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71015㈜ 주일예배 본문 수 5:2-9 제목 혼돈 속에서 중심잡기 2011년 차이콥스키 국제 콩쿠르에서 여자 성악 부문 1위를 차지한 한국인 성악가 있습니다. 스위스 바젤국립극장 솔리스트 서선영이란 분입니다. 그녀는 2009년 한국예술종합학교를 마치고 독일로 건너가 뒤셀도르프 슈만 국립음대에서 공부를 하면서 힘든 시간을 보냈습니다. 그런데 그 힘든 중에도 흔들리지 않고 끝까지 힘을 낼 수 있었던 이유에 대해 슈퍼마켙 일화를 소개했습니다. 그녀가 공부를 하면서 장을 볼 때면 집에서 가까운 슈퍼 마켙을 이용했다고 합니다. 하루는 계산을 한 뒤 평소와는 다르게 무심코 영수증을 뒤집어 봤습니다. 그 뒷면에는 ‘매일 조금씩 나아진다’는 글귀가 적혀 있었습니다. 아마도 쉽게 지나칠 슈퍼마켓의 모토였을것입니다. 하지만 이 짧고 간명한 구절은 그의 머리에 깊게 박혔습니다. 그 후 힘들고 외로울 때마다 떠올리고 실천했습니다. ‘어제보다 한 단어 더 외우기, 어제보다 가사 한 줄 더 외우기….’ 그결과는 차이콥스키 국제 콩쿠르에서 여자 성악 부문 1위라는 보상으로 나타났습니다. 슈퍼마켓 영수증 뒷면 적인 한 마디가 그녀의 힘든 마음의 중심을 붇들어 준 것입니다. 마음이 흔들 거리고 바람 앞의 촛불 같고,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는 혼돈의 상황속에서 성도님들께서는 무엇으로 마음과 삶의 중심을 잡고 계십니까? 그 붙잡고 있는 것이 앞으로도 제 기능을 발휘 할 수 있습니까? 오늘 본문에서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에게 갑자기 할례를 명령합니다. 요단 강을 건너와 막 가나안 땅을 정복하기 위한 전쟁을 앞두고 있는 마당에 뜬금 없는 명령을 내리십니다. “너는 부시돌로 칼을 만들어 할례 산에서 이스라엘 자손들에게 다시 할례를 행하라”(2) 이에 믿음 좋은 여호수아가 하나님 말씀에 순종합니다. 할례를 하면 최소한 4일 혹은 일주일 어려움을 겪습니다. 그렇기에 전쟁을 앞두고 할례 명령에 순종했다는 것은 여호수아의 믿음이 보통이 아님을 알 수 있습니다. 그는 그 만큼 하나님을 신뢰했습니다. 자신의 판단과 경험이 아니라 하나님의 계획과 신실하심을 신뢰한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왜 이렇게 뜬금 없이 할례를 명한 것일까요? 첫째 이스라엘 남성 중에 할례 받은 사람들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말씀에도 기록 되어 있듯이 애굽에서 나온 모든 남자들은 애굽 땅에서 다 할례를 받았습니다. 그러나 이들이 가나안 땅을 정탐 한 후에 가데스 바네아 에서 모세와 하나님을 원망하는 죄를 범합니다. 그리곤 다른 지도자를 세워 다시 애굽으로 돌아가자 합니다. 이에 하나님께서 진노를 하사 광야에서 40년의 세월을 보내게 합니다. 그리고 바로 이 40년 세월 동안 애굽에서 할례를 받고 나온 모든 남자들 중 20세 이상의 남자들은 전쟁으로, 혹은 징계, 혹은 자연사로 다 죽게 됩니다. 20세 이상 남자들 중 오직 여호수아, 갈렙만 빼고 다 죽게 됩니다. 그리고 가데스 바네아에서의 징계 이후 40년의 광야생활 중 태어난 남자들이 있습니다. 이들은 광야 속에서 할례를 받지 못했습니다. 하나님께서 명령하시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이제 가나안 땅에 입성한 후 첫 도착지인 길갈에서. 할례를 하나님께서 명하신 것입니다. 둘째, 할례를 명하신 두번 째 이유는 보다 근원적인 이유입니다. 