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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우리는 성령으로 충만한가?2018-07-12 12: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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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180708(주일예배

본문 에베소서 5:18-21

제목 우리는 성령으로 충만한가?

목적 성령 충만의 개념과 이유와 증거와 방법을 알게 하고,

더욱 성령에 충만을 사모하게 한다.

 

본론으로 들어가기 전에 지난 주 말씀드린 개념을 간단히 정리하고 넘어가겠습니다.

 

성령은 성부와 성자와 같은 인격을 가지신 하나님이십니다그런데 구약 성경은 나의 신을 네 자손에 내린다”(44:3)는 언약, “내가 내영을 만민에게 부어주리라”(요엘2:28)언약을 통해 성령을 만민에게 부어주실 것을 약속했습니다그리고 이 약속을 근거로 예수께서도 아버지께서 약속하신 것을 기다리라 했고기다리는 자들에게 성령의 세례를 받으리라” 말씀하셨습니다즉 약속하신 성령이 만민에게 임할 것이라는 뜻입니다그렇기에 여기에서 말하는 성령 세례란 약속된 성령을 주시는 것약속 된 성령께서 임하는 것을 뜻하지 불같은 특별한 경험을 받는 것을 말하지 않는다고 말씀드렸습니다.

 

정리하면 아버지의 약속하신 것 성령세례 성령의 임하심이 됩니다.

 

그리고 이 성령 은 예수 없는 삶에서 돌아서 예수를 믿음으로 하나님께 돌아오는 모든 자에게 선물로 주어지는 것입니다즉 믿는 자들에게 성부와 성자께서 보내신 성령 하나님께서 임하는 선물을 주시는 것입니다따라서 십자가에 죽으시고 부활하신 이 예수님이야 말로 나의 주나의 하나님으로 믿고 고백하는 성도는 이미 이 성령을 선물로 받은 자들이요성령이 임재하여 계십니다.

 

이렇게 믿는 자에게 부어진임재하신 성령은 영원히 떠나지 않고 함께 계십니다그렇기에 내가 성령을 받는 느낌이 없다거나뜨거운 경험이 없다하여 성령을 더 받아야 한다고 불안해 할 필요가 없습니다믿는 자에게는 이미 성부와 성자께서 부어주신 성령이 임재하여 계시기 때문입니다.

 

정리하면

십자가와 부활의 예수를 나의 주와 하나님으로 믿는 자 성령을 선물로 받은 자 성령이 항상 함께 있는 자입니다.(14:16,2:38-39)

 

왜냐하면 예수님께서 그렇게 말씀하셨기 때문입니다.

내가 아버지께 구하겠으니 그가 또 다른 보혜사를 너희에게 주사 영원토록 너희와 함께 있게 하리니 그는 진리의 영이라 ... 너희와 함께 거하심이요 너희 속에 계시겠음이라”(14:16-17)

 

이렇듯 믿는 자에게 임한 성령 하나님은 영원토록 우리에게 임하여 계시고 떠나지 않으십니다즉 진리를 깨우쳐주시고권능을 주시고예수의 성품을 닮아가며하나님 나라를 위한 진정한 인생이 되게 하시는 성령 하나님이 함께 계시는 것입니다할렐루야!

 

그런데 문제는 무엇입니까성경은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여 계시니 이제 다 되었다라고 말하지 않는 다는 것입니다오늘 본문 말씀에서와 같이 성령의 충만을 받으라 말씀합니다.

 

그렇기에 우리 자신에게 우리는 이렇게 물어야 합니다.

우리는 다 성령을 받았다.

그러나 우리는 성령으로 충만한가?

 

자신에게 물어보십시오.

나는 성령으로 충만한가?”

 

그런데 이와 관련해서도 먼저 분명하게 개념을 정리하는 것이 필요합니다과연 성령 충만이란 무슨 뜻인가오늘 본문은 오직 성령으로 충만을 받으라고 명령을 합니다그래서 이 본문을 읽으면 성령을 우리 안에 가득 받는 것으로 이해하게 됩니다그래서 성령은 성부와 성자와 더불어 예배를 받으실 분임에도 불구하고 내가 받아서 내가 유익하게 써먹어야 할 것으로 대상으로 여기게 만들었습니다.

