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0311(주) 주일예배 본문 엡2:1-10 제목 갚을 수 없는 은혜 하나님은 위대한 계획을 갖고 계십니다. 이 땅과 이 우주에 존재하는 모든 것이 다 예수 안에서 완전한 친교를 이루는 상태로서 하나가 되는 것입니다. 죄로 인해 분열 되어 있던 하나님과 인간이 자연과 인간이, 인간과 인간이 예수 안에서 완전한 교제로서 하나가 되는 것입니다. 가정으로 치면 자기중심의 죄로 갈라진 부부, 원수 된 부모와 자녀가 다시 화목하여 완전한 친교로 하나 되는 것처럼, 이 땅의 만물이, 특히 모든 인간들이 예수 안에서 완전한 화목을 회복하여 하나 되는 것이 하나님이 계획하신 큰 그림입니다. 이것은 오직 한 분 창조자 하나님만이 이루실 수 있는 일입니다. 그렇기에 이 땅의 모든 존재가 갈망하는 진정한 평화와 행복도 하나님께만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 완전한 구원을 우리게 주시기를 원하십니다. 우리의 사랑하는 자녀들과 그 후손들에게도요. 하나님께서는 이 구원의 완성을 위해 변함없이 밀고 나가십니다. 이를 위해 하나님의 유일한 아들, 그리스도 예수를 보내셨습니다. 가서 어떻게 잘 해봐라 하고 보낸 것이 아니라, 모든 인간의 죄 값을 대신하여 죽음으로 그 죄 값을 대신 치루라고 보내신 것입니다. 죄로 인한 죽음에서 벗어나는 거듭남이 없이는 하나 되는 친교란 있을 수 없기 때문입니다. 죄는 하나님과 원수요, 인간 사이에도 미워하고 싸우고 가르고 원수 되게 하는 유일한 요소인 것입니다. 안타까운 것은 이 사실을 이 시대의 수많은 사람들이 모른다는 것입니다. 수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처지를 모르는 무지함에 휩싸여 이 세상이 달려가는 조류에 몸과 마음과 인생을 쉽게 맡겨버립니다. 그리고는 내가 지금 잘 가고 있지 하고는 안심을 합니다. 모두 다 그렇게 하는 것처럼 보이기 때문입니다. 니고데모라고 하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율법에 정통한 유대사회의 지도자로서 나름 자신의 길을 잘 가고 있다고 누가 봐도 인정할 수 있는 그런 사람이었습니다. 어느 날 밤 고심 끝에 그는 예수를 찾아갑니다. 예수가 하는 말과 행하는 신비한 기적들을 볼 때 이런 일들은 하나님께로부터 온 사람이 아니면 할 수 없는 일이라는 것을 직감했기 때문입니다. 그는 예수를 더 알고 싶었습니다. 그런데 다른 사람 몰래 찾아 온 그 유대인 지도자, 그 스스로 자신의 길을 잘 가고 있다고 믿을 뿐 아니라, 그 길을 가르치는 그 유대인 지도자로 존경 받는 그에게 예수는 놀라운 말을 합니다. “사람이 물과 성령으로 거듭나지 아니하면 하나님 나라를 볼 수 없느니라” 그는 유대인 지도자였지만 예수님의 이 말씀을 도통 이해 할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예수께 묻습니다. “사람이 늙었는데 어떻게 다시 태어 날 수 있습니까? 어머니 배속에 들어갔다가 다시 날 수 있어야 한다는 뜻입니까?” 그러자 예수께서 다시 말씀합니다.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로니 사람이 물과 성령으로 나지 아니하면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느니라. 내가 네게 거듭나야 하겠다는 말을 놀랍게 여기지 말라” 니고데모는 지도자였습니다. 자신의 길을 잘 가고 있을뿐 아니라, 다른 사람에게 이 길이 옳은 길이라고 가르치는 사람입니다. 즉 “할례를 받고 율법을 잘 지키는 길이 구원 받는 길이요, 이스라엘이 사는 길이다”라고 가르쳤고, 모든 유대인이 그 길로 가야 한다고 했던 사람입니다. 그것이 그가 아는 구원의 전부였습니다. 게다가 그는 그 길을 걷는 자로 하나님의 구원 안에 있는 자로 여겼습니다. 그는 그 속에서 안심하고 있었습니다. 유대인 전통에 그 몸을 맡긴 것입니다. 