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이 시작한 때가 아직도 엊그제 같은데 벌써 이렇게 송구영신예배를 드리게 되었으니 세월이 참으로 무섭도록 빠르다는 생각을 해봅니다. 이제 잠시 후면 2018년 이 시작 됩니다. 새롭게 다가오는 2018년을 여러분께서는 어떤 마음으로 기다리고 계십니까? 어떤 기대를 품고 있습니까? 혹 “새해라지만 뭐 굳이 딱히 기대 할 것도 없고, 그렇다고 실망하지도 않습니다” 하는 분은 없습니까? 아니면 지난 시간들의 실패와 좋지 않은 기억으로 체념하고 있지는 않습니까? 아니면 내년에는 달라지고 싶다는 마음은 있지만 그렇게 할 자신이 없는 분은 안계십니까? 아니면 새로운 의욕으로 불타올라 심장이 벌렁벌렁 거리는 분은 안계십니까? 하나님께서는 이러한 우리 모두에게 놀라운 은혜의 말씀을 주고 계십니다. 그것은 무엇일까요? 첫째 옛 일을 기억치 말라는 것입니다. 오늘 말씀은 이사야 선지자를 통해 이스라엘 백성에게 주시는 말씀입니다. 이사야 선지자는 b.c 740-680년 경에 하나님의 말씀을 전한 사람입니다. 그 사이에 북이스라엘이 bc 722년 망합니다. 이스라엘 북동쪽에 자리 잡은 앗시리아에 살만에셀이라는 왕에게 명망 당한 것입니다. 당시 남쪽 유다에는 유명한 히스기야 왕이 통치를 하고 있었습니다. 히스기야 왕 또한 앗리아의 산헤립왕의 위협과 공격으로 고통을 많이 당했습니다. 앗수르 후대에 신흥세력이 된 바벨론에 대한 이야기도 나오는 것으로 봐서는 정확한 역사적 시점을 잡기가 쉽지 않습니다. 하지만 오늘 본문 말씀은 이스라엘 백성이 어떤 처지에 있는가를 보여줍니다. 18절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너희는 이전 일을 기억하지 말며 옛날 일을 기억하지 말라” 여기에서 말씀하는 이전 일, 옛날 일이란 16-17에서 앞서 묘사되는 출애굽 사건입니다. 특히 바다에 길을 내시고 이스라엘을 구원하신 사건, 반대로 애굽군대는 그대로 물에 수장되어 완전히 멸망하게 된 홍해사건을 말합니다. 이 홍해 사건은 이스라엘 역사에 있어서 매우 중요한 사건입니다. 이 홍해 사건을 통해 하나님께서 바다를 가르시고 백성을 구원하신 진정한 하나님이심을 드러내신 사건으로 이해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오늘 본무에서 이상하게도 그 사건을 기억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왜 옛 일을 잊어버리라는 것일까요? 여기에서 옛 일을 기억하지 말고 잊어버리는 말은 어려운 시대적 상황 속에서 낙심과 체념에 빠져 옛날엔 하나님이 그랬었지 하는 말들을 그치라는 것입니다. 당시 이스라엘에도 이러한 낙심과 체념의 분위가 만연했습니다. 홍해의 기적을 일으킨 하나님은 옛날의 하나님이지 지금의 하나님은 아니라는 것입니다. 지금은 어떤 기대도 할 수 없는 과거 속의 옛날 얘기가 되어버린 것입니다. 그래서 이들을 향하여 하나님께서 “이제는 무기력한 하나님, 가까이 계시지 않는 하나님, 기대 할 것이 없는 하나님”이라는 부정적인 기억으로 하나님을 얽매어 놓는 그 생각들을 내려놓으라는 것입니다. 체념의 도구로 이용되는 그 기억을 내려놓으라는 것입니다. 혹 성도님들 중에 옛날에 은혜를 받을 때는 좋았는데, 이제 하나님도 옛날만 같지 못해 하는 부정적인 생각이 있습니까? 다른 한편으로 자신의 기억 속에 자리 잡은 부정적인 믿음과 기억들로 인하여 하나님을 제한하는 불신앙이 마음 한 켠에 쌓여있지는 않습니까? 이러한 부정적인 생각과 기억과 믿음으로 인하여 새해가 다가옴에도 불구하고 그것으로 하나님의 놀라운 일들을 제한하거나, 그 사랑과 은혜를 불신하지는 않습니까? 하나님께서는 오늘 이 시간 그런 생각과 기억들을 버리라고 말씀합니다. 과거의 기억에 쌓여 체념하지 말라 하십니다. 둘째 새 일을 기대하라 하십니다. 하나님께서 과거의 부정적인 기억과 현재의 체념 속에서 하나님의 권세와 능력을 제한하는 기억들을 버리라고 하는 이유는 어디에 있을까요? 하나님께서 새 일을 하실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 새 일은 어떤 일입니까? 19절에 의하면 “반드시 광야에 길을, 사막에 강을 내는 일”입니다. 