9절에서 이렇게 말씀합니다. “여호와께서 여호수아에게 이르시되 내가 오늘 애굽의 수치를 너희에게서 떠나가게 하였다 하였으므로 오늘까지 길갈이라 하느니라” 하나님께서는 할례를 통하여 애굽의 수치를 이스라엘 백성에게서 벗겨주시기를 원했습니다. 1.그렇다면 애굽의 수치란 무엇일까요? 하나는 애굽에서 노예으로 격하 되었던 신분을 말합니다. 이제는 더 이상 노예가 아니라 하나님의 거룩한 백성으로 신분이 달라졌음을 말합니다. 애굽의 수치가 갖는 또 다른 의미는 “하나님에 의해 애굽에서 나왔으나 하나님으로부터 버림 받는 백성”이라는 조롱입니다. 이스라엘 백성 조차도 가나안 정탐 후 하나님을 극도로 원망했습니다. 하여 일주일이면 들어갈 가나안 땅에 들어가는데 40년이 걸렸습니다. 이 40년은 하나님의 징계에 의한 것입니다. 그러나 애굽인들, 다른 민족들의 시각으로 볼 때는 그렇지 않습니다. 이스라엘은 하나님께 버림 받은 백성이요, 그 백성의 하나님은 무능하기 짝이 없는 신에 불과한 것으로 비추어진 것입니다. 이것은 이스라엘 백성에게나 하나님에게나 말할 수 없는 수치요 치욕이었던 것입니다. 이렇게 애굽의 노예신분으로의 전락한 수치, 광야에 버림 받은 무능한 하나님의 백성이라는 수치를 벗기고자 할례를 한 것입니다. 2.그런데 여기서 또 궁금한 점이 등장합니다. 할례가 뭐길래 이것이 애굽의 수치를 벗겼다고 말하는 것일까요? 거기에 어떤 의미가 있는 것일까요? 이 질문에 대한 답을 찾기 위해서는 할례를 처음 명한 하나님의 말씀을 되새겨보아야 합니다. 할례를 이스라엘 최초로 명령 받은 사람은 아브라함입니다. 창세기 17장에 의하면 아브라함이 99세가 되었을 아브라함에게 나타나 세번째로 언약을 갱신합니다. 이 때 “내가 너를 여러 민족의 아버지가 되게 하리라”고 하시면서 ‘고귀한 아버지”란 뜻의 아브람이란 이름을 “무리의 아버지”란 뜻의 아브라함으로 바꾸어 주십니다. 그리고는 아브라함이 거주하고 있는 가나안 땅을 “아브라함과 그 후손에게 주어 영원한 기업이 되게 하고, 나는 그들의 하나님이 되리라”고 언약을 갱신합니다. 그리고 아브라함과 그 후손들이 하나님과의 사이에서 지켜야 할 언약 한 가지를 이렇게 말씀 하십니다. “너희 중 남자는 다 할례를 받으라 이것이 나와 너희 후손 사이에 지킬 내 언약이라. 너희는 포피를 베어라. 이것이 나와 너 사이에 맺을 언약의 표징이니라””할례를 받지 아니한 남자는 백성 중에서 끊어지리니 그가 내 언약을 배반하였음이라”(창17:10,14) 우리는 여기서 아브라함과 그 후손이 하나님께 택함을 받은 백성임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 할례를 요구하심을 보게 됩니다. 게다가 아브라함의 후손이라 해도 할례를 하지 않으면 하나님 과의 언약을 파기 한 것으로 보고, 더 이상 하나님의 백성으로 보지 않겠다고 하십니다. 그러니까 할례가 단지 형식적인 절차가 아니라, 하나님의 백성이 되느냐 마느냐를 결정하는 결정적 기준으로 세우셨다는 것입니다. 당시 할례는 이스라엘만 했던 것이 아닙니다. 오늘날로 치면 포경수술에 해당하는 할례를 바빌로니아, 앗시리아를 제외한 셈족 계통의 여러민족이 행했고, 이집트에서도 시행했었습니다. 그런 점에서 아브라함에게 명령한 것은 전혀 새로운 일이 아니었습니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것이 하나님의 백성이 되는냐 마느냐를 결정하는 결정적 기준이 된 것은 하나님께서 당시 시행 되는 할례에 대해 특별한 의미를 부여 했기 때문입니다. 즉, 하나의 풍습이 아니라, 이제부터는 할례는 여호와 하나님만이 참 하나님이시며, 여호와 하나님만을 순종하겠다는 고백이요, 이 고백을 담은 할례를 행하는 자마다 하나님께서 당신의 백성으로 삼으시고, 그의 하나님이 되어주시겠다는 의미를 부여하신 것입니다. 자 그렇기에 여기서 무엇이 분명해집니까? 