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0107(주) 신년주일예배 본문 창 15:1-8 제목 내게 있는 증거는? 정초부터 태풍이 뉴질랜드, 북섬을 뒤 흔들어 놓았는데, 성도님들께서는 무고 하셨습니까? 로토루아에서는 쓰러진 나무가 차를 덮쳐 목숨을 잃는 사고도 있었습니다. 정초부터 2018년이 만만치 않은 모습입니다. 이처럼 우리의 인생행로 중에는 반드시 경제적인 문제, 질병의 문제, 관계의 문제, 자녀의 문제, 도덕적 문제, 영적인 방황의 문제, 죽음의 문제가 다가옵니다. 틀림없이 2018년 도처에 이러한 덫이 보이지 않게 쳐져 있을 것입니다. 어디 2018년 뿐이겠습니까? 우리가 이 땅에 거하는 내내 그럴 것입니다. 이러한 점에서 인생은 그야말로 파란만장한 대장정이 아닐 수 없습니다. 우리는 이 대장정 속에서 때로는 웃고, 때로는 아파하고, 때로는 고뇌하고, 때로는 낙심하고, 때로는 방황합니다. 어느 누구도 예외가 없습니다. 오늘 본문의 주인공, 믿음의 조상이라 불리는 아브람도 그러했습니다. 아브라함을 생각 할 때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이라 부르며 우리와 차원이 다른 존재로 여겨집니다. 그러나 자세히 들여다보면 그도 연약한 한 인간이었습니다. 우리보다 나을 것이 없는 같은 부류의 사람이었습니다. 어쩌면 더 우리보다 한심한 사람일 수 있습니다. 그는 적어도 두 번이나 자기 아내 사라를 “내 아내가 아니다”라고 부인하고 자기 목숨을 건지려고 했던 비겁한 남자였기 때문입니다. 아들을 주시겠다고 약속을 했음에도 더디 이루어지는 현실 속에서 고뇌하고 첩을 들이며 방황 했던 사람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그런 그를 통해 믿음으로 의롭다 함을 얻는 구원의 원리가 세워지고, 너로 복의 근원이 되게 하겠다는 언약이 그의 후손인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완성되는 복을 누립니다. 그 이유는 한 가지입니다. 험난한 인생 중에도 하나님의 언약을 끝까지 붙드는 믿음으로 순종하는 길을 갔기 때문입니다. 그는 어떻게 수많은 시련과 나그네의 아픔과 두려움을 넘어 이 땅에 나게 하시고 부르신 그 사명의 길을 갈 수 있었을까요? 그것은 하나님께서 때마다 함께 하사 언약을 새롭게 상기시켜주고 때문이요, 그 증거를 붙들고 하나님은 반드시 그 언약을 이루실 분이라는 믿음을 견고하게 세워 나갔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이 사실을 오늘 본문에서 분명하게 볼 수 있습니다. 본문을 보다 분명하게 이해하기 위해 그 배경을 보아야 하겠습니다. 오늘 15장 말씀은 앞 14장의 스토리 다음에 있습니다. 14장의 스토리는 아브라함이 북방 민족들에게 잡혀간 조카 롯을 구하였다는 것입니다. 이를 위해 자신의 목숨을 걸고 북방의 네 민족들로 구성된 침략자들을 추격하여 구하여 냈습니다. 그런데 아브라함이 롯을 구하였다 하나 이는 매우 위험한 상황에 놓였다는 것을 말합니다. 언제 다시 북방 민족의 공격을 받아 목숨을 잃게 될지 모르는 처지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아브라함의 입장에서 볼 때 자신의 처지가 말이 아닙니다. 앞날을 예상 할 수 없는데 아직도 자식조차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가나안 땅을 주시겠다고 하신 하나님의 약속을 붙들 힘이 그에게 없습니다. 그래서 그가 본문 2-3절에서 자신의 종으로 있는 엘리에셀이 자신의 재산을 상속자가 될 것이고, 자신의 집에서 난자가 자신을 잇는 상속자 되게 할 것이라는 말합니다. 자신의 아들이 아니라, 종과 그 아들이 상속자가 된다는 것입니다. 일찍이 하나님께 “네가 너로 큰 민족을 이루겠다”(12:2) “”네 자손이 땅의 티끌 같게 하리라“(13:16) 약속을 두 번이 하셨는데, 현실은 그렇지 않았던 것입니다. 그러자 어떻게 합니까? 하나님께서 아브람을 밖으로 이끌어내고는 말씀하십니다. “하늘을 우러러 뭇 별을 셀 수 있나 보라. 네 자손이 이와 같으리라”(15:5) 말이 아니라, 지금부터 3800년 전, 공기가 전혀 오염되지 않은 가나안 땅 밤하늘에 빛나는 무수한 별들을 보여주며 언약을 다시 갱신합니다. “네 자손이 이와 같으리라” 더 이상 말이 필요 없는 증거로 언약을 상기시킨 것입니다. 