광야와 사막은 어떤 곳입니까? 메마르고 건조하고 척박하며 물이 없는 거친 땅입니다. 성경에서 광야와 사막이란 물하고는 아예 거리가 멀고 혹독한 땅입니다. 그래서 광야와 사막은 죽음을 상징합니다. 지금 이스라엘이 처한 처지가 이와 같다는 것입니다. 즉 이스라엘은 지금 혹독한 시련 앞에 놓여 있습니다. 그런데 이러한 광야에 길을 내고, 사막에 강을 내겠다고 합니다. 이스라엘이 다시 살길, 이스라엘에게 생명의 물을 주시겠다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광야와 사막과 같은 죽음이 지배하는 듯한 혹독한 처지에 빠진 이스라엘을 하나님께서 구하시겠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옛날에나 있었을 하나님의 그 은혜, 즉 지금은 아무런 힘도 기대 할 수 없는 하나님이라는 부정적인 기억, 또 지금까지 해 봤는데 잘 않 되었다는 실패한 믿음의 기억들을 내려놓으라 말씀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언제나 광야와 사막 한 가운데 있는 사람 같아서 거기에서 도저히 빠져 나올 수 없는 벽에 부딪히고 낙심합니다. 왜냐하면 아무리 생각하고 생각해도 도저히 빠져 나갈 길이 보이지 않을 때가 있기 때문입니다. 모든 수단을 동원해도 될 수 없을 것 같은 상식적인 판단과 경험이 신의 한수를 보지 못하게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말씀하십니다. 네 인생의 광야에 네 길을 내리라, 네 메마른 사막 같은 인생에 강을 내리라 말씀하십니다. 오전 예배 중에도 말씀드렸듯이, 이 시대의 빛이신 예수님이 이미 우리에게 와 계십니다. 광야에 길을 내시고, 사망에 강을 내시는 주님이 이미 우리에게 와 계십니다. 하나님은 말씀하십니다. “하늘이 땅 보다 높음 같이 내 길은 너희의 길 보다 높으며 내 생각은 너희의 생각보다 높음이니라”(사55:8) 체념과 옛 실패의 기억을 내려놓고, 우리의 생각과 경험과 세상의 지혜를 넘어 새 일을 이루실 살아계신 하나님을 붙들어야 하겠습니다. 살아계신 주 예수와 하나님을 붙들 때 메마른 인생 같은 우리 삶에 하나님의 살아계신 역사가 임할 줄 믿습니다. 요한복음 5장에 베데스다 연못가에 38년 병자가 누워 있습니다. 이 사람만이 아닙니다. 천사가 물을 움직일 때 재빨리 먼저 들어가면 몸이 낫는 기이한 일이 있기에 다들 베데스다 못가에 장사진을 이루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이 38년 된 병자는 번번히 실패를 했습니다. 몸을 못 움직이니 다른 사람을 제치고 들어갈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가 비록 그 베데스다 못가에 누워 있다하나, 자기에겐 소망이 없을 잘 압니다. 그가 이렇게 말합니다. “주여 물이 움질 일 때 나를 못가에 넣어주는 사람이 없어 내가 가는 동안에 다른 사람이 먼저 내려가나이다”(요7:7) 어쩌면 이 사람은 벌써 포기 했을지도 모릅니다. 거동이 느리고 불편한 이 사람이 그 못에 들어가 씻을 기회는 거의 없어 보입니다. 올해가 지나고 새해가 되도 그런 일은 없을 것입니다. 그것이 그가 늘 격어오던 상식이요 현실이었습니다. 그렇기에 낳고는 싶으나 현실에서는 그럴 수 없는 자신의 처지에 얼마나 낙심하며 체념 하듯 살았을지 짐작이 갑니다. 그런데 그가 예수를 만납니다. 그는 이 예수가 누군지 모릅니다. 그러니 이 예수에게 무얼 기대 할 수 없습니다. 그의 눈에는 한 평범한 사람에 지나지 않기 때문입니다. 지금가지 살아온 상식과 경험이 그걸 너무나 또렷하게 증거해 줍니다. 그러나 예수께서 그에게 묻습니다. “네가 낫고자 하느냐” “일어나 네 자리를 들고 걸어가라” 38년 된 광야 같은 인생, 사막 같은 인생에 생명의 길, 생수의 강이 터진 것입니다 할렐루야! 지금 자신이 경험해온 부정적인 체념과 기억으로 일관한 기억을 내던지십시오. 옛 일을 기억하지 마십시오. 나의 생각, 나의 지혜, 나의 경험을 넘어 새 일을 역사하실 하나님을 믿음으로 바라보십시오. 