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상) 박항서 감독 최근 중국에서 23세 이하 아시안 챔피온십이란 국가 대항 축구 대회가 있었습니다. 이 대회에 한국을 포함하여 이란, 호주, 일본 등 아시아에서 제일 잘 한다는 나라들이 출전을 하였습니다. 그리고 2016년 FIFA 순위 146에 랭크 된 세계 최약체인 베트남도 출전했습니다. 아무도 베트남이 예선전을 통과 하리라 예상하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예상과 달리 호주를 이기고 한국과 함께 본선에 진출 했습니다. 그리곤 16강, 8강, 4강에 오르더니, 나중에 결승전까지 올라갔습니다. 비록 결승전에서 패하여 2위에 머물렀지만 이 기록은 베트남이란 나라가 생긴이래 처음 기록이요, 동남아시아를 통털어서도 처음 있는 일이었습니다. 나아가 남과 북의 월남이 통일 된 이후 온 국민이 다 같은 마음으로 최고의 희열을 맛본 역사적 사건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이러한 역사적 사건의 중심엔 한국인 박항서 감독이 있었습니다. 이 놀라운 역사적 위업으로 인해 그는 베트남 최고의 상인 노동 3급 상을 받았고, 베트남 국회에서 연설까지 하는 최고의 영예와 영광을 받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하지만 베트남 감독으로 부임 했을 때 베트남 일부 팬들은 '한국 프로 무대에서 밀려나 실업 리그 감독을 하던 축구인을 데려왔다'는 부정적 평가가 이어지면서 따가운 눈초리를 받았기 때문이다. 사실 그는 한국에서 스타플레이어도 아니었고, 그렇다고 감독으로써 뛰어난 성과를 거두지도 못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이번 대회에서 이룬 역사적 사건을 통해 베트남 국민들은 박항서 감독의 진정한 능력과 참 지도자 됨을 보았습니다. 겉모습과 과거의 초라한 업적들에 가려져 보이지 않았던 박항서 감독의 진면목을 본 것입니다. 그러자 축구 팬은 물론이고 축구에 관심을 두지 않았던 온 국민이, 나라의 가장 높은 총리도, 국회도 그에게 그동안 돌리지 못했던 영광을 비로소 돌리기 시작했습니다. 우리가 만약 예수 안에 있는 영광을 바르게 안다면 어떻게 될까요? 장담 하건데 이 자리에 계신 모든 분은 남은 자신의 삶을 오직 예수를 위해 살겠습니다 하고 고백 할 것입니다. 더 나아가 나의 생명을 예수께 걸겠습니다 하고 고백 할 것입니다. 날마다 예수를 더 깊이 알고자 하는 열정으로 가득 차올라 성경 말씀에 푹 빠져 살 것이요, 예배를 사모할 것 입니다. 예수님처럼 옛 삶을 버리고, 타인을 예수의 마음으로 섬기는 박애의 삶을 살 것입니다. 나를 힘들게 하는 사람이 있어도 그 사람을 위해 깊은 기도를 드리는 길을 갈 것입니다. 원수를 미워하고 보복하라는 사탄의 음성을 거절하고 도리어 인내하며 사랑하라는 예수의 말씀에 순종하고자 자신을 버리는 길을 갈 것입니다. 하나님을 예배하고 경외세상을 사랑으로 바꾸는 진정한 인생이 되는 것입니다. 과거에도 그리고 지금도 예수의 자유케 하는 능력을 맛보고, 그 영광을 조금이라도 알았던 사람들이 그랬던 것처럼 말입니다. 오늘 우리가 읽은 요한복음을 쓴 사람은 사도 요한입니다. 예수께 직접 택함을 받았고, 또 택함 받은 12명 중에서도 예수와 특별한 교제를 하였던 3인 중에 한 사람입니다. 예수께서 체포되기 직전 최후의 만찬에서는 예수님 품에 안겨 있던 사랑 받는 제자였습니다. 그리고 예수의 죽음을 직접 보았습니다. 부활도 직접 보았습니다. 승천하는 예수님도 직접 보았습니다. 또 장차 임하게 될 예수님과 하나님 나라를 기록한 요한계시록을 기록할 만큼 그는 예수께 사랑 받는 자요 예수를 가장 잘 아는 사람이었습니다. 요한복음은 이렇게 예수가 어떤 분인가를 가장 잘 아는 사도 요한이 썼습니다. 예수가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 곧 구원의 주이심을 믿게 하고, 생명을 얻게 하려고 쓴 것입니다.(요20:31) 이런 목적 하에 요한은 1-18절에 걸친 서론에서 결론처럼 예수가 누구인가를 드러냅니다. 1절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라. 이 말씀이 하나님과 함께 계셨으니 이 말씀은 곧 하나님이시니라” 여기에서 요한 예수를 말씀으로 표현합니다. 당시 헬라어로 로고스란 단어입니다. 말씀이란 번역이 이 의미를 충분하게 반영하지 못합니다. 요한은 모든 존재의 근원과 질서와 목적이 되는 어떤 존재를 로고스란 단어를 채용해서 썼습니다. 