할례가 여호와 하나님의 백성 됨을 정하는 결정적 기준이 된다는 것입니다. 만물을 창조하신 유일하신 참 하나님의 보호를 받고 인도받는 복된 하나님의 백성이 되는 길이 할례에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할례를 행하지 않아 하나님의 백성으로 인쳐지는 언약관계 안에 들어와 있지 않는 이스라엘에게 할례를 명한 것입니다. 아브라함의 후손으로서 가나안 땅을 상속 받을 자들로서 여호와 하나님만 믿고 따르는 하나님의 백성이 되겠다는 언약으로 할례를 명령하신 것입니다. 3.그런데 여기서 다른 궁금점이 하나 더 생깁니다. 그렇다면 왜 하필 전쟁을 앞두고 있는 다급한 상황에서 이 할례를 명하셨을까는 점입니다. 이 질문은 할례를 통하여 애굽의 수치를 제거함으로 궁극적으로 이루고자 하신 하나님의 목적이 무엇인가를 알 때 분명해집니다. 애굽의 수치를 제거하려는 목적이 무엇이었을까요? 그것은 하나님의 백성이라는 이스라엘의 정체성을 회복입니다. “이제 너희는 애굽의 노예도 아니요, 광야에서 하나님께 버림 받은 초라한 민족이 아니다. 홍해와 요단을 마른 땅으로 건너가게 하신 능력의 주요, 참 하나님이신 여호와의 백성이다”라는 정체성을 갖게 하는 것입니다. 4.그렇다면 하나님 백성이라는 정체성이 얼마나 중요 한 것일까요? 그 정체성이 얼마나 대단해서 전쟁을 앞둔 그마당에 할례를 명하신 것일까요? 정체성에 죽고 사는 문제가 걸려 있기 때문입니다. 왜 정체성에 죽고 사는 문제가 걸려 있는 것일까요? 이스라엘이 가나안 땅을 상속 받는 언약의 성취는 이스라엘의 힘에 있지 않고, 하나님과의 바른 관계에 있기 때문입니다. 이미 홍해에서, 그리고 요단 강을 건너는 과정에서 하나님께서는 분명한 싸인을 보여주셨습니다. 이스라엘이 사는 길은 하나님의 은혜에 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광야에선 하나님과의 관계가 깨지면 버림받은 수치와 치욕과 절망 밖에 없음을 보여 주셨습니다. 그렇기에 하나님과의 바른 관계하에 있으면 살고, 그렇지 않으면 살았으나 죽은 삶이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살고 죽는 문제가 걸려 있는 하나님과의 바른 관계는 하나님의 백성이라는 정체성에서 나온다는 것입니다. 자신이 누군지 알아야 그에 맞는 생각을 품고, 그에 맞는 행동이 나오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가나안 정복이라는 험난한 전쟁을 앞두고 하나님의 백성이라는 정체성을 회복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했습니다. 5.그렇다면 하나님의 백성이라는 정체성을 회복한 이스라엘에게 기대하는 바른 관계란 무엇일까요? 이스라엘의 힘을 믿고 하나님을 멸시하고 제멋대로 하는 교만한 백성이 되거나, 가나안의 7곱 족속의 힘에 주눅들고 무서워 떨며 어찌 할 줄 모르는 믿음 없는 백성이되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 기대한 바른 관계란 요단강을 마른 땅이 되게 하사 건너게 권능의 하나님 여호와를 신뢰하고, 순종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언약을 맺으실 때 이렇게 말씀합니다. “내가 내 언약을 나와 너 및 네 대대 후손 사이에 세워서 영원한 언약을 삼과 너와 네 후손의 하나님이 되리라”(창17:7) 아브라함과 그 후손을 하나님의 소유로 삼겠다는 것입니다. 출애굽기 19: 5절에서도 이렇게 말씀합니다. “세계가 다 내게 속하였나니 너희가 내 말을 잘 듣고 내 언약을 지키면 너희는 모든 민족 중에내 소유가 되겠고” 여기에서 소유란 히브리어는 “세굴라”라는 단어를 사용합니다. 