우연히 그날의 진상을 들었기 때문입니다. 그날 그 예쁘장한 여학생에게 얘기한 시간은 1분이 아니라 무려 한 시간 이상이었던 것입니다. 그것도 길거리에 서서 휘청거리며 횡설수설 했던 것입니다. 그 때 그 시절, 술에 취해 정신없는 짓을 행한 제 모습이 떠오를 때 마다 지금도 얼굴이 혼자 확 달아오릅니다. 이처럼 취하면 술이 나를 지배됩니다. 그러면 이성을 잃습니다. 동시에 하나님의 형상으로 창조 된 인간의 존엄을 잃어버립니다. 그 결과 인간임에도 이성 없는 짐승 같은 모습을 가지게 됩니다. 하나님께서는 바울을 통하여 술에 취하여 이성 없는 짐승 같은 길을 가지 말라 명령합니다. 대신 성령으로 충만히 채워지라 명령을 하십니다. 성령 하나님의 충만한 지배를 받는 상태로 계속해서 들어가라는 명령입니다. 이 명령은 목회자나 중직자들에게 하는 것이 아닙니다. 이 오늘 본문이 에베소교회 전체 보낸 편지임을 감안 할 때 이 명령은 에베소에 있는 모든 믿는 자들에게 하시는 명령입니다. 이를 우리에게 적용하면 예수 믿는 모든 사람에게 하는 명령입니다. 그러니 이 명령은 예수 믿는 모든 성도가 반드시 따라야 할 명령입니다. 예외가 없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성령으로 충만히 채워지는 일”은 나하고 상관없다거나, 관심 밖의 일이라고 치부하시면 안 됩니다. 모든 믿는 성도들, 교회에게 하는 명령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이것을 외면하는 성도는 중대한 죄를 짓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그 길을 갈 수 있을까요? 이 질문에 대한 답을 찾기 이전에 먼저 해야 할 질문이 있습니다. “왜 계속해서 성령으로 충만히 채워지라 명령하는 것일까“ 라는 질문입니다. 한번 생각해보십시오. ”왜 모든 예수 믿는 모든 성도는 성령으로 충만히 채워져야 할까요?“ ”왜 계속해서 성령 하나님의 충만한 지배를 받는 상태로 들어가야 할까요?“ 첫째, “예수의 인격을 닮은 진정한 인간”이 되기 위해서입니다. 그럼 예수의 인격을 닮은 진정한 인간은 어떤 모습일까요? 우리는 그 모습을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발견하게 됩니다. 즉 우리를 죄와 사탄의 나라에서 구원하여 결국에는 어떤 인간이 되게 하려는 지를 보여주는 표지를 예수 안에서 발견하게 됩니다. 그것이 무엇입니까? “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주 너희 하나님을 사랑하라. 네 이웃을 네 자신과 같이 사랑하라”는 말씀을 한 치도 누락 됨 없이 그대로 다 이룬 모습 속에 담겨져 있습니다. (마22:37-39) 예수님은“성부 하나님을 생명 다해 순종하는 진정한 경외의 삶을 통해서, 동시에 자기가 죽을지언정 끝까지 원수마저 사랑으로 품어 그 죄를 대신지는 사랑의 삶을 통해서 진정한 인간의 모습을 보여 주셨습니다. 하나님을 경외함과 이웃을 사랑의 길을 끝까지 걸어가는 진정한 인간의 모습을 보여 주신 것입니다. 이로써 하나님은 우리가 어떤 사람이 될 것이라고 말씀하는 것입니까? 하나님을 경외함과 이웃을 사랑함에 완전한 새 사람 곧 예수와 같은 모습으로 회복 될 것을 말씀하고 계십니다. 즉 새 하늘과 새 땅에 살게 될 자의 완성 된 우리의 모습이 이와 같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이 목적을 위하여 예수를 보내셨고, 성령을 통해 이 목적을 향해 예수 안에서 우리를 부르셨습니다. 그렇기에 우리의 현재의 삶은 어떤 삶입니까? 완성 된 하나님 나라에 합당한 사람, 즉 예수님의 인격을 닮은 인간이 되는 놀라운 소망을 품고 그것을 향해 성숙 되어 가는 삶입니다. 예수님의 인격을 닮아가는 성화의 삶인 것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어디에 있습니까? 세상이 악합니다. 그리고 우리 자신은 이악한 세상을 이길 힘도 변화시킬 힘도 없다는 것입니다. 