그러나 그런 그에게 예수님은 말씀하셨습니다. “물과 성령으로 거듭나야 하나님 나라를 볼 수 있다” “물과 성령으로 거듭나야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수 있다” 이 말은 유대인들에게 이것이 구원이요, 생명의 길이라고 가르치던 지도자 니고데모에게 “너는 아직 죽은 자다”라고 말씀한 것입니다. “너는 아직 하나님의 구원을 받지 못한 자다. 너는 죽은 자로서 이대로는 하나님 나라를 보거나, 들어가지 못 한다. 너는 아직 진정한 네 인생의 길을 찾지 못했다. 너는 잘 못된 길 위에 서 있다.” 모름지기 지도자로 나이도 적잖이 먹을 만큼 먹고 숫한 인생의 경험이 많았을 것을 감안해 볼 때, 이 말은 니고데모가 일생을 통해 들었던 말 중에 가장 충격적인 말이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실은 이 말은 예수 밖에 있는 모든 사람들에게 하시는 말씀입니다. 특히 세상이 흘러가는 대로, 나름 도덕적인 노력을 하면서 안정적인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하시는 말씀입니다. “너는 죽은 자다. 물과 성령으로 거듭나지 않으면 너는 하나님 나라를 볼 수 없다.” 사도 바울도 예수님의 이 말씀을 오늘 본문에서 반복합니다. 1절에 이렇게 기록 되어 있습니다. “그는 허물과 죄로 죽었던 너희를 살리셨도다” 그런데 이 본문을 헬라어 성경에 맞게 번역하면 본래는 이런 뜻입니다. “너희는 너희의 허물과 죄로 죽었다” 여기에서 죽었다라는 말은 육체적인 죽음이 아니라 “내가 되어져야 할 나의 모습, 진정한 나의 모습”이 상실 된 것을 말합니다.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 받은 사람으로서 가져야 할 모습을 잃어버린 것입니다. 우리의 본 모습은 “죄에서 벗어나 나를 지으신 창조자 하나님을 기뻐하고, 그 은혜에 감사하고, 즐거이 순종하며, 동시에 이웃을 사랑하는 하나님의 자녀다움에 있습니다. 그러나 죄로 이 하나님의 자녀다움을 잃어버린 결과 하나님과는 아무런 상관도 없는 삶, 곧 죽음의 삶을 살고 있습니다. 그것이 바로 세상의 흐름에 자신을 맡긴 길을 가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길은 바울이 2-3절에서 말씀하는 바의 길입니다. “그 때에 너희는 그 가운데서 행하여 이 세상 풍조를 따르고 공중의 권세 잡은 자를 따랐으니, 곧 지금 불순종의 아들들 가운데 역사하는 영이라. 전에는 우리도 다 그 가운데서 우리 육체의 욕심을 따라 지내며 육체와 마음의 원하는 것을 하여 다른 이들과 같이 본질상 진노의 자녀이었다” 여기에서 세상의 풍조란 하나님과 상관없는 세상의 풍습과 가치를 말합니다. 하나님이 없으면 우리는 그 시대의 풍조를 따라가지 않을 수 없습니다. 하나님 없는 문화를 따라 사는 것입니다. 공중의 권세 잡은 자란 사탄을 말합니다. 하나님을 반역하고 사람들에게는 죄를 부축이는 영적 존재입니다. 그래서 하나님 없는 문화와 시류에 따를 때, 죄를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게 합니다. 계속해서 마음의 욕심과 죄로 물든 육체의 욕심에 따르게 합니다. 최근 한국에서 “Me too”운동이 거세게 일고 있습니다. 어느 분야에서 성공을 거둔 남자, 그래서 그에게 권력이 주어졌을 때, 그것을 이용하여 힘없는 여성들을 성적으로 모욕하고 인격의 존엄성을 짓밟아 버린 자들에 대한 용기 있는 고발에, 나도 그랬어 하며 함께 동참하는 운동입니다. 이로 인해 그동안 사회에서 선생이요, 우상처럼 여겨지던 자들의 본 모습이 드러나면서 충격을 주고 있습니다. 고상한 시를 쓴다면서 추한 짓을 서슴치 않은 고은 시인이 그 대표적인 모습입니다. 한 대학교수는 자신의 추한 모습이 드러나자 결국에 자살로 자신의 죄 값을 짊어지기까지 했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미투 운동의 고발을 통해 부각 되는 것은 그동안 한국 문화에 깊숙이 뿌리박혀 있던 남성우월주의, 여성의 인격에 대한 비하, 성 불평등의 문화입니다. 이 문화 속에서 남성들은 기회만 있으면 자신의 힘을 이용하여 여성들을 모욕하는 것을 서슴치 않았습니다. 그러고도 깊은 죄 의식 없이 살아 왔습니다. 이것이 바로 죽의 자의 모습이요, 삶입니다. 