세굴라는 말은 “보물과 같이 귀중하게 여기는 귀중품”을 의미합니다. 즉, 창조 된 모든 것이 하나님의 것이지만, 그 중 이스라엘을 하나님의 특별한 소유로 보신다는 것입니다. 잃거나 빼앗기거나 할 수 없는 하나님의 특별한 보물이라는 것입니다. 6.그렇다면 이렇게 하나님의 소유된 백성은 하나님께 어떤 은총을 덧입는 것일까요? 하나님의 절대 보호를 받는 존재가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들어보십시요. “여호와의 분깃은 자기 백성이라. 야곱은 그가 택하신 기업이로다. 여호와께서 그를 황무지에서 짐승이 부르짓는 광야에서 만나시고 호휘하시며 보호하시며 자기의 눈동자 같이 지키셨도다” (신32:9-10) 분깃이란 단어는 “하나님 소유의 몫”이란 뜻입니다. 기업이란 단어는 “상속할 땅, 선택 된 몫”이란 뜻입니다. 7.그런데 이 두 단어를 이스라엘에게 사용합니다. 이스라엘이 어떤 존재라는 것입니까? 이스라엘은 하님이 유일하게 소유할 하나님의 몫이요, 누군가 상속해서 평생, 그리고 대대로 물려 주어야 할 땅과 같은 가장 귀한 유산이요, 특별하게 하나님이 선택한 몫이라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하나님이 그 어떤 것에게도 절대로 내어 줄 수 없고 빼앗길 수 없는, 영원토록 간직하고 보호해야 할 가치가 있는 하나님의 가장 중요한 보물이 바로 이스라엘이라는 것입니다. 그렇기에 모세는 “여호와께서 그를 황무지에서, 짐승이 부르짓는 광야에서 만나시고 호휘하시며 보호하시며 자기의 눈동자 같이 지키셨도다”라고 증언합니다. 이스라엘이 얼마나 소중했으면 그를 지키시되 눈동자 같이 지키셨을까요? 눈동자는 매우 작습니다. 크기로 봐서는 보잘 것 없습니다. 게다가 매우 민감하고 약한 부분입니다. 게다가 인생의 모든 정보를 90%이상 눈으로 습득합니다. 그 만큼 약하나 중요한 것이 눈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눈에 관한한 작은 것에도 민감하게 반등하고 보호하려고 합니다. 그런데 이렇게 민감하고 소중한 눈을 이스라엘에 비유합니다. 눈동자 같이 그렇게 민감하고 세심하게 아끼는 소중한 보물로 삼으셨다는 것입니다. 결국 하나님의 백성된 자들의 복이 무엇이라는 것입니까? 그 어떤 것에도 빼앗길 수 없는 보물로서 절대적인 아낌과 보호와 사랑입니다. 따라서 할례를 통해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너희는 요단 강을 마르게 하신 권능자 하나님, 나의 백성으로, 나의 절대보호를 받는 나의 가장 소중한 보물이라는 정체성”을 다시 확립하려 하신 이유가 분명해집니다. 정체성을 분명히 가짐으로써 하나님만을 신뢰하고 순종하는 백성이 되게 하고자 한 것입니다. 이스라엘이 살고 죽는 문제는 이제 이스라엘 백성들의 손이 아니라, 이들을 하나님의 백성, 즉 가장 소중한 보물로 삼으신 하나님의 손에 있음을 아는 백성이 되게 하려 하신 것입니다. 이는 가장 작은 보잘 것 없는 민족이지만, 다른 민족과는 차원이 다른 하나님의 절대적 보호를 받는 하나님의 백성, 하나님의 소유, 하나님의 보물이니 두려워 말고 하나님 나라를 향해서 나아가는 백성이 되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신뢰하고 따를 때 패배 할 수 밖에 없는 처지와 혼돈의 상황임에도 하나님께서 지키시고 승리하게 하실 것이기 때문입니다. 8.우리는 누구입니까? 이 하나님께서 예수의 피로 값을 주고 산 하나님의 자녀들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 세례를 받고 마음에 할례를 받은 하나님이 택하신 족속, 하나님의 소유된 백성입니다.