하늘과 땅을 지으시고 다스리시며 우리를 지으시고 그 길을 아시는 무궁한 지혜와 능력의 하나님께 수천수만 갈래의 길이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원하시는 길을 가기 위해 하나님께 나아가 물을 때 우리의 길을 아시는 주님, 역사의 주인 되신 하나님께서 우리를 붙드시고 새 일로, 새 은혜로 역사 하실 줄 믿습니다. 그렇기에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무엇입니까? 하나님의 언약을 믿고 주의 이름을 붙드는 것입니다. “여호와의 눈은 의인을 향하시고 그의 귀는 그들의 부르짖음에 기울이시는 도다”(시34:15)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여호와의 눈이 누구를 본다고요? 의인입니다. 하나님을 신뢰하고 따르는 자입니다. 또 여호와의 귀가 누구에게 기울이신다고요? 하나님을 신뢰하고 따르는 자의 부르짖음에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옛 기억과 부정적인 생각을 떨져버리십시오. 그리곤 일어나 하나님 앞에 나아가 믿음으로 “주여 저를 인도하소서” 하고 주의 지혜와 그 새 은혜를 구하십시오. 살아계신 하나님의 놀라운 새 역사가 나를 변화시키고, 새 역사를 허락하실 줄 믿습니다. 셋째, 하나님의 찬송이 되라 하십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의 생각과 지혜를 넘어 우리 인생 가운데 길을 내시고 강을 내시는 이유가 무엇일까요? 그것은 오늘 본문 “이 백성은 내가 나를 위하여 지었나니 나를 찬송하게 하려 함이라”는 말씀에 잘 나타나 있습니다. 낙심하고 좌절 할 수밖에 없는 광야 같은 처지에 있었으나 하나님의 은혜를 덧입었을 때 우리는 어떻게 됩니까? 얼굴엔 화색이 도는 기쁨으로 충만하고 입에는 찬송이 울려 퍼집니다. 이사야 선지자가 예언 한 대로 “슬퍼하는 자에게 화관을 주어 그 재를 대신하며, 기쁨의 기름으로 그 슬픔을 대신하며, 찬송의 옷으로 그 근심을 대신하게 하는 역사” 일어나는 것입니다. (사61:2-3)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이 은혜를 주셔서 무엇을 보고 싶어 하는 것입니까? 눈물 흘릴 수 밖에 없는 인생이나, 하나님께서 그 눈물을 기쁨으로 찬송으로 바꾸어 주시는 은혜를 힘입어 기뻐 뛰는 모습, 행복한 모습, 하나님의 자랑이 되는 모습을 보고 싶은 것입니다. 성도님들께서는 여러분들의 자녀가 어떤 모습이 되기를 원하십니니까? 맛있는 밥을 먹고 기뻐하기를 원합니다. 어머니 아버지의 사랑을 신뢰하고 걱정 없이 자라주기를 바랍니다. 작은 선물이라도 그 깊은 사랑을 알아 감사하며 기뻐하는 자녀들의 모습을 보고 싶은 것입니다. 왜요? 자녀들의 기쁨이 부모의 기쁨이요, 영광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무엇이 되기를 원하실까요? 찬송이 되기를 원합니다. 주의 은혜로 힘을 얻고, 송아지가 외양간의 우리에서 나와 기뻐 깡충깡충 뛰듯이 그렇게 기뻐 하나님께 영광 돌리는 찬송이 되기를 원하시는 것입니다. 내가 이 모든 것을 이루었다고 교만하여 으스대는 모습이 아니라, “이 모든 것을 하나님이 제게 주셨습니다. 저는 너무 기뻐요 하나님, 저는 감사가 넘쳐요, 저는 하나님이 너무 고마워요” 하며 하나님을 기뻐하는 아들, 딸이 되기를 원하시는 것입니다. 할렐루야! 우리에게 왜 2018년을 주셨습니까? 옛 기억을 버리고, 내 인생의 광야에 길과 강을 만드시는 새 일을 이루시는 하나님을 바라보라는 것입니다. 그리 할 때 우리 눈물이 변하여 찬송이 되게 하는 은혜를 덧입어 우리에서 나온 송아지 같이 기뻐 뛰는 찬송이 되라고 주신 것입니다. 다 함께 이 은혜를 누리라고 주신 것입니다. 그러니 낙심과 체념이라는 부정적인 옛 기억들을 내 던지십시오. 대신 광야와 사막 같은 암담한 현실 속에서 나의 기억과 생각과 지혜를 넘어 새 일을 역사하시는 하나님, 하나님을 신뢰하고 따르는 의인을 주목하시고, 그 부르짖음을 들으시는 하나님께 나아가십시오. 그리하여 부어주시는 새 은혜로 하나님을 더욱 기뻐하고 사랑하고 즐거워하는 하나님의 찬송이 되십시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