그러자 아브라함의 마음속에 다시 믿음이 회복이 됩니다. 상한 영이 회복이 되어 하나님을 신뢰하는 존재가 된 것입니다. “아브라함이 여호와를 믿으니”라는 6절에서 말씀이 그것을 보여줍니다. 게다가 다시 7절에서 “나는 이 땅을 네게 주어 소유를 삼게 하려고 너를 갈대아 인의 우르에서 이끌어 낸 여호와라” 말씀합니다. 그러자 아브람이 “내가 이 땅을 소유로 받을 것을 무엇으로 알리이까” 묻습니다. 이 말은 “저에게 하늘의 저 별처럼 많은 후손들을 주실 터인데 그들이 이 땅을 얻게 될 것을 무엇으로 알 수 있는지요 확실한 증거를 보여 주십시오”라는 물음입니다. 별을 보여 주신 것 같이, 그 분명한 증거를 보여 주었으면 했던 것입니다. 그러자 9-19절에 의하면 하나님께서 그에게 3년 된 암소, 암염소, 숫양을 잡아 반으로 갈라 마주 놓고, 새는 쪼개지 말고 마주 놓으라 합니다.(9) 이에 아브라함이 그렇게 합니다. 그러나 낮 동안 아무 일이 없습니다. 솔개가 내려 앉아 그것 먹으려 할뿐입니다. 그러다 깊은 잠이 듭니다. 큰 흑암이 그에게 임하고, 그 때 여호와께서 그에게 말씀합니다. “네 후손이 이방 땅에서 4백년 간 객이 되어 살다가, 사대만에 이 땅에 돌아오게 됨으로써 이 땅이 네 후손에 돌아갈 것이요, 너는 평안이 죽게 될 것이다.” 라는 말씀을 주십니다.(13-17) 그리곤 연기 나는 화로가 보이고, 타는 횃불이 쪼갠 고기 사이로 지나갔습니다. 17절 말씀이 그것을 말합니다. “해가 져서 어두울 때에 연기나는 화로가 보이며 타는 횃불이 쪼갠 고기 사이로 지나더라” 이름 하여 횃불언약을 맺으신 것입니다. 이는 하나님께서 계약의 당사자가 되어 그 쪼갠 고기 사이로 지난 가신 것을 의미합니다. 이는 실로 엄청난 사건이 아닐 수 없습니다. 당시에 언약을 맺을 때 “반드시 언약을 지킬 것이며, 그렇지 않으면 내가 이 쪼개어진 짐승과 같이 될 것이다”는 의미에서 짐승을 잡아 쪼개어 놓고 계약의 당사자가 그 쪼갠 고기 사이로 지나갔습니다. 그러니까 이 언약을 맺을 때는 목숨 걸고 맺는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그 사이로 지난 간 것입니다. 게다가 이 횃불 언약은 일방적 한편만의 계약, 즉 편무계약 이었습니다. 당시 계약을 맺을 때 쪼갠 고기 사이로 가야 할 사람은 항상 쌍방이어야 했습니다. 이것을 쌍무계약이라 합니다. 계약은 혼자 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말씀에 보니 아브라함은 빠지고 횃불, 하나님만 지나가신 것입니다. 이는 무엇을 의미합니까? “아브라함아 네가 어떠하든지 간에 나, 여호와는 너와 맺은 언약을 반드시 지키겠다”는 하나님의 일방적 맹약입니다. 아브라함의 처지와 상관없이 그에게 한 언약을 반드시 지키겠다는 맹세인 것입니다. 게다가 그렇지 않으면 내가 이 쪼갠 고기처럼 되겠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당시 쪼갠 고기사이로 지나가는 계약의 의미를 알고 있던 아브라함의 입장에서는 더 이상 바랄래야 바랄 수 없는 완전한 증거를 하나님께 눈으로 보여주신 것입니다. 할렐루야! 이렇게 하나님께서는 하늘의 별로, 더 나아가 언약을 지키지 않으면 자신이 죽겠다는 맹세를 의미하는 쪼갠 고기사이로 지나가는 횃불언약이라는 확실한 증거로 아브람을 붙들어 주셨습니다. 그렇게 그를 사랑했습니다. 그 때마다 아브람은 믿음이 다시 살아났습니다. 다시 힘을 얻었습니다. 그 결과 그는 하나님의 확실한 증거를 붙들고 그의 길을 갈 수 있었던 것입니다. 그 증거를 붙들고 순종 할 때 마다 그 언약을 이루시는 하나님이심을 더욱더 분명하게 깨달으면서 말입니다. 우리는 이러한 아브라함의 스토리를 대하며 “나에게도 이렇게 하나님의 확실한 증거가 있었으면 생각을 품을 때가 있습니다. 그러면 ”나도 확실한 믿음의 길을 갈 수 있을텐데“ 하는 영혼의 소망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아브라함을 전혀 부러워 할 필요가 없습니다. 우리에겐 아브라함 보다 더 확실하고 더 완전한 증거가 있기 때문입니다. 그것이 무엇일까요? 그 답은 하나님께서 아브라함과 맺은 쪼갠 고기 사이로 지나간 횃불 언약 속에 있습니다. 그것이 바로 이 사건 속에 담겨 있는 하나님의 중요한 비밀입니다. 앞서 말씀드린 대로 이 언약은 편무언약입니다. 