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0304(주)주일예배 본문 느헤미야 1: 1-7 제목 나라를 살리는 교회 겨레가 하나님 나라의 이상을 향하여 나아가고, 이런 나라를 위해 기도하고 그 나라에 합당한 삶을 사는 교회가 되도록. 지난 주 목요일은 제 99주년 3.1절이었습니다. 3.1절 독립만세 운동은 일본제국주의 불법적 국권침탈, 그로인한 폭압적인 통치에 저항하여 조선은 독립국가임을 선언하며 독립을 온 몸으로 외친 만세 시위운동이었습니다. 이 독립만세 운동은 1919.3.1.에 시작 되어 4월말까지 계속 된 비폭력 평화시위 였습니다. 이로서 우리 겨레는 일본의 국권침탈과 억압에 맞서 자주독립의지와 불굴의 민족정신을 전 세계에 보여 주었습니다. 이 때 각 종교가 하나가 되어 함께 독립의 염원을 불태웠습니다. 천도교가 앞장서서 발의를 했고, 여기에 기독교, 불교가 함께 가세하였습니다. 하여 33인의 민족지도자가 결의를 하여 독립선언서를 낭독하며 3.1독립만세 운동을 거행했습니다. 이 독립만세 운동은 다양한 형태로 전개 되었습니다. 대로상에서 만세 시위, 시골장터에서의 만세시위, 야간 산상의 봉화시위, 한 장소에서의 기습시위, 같은 장소에서 거듭 된 시위, 인근 지역을 찾아다니며 행한 만세꾼들의 시위, 지역과 지역이 릴레이로 이어받으며 행한 시위, 시위 중 죽임당한 자의 시신을 떠메고 행한 상여시위, 상점 문을 걸어 잠근 상인들의 철시 시위, 학생들의 동맹 휴학시위, 노동자들의 파업, 광부들의 순사 주재소 습격시위, 어린이 시위, 기생들의 시위 등 남녀노소, 신분의 귀천을 가리지 않고 전 계층이 다양한 형태로 참여 했습니다. 이렇게 행한 독립만세 시위 횟수는 총 1,542회가 전개 되었고, 전체적으로 연 인원 200만명이 참여 한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이 독립만세 운동시 우리 겨레는 목숨도 두려워하지 않았습니다. 통계가 그것을 보여 줍니다. 이 때 무려 7,509명이 사망을 했고, 15,961명이 부상을 당했습니다. 이어 46,948명이 체포당했습니다. 그러나 마음 아프게도 이 운동이 나라 전체에서 불길같이 타올랐고 많은 국민들이 희생을 했지만 독립이 즉각적으로 이루어진 것이 아님을 우리는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3.1운동은 독립을 향한 민족적 열망과 자긍심을 고취시켰습니다. 한인이 있는 세계 모든 곳에서 독립만세와 독립선언을 하는 불이 되게 했습니다. 나아가 세계 각 국가들에게 조선은 일본제국주의의 일부가 아니라, 자주독립국이 되는 것을 염원하는 나라임을 인식하게 하는 중요한 계기가 되었습니다. 더 나아가 독립하여 이룰 나라는 어떤 모습인가에 대하여 혁명적 전환을 가져오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이 운동으로 대한민국임시 정부가 구성 되어 독립을 선언하였고, 임시정부가 선포한 공식 헌법문서인 “대한민국 임시헌장” 제 1조에는 “대한민국은 민주공화제로 함”이라는 놀라운 선언이 명시되어 있습니다. 이 말의 의미가 무엇입니까? 5 천 년을 이어온 왕정을 폐지하고 주권이 국민 개개인에게 있는 나라가 된다는 것을 말합니다. 이 의미를 가장 정확하게 표현한 분이 계십니다. 바로 도산 안창호선생입니다. 도산 안창호 선생이 1920년 신년사에서 “오늘날 우리에겐 황제가 없나요”라는 질문을 던지곤 이렇게 답을 합니다. “있소. 대한 나라에는 과거에는 황제가 일인 밖에 없었지만 금일에는 2천만 국민이 다 황제요, 제군의 앉은 자리는 다 옥좌며 머리에 쓴 것은 다 면류관이외다. 황제란 무엇이요? 주권자의 이름이니 과거의 주권자는 유일이었으나 지금은 제군이니 다 주권자이외다. 과거의 주권자가 일인이었을 때는 국가의 흥망은 일인에 있었지마는 지금은 국민 전체에 재하오” 이렇게 우리 겨레는 이미 20세기 초 나라의 주권이 황제가 아니라, 나라를 이루고 있는 국민 한 사람 한 사람에게 있음을 선포하였습니다. 