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주의 말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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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주의 말씀

제목새로운 창 22018-04-28 09:39
작성자

20180415(부활절 셋째 주일예배

본문 눅 24:36-43

제목 새로운 창 2

 

1960년 대 초 텍사스 샌안토니오 외곽의 작은 시골 마을인 셔츠에는 로지 구티에레즈라는 라틴 아메리카계 젊은 여성이 살고 있었습니다로지는 가난 했습니다하지만 아이들을 대학에 보내서 가난하게 살지 않게 만들고 싶은 소망이 간절했습니다그래서 아이들을 대학에 보낼 수 있게 돈을 벌 방법을 찾게 해달라고 기도를 올리곤 했습니다.

 

어느 날도 로지는 무릎을 꿇고 기도했습니다로지는 기도를 마친 후 일어서서 앞치마로 눈물을 훔쳤습니다창밖 이웃집 마당에는 쓰레기가 산더미처럼 쌓여 있었습니다쓰레기는 늘 그 자리에 있었습니다그런데 어느 날 로지는 전에 못 봤던 것을 봤습니다해결리 필요한 문제가 눈에 들어 온 것입니다로지는 그날 마음 속으로 한 가지 결정을 했고그 결정은 그녀의 삶을 완전히 뒤바꿨습니다.

 

로지는 이웃에게 일 달러를 받고 쓰레기를 폐기장까지 옮겨주겠다고 제안했습니다그녀는 쓰레기를 차 트렁크에 싣고 폐기장으로 옮겼습니다힘들고 더러운데 보상은 적은 일이었습니다하지만 그 마을에서는 꼭 필요한 일이었습니다당시 셔츠 시에는 지방자치단체의 쓰레기 수거 서비스가 제공 되지 않았습니다그래서 모두가 직접 그 일을 해야 했습니다마을에 이야기 돌자 다른 이웃들도 로지에게 쓰레기 수거를 부탁하기 시작했습니다그녀는 아무도 안 하려는 일을 맡아 바쁘게 움직였습니다.

 

로지의 사업은 처음 생각한 것보다 훨씬 커졌습니다수입의 절반은 넉넉지 못한 살림 살이에 보탰고나머지는 저축을 했습니다곧 중고 픽어프럭을 계약할 만한 돈이 모였고 나중에는 더 큰 트럭을 살 수 있었습니다좀 시간이 흐르니 일을 도울 사람을 구해야 할 정도가 되었습니다나중에는 셔츠 시에서 쓰레기 수거 사업권 입찰 공고를 하게 되었는데 그 계약을 따내는 놀라운 일도 일어났습니다전국 규모의 쓰레기 수거업자들을 이기고 도 단위 계약을 하게 된 것입니다그녀는 옆면에 구티에레즈라고 굵게 적힌 산업용 쓰레기 수거차들을 갖게 되었습니다말 그대로 어떤 사람이 버린 쓰레기가 그녀에게는 돈이 된 것입니다.

 

그녀는 기도 중에 받은 영감으로 새로운 눈이 열렸습니다아무도 거들떠보지 않고 골치 덩어리로만 알고 있던 쓰레기가 돈으로 보이는 눈을 가지게 된 것입니다.

 

이렇게 어떤 사물 현상 역사를 새롭게 보는 창이 열리면 그 이후의 삶은 완전히 다른 삶을 살게 됩니다혹시 성도님들의 인생 속에서도 그런 일들이 있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에서는 그 어떤 것과도 비교 할 수 없는 인류전체를 충격으로 몰아넣는 놀라운 일을 증거하고 있습니다그것은 십자가에 죽었던 사람이 부활했다는 믿을 수 없는 얘기입니다.