더 심각한 것이 있습니다. 우리의 인격 저 깊은 곳이 죄와 악으로 가득하다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마음에서 나오는 것은 악한 생각과 살인과 간음과 음란과 도둑질과 거짓 증언과 비방이니 이런 것들이 사람을 더럽게 하는 것이다” (마15:19) 즉 우리는 스스로 세상과 나의 죄 성을 이기기고 예수님 닮아갈 실력과 능력이 우리에게 없다는 것입니다. 그렇기에 우리는 오늘 말씀처럼 계속해서 성령으로 충만히 채워지는 길을 가지 않으면 안 됩니다. 하나님을 경외하고 이웃을 나 자신처럼 사랑하는 진정한 인간이 되는 길은 성령께서 우리를 채워주실 때만 가능하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우리 안에 강력한 육체의 욕심을 좇지 않고 그리스도의 인격을 닮는 진정한 인간이 되는 길은 오직 성령을 따를 때만 가능한 것입니다.(갈5:16) 여기에서 생수의 강이 흘러넘치는 풍성한 삶과 성령의 열매가 맺히게 됩니다. 둘째, 사명을 감당하기 위해 성령으로 충만히 채워져야 합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예수의 인격을 닮은 진정한 인간이 되는 복을 주시기 위해 우리를 부르셨을 뿐만 아니라 동시에 사명을 주십니다. 예수님이 오실 때 완성 될 하나님 나라를 미리 바라보면서 그 나라에 합당한 삶을 살뿐 아니라, 이 세계를 그 나라에 맞게 고쳐 나가시는 하나님의 일에 동참하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주님의 기도를 가르쳐 주시면서 이렇게 기도하라 하셨습니다. “나라가 임하시오며 뜻이 하늘에서 이루어진 것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이다”(마6:10) 하나님의 뜻이 완전하게 성취되어 있는 하나님 나라처럼, 이 세상에도 그렇게 이루어지기를 기도하라는 이 가르침은 우리로 그것을 위해 살라는 뜻이 담겨져 있습니다. 기도하며 그것을 위한 삶이 되게 하라는 것입니다. 즉 일용할 양식이 없어 일 년에 800만 명 이상이 굶주림으로 죽어가는 자의 신음을 외면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또 용서 대신 복수와 저주의 칼날을 품고 싸우며 전쟁하는 이 세계에 용서와 화해의 길을 가라는 것입니다. 시험과 악에 빠지지 말고 그 길을 가라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 길에서 우리가 어떻게 세상을 이기며 동시에 소망을 주면서, 하나님 나라를 세워나가는 삶을 감당 할 수 있겠습니까? 성령으로 채워지지 않으면 그 길은 결코 갈수도 세상을 이길 수도 감당 할 수도 없습니다. 진리와 소망을 깨우쳐 주시는 성령의 역사와 붙들어주시는 은혜 없이는 갈 수가 없습니다. 그러니 우리는 이 삶을 위해 날마다 성령으로 충만히 채워져야 합니다. 셋째로 우리에게 또 다른 사명이 있습니다. 그것은 복음을 선포하는 것입니다. 복음이란 무엇입니까? 성경 속에 자신을 드러내신 하나님께서 온 세상의 왕이시오, 이 하나님께서 일으키신 예수님이 이 세상의 주인이라는 좋은 소식입니다. (톰 라이트, 마침내 드러난 하나님 나라, p344) 이 놀라운 소식을 베드로는 이렇게 외쳤습니다. “너희가 십자가에 못 박은 이 예수를 하나님이 주와 그리스도가 되게 하셨다”(행2:36) 그리하여 예수로 새롭게 시작 된 하나님 나라로, 예수를 닮는 진정한 인간이 되는 구원의 길로, 하나님 나라를 위한 새로운 사명의 길로 초대합니다. 그러나 이 길에는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우상과 거짓 신과 높아진 인간의 생각들이 수 없이 비웃고 조롱하고 위협하고 목숨까지 앗아가는 길입니다. 요한을 제외한 나머지 예수님의 제자들이 다 죽임을 당했듯이 말입니다. 오늘 본문이 들어 있는 이 에베소서 서신을 쓴 바울 또한 죽임을 당했습니다. 