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0128(주) 주일예배 본문 창 28:10-22 제목 진정한 인생의 길은? 서론 영상 영상의 내용은 길이 70cm, 몸무게2-3kg에 불과한 줄기러기 새가 히말라야 산맥을 넘나들 수 있는 있는 비결에 대해 말해줍니다. 그 비결은 롤로코스터 비행입니다. 높은 고도로 올라가 내려오는 것이 아니라, 희말라야 능선의 고도를 따라 오르락내리락 하는 비행입니다. 이것이 힘든 것 같지만 체력적으로 약한 줄기러기가 오히려 산맥과 기상 조건에 맞추어 자신의 몸을 맞김으로 그 큰 산맥을 넘는 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인생의 큰 산맥 앞에 서야만 했던 모세 다윗과 같은 믿음의 선배들은 어떻게 그 산맥을 넘었는가 질문을 던집니다. 그 비결은 바로 성령을 따랐다는 것입니다. 마치 크지 않은 줄기러기 새가 산맥과 기상 조건에 따라 자신을 맞기듯이 말입니다. 우리도 그렇게 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그러나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이 산 앞에서 주저합니다. 왜 그럴까요? 영상에 골리앗을 이긴 다윗이 잠깐 언급되었지만, 다윗이 골리앗을 물리치기 전의 상황을 보면 이해가 됩니다. 하나님을 믿는 다른 모든 이스라엘 군인들은 골리앗 앞에 감히 나가 맞서지 못했습니다. 그를 맞서 싸울 용기가 없었기 때문입니다. 세상의 모든 군대의 힘보다 세신 하나님을 믿음에도 나가서 골리앗과 싸우지 못했습니다. 자신들이 믿는 여호와 하나님이 정말 이 상황에서 그 믿는 자와 함께 하면 도울실 하나님이심을 믿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즉 하나님이 함께 계셔서 이 상황을 이기게 하실 하나님으로 신뢰하지 못했던 것입니다. 이 시대의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바로 골리앗 앞에 주눅 들어 있는 이스라엘 군대와 비슷한 모습을 하고 있습니다. 자신의 힘으로 넘어 설 수 없는 희말라야 같은 산맥 앞에서 주저 않자 나는 안되하고 나자빠져 있는 것입니다. 골리앗 같은 너무나 두려운 상대 앞에서 넋이 나가 흐물거리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진정 내 주이시오, 나와 함께 하사 이기게 하시는 하나님이심을 신뢰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진정으로 살아야 할 자신의 인생을 살지 못합니다. 우리는 어떻게 희말라야 같은 장매물이 나타나고, 골리앗 같은 두려운 상대가 앞에 버티고 있을 때 그것을 넘어서는 진정한 인생이 될 수 있을까요? 하나님께서는 그 비결을 오늘 본문의 주인공인 야곱의 인생을 통해 우리에게 말씀해주십니다. 즉, “어디로 가든지 항상 함께 계시고, 주신 비전을 이루기까지 떠나지 아니하시는 하나님을 신뢰하는 믿음”입니다. 야곱은 성품적으로 보면 자기의 목적을 위해서라면 수단을 가리지 않는 비열한 사람입니다. 그가 형 에서의 동생으로 한 날에 태어난 쌍둥이입니다. 그런데 야곱이 형의 발꿈치를 잡고 태어났습니다. 그래서 이름을 “발꿈치를 잡은 자”라는 뜻을 가진 “야곱”이라는 이름을 지어주었습니다. 이 이름에서 “선수치는 자” “빼앗는 자”라는 뜻이 파생 되었습니다. 즉 그는 태어나면서부터 교활하고 속임수 많은 성격을 가진 존재로 묘사 되었을 만큼, 그의 삶이 실재로 그러했습니다. 예를 들면 들에 나가 사냥하고 들어와 기진맥진 한 형이 먹을 것이 필요 할 때 팥죽 한 그릇에 형의 장자권을 거래한 것이 그렇습니다. 