그리고 불행스럽게도 여기에 있는 우리도 대부분 그 문화 속에서 자라났습니다. 우리도 동일한 죄의 문화가 배어있고, 그것이 바로 우리의 본성입니다. 그렇기에 하나님 없는 모든 자는 죽은 자요, 그들은 “본질적으로 진노의 자녀”라고 말합니다. 즉 하나님의 심판을 받아야 할 대상이라는 것입니다. 앞서 한 대학교수가 자신의 죄 값을 짊어지고 죽었다고 말했습니다. 자신이 받아야 할 죄 값, 혹은 수치감이 너무 커서 그렇게 했을 것입니다. 얼마나 자신이 한심스러웠을까요? 또 얼마나 괴로웠을까요? 자신의 죄가 크게 다가 올 때는 다른 길이 없습니다. 죽어야 그 짐과 죄책감과 수치감에서 벗어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것으로 끝이 아닙니다. 죄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이 최종적으로 이루어 질 때 그 때 영원한 진노의 심판이 이루어질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이는 하나님 없는 모든 사람, 곧 예수 밖에 있는 모든 사람의 운명입니다. 하나님 없는 삶은 아무리 도덕적인 삶이라 할지라도 하나님을 멸시 한 죄, 자기 뜻대로 삶으로서 하나님을 심하게 거역한 죄가 하늘과 땅 만큼이나 크기 때문입니다. 이 죄는 우리가 느끼던 못 느끼던 벗어날 수 없는 큰 죄이며, 실제적인 죄입니다. 게다가 이 죄로 인하여 이 땅에서 사는 동안 진정한 나를 찾지 못한 죽은 자의 삶, 허무한 삶, 의미 없는 우연한 삶을 살게 되는 것입니다. 죄와 맞서 싸워야 할 이유, 고통 중에도 소망을 놓지 않아야 할 이유, 눈물 흘리는 자녀에게 주어야 할 삶의 진정한 이유를 알지 못한 채 사는 것입니다. 그래서 자신의 인생의 길을 잘 가는 것 같았지만 실제로는 이러한 겁데기 같은 죽음의 길을 가는 인생이었던 니고데모에게 예수님은 말씀합니다. “모세가 광야에서 뱀을 든 것 같이 인자도 들려야 하리니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영생을 얻게 하려 함이라” 모세가 광야에서 뱀을 들었다는 것은 구약 성경에 잘 나와 있습니다. 애굽에서 탈출한 이스라엘 백성들이 광야에서 하나님께 원망을 했을 때 였습니다. 애굽에서 잘 살고 있는데 왜 괜히 불러내어서 이 광야에서 고생하게 하느냐 하고 원망한 것입니다. 그 때 독뱀들을 통하여 하나님께서 이들을 심판합니다. 이에 백성들은 모세에게 뱀이 떠나도록 기도를 요청합니다. 이에 모세가 기도하자 하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불뱀을 만들어 장대 위에 매달아라. 물린자마다 그것을 보면 살리라.” 이에 모세가 놋으로 뱀을 만들어 장대에 달았고, 뱀에게 물렸으나 장대에 달린 그 뱀을 보는 자는 다 살아났습니다. 장대에 달린 뱀이 뭐이기에 뱀에 물린 자가 볼 때 살아났을까요? 그것은 신비입니다. 그것이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그 사건을 통하여 “광야에서 뱀이 들린 것 같이 인자도 들려야 하리니”라고 말씀합니다. 여기서 인자란 “하나님의 아들, Son of God 란 바로 예수가 자신을 일컫는 말입니다. 결국 예수 자신이 뱀처럼 장대에 달려야 한다는 것은 자신이 십자가에 못 박혀 죽을 것임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물과 성령으로 거듭나는 길이 어디에 있다는 것입니까? 십자가에 못 박혀 죽임당한 예수를 바라보는 것, 즉 예수가 나의 죄를 대신하여 죽으셨으며, 나를 대신하여 죽을 만큼 나를 사랑하는 참 내 구원의 주이심을 믿는 데 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셨음에도, 인간으로 낮아지셔서, 죄 없음에도 우리 죄 값을 치루기 위해 자기 드려 죽음으로 죄 값을 치루셨습니다. 우리 죄의 값과 심판을 예수께서 하나님 아버지의 뜻에 순종하여 담당하신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아들의 이 신실한 순종과 생명을 다해 드린 진정한 기도를 인하여, 예수의 그 죽음과 부활을 보고 “이 예수님이야 말로 참으로 나를 위해 죽으시고 부활하신 나의 주이심이구나” 하고 믿자들을 다 용서하십니다. 