그러니 “하나님은 왕이시오, 하나님이 일으키신 예수는 이 세상의 주인이다. 유일한 진리이시다”라고 선포하는 길은 성령의 도우심 없이는 갈 수 없는 길입니다. 그렇기에 우리는 날마다 계속해서 성령으로 충만히 채워지는 길을 가야만 합니다. 성령의 공급하시는 은혜와 권능으로 채움을 입어야만 하기 때문입니다. 정리하면 이렇습니다. 왜 우리는 계속해서 성령으로 충만히 채워져야 하는가? 예수의 인격을 닮은 진정한 인간이 되는 것, 하나님 나라를 위한 사명과 복음 선포의 사명을 감당하는 것은 오직 성령 하나님으로만 가능하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성령으로 충만히 채워지는 길을 갈 수 있을까요? 두 가지가 동시에 조화를 이루어야 합니다. 성도 각 자가 해야 할 것과 동시에 교회 공동체인 우리가 함께 조화를 이루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럼 먼저 성도 개인이 해야 할 것은 무엇일까요? 예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누구든지 목마르거든 내게로 와서 마시라 나를 믿는 자는 성경에 이름과 같이 그 배에서 생수의 강이 흘러나오리라”(요7:37-38) 이 말씀은 예수 믿는 자들에게 성령이 임하는 은혜가 넘치게 될 것을 말합니다. 그럼과 동시에 성령으로 충만하여 넘쳐흐르는 풍성한 삶을 말씀하기도 합니다. 여기에서 예수님께서는 “누구든지 목마르거든 내게로 와서 마셔라” 하십니다. 그런데 여기에서 사용된 동사 인 목마르다, 오다, 마시다, 믿다는 단어는 다 현재 형입니다. 즉 계속해서 목마르고, 계속해서 나오고, 계속해서 마시고, 계속해서 믿으라는 것입니다. 즉 예수 없는 삶에서 예수 믿는 삶으로 돌아서는 그 회개의 나아옴과 믿는 그 행위 한번으로 그치지 말고, 계속해서 예수께 와서 마셔야 한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매일 배가 고픕니다. 그리고 매일 성장해 나갑니다. 이를 위해 가장 필요한 것이 무엇입니까? 매일 맛있게 차려진 식탁으로 나아가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것을 충분하게 맛있게 먹는 것입니다. 이 노력 없이 배고픔이 채워지기를 바라거나, 몸이 건강하게 유지되기를 바라는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입니다. 마찬 가지로 성령으로 충만히 채워지는 길을 감에 있어 가장 우선적으로 해야 할 것이 바로 목마른 우리 자신이 날마다 성부와 성자와 성령 하나님을 찾는 것입니다. 그러면 그 때 성령께서 우리 안에서 역사하시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가 반드시 갖추어야 할 거룩한 습관이 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을 매일 개인적으로 예배하는 습관입니다. 이 습관은 예수님도 갖고 계셨습니다. 마가복음 1:35절에서 이렇게 증언합니다. “새벽 아직 밝기도 전에 예수께서 일어나 나가 한적한 곳으로 가사 거기서 기도하시더니.” 누가복음 22:39절에서 이렇게 증거합니다. “예수께서 습관을 따라 감람산에 가시매” 예수님은 한 인간으로써 자신의 사명을 감당하기 위해, 이렇게 새벽에 한적한 곳에 가셔서 성부 하나님과 교제를 하셨습니다. 이 교제하는 것이 늘 습관이 되었기에 예수님은 자신을 보내신 성부 하나님을 찾으셨습니다. 그럴 때 성부께서는 예수께 성령의 역사와 권능으로 충만하게 채워주셨습니다. 그 결과 3년이란 그 모진 공생의 기간을 감당 할 수 있었고, 최후에는 십자가 죽음까지도 사랑으로 감당할 수 있었습니다. 주님이 보여주신 늘 하나님을 찾는 거룩한 습관을 우리도 반드시 장착해야 합니다. 이 습관은 선택 사항이 아닙니다. 필수입니다. 그러므로 아무에게도 방해 받지 않는 시간에 한적한 곳에서 개인적으로 홀로 하나님을 깊이 대면하며 교제하고 예배하는 습관을 직장 일보다 더 중하게 여기고 반드시 갖추어야 합니다. 