이에 독립운동가들은 3.1운동을 5천년 군주정치의 구각(낡을 껍질)을 타파해낸 혁명이라 하여 3.1운동을 혁명이라고 불렀습니다. (한인섭교수, 3.1운동, 맨손혁명으로 국민의 나라 만들기, 2018년 3월 2일자 재외동포신문) 그런데 이렇게 5천년의 전제왕조를 끝내고 국민 한 사람의 주권이 존중받는 공화국, 하나님 나라의 가치가 지배하는 나라로 한 발 더 다가서는 기초가 되는 혁명에 당시 소수였던 기독교인의 헌신이 큰 몫을 차지하고 있습니다. 당시 기독교는 조선에 들어 온지 겨우 40여년 밖에 안 된 신흥 종교였습니다. 하여 다른 종교에 비하면 초라하기 그지없는 숫자 였습니다. 당시 천도교는 300만 명 이었는데 이는 전체 인국의 5분의 1에 해당할 정도로 많았습니다. 반면 기독교 교세는 전체 인구의 2%도 안 되는 30만이 안 되는 숫자였습니다. 그런데도 민족대표 33인 중에 50%에 이르는 16명이 기독교인였고, 각 지역에서 전개 된 만세 운동의 주역들이 지역 교회와 성도였던 경우가 많았습니다. 통계에 의하면 법정 기소된 총 7,835명 중에서 기독교인은 22%에 해당하는 1,719명 이었습니다. 이는 15%에 해당하는 천도교인을 크게 넘는 숫자입니다. 그러니 기독교인이 얼마나 적극적으로 나라를 위해 분연히 일어났는지 알 수 있습니다. 특이 이 독립운동을 전개해 나가면서 닥칠 위험과 시련, 그리고 성도로서의 자세를 잃지 않고 도덕적 우위를 가지고 운동을 해나갈 것을 위해 권면하는 “독립단 통고문”을 1919년 3월 3일 서울 강서지역에서 배포했습니다. 거기에 이렇게 말합니다. [우리 존경하고 고귀한 독립단 여러분이여, 어떤 일이든지 일본인을 모욕하지 말고, 돌을 던지지 말며, 주먹으로 때리지 말라. 이는 야만인이 하는 바니, 독립의 주의를 손상할 뿐이니 행여 각각 주의할지며, 신자는 매일 세 때 기도하되, 일요일은 금식하며, 매일 성경을 읽되, 월요일은 이사야 10장, 화요일은 예레미야 12장, 수요일은 신명기 28장, 목요일은 야고보서 5장, 금요일은 이사야 59장, 토요일은 로마서 8장을 돌아가며 다 읽을 것이라.”] (미래한국, 2002년 7월 16일, ‘기독교인 3.1운동 참여 사례’ 중에서) 이로서 우리 믿음의 선배들이 나라 잃은 아픔에서 욱하여 이 운동을 전개한 것이 아니라, 철저히 하나님을 따르는 성도로서 나라를 사랑하고 하나님의 뜻을 따르는 도리로서 이것을 전개 한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오늘 본문에도 나라 잃은 백성들의 고통과 불타 훼손 된 예루살렘 성에 대한 아픈 소식을 듣고 수일 동안 울며 하나님 앞에서 금식하며 기도한 한 사람이 등장합니다. 바로 느헤미야입니다. 그는 6-7절에 기록된 기도를 통하여 민족의 죄를 회개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듣지 않는 죄를 범했고, 모세를 통해 주신 율법을 지키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다시 돌아와 구하면 쫓겨난 그곳에서 이 백성을 돌아오게 하리라 한 말씀을 기억하여 주옵소서.” 느헤미야는 사실 이스라엘 땅에서 태어난 사람이 아닙니다. 포로로 잡혀 온 바벨론 땅에서 태어나 2세대 였습니다. 그러나 그럼에도 이스라엘 백성으로서, 그리고 하나님의 백성으로서 민족의 고통과 아픔을 품고 조국과 멀리 떨어진 이국땅에서 이렇게 눈물 흘려 기도하였던 것입니다. 이에 하나님께서 그의 기도를 들으십니다. 당시 페르시아 왕의 술 관원 이었던 그가 왕의 허락을 받아 조국의 총독으로 임명 된 것입니다. 이로서 그는 3차 귀환자들을 이끌고 이스라엘에 들어갑니다. 그리곤 황폐된 예루살렘 성을 재건합니다. 동시에 이스라엘 백성들의 신앙과 삶을 바로 잡아 망한 나라의 기틀을 다시 잡게 됩니다. 우리는 여기에서 멀리 떨어진 이방 땅에 있으나, 진심으로 나라 잃은 아픔과 고통을 생각하며 기도하는 한 사람의 기도를 들으시고 그를 사용 하시는 하나님을 보게 됩니다. 