또 아버지 이삭이 나이 많아 눈이 어두울 때 아버지를 속이고 형의 축복권을 가로 챈 것이 그렇습니다. 사기꾼 같은 기질이 있었던 것입니다. 이로 인해서 결국 오늘 본문의 상황이 전개 됩니다. 형을 속인 것이 발각 되어 형에게 죽임 당할 것이 두려워 결혼을 핑계로 외삼촌이 있는 곳으로 도망을 하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이 바로 그가 도망 갈 때 벌어진 하나님을 만난 사건입니다. 이렇기 때문에 사실 야곱은 하나님의 은혜와는 거리가 먼 사람이어야 합니다. 행실로 치면 나쁜 놈이기에 하나님의 은혜를 받을 자가 아닌 것처럼 보입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에서와 같이 그런 싹수 없는 사람인 야곱에게 임합니다. 자신의 모습을 드러내십니다. 아브라함의 하나님, 이삭의 하나님이라 합니다. 그리곤 그에게 놀라운 복의 언약을 해주십니다. 아브라함과 이삭에게 약속하였듯이, 야곱에도 동일한 약속을 합니다. 첫째, 이 땅을 너와 네 자손에게 주겠다. 둘째, 네 자손이 번창하여 동서남북으로 퍼질 것이며 모든 족속이 네 자손으로 말미암아 복을 받을 것이다. 셋째, 이 땅으로 다시 돌아오게 하겠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결정적인 맹약을 합니다. “내가 너에게 허락한 것들을 다 이루기까지 너를 떠나지 아니하리라”(15) 야곱이 뭐가 이뻐서 이 사기꾼 같은 사람에게 하나님은 이렇게 놀라운 언약을 맺고, 그것을 이루기까지 너를 떠나지 아니라고까지 맹약을 한 것일까요? 그 이유는 한 가지입니다. 하나님께서 야곱을 택하였고, 그를 사랑했기 때문입니다. 사랑은 항상 조건을 뛰어넘습니다. 비록 야곱이 못된 모습을 가지고 있지만 하나님은 그를 사랑한 것입니다. 그렇기에 비롯 형에게 아버지에게 죄를 짓고 도망하는 그에게 임하신 것입니다. 야곱이 사랑 받을 만한 조건, 자격이 있어서가 아닙니다. 그런 점에서 우리는 이런 하나님을 보면서 하나님은 공평한 분이 아니라고 여겨집니다. 어떻게 그런 나쁜 놈 한데 그럴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사랑은 야곱의 조건과는 아무런 상관이 없었습니다. 그렇기에 비록 죄를 지어 살기 위해 도망하나, 광야에서 돌을 베개 삼아 자야 할 만큼 초라한 모습에 두려움에 휩싸여 홀로 잠을 청하는 야곱에게 임한 것입니다. 죄를 짓고 도망가는 신세로서 낮은 자존감에 주눅들어 홀로 깊은 고뇌와 두려움에 빠져 있는 그를 찾아 가신 것입니다. 그리곤 그에게 사랑으로 이 언약들을 보여 주신 것입니다. 나아가 내가 너와 함께 하고 있으며, 네가 돌아오기까지 너를 떠나지 않을 것이라고 그를 붙들어 주신 것입니다. 새 비전을 말할 것도 없고요. 그 결과 어떻게 되었습니까? 그가 아침에 일찍 일어나 베고잔 돌을 세우고는 기름을 부어 하나님께 영광을 돌립니다. 그곳에 하나님이 계심을 새롭게 깨달은 감동과 놀란 가슴으로 그리합니다. 드디어 머리로만 알았던 아브라함과 이삭의 그 하나님이 막연한 하나님이 아니라, 지금 여기 나와 함께 계시는 실재의 하나님이심을 그가 깨달은 것입니다. 우리는 여기서 하나님께서 지금 야곱에게 무엇을 하고 있는가를 보게 됩니다. 어떤 모습입니까? 언약을 주시고, 그 언약을 이루기까지 함께 하시는 하나님이심을 가슴으로 깨닫게 하는 모습입니다. 머릿속에만 있는 하나님을 가슴으로 깨닫고 모시게 하는 진정한 믿음으로 심어주고 계시는 것입니다. 그렇기에 그가 이 깨달음으로 인해 아침 일찍 일어나 시키지도 않은 일을 합니다. 지금 그 자리에 임하여 계신 하나님을 인하여 놀라, 베고 잔 돌을 세우고 거기에 기름을 부어 하나님을 높인 것입니다. 