그러므로 말씀을 읽고 그 의미를 깨닫고자 조용히 되 새겨보고, 감당해야 할 하루의 삶과 사명과 사랑을 위해 간절히 주의 도우심을 구하는 습관을 배우십시오. 그리고 실천하십시오. 동시에 자녀에게 그대로 물려주십시오. 여기에 우리 자신이 성령으로 채워지고, 자녀가 성령으로 사는 놀라운 은혜가 있는 것입니다. 두 번째로 우리가 공동으로 해야 할 일이 있습니다. 바로 오늘 본문 18절 이하의 말씀입니다. 한글 성경이라든가 다른 몇 몇 성경이 번역을 원문하고 약간 다르게 번역을 했습니다. 그래서 “성령으로 충만히 채워지라”는 말씀과는 아무런 상관도 없는 전혀 다른 명령으로 읽혀집니다. 그러나 보다 원문에 맞게 번역을 한다면 오늘 본문의 21절 마지막 동사인 “복종하라”를 앞에 기록한 다른 동사 들인 “화답하며, 노래하며, 찬송하며, 감사하며”처럼 번역해야 합니다. 즉 “피차 복종하라”는 단도 “피차 복종하며”라고 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렇기에 “오직 성령으로 충만히 채워지라 서로 화답하며, 주께 노래하며, 찬송하며, 범사에 예수 이름으로 아버지께서 감사하며”라고 번역해야 맞습니다. 즉 우리가 성령으로 충만히 채워지는 길은 개인이 거룩한 습관을 길러서 혼자 피터지게 영적 싸움을 전개하는 것이 아니라, 함께 하는 것이라는 것입니다. 어떻게요 우리가 함께 공동체를 이루어 이렇게 하라는 것입니다. 그러면 이러한 말씀대로 우리가 서로 화답하고, 노래하고, 찬송하고 범사에 감사하는 현장은 어디일까요? 바로 하나님을 다함께 예배하고 교제하는 자리입니다. 바로 지금 오늘 이 순간입니다. 그렇기에 우리가 함께 화답하며, 노래하며, 찬송하며, 범사에 감사할 때 성령의 충만히 채워지는 은혜가 우리 모두에게 임하는 것입니다. 여기에서 화답한다는 것은 서로 교제하는 것을 말합니다. 세속적인 잡담이 아닌, 하나님의 시와 찬송과 노래들을 하며 함께 교제하는 것입니다. 이것을 잘 표현하고 있는 시편이 있습니다. 시95편입니다. 여기에서 이렇게 외칩니다. “오라 우리가 여호와께 노래하며 우리의 구원의 반석을 향하여 즐거이 외치자, 우리가 감사함으로 그 앞에 나아가며 시를 지어 즐거이 그를 노래하자...오라 우리가 경배하며 우리를 지으신 여호와 앞에 무릎을 꿇자”(1-2,6) 여기에서 하나님의 사람들이 “오라 우리가 여호와께 노래하자. 즐거이 외치자. 여호와께 경배하며 무릎을 꿇자”하고 서로 권면하고 화답하는 모습을 보게 됩니다. 그럼 이 모습이 가장 잘 실현 되는 오늘날의 자리는 어디입니까? 바로 지금 이 순간 우리가 함께 예배하며 교독하고, 회개하고, 찬송하고, 말씀을 경청하는 자리입니다. 그렇기에 우리는 하나님을 예배하는 이 현장은 놀라운 은혜의 자리입니다. 성령께서 우리 가운데 역사하셔서 우리 모두를 성령으로 충만히 채우시는 자리인 것입니다. 할렐루야! 혼자 조용히 예배하고 혼자 조용히 빠져가도 되는 그런 자리가 아닙니다. 함께 권면하고, 교제하고, 화답하여 다 함께 성령으로 충만히 채워지도록 해야 합니다. 예배 인도자, 찬양인도자, 반주자, 기도자, 안내자, 봉헌하는 자, 교사들뿐만 아니라 우리 모두가 다 이러한 모습으로 참여하고 함께 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럴 때 우리가 다 성령으로 충만히 채워지는 은혜가 주일 마다 반복되고 계속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세속적인 말을 그치고, 시와 찬송과 신령한 노래로 서로 화답하는 사람, 권면하는 사람이 되기를 사모하십시오. 어떻게 성령으로 충만히 채워지는 길을 가는 것입니까? 목마른 자와 같이 계속해서 주님을 찾는 것입니다. 이를 위해 기도와 말씀을 묵상하는 개인의 거룩한 습관을 기르십시오. 세상의 말을 버리고, 이 예배의 현장에 함께 참여하여 시와 찬송과 노래로 서로 화답하고 권면하며 예배에 집중하십시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