 

그러나 원문을 해석하게 되고영어 성경만 봐도 그런 뜻이 아님을 할 수 있습니다영어 성경을 보면 이렇게 번역을 합니다. KJV입니다“... But be filled with the Spirit” 그러니까 성경 원문은 충만을 받아라가 아니라 충만해져라입니다원문에는 받는 다는 뜻이 없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원문의 뜻을 살려서 우리말로 번역하면 성령으로 충만해져라입니다그런데 안타깝게도 지금 우리가 사용하고 있는 이 개역개정 성경도 원문을 살린다고 했지만 여전히 받으라는 개념을 그대로 쓰고 있습니다성령으로 충만함을 받으라. 따라서 여전히 이 본문을 읽을 때 성령을 더 받아야 하는 것으로 오해 할 수 있습니다그런 점에서 오늘 본문을 스크린에 나와 있는 대로 고쳐서 읽어야 할 것입니다고친 것을 한 번 읽어 보겠습니다. “술 취하지 말라 이는 방탕한 것이니 오직 성령으로 충만해져라

 

그렇다면 성령으로 충만해져라는 명령은 구체적으로 무엇을 말할까? “성령 하나님이 충만히 다스리게 하라는 뜻입니다나의 전 존재가 성령의 충만한 다스림을 받는 것입니다나의 생각나의 의지나의 감정나의 행동나의 삶을 성령 하나님께서 충만히 다스리는 것입니다그렇기에 성령으로 충만해져라는 말씀은 늘 이러한 상태로 들어가도록 사모하고 들어가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여기에서 성령세례즉 성령이 임하셔 내 안에 계시는 것과성령으로 충만히 채워지는 것의 차이가 생깁니다믿는 자 모든 사람에겐 성령이 임하여 계십니다그러나 모든 사람이 성령으로 충만히 채워져 있지는 않습니다성령이 모자라게 임하여 있다는 말이 아닙니다임하여 계신 성령 하나님의 충만한 지배를 받지 않는 상태에 있다는 것입니다.

 

즉 성령의 임재는 예수를 믿는 누구에게나 주어지나성령의 충만한 지배를 받는 것은 사람에 때에 따라 다르다는 것입니다성령의 충만한 지배를 받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그렇지 않은 사람이 있고성령의 충만한 지배를 받는 때가 있는가 하면 그렇지 않은 때가 있습니다그래서 바울을 통하여 하나님께서 말씀하십니다세상이 험하니 기회를 잘 선용 할 것이요 성령의 충만한 지배를 받으라” 계속 해서 그 충만한 지배 상태로 들어가라는 것입니다.

 

본문에 쓰인 받으라는 동사는 채우라””는 뜻인데 수동태현재형명령으로 쓰였습니다헬라어에서 현재형 명령은 계속적인 행동을 나타냅니다따라서 성령으로 충만해져라는 현재 명령은 문제를 단번에 해결해주는 어떤 극적이거나 결정적인 경험이 아니라 계속적으로 충만해져야 함을 나타냅니다.(성령세례와 충만, p73) 즉 밥을 매일 먹듯이 성령으로 충만한 지배를 받는 것을 계속 하라는 것입니다.

 

따라서 우리는 계속해서 성령을 마셔야 합니다우리는 계속해서 목마른 존재이기 때문이다그래서 존 스토트는 그리스도인은 언제나 목마르고 언제나 마셔야 하는 영적 갈주증환자(Dipsomaniac)” 라고 했습니다. (성령세례와 충만, p64)

 

그렇다면 성령의 충만한 지배 상태에 들어간 모습은 무엇일까요?

많은 경우 어떤 기적적인 상태어떤 신비에 휩싸이는 상태로 생각하기 쉽습니다어떤 한 순간에 권능에 사로잡히는 것으로 말입니다물론 이러한 경우도 있습니다그러나 성령의 지배를 받는 사람의 참 된 모습은 기적적인 무엇이 아니라 도덕적이며성령의 은사에 있지 않고 성령의 열매에 있습니다.(존 스토트, 성령세례와 충만, p65)

 

그러나 한국교회는 성령의 은사성령의 권능을 강조해 왔습니다.그러다보니 하나님께 뭔가 받은 사람 같은데 이건 좀 아니다’ 싶은 생각을 가질 때 있습니다왜냐하면 성령 세례(임재)를 받았고성령의 은사를 받은 것 같은데 도덕적 자질이 결여 되어 있는 모습을 보기 때문입니다도덕 중의 도덕인 사랑이라는 자질이 결여 되어 있는 것입니다.