그리고는 하나님께 서원하는 기도를 드립니다. 자신을 하나님께 드리는 기도를 합니다. “만약 하나님께서 함께 계셔서 내 가는 이 길에서 나를 지키시고, 먹을 것과 입을 옷을 주시어 평안이 아버지의 집으로 돌아오게 하신다면, 여호와께서 나의 하나님이 되실 것입니다.” 여기에서 야곱이 매우 중요한 다짐의 기도를 볼 수 있습니다. 그것은 “여호와께서 나의 하나님이 되실 것입니다”라는 다짐입니다. 여기에서 “여호와”라는 하나님의 이름은 “스스로 계신자, 영원히 변치 않은 언약의 하나님”이라는 의미가 담겨져 있습니다. 그리고 “나의 하나님이 되실 것이요”에서 쓰여진 “하나님”이란 단어는 “엘로힘”이라는 단어입니다. “그러니까 ”여호와께서 나의 하나님이 되실 것이요“라는 말은 ”여호와께서 나의 엘로힘이 되실 것이요“라는 말입니다. 그런데 이 엘로힘이라는 단어는 ”모든 권능과 위엄을 가진 주권자, 전능하심의 속성“을 나타내는 말입니다. 그러니까 야곱이 “여호와가 이제 나의 엘로힘이 되실 것이요”라는 말은 “오직 여호와만이 내가고 믿고 따를 전능하신 하나님 나의 하나님”이 될 것이라는 다짐이요 고백입니다. 즉 그 어떤 신들도 이제는 더 이상 아무 것이 아니요, 할아버지 아브라함과 아버지 이삭을 부르신 그 여호와 언약의 하나님만이 자신의 인생을 진정으로 이끄실 전능하신 하나님으로 믿고 따르겠다는 다짐입니다. 전에는 긴가민가하고, 회의하고, 의심하며 별로 신뢰를 두지 못하여 자기 목적을 위해 사기를 치고 속이던 야곱이 근본적으로 바뀌어 가는 모습을 봅니다. 이제 시간을 훌쩍 뛰어넘어 하나님은 이 언약들을 어떻게 했는지를 보겠습니다. 오늘 본문 이후에 전개 되는 내용에 의하면 야곱이 마침내 어머니의 오빠 라반이라는 외삼촌이 사는 곳에 도착합니다. 그리고는 거기에서 외삼촌의 두 딸과 결혼을 합니다. 비록 외삼촌에 의해 사기 당한 결혼이 되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두아내를 얻게 되고, 또 두 아내의 종들을 받아들이면서 이들을 통해 12 아들과 딸 하나를 얻습니다. 그리곤 외삼촌 댁에서 20년을 섬기며 하나님께서 주신복으로 거부가 되어 고향으로 돌아옵니다. 도중 얍복 강가에서 하나님께 간절히 매달리는 기도를 통해 복을 받고, 이름이 야곱에서 이스라엘 “하나님과 겨루어 이긴자”라는 새 이름을 갖습니다. 그리고 고향에 이르게 될 즈음에는 형과의 화해가 이루어집니다. 결국 하나님의 언약대로 야곱이 고향에 돌아옵니다. 그리곤 평안이 돌아 온 후에 그가 세겜에서 하나님께 제단을 쌓고 하나님을 경배합니다. 그리곤 그 제단의 이름이 “엘엘로헤 이스라엘”이라 부릅니다(33:20) 엘엘로헤 이스라엘이라는 말의 뜻은 “전능하신 하나님, 이스라엘의 하나님”이라는 뜻입니다. “즉 전능하신 하나님만이, 새롭게 거듭난 나 이스라엘의 참 하나님”이라는 뜻입니다. 여기에는 야곱이 깊은 신앙 고백이 담겨 있습니다. “형에게 죽임 당할 것이 두려워 급하게 지팡이 하나만을 들고 도망을 갔던 자신이 네 명의 아내와 12의 아들과 딸 하나, 그리고 엄청난 가축들을 몰고 돌아오다니 참으로 놀랍구나. 게다가 제일 염려 했던 형으로부터의 보복을 당할 두려웠는데 형으로부터 용서를 받고 화해케 되다니 이 얼마나 큰 보인가? 이는 오로지 그 언약대로 행하신 전능하신 하나님, 곧 야곱, 나 이스라엘의 하나님의 은혜로다.”라는 고백이 깊이 묻어나 있는 것입니다. 여호와 외에는 다른 전능하신 신이 없고, 자신을 지금까지 어디로 가든지 함께 하사 떠나지 아니하신 여호와, 전능하신 하나님이, 이제 나의 하나님이십니다 라고 고백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여기서 무엇을 알 수 있습니까? 