 

이 시대에 많은 사람들이 예수가 부활했다고 말할 때 그것을 믿기 힘들어합니다사람이 죽으면 다시 살 수 없다는 것이 자명한 일이기 때문입니다그것은 인류의 역사가 증명합니다모든 인간은 죽으며죽은 자는 땅 속에 묻혀 있고 시간이 지나면 썩어 없어지는 것이 인간이기 때문입니다이 명백한 사실에 대해 의심하는 사람은 없습니다그렇기에 예수의 부활에 대해 얘기 할 때 그것을 믿기 어려운 것입니다우리의 경험과 지식과 맞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이러한 상식은 고대에도 마찬 가지였습니다예수님이 태어나신 해는 한국사와 비교해보면 B.C.18년에 건국된 백제보다 불과 12년 뒤에 있었습니다즉 예수님이 세상에 드러낸 시점이 엄청 오래전이요한국사로치면 삼국시대적이라는 것입니다그런데 그 때 당시 유대교들이 아닌 이교들에게는 죽음이란 전능한 것이었습니다죽음 앞에 아무도 고개를 들지 못했고 답이 없었습니다하지만 죽음 이후의 삶에 대해서는 믿었습니다이를테면 죽으면 막연하게 좋은 데로 갔을 거라고 하는 식으로 말하듯 알 수 없는 어떤 세계혹은 육체를 벗고 영혼은 떠돌거나 귀신이 된다고 말하는 식입니다.

 

그러나 이렇게 죽음 이후 어떤 형태로든 사후의 어떤 세계에 들어간다고 보았을 때그것을 부활했다 라고는 말하지 않았습니다.

아무리 고대시대라 해도 용어의 사용은 분명했습니다부활을 믿지 않았지만 부활이라는 단어가 갖는 의미는 명확했다는 것입니다.

 

그들이 부활이라는 말을 할 때 그것은 두 단계로 보았습니다.

첫 단계는 육체적 죽음이라는 중간 단계의 시기가 먼저 오는 것입니다죽음과 부활 사이에 중간단계가 있다는 것입니다즉 죽으면 바로 깨어나는 것이 아니라죽음의 순간 이후 그 죽음이 계속 유지되는 단계가 있다는 것입니다이것이 죽음의 순간과 부활 사이에 있는 중간단계입니다그러니까 고대의 눈으로 보면 역사 이래 모든 죽은 사람들은 다 이 단계에 있는 것입니다만약 부활이 있다면 말입니다.

 

두 번째 단계는 죽음 이후의 상태가 계속되는 중간단계 후에 새로운 육체적 생명을 가지고 다시 살아나는 부활이 있다고 보았습니다즉 죽어 모든 기능을 상실했을 뿐만 아니라썩어 문드러져 흔적도 없어진 존재가 다시 육체를 입고 살아나는 것을 부활이라고 보았습니다.

 

그러니까 고대 세계의 부활이란 말을 사용 할 때 가장 강조되는 점은 죽은 자가 시간이 지난 후 반드시 새 육체를 가지고 살아나는 것임을 의미했습니다그러니까 육체 없는 부활이란 아예 말 차제가 성립이 안 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당시 고대 세계나 이스라엘이 부활을 말할 때 그 부활이란 죽었다가 시간 지난 후에 몸이 다시 사는 것을 말하지환상영혼귀신과 같은 비 물질적 상태를 말할 때 쓰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이것을 오는 본문이 정확이 보여주고 있습니다예수께서 갑자기 제자들에게 나타나십니다요한복음에 의하면 예수께서 문을 통해서 오신 것이 아닙니다문이 아니라 벽을 통과해서 오신 것입니다그러니 소리 없이 스윽 벽으로 예수께서 나타나지 이들은 기겁을 했습니다두려워했습니다. “너희에게 평강이 있을지어다” 했으나 전혀 그렇지 않았습니다이들은 그것이 영()인 줄 알았습니다어떤 물질이 전혀 없는 존재로 보았던 것입니다그들은 부활이란 단체 부활이지 어느 한 사람의 부활이 있을 거라고 생각조차 못했기 때문입니다그래서 의심을 했고 두려워했습니다마치 어떤 영귀신 같이 보였던 것입니다.

 

그러자 예수께서 어떻게 말씀하십니까?