하나님은 이렇게 진심으로 기도하는 자녀의 기도를 들으시는 분이십니다. 아들을 주신 그 사랑으로 우리와 늘 함께 계시기 때문입니다. 또 이 땅에서 친히 인생의 고통을 겪으사 우리 처지를 아시는 주께서 성령속 에 임하셔서 우리와 함께 계시기 때문입니다. 그렇기에 이 먼 거리에서 우리가 무얼 어떻게 할까 하고 무관심한 모습을 가져서는 안 될 것입니다. 조국의 독립을 외치며 대한 조선이 모든 백성이 자유를 가지고 주인 되는 민주공화국이 되는 꿈은 아직 이루어지지 않았습니다. 남한에만 그 기도가 이루어졌을 뿐, 북한은 같은 민족이라 하기에도 부끄러울 정도로 불의한 정권이 온갖 불의로 통치하며 인권을 유린하는 참당한 땅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살기 위해 김정은을 보며 눈물 흘리며, 우리는 행복해요 라고 칭송해야 하는 비극이 21세기에 벌어지고 있습니다. 참으로 원통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국민이 주인이 되어 자유와 자주와 평화와 평등이라는 하나님 나라의 보편적 가치 위에서 선 독립된 민주공화국를 꿈꾸며 자신의 몸과 생명을 불살랐던 그 꿈이 북한에도 실현 되어야 할 것입니다. 그럼은 통일은 저절로 이루어지게 됩니다. 그러니 우리가 깨어 기도해야 합니다. 태초에 하나님께서 우리 겨레를 통해 이루고자 하신 나라, 즉 하나님을 경외하고 하나님 말씀으로 살며, 세계에 하나님 나라를 심는 민족으로 쓰임 받는 겨레가 되기를 위해 깨어 기도해야 하겠습니다. 3.1운동 당시 이러한 하나님을 믿고 온 몸을 다해 기도하며 독립을 위해 자신을 불살랐던 한 믿음의 선배이야기를 들어보십시오. 1919년 4월 4일 이름 하여 익산 이리장날 만세운동이 있었습니다. 이 운동은 예수를 따르는 군산 영명학교 교사 문용기 선생이 주도를 했습니다. 그는 당시 검문검색이 심하던 때 여러 어려움을 뚫고, 박도현, 장경춘등과 같은 기독교 계통의 인사들과 몰래 만나 4월 4일 거사하기로 결의를 하였습니다.
4일이 되자 이리장터에는 기독교인 등 300여명이 모여들었습니다. 문용기선생은 준비한 태극기와 독립선언서를 나누 주었고, 시위대를 태극기를 흔들며 거리를 행진하였습니다. 이에 장터의 군중이 들이 동참하여 금새 천명가까이로 불어났습니다. 그러자 헌병대가 출동하였고, 소방대, 일본인 농장원 등 동원하여 창, 검, 총, 곤봉, 쇠갈고리를 무차별로 휘두르며 독립시위를 저지하려 하였습니다. 그러나 멈추지 않은 시위대에 당황한 헌병대를 무차별 사격을 가했습니다. 그 때 문용규 선생이 오른 손에 태극기를 들고 군중 앞으로 나아가 독립운동의 정당성과 일제의 만행을 규탄하는 연설을 하였습니다. 그러자 헌병이 칼을 휘둘러 그의 오른 팔을 베어 태극기와 함께 땅에 떨어뜨렸습니다. 그러나 우리 형제 문용기 선생은 굴하지 않고 땅에 떨어진 팔에 들린 태극기를 나머지 왼손으로 집어 들고 만세를 외치며 전진하였습니다. 그러자 헌병은 왼팔마저 베어버렸습니다.
하지만 문용기 선생은 굴하지 않고 두 팔을 잃은 몸으로 뛰어가며 계속 만세를 외쳤습니다. 뒤좇아 간 헌병들은 칼로 그를 난도질 합니다. 그러나 성도 문용기 선생은 대한독립을 염원하며 마지막 숨이 끊어지는 순간까지 외쳤습니다. “대한독립만세 대한 독립만세...” 이것은 겨레를 향한 호소요, 일본제국주의를 향한 겨레의 외침이요, 성도로서 하나님께 드리는 생명을 다한 기도였습니다. 우리는 이와 같이 훌륭한 민족의 선열을 둔 후손들이요, 한 알의 밀알이 되어 겨레를 섬기는 자랑스런 선배들의 믿음을 이어가는 성도들입니다.
멀리 있다 외면 말고 믿음의 선배들에게 하나님께서 주신 겨레에 대한 꿈이 완성되도록, 이제 우리가 더욱 깨어 기도하고 교회, 나라를 하나님 나라의 가치로 세워나가는 교회, 성도가 되어야 하겠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