오늘 본문 20절에서 “이렇게 이렇게 해주시면, 스스로 계시며 영원한 언약의 하나님이신 여호와만이 전능하신 나의 하나님이 되심을 믿겠습니다”라고 했던 그 다짐이 “엘엘로에 이스라엘”로 다시 고백됨을 알 수 있습니다. 이제 야곱, 이스라엘의 가슴에 오직 한 가지 있게 된 것입니다. 그것이 무엇입니까? “여호와 하나님, 전능하신 하나님”만이 자신이 믿고 따르고 경외하는 유일한 하나님으로 가슴에 뜨겁게 자리 잡았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야곱을 어떻게 하신 것입니까? 사깃꾼의 길을 갈 운명의 이 자격 없는 사람을 변하여 오직 하나님만을 신뢰하고 그 하나님만을 따르는 진정한 인생이 되게 하신 것입니다. 할렐루야! 야곱이 자신의 지난 과거의 모습을 살펴보면서 느꼈을 그 감회와 감동이 얼마나 컸을까요? 사기나 처먹고 살아야 했을 그런 인생, 고향을 떠나 도망가서 평생 다시 돌아오지 못할 도망자 인생, 평생 남의 종으로나 살아야 할 비참한 인생이 이렇게 변하여 완전히 새로운 인생, 자신이 되어야 그런 진정한 인생이 되었으니 그 얼마나 감동이 밀려왔겠습니까? 이런 생각을 해봅니다. 나의 인생도 이렇게 되었으면 얼마나 좋을까? 내가 초라하고 보잘 것 없고, 지난 과거가 깨끗지 못하고, 낮은 자존심에 주눅 들어 피어보지 못한 인생이다, “그러나 이제 나는 찾았네, 여호와 전능하신 하나님만이 나를 이렇게 변하게 하셨네” 하며 뜨거운 고백을 할 수 있는 인생이 되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생각을 해보는 것입니다. 어떤 시련이 다가와도 “전능하신 하나님이 나와 함께 계시며 어디로 가든지 나를 인도할 것인즉 내가 오직 하나님을 가슴에 모시고 살리라” 하면서 거대한 희말라야 산맥 앞에서 하나님을 따르는 믿음에 이른다면 얼마나 좋을까? 자격 없고 나쁜 놈이지만 하나님의 그 뜨거운 사랑을 덧입고 그 눈물을 씻기운 야곱, 게다가 자신을 죽이려는 형 에서와 화해케 하시고 고향에서 화목한 삶을 사는 은혜가 나에게 임한다면 얼마나 좋을까? 이 야곱의 하나님이 나의 하나님이라면 얼마나 좋을까? 나아가 우리 교우들이 이 하나님을 가슴에 품고 날마다 그 은혜를 덧입어 산다면 얼마나 좋을까? 그 어떤 유혹이 와도 오직 여호와 전능하신 하나님만이 나의 주요, 나의 하나님이심을 고백한다면 얼마나 좋을까? 엘 엘로에 김주현, 엘 엘로헤 최경희, 엘엘로에 서정우, 엘 엘로에 양곤, 단우, 엘 엘로에 다빈이.... 진정한 인생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나를 하나님의 형상으로 창조하신대로, 그 하나님을 가슴에 품고 하나님과 함께 그 은혜 안에 사는 것입니다. 자격 없으나 나를 위해 그 큰 사랑으로 품어주시는 하나님께 안겨 나를 유일한 나로 세우신 그 하나님의 위대한 뜻에 따라 사는 것입니다. 내가 어디로 가도 함께 하시며 나를 위해 품으신 그 뜻을 이루기까지 떠나지 아니하시는 하나님을 가슴에 품고 사는데 진정한 인생이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러한 것을 모르는 사람은 야곱이 변화되기 이전의 모습을 자신의 영달을 위해 남을 속이고, 진정한 목적이 아닌 것을 위해 인생을 허비하는 존재가 되는 것입니다. 게다가 반드시 닥치게 되어 있는 인생의 희말라야 같은 넘을 수 없는 장벽에 부딧혀 넘어서지 못한 채 주눅든 인생, 자존감이 낮은 인생으로 사는 것입니다. 게다가 죽음 이후에도 진정한 평안이 없는 멸망의 인생이 되고 마는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에게 길이 있습니다. 야곱과 같은 인생을 진정한 인생이 되게 하신 그 하나님을 나의 하나님으로 모시는 길이 있습니다. 