어찌하여 두려워하며 어찌하여 마음에 의심이 일어나느냐.

내 손과 발을 보고 나인 줄을 알라또 나를 만져 보라 영과 살과 뼈가 없으되 너희 보는 바와 같이 나는 있느니라

 

예수의 손과 발에는 못 박힌 자국이 선명하게 그대로 보였습니다.

제자들은 참 예수님이심을 알고 매우 기뻐했습니다그러나 여전히 믿지 못했습니다자신들의 눈앞에 펼쳐진 부활의 실재를 보고도 믿을 수 없었습니다그것은 지금 그 들 앞에 펼쳐질 일이 아니었습니다나중에 하나님이 심판하실 때에나 가능했던 일이기 때문입니다그러니 보고도 믿지 못하고 의심합니다부활이 아니라 영일 가능성이 더 커보였기 때문입니다.

 

결국 예수께서 그들의 마음을 아시고 보라는 듯이 구운 생선을 달라하여 맛있게 드십니다영은 음식을 먹지 못합니다비물질적 존재이기 때문입니다그러나 예수께서는 직접 음식을 드시는 것을 통해 자신이 완전한 몸을 가지고 다시 살아난 예수부활하셨음을 드러내신 것입니다당시 세계가 부활이란 죽었던 육체가 시간이 지난 후 다시 새 육체를 입고 살아나는 것이라고 이해하고 있던 그대로 나타낸 것입니다게다가 그것을 뛰어넘어 공간의 제약을 받지 않는 신비한 몸으로의 부활이었습니다.

 

여기에서 나타난 예수의 부활의 모습은 어떤 모습입니까?

몸을 가지고 부활하셨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육체를 가지고 있으나 벽이나 사물에 구애받지 않고 자유롭게 다닐 수 있는 신비한 몸이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렇게 나오면 사람들은 속으로 왠 뻥이야 하고 생각합니다부활이란 말도 믿을 수 없는데벽을 통과해 다닐 수 있는 신비한 몸의 부활이라 하니 더 이상 믿기지 않는 것입니다상식적이고 합리적이고 과학적인 기제가 발동하여 거부하게 합니다그러나 제자들은 그들이 경험한 예수를 우리에게 증거합니다.

 

이것은 마음속에 살아있는 예수라고 생각하는 것을 거부합니다마치 우리 부모가 돌아가셨을 때 그 사랑을 잊지 못하고 마음속에 아버지 혹은 어머니에 대한 기억을 간직함으로써 여전히 마음속에 살아 있는 것 같이 여기는 그런 살아있음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실재로 몸을 가지고 부활하셨음을 증거합니다.

 

이제 때가 되면 예수께서는 부활하신 그 몸 그대로 다시 이 땅에 오실 것입니다죄와 죽음의 권세로 물든 이 지구를 완전히 새롭게 갱신할 것입니다동시에 예수 안에서 죽어 몸은 썩고 영혼은 말할 수 없는 평안으로 충만한 낙원에 거하는 자들이 예수께서 오실 때 부활을 하게 될 것입니다육체를 완전히 회복하되 예수님처럼 신비한 몸으로 부활하게 될 것입니다그래서 새롭게 갱신 된 완전한 이 땅을 상속 받을 뿐 아니라새 하늘즉 하나님께서 계시고 지금 승천하신 예수께서 계신 하늘곧 하나님 차원의 세계가 완전히 갱신된 이 세상과 하나가 될 것입니다즉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이 땅과 하늘즉 하나님의 세계가 여기에서 하나가되는 완전한 하나님 나라가 되는 것입니다이 내용이 요한계시록 21장의 말씀입니다.

 

거기에 예수님이 나타내시고 성부 하나님이 눈에 보이게 나타내 실 것입니다즉 완전한 샬롬의 천국은 하늘에 있지 않고 이 땅 위에 완성 된다는 것입니다그러나 많은 경우 영지주의와 결합되어 죽으면 바로 비물질적인 몸이 천국에 들어간다는 식의 영혼만의 천국으로 이해하고 있습니다이는 잘 못된 가르침입니다그런 천국은 성경에서 가르치고 있지 않습니다.