 

성경에 이런 모습을 가진 교회가 등장합니다바로 고린도교회입니다바울은 고전 1:7절에 걸쳐서 고린도 교회에 부어진 놀라운 은사들을 언급합니다. “너희가 모든 은사에 부족함이 없이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나타나심을 기다림이라

 

이 말씀과 같이 고린도교회 성도들은 방언과 방언을 통역하는 은사병고치는 은사믿음지혜능력을 행하는 은사를 받았습니다그러나 이렇게 놀라운 은사가 넘치는 고린도교회를 향하여 바울은 이렇게 말합니다. “너희는 아직도 육신에 속한 자로다너희 가운데 분쟁이 있으니 어찌 육신에 속하여 사람을 따라 행함이 아니리요”(고전3:3)

 

많은 은사로 충만했지만 바울을 이들을 육신에 속한자라 말합니다이들의 충만은 성령으로 충만히 지배를 받는 모습이 아니었던 것입니다그렇기에 소위 뜨겁다고 하는 사람이 사랑이라는 도덕적 자질을 발위 하지 못할 때 성령으로 채워진 모습성령의 지배를 받는 충만한 상태에 있는 것이 아닙니다.

 

바울은 성령으로 충만한 지배를 받는 사람의 모습에 대해 갈라디아에서 이렇게 말합니다사랑과 희락과 화평과 오래참음과 자비와 양선과 온유와 충성과 절제로 나타난다고 말합니다이러한 묘사들은 모두 다 도덕적인 자질들입니다즉 예수 그리스도의 성품을 그대로 반영하는 모습으로 나타나는 것입니다.

 

하나님과 자신과 이웃과의 관계에서 미움과 슬픔과 갈등과 포기와 악함과 강퍅함과 외면함과 불성실함과 절제하지 못하는 짐승 같은 삶이 아니라 예수님의 성품을 닮은 진정한 사람이 가져야 할 자질들인 것입니다어떤 시련비난고통배반절망고난에 처할 지라도 잃지 않았던 예수님의 그 성품으로 살아가는 존재가 되는 것입니다이 모습이 바로 성령의 지배를 받는 사람의 인격이요 모습입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성령의 지배를 받아 다 이 같은 사람들로 자라기를 원하십니다그렇기에 하나님은 명령하십니다. “오직 성령으로 충만해져라오직 성령의 충만한 지배를 계속해서 받아라.” 성령의 지배를 충만히 받을 때만 진정한 인간이 되기에 그렇습니다.

 

하나님은 우리 모두 하나님의 성품을 회복한 사람예수의 성품으로 사는 사람이 되기를 원하십니다그것이 우리를 구원하시는 진정한 목적 중 하나입니다.

 

강원도 예수원에서 사역하셨던 대천덕 신부님은 성공회 신부님이입니다그분 할아버지인 R. A. 토레이 목사님의 글에서 성령으로 충만하게 채워 지기를 구하는 모습이 자주 등장합니다. 그는 이렇게 말합니다.  

 

[나는 아침에 일어나면 성령 충만을 위해서 기도한다.

 

"하나님성령 충만하게 도와주십시오.”

 

왜냐하면 성령 충만하지 않으면 오늘 하루 나는 너무나 쉽게

흔들릴 수 있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또 이렇게 기도합니다

[하나님제가 성령 충만하다고 느끼지 못할 때 함부로 말하지 않도록 도와주십시오성령 충만하지 않을 때 말하면 실언이 되기 쉽고 사람들에게 상처를 주기 쉽기 때문입니다하나님제가 성령 충만하지 않을 때 제 인생의 중요한 결정을 하지 않도록 도와주십시오성령 충만하지 않으면 저의 결정은 잘못될 가능성이 항상 있기 때문입니다.]

 

R. A. 토레이 목사님은 이처럼 성령의 충만한 지배를 받아 말하고 행하기를 사모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명령하십니다

오직 성령으로 충만해져라성령의 충만한 지배를 받아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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