바로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야곱은 하나님이 직접 택하여 그를 사랑하셨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야곱이 아닙니다. 또 택함 받은 이스라엘 백성이 아닙니다. 아무도 야곱의 하나님께 나아 갈 자격이 없습니다. 그러나 야곱을 택하신 하나님께서 그 아들 예수님을 우리에게 보내 주셨습니다. 우리처럼 사람이 되게 하셨습니다. 그리곤 흠 없는 그 몸으로 죄로 인하여 하나님의 은혜의 품에 안 길수 없는 우리를 대신하여 십자가에 못 박히셨습니다. 거룩한 하나님께 나아가는데 넘어설 수 없는 죄를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못 박혀 죽음으로 인류와 나의 모든 죄의 값을 지불한 것입니다. 이것을 구속이라고합니다. 영어로는 Redemption이라고합니다. 예수께서 자기 목숨을 죄의 값으로 지불하고 우리를 죄에서 건져내어 의롭게 하셨다는 뜻입니다. 그런데 이 일은 야곱을 사랑하셨던, 그 하나님이 하신 것입니다. 여호와 하나님께서, 아들 성자 예수를 내어 주고, 우리들을 야곱처럼 그 은혜 안에 거하게 하시려고 하신 것입니다. 이 일을 위해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성자 예수를 십자가에 죽도록 내어주는 아픔을 겪으셔야 했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은 성부 하나님 여호와의 뜻에 따라 십자가에 자기를 내어주고 못박혀 메달립니다. 그리고 그 십자가 위에서 자신을 버리고 배반하고 못 박고 사기치고 간음하고 믿음 없고 실패한 모든 영혼들을 위해 기도합니다. “아버지, 제가 이들을 죄를 다 짊어지고 가오니, 아버지 이들의 죄를 다 사하여 주시고, 이 들을 다 받아 주소서. 나의 거룩이 이들이 것이 되게 하소서” 이 뜨거운 고백의 기도가 바로 십자가에 못 박혀 죄인의 값으로 죽어가는 예수님의 진정한 사랑의 기도요 마음이요 고백이었습니다. 이에 하나님은 이 아들의 흠 없고 때 없는 이 순전한 희생, 이 순전한 사랑의 기도를 받으십니다. 그리하여 누구든지 예수 이름을 나의 주, 나의 하나님으로 받아들이며 나의 죄를 용서하여 주소서 고백할 때, 성부 하나님께서는 “아들의 그 놀라운 희생의 기도와 소원을 들으사. 아들 같이 의롭게 여기시고 다 받아 주시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우리 같이 더럽고 추하고 실패한 영혼조차 다 하나님의 품에 안긴 야곱처럼, 하나님의 자녀가 되어 그 은혜로 사는 것입니다. 아들을 내어 주시는 그 사랑으로 우리를 부르사 어디로 가든지 떠나지 아니하는 이 하나님이 이제 나의 하나님, 나의 주가 되는 것입니다. 할렐루야! 무엇을 말합니까? 예수 안에서 우리에게 진정한 인생의 길이 열려 있는 것입니다. 올 한해 오직 예수를 믿으십시오. 오직 예수 안에서 하나님의 자녀로 살아가십시오. 예수 안에서 나를 부르사 나의 길을 가기까지 떠나지 아니하시는 하나님만이 나의 주, 나의 하나님이심을 고백하십시오. 그리고 성경을 통해, 주일 말씀을 통해, 기도를 통해 나에게 오셔서 “내가 너를 결코 떠나지 아니하리라 하시는 하나님의 언약을 날마다 들으십시오. 길기러기가 산맥을 타고 넘고 공기를 타고 넘듯, 하나님께서 말씀으로 우리를 붙잡고 내 앞에 있는 희말라야를 넘게 하실 것입니다. 그리하여 결국에는 오직 예수를 주신 여호와 하나님 만이 나의 주, 나의 하나님, 엘 엘로헤 하나님”이라고 고백하는 진정한 인생, 2018년이 되게 하실 것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