 

요한 사도는 계시록에서 새 예루살렘이 새롭게 갱신 된 이 땅에 내려오고 거기에 하나님과 예수께서 거하신다고 말씀합니다. “하나님과 어린 양의 보좌가 그 가운데 있으리니 그의 종들이 그를 섬기며 그의 얼굴을 볼터이요” 그리고 예수님도 말씀하셨습니다. “마음이 청결한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하나님을 볼 것임이요” 마음으로 하나님을 깨닫게 될 뿐아니라 종국적으로 눈으로 하나님을 보게 되는 것입니다.

 

그렇기에 어떤 종파에서는 데살로니가전서 4:17을 가지고 휴거를 주장하나 이도 잘 못 이해한데서 기인합니다. “그 후에 우리 살아남은 자들도 그들과 함께 구름 속으로 끌어 올려 공중에서 주를 영접하게 하시리니 그리하여 우리가 항상 주와 함께 있으리라는 이 말씀은 주님이 오실 때 부활한 자와 그 때에 살아있던 믿는 자들이 주님이 오실 때 공중에 맞으러 나간다는 뜻입니다영접하러 나가는 것입니다그런 후 다시 내려와서 하나님께서 완전히 새롭게 창조하신 이 땅에서 함께 거하는 것입니다.

 

그렇기에 우리 보다 앞서 부름을 받은 사람들은 주님이 다시 오실 때 예수님의 몸의 새롭게 변화된 그러나 육체를 그대로 가진 그 모습으로 이 땅에서 부활 할 것이요 우리도 그리 될 것입니다.

그리하여 삼위 일체 하나님을 대면하여 보며 이곳에서 영원하시고 참된 하나님과 그 자녀들이 무한한 사랑의 친밀함으로 하나 되어 영원히 함께 사는 것입니다예수님께서 십자가 죽음과 부활로 시작하신 구원의 역사가 주님 다시 오실 때 여기 지금 우리가 받을 딛고 있는 이 땅에 임하는 것입니다이것이 영지주의와 플라톤주의에 물들기 전의 초대 교회의 믿음이었습니다.

 

하나님은 지금 이 새롭게 갱신되고 완성될 하나님 나라를 위해 이 역사를 주관하고 계십니다. 그리고 이 완성된 나라는 창조된 모든 피조물과 우리 인간들에게 주시기를 원하시는 것이요현재 이 땅에서 고통 받고 눈물 흘리는 모든 자들이 참으로 구하는 진정한 위로와 평화와 기쁨과 정의의 세계입니다.

 

그런데 과연 이런 세계가 우리 가운데 임할 수 있을까요?

명쾌하게 답을 할 수 있습니다. “틀림없이 임할 것입니다

어떻게 그것을 확신 할 수 있을까요?

예수님의 부활이 그것을 입증하고 보증하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죽었으나 그 죽음과 육체의 한계를 넘어 새 생명을 창조하시고 불어넣으시는 권세를 가지신 하나님이 예수를 살리셨습니다이것이 모든 것의 보증입니다.

 

그렇기에 초대 교회 믿음의 선배들은 부활하신 예수를 위해 기꺼이 고난 받았고 죽음도 마다하지 않았습니다부활의 주님을 만났을 때 그들의 눈이 무엇이 진리이며무엇을 위해 살아야 하는가 하는 새로운 창새로운 눈을 가지게 되었던 것입니다나를 위해서가 아니라부활하신 주 예수를 위해나의 꿈을 위해서가 아니라주의 꿈을 위해서 살아야 함을 알았던 것입니다.