(골2:1,벧전2:9) 이제 예수 안에 있는 우리가 바로 하나님이 눈동자 같이 지키시는 하나님의 소유, 하나님의 보물인 것입니다. 할렐루야! 9.미래를 알 수 없고, 모든 것이 뒤죽 박죽이요, 어떤 것 하나 뜻대로 되지 않습니까? 기쁨이 아니라 우울이 엄습합니까? 두려워 마십시요, 우울해 하지 마십시요. 도리어 기뻐하십시요. 우리의 인생과 교회는 눈동자 같이 아끼고 인도하시는 절대보호와 사랑 속에 있기 때문입니다. 그렇기에 바울을 통해 하나님께서 “항상 기뻐하라” 말씀하십니다. 기뻐하라는 단어의 어원적 의미는 “자긍심, 당당함”입니다.(권혁승, 하나님 백성의 정체성 중에서) 성도인 우리는 하나님의 가장 소중한 보물이라는 긍지, 여기에는 하나님의 인도와 사랑이 끝없다는 하나님의 절대적인 보장이 뒤따른 다는 근거하에 당당함을 가지고 기뻐하라는 것입니다. 10.그렇기에 하나님의 절대적인 사랑의 보장이 뒤따르는 하나님의 가장 소중한 보물이라는 긍지와 당당함의 정체성을 가지고 근심케 하는 것과 혼돈케 하는 현실속에서 우리가 취할 하나님과의 바른 관계는 무엇입니까? 하나님 자녀 답게 행동하는 것입니다. 즉, 하나님을 신뢰하고 기뻐하며 순종하는 것입니다. 정체성을 지키는 신뢰와 순종의 길을 기쁘게 걸어가는 것입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지키시고 인도하시는 것입니다. 할렐루야! 미국의 유명한 소설가 마크 트웨인의 작품 중에 ‘왕자와 거지’라는 소설이 있습니다. 왕자와 거지가 서로의 삶을 바꾸면서 겪게 되는 흥미진진한 이야기입니다. 소설 속에서 거지가 된 왕자는 다른 거지들이 볼 때 이상한 존재입니다. 거지 주제에 말이나 행동을 함부로 하지 않고 걸음걸이도 당당합니다. 아무 것이나 주워 먹지도 않는 등 일반적인 거지와는 다른 모습을 보입니다. 때로는 배고프고 얻어맞는 등 갖은 어려움을 겪지만 거지답지 않은 당당함이 있습니다. 왜 그럴까요? 그의 실상은 왕자이기 때문입니다. 장차 한 나라를 다스릴 왕이 될 존재이기 때문입니다.(정길영 목사, 정체성를 찾아서 중에서) 우리는 하나님의 절대 보장 속에서 반드시 하나님이 뜻하시는 모습으로 승리하게 될 하나님의 자녀, 하나님의 소유, 하나님의 세큘라 보물입니다. 그렇기에 우리는 근심과 혼돈속에서 긍지를 가지고 당당한 모습으로 하나님을 신뢰하고 따를뿐입니다. 그러면 거기에 하나님의 권능의 손이 임하는 것입니다. 망할 운명 속에서 정체성을 지킨 인물이 성경에 등장합니다. 요셉입니다. 그가 노예가 되어도, 유혹을 받아도, 억울하게 옥에 갇혀도 그는 하나님을 신뢰하고 좌절하지 않습니다. 당당하게 자신의 일을 합니다. 하나님이 정한 선을 지킵니다. 그런 그를 하나님께서 주목하시고 인도하사 이스라엘 민족을 살리는 사명을 감당하게 하십니다. 정체성을 지키고 바른 관계를 맺는 길이 생명의 길입니다. 거기에 하나님의 권능의 손이 함께 하기 때문입니다. 근심과 혼돈이 없는 공간은 이 세상 어디에도 없습니다. 나아가 하나님 나라를 향하여 나갈 때 다가오는 시련도 끝이 없습니다. 그럴 때 우리는 한 가지를 분명히 해야 하겠씁니다. 바울과 베드로를 통하여 말씀하십니다. “너희는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 세례를 받고 마음에 할례를 받은 하나님이 택하신 족속, 하나님의 소유된 백성이다” “우리는 하나님의 영원한 절대적인 인도와 사랑이 보장되는 예수의 피로 값을 주고 사신 하나님의 소유, 하나님의 가장 소중한 보물입니다. 이것을 신뢰하고 무슨 일을 하던 긍지와 당당함을 가지고 기뻐하며, 하나님 자녀 답게 행하십시요. 그러면 그 나머지는 하나님께 책임지실 것입니다. 할렐루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