죄를 다 용서하시고 흠이 없고 죄가 없는 자녀로 삼아 주십니다. 나의 죄를 치루고자 나대신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신, 그러나 부활하신 이 예수님이 진정으로 나의 주로 믿어지는 은혜가 임하기를 축복합니다. 그리하여 예수 안에서 진정한 인간이 되는 구원을 받으십시오. 누구든지 어떤 죄인이든지 이 예수가 참으로 나를 위해 죽으신 분이요, 부활하신 나의 주 하나님으로 믿어져, 나의 주 나의 하나님이라고 마음으로 고백 할 때, 그 사람은 죄와 죽음에서 일으킴을 받는 하나님의 자녀요, 생명이 있는 자입니다. 사탄의 권세에서 벗어나 하나님과 그 은혜의 지배하는 거하는 새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눈감고) 이 시간 십자가에 달리사 내 죄를 다 짊어지신 예수, 그러나 부활하신 예수를 아직 “나의 주, 나의 하나님”으로 고백 하지 못한 분은 없습니까? 혹 그런 분 중에 오늘 말씀을 듣고 보니 “예수님은 나를 위해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시고 부활하신 나의 주, 나의 하나님이십이 믿어집니다. 이 예수를 나의 주로, 나의 하나님으로 모시고 따르겠습니다. 또 그렇게 하고 싶습니다 하는 마음이 솟아나는 분 계십니까? 그 마음은 성령께서 주시는 마음입니다. 나를 살리는 성령의 생명의 역사입니다. 이 성령의 역사에 마음을 여십시오. 그리고 순종하여 따르십시오. “예수를 나의 주, 나의 하나님으로 모시라는 말씀에 순종하십시오. 혹 성령께 이렇게 순종하기를 원하시는 분은 속으로 저를 따라 하십시오. “하나님, 나를 위해 이 땅에 보내신 예수께서 나의 죄를 대신하여 십자가에 죽으시고 부활하심으로 나의 모든 죄 값을 치루신 분이요, 나의 주, 나의 하나님이심을 믿습니다. 내 안에 오셔서 저의 주와 하나님이 되어주십시오. 이제 예수님의 말씀과 삶을 따르는 하나님의 자녀의 길을 가게 해주십시오.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이 고백으로 믿어짐으로 따라 하신 분들은 이제 성령으로 거듭난 사람, 죽음에서 생명을 얻은 사람, 하나님께서 그토록 원하시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구원이 임한 사람입니다. 할렐루야! 한 말씀만 더 하겠습니다.그런데 오늘 본문 8절에서 이렇게 말씀합니다. “너희는 그 은혜에 의하며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았으니 이것은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 갚을 수 없는 은혜란 바로 이것입니다. 죄로 말미암아 죽었고, 영원한 진노를 덧입어야 할 자격 없는 죄인 된 우리가 구원 받은 것은 순전히 하나님의 은혜로 되었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의로워서 자격이 있어서 마음이 착해서 준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십자가와 부활의 예수를 믿는 믿음을 인하여 선물로 주신 것입니다. 즉, 우리의 구원은 예수님의 십자가 죽음과 이 예수의 십자가 죽음 값으로 믿는 자마다 용서하기로 작정하사 용서를 거져 베푸시는 하나님의 한없는 은혜로 된 것입니다. 그렇기에 사도 바울은 고백합니다. ”나의 나 된 것은 하나님의 은혜로 것입니다“(고전15:10) 우리 생명을 주어도 갚을 수 없는 하나님의 선물, 구원이 은혜로 우리에게 임하였습니다. 예수님의 죽으심과 아버지의 용서의 은혜로 된 것입니다. 그런즉 오직 겸손히 하나님을 예배하고, 이웃을 높이는 성도의 길을 가야 하겠습니다. 모든 것을 거저 주신 하나님께, 갚을 수 없는 은혜를 주신 하나님께 이제 우리를 드려 주의 선하신 뜻을 위한 거룩한 부르심에 응답해야 하겠습니다. 우리는 주의 만드신 바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