하나님이 아브라함의 조건과 상관없이 이루시겠다는 일방적 사랑의 언약입니다. 그런데 이 언약으로 시작된 아브라함을 통한 구원의 역사가 하나님의 뜻과 달리 이스라엘의 불순종으로 수포로 돌아가는 것처럼 보입니다. 하나님이 맺은 언약을 이스라엘 백성이 깨트린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끝까지 포기하지 않으십니다. 그리고는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십니다. 그리고 그 아들을 십자기에 못 박혀 죽게 하십니다. 계약은 이스라엘, 즉 인간이 파괴 했는데, 그 계약에 대한 책임은 하나님께서 그 아들, 예수를 보내어 죽음에 이르게 한 것입니다. 아브라함에게 맺은 언약을 못 지키면 쪼갠 고기처럼 죽음으로 갚겠다는 맹세를, 파기자가 아닌, 하나님께서 이렇게 실행하신 것입니다. 언약 파기의 죄 값을 하나님께서 지불하신 것입니다. 이는 하나님의 사랑이 얼마나 큰 지를 우리에게 보여주시는 어마 어마한 사건입니다. 누가는 예수의 죽음의 순간을 이렇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예수께서 큰 소리로 불러 이르시되 아버지 내 영혼을 아버지 손에 부탁하나이다 하고 이 말씀 후 숨지시니라“ (눅23:46) 하나님께서는 하나님과 동등한 권위를 가지고 계신 성자, 예수를 이같이 이 땅에 인간의 몸으로 보내셔서, 우리가 파괴한 언약을 아들의 피로 물어내셨습니다. 얼마나 우리를 사랑했으면, 얼마나 우리를 당신의 자녀로 다시 돌아오기를 바랐으면 그렇게 할 수 있었을까요? 아브람에게 횃불언약이라는 증거가 있다면, 우리에겐 그것보다 더 뛰어나고 더 온전하고 더 완전한 증거, 아들 예수를 통해 그 사랑을 직접 보여주신 십자가 증거와 부활의 예수가 있는 것입니다. 할렐루야! 이 보다 더 큰 증거가 어디에 있습니까? 이보다 더 큰 사랑의 증거가 어디에 있습니까? 이 보다 더 확실하고 더 완전한 사랑의 증거가 어디에 있습니까? 할렐루야! 아브라함도, 이삭도, 야곱도, 요셉도, 그 유명한 다윗도, 그 위대한 이사야 선지자도, 그 위대한 세례 요한도 이 증거를 사모했습니다. 그리고 예언 했습니다. 그러나 보지는 못했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그 증거를 보았습니다. 이 땅에 오신 예수님의 그 십자가 죽음과 부활을 통해서 본 것입니다. 어떻게요 이 예수를 만났고, 죽음을 보았고, 그 부활의 예수를 보았던 사도들이 증거하고 있는 이 성경을 통해, 그리고 이 성경을 읽고 그 말씀을 들을 때 우리에게 믿게 하시는 성령의 역사를 통해서 본 것입니다. 할렐루야! 하나님께서 말씀하십니다. “내 아들을 십자가에 죽게 함으로 너를 향한 내 사랑을 이 같이 보였노라. 이것이 네게 주는 가장 큰 증거니라” 그래서 바울이 이 사랑을 깨닫고 이렇게 말합니다.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해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 하셨느니라” (롬5:8) 아르바함은 언약에 증거를 원했습니다. 변할 수 없는 하나님의 사랑을 구한 것입니다. 그러자 별과 햇불언약을 보여주셨습니다. 그에게 그 당시 가장 확실한 표를 준 것입니다. 그러나 이제 우리에겐 그것과는 차원이 다른 “아들 예수를 십자가에 죽으시게 한 십자가 죽음과 부활을 통하여” 확실한 증거를 보여주신 것입니다. 할렐루야! 그렇기에 이를 통해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시는 말씀은 무엇입니까? 첫째, 예수 안에서 두려워하지 말아야합니다. 십자가 죽음과 부활의 예수를 통하여 내가 이 사랑으로 너를 붙들겠다 말씀하시기 때문입니다. 둘째, 예수 안에서 하나님을 신뢰하라 말씀하십니다. 이러한 사랑의 증거를 믿고 내가 너를 끝까지 인도할 진리요 하나님이심을 신뢰하고 하님을 따르라는 것입니다. 셋째, 예수 안에서 언약을 붙들라는 것입니다. 예수 안에서 주신 하나님의 말씀을 날마다 붙들고 먹는 것입니다. 올 한해 아브람이 갖지 못한 더 큰 증거를 주신 하나님 증거를 가슴에 품고 두려워하지 말고, 하나님을 신뢰하고, 그 말씀으로 먹고 순종하는 2018년이 되게 하십시오. 그 길을 하나님께 인도하실 것입니다. 할렐루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