 

존 하이드(John Hyde, 1865-1912) 라는 사람을 혹시 아십니까그는 기도의 사도’, ‘기도하는 사람 하이드라는 평을 들을 정도로 기도에 집중하는 사람이었습니다그는 앞길이 탄탄히 보장 된 대학교수 직의 초빙을 거부하고 척박한 인도 펀잡 지역의 선교사로 지원하여 1892년 10월 인도로 가는 배를 탔습니다그는 인도에서 20년 동안 기도사역을 계속하였는데인도인들이 그를 가리켜 잠을 자지 않는 사람이라는 별명을 붙일 정도로 철야기도를 즐겼던 사람입니다.

 

그는 인도 펀잡 내지에서 기도훈련을 통해 주님과 깊은 교제를 나누었습니다어떤 경우에는 30일 밤낮을 기도하며 보냈고무릎을 꿇고 36시간을 쉬지 않고 기도한 적도 여러 번 있었습니다.

 

그는 또한 영혼 구원을 위해서 힘썼습니다믿지 않는 영혼을 향해 전도하러 가기 전 그들을 위해 여러 날을 철야와 금식의 눈물로 기도하였습니다그런 뒤에 마을을 순회하며 가난한 자들을 보면 자신의 옷을 벗어주고그들의 험한 음식을 같이 먹으며들판에서 천막을 치고 자는 가운데 구령 사역에 매진했습니다이렇게 낙타 무릎으로 기도하자 그의 기도의 자리와 말씀의 자리에서는 늘 놀라운 기적이 따랐습니다그가 중보기도 하는 집회에서는 반드시 오순절의 부흥이 일어났습니다그가 말씀을 전할 때에는 엄청난 자복과 회개가 따랐습니다거듭남의 파도가 휩쓸었으며 사람들의 행실이 변화되었습니다.

 

그의 평생의 삶은 희생긍휼잃어버린 영혼에 대한 사랑깊은 영성중보기도의 모본이었습니다그는 자신이 쇠약해지기까지 기도하였다그가 기도하는 가운데 세상을 떠나며 마지막 남긴 말은 예수 그리스도의 승리를 외쳐라였습니다.

 

그가 십자가에 죽으시고 부활하사 살아계신 온 세상의 구주 예수를 만나자 어떻게 된 것입니까새로운 눈을 가지게 되었습니다대학교의 교수직 보다 사람을 구하는 선교가 더 주께서 원하시는 것을 알고 헌신하게 되었습니다나아가 탁월한 자신의 지성이 아니라 그것을 넘어 역사하시는 하나님의 은혜성령 하나님의 역사와 권능을 덧입기를 깨어 기도하였습니다오직 성령의 은혜로 살고성령의 권능으로 하나님의 일이 이루어지기를 구하고 구한 것입니다그러자 그가 기도하고 그가 가는 곳 마다 하나님의 놀라운 권능이 임했고수많은 영혼들이 예수를 만나 새 눈을 가지는 구원의 역사가 인도 땅에 펼쳐 진 것입니다.

 

부활하사 살아게신 예수님을 만난 새눈을 가지고 있습니까?

이 새로운 창을 가지고 있습니까세상을 다르게 보는 창을?

없다면 가장 좋은 진주를 찾아 구하는 장사처럼 찾아야 합니다.

가장 존귀한 이 진리를 찾고자 불필요한 모든 것을 버릴 각오로 찾아야 합니다. “하나님 제 눈을 열어주소서” 하고 깨어 간절히 기도해야 합니다.

 

반면 이미 나는 새눈새 창을 가졌습니다” 자부하는 분입니까?

세속의 때세속의 명예세속의 재미를 벗어던지고

오직 예수의 꿈에 사로잡히고,

부활케 하는 하나님의 능력으로 살기를 구하십시오.

성령의 은혜와 권능에 사로잡혀 사는 하나님의 사람이 되십시오.

깨어 기도함으로 그 눈을 더욱 새롭게 하십시오.

그리하여 전심으로 기꺼이 즐거이

나를 위해 죽으시고 그러나 부활하신 예수,

온 세상의 주와 하나님이신 예수를 위해 사는 길을 가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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