다시에 다른 철학자들도 로고스를 그렇게 이해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요한 그 로고스가 바로 예수라고 증거합니다. 그런데 모든 존재의 원리와 근원과 목적이라는 로고스는 태초부터 있었다고 말합니다. 태초란 모든 만물, 곧 우주가 시작되기 이전을 말합니다. 우리가 보는 물질로 된 이 세계와 우주가 있기 전에, 말씀이 있었습니다. 즉 모든 것의 근원 질서 목적인 예수는 피조 된 존재가 아니라 영원전부터 존재하였다는 것입니다. 이는 단지 예수가 한 인간에 불과하다는 이단의 거짓 논리를 깨트리는 것입니다. 그리고는 이렇게 말합니다. “하나님과 함께 계셨다” 이 말씀을 2절에서도 반복합니다. “그가 태초에 하나님과 함께 계셨고” 이 말은 “예수는 하나님과 아주 친밀한 사랑의 관계”를 가지고 있었다는 것을 말합니다. 하나님과 함께 공존하여 사랑하는 관계였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인간 예수가 실은 영원전부터 계신 분으로, 하나님과 같은 신성과 영원성을 가지고 있으며 인격적 존재임을 증거하는 것입니다. 그리고는 요한은 1절 후반 절에서 또 이렇게 증거합니다. “이 말씀은 곧 하나님이시라” 예수를 인간에 지나지 않는 다고 말하는 거짓된 주장들에 대해 예수는 완전한 신성을 가진 분이라 말합니다. 하나님과 동일한 존재라는 것입니다. 이렇게 예수는 모든 것의 존재의 근원, 질서, 목적이 되는 분으로서 태초부터 계실 뿐 아니라, 영원한 하나님과 깊은 사랑의 관계를 가지는 인격적인 존재요, 하나님과 동일한 분이심을 드러냅니다. 이것이 요한이 예수를 가장 가까이에서 보았고, 만났고, 배웠고, 경험하였던 십자가와 부활의 예수를 통해서 본 것이었습니다. 그렇습니다. 예수는 태초부터 계신 하나님이셨습니다. 그리고 이 증언은 예수께서 스스로 자신에 대해 가르친 그 말씀과 같은 것입니다. “ 나아가 그는 이렇게 증거합니다. “만물이 그로 말미암아 지은 바 되었으니 지은 것이 하나도 그가 없이 된 것이 없느니라”(2) 이 우주에 존재하는 모든 만물, 우리가 보는 것, 혹은 보지 못하는 우주 저편의 또 다른 존재, 예를 들면 혹 우주인이 있다면, 그 모든 존재까지도 다 예수의 손에 의해 창조 되었다는 것입니다. 즉 예수는 창세기 1-2장에 나오는 모든 창조에 관여한 하나님이십니다. 예수는 피조 된 어떤 존재가 아니라 모든 존재의 근거요 목적입니다. 그가 만들었기 때문입니다. 예를 들면 바로 우리의 목적이라는 것입니다. 그가 만들었기 때문입니다. 우주의 존재하게 된 원인과 목적이 예수께 있다는 것입니다. 그는 인간 일 뿐만 아니라 하나님이라는 증거입니다. 그러면서 4절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그 안에 생명이 있었으니 이 생명은 사람들의 빛이라” 생명이란 육체적인 생명을 말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이 창조하신 본래 가지고 있어야 할 모습입니다. 거룩하고 하나님과 관계가 막힘이 없는 모습입니다. 하나님과의 완전한 관계를 가진 그 모습입니다. 그런데 이 모습이 예수 안에 있습니다. 예수 안에 우리가 되어져야 할 최조의 그 모습으로 되는 길이 있다는 것입니다. 즉 육체로만 사는 것이 아니라, 거룩하고 흠이 없는 그 모습으로 진정한 내가 되는 그 생명의 모습이 예수 안에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내가 되는 진정한 길, 창조된 그 진정한 내가 회복 되는 그 생명의 길이 예수 안에 있는 것입니다. 그렇기에 예수는 생명의 빛이라 합니다. 예수가 우리에게 그 생명의 다시 회복하는 빛을 그 삶과 그 성품을 통해서 우리에게 비추어 주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예수는 태초에 계셨고, 하나님과 친밀한 교제를 이루는 하나님과 동일한 분이십니다. 그렇기에 예수 안에 우리가 진정한 생명을 회복하는 길이 있고, 빛입니다. 그런데 14절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 우리가 보니 하나님의 독생자의 영광이요,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더라” 여기에서 사도 요한은 “말씀이 육신이 되었다”는 것을 강조합니다. 왜냐하면 예수가 하나님으로서 육체를 가지고 오신 분임을 부인하는 자들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예수라는 육체에 단지 그리스도라는 신이 임한 것으로 보는 자들입니다. 이들은 예수는 십자가에 못 박혀 죽었지만, 그리스도는 아니라고 합니다. 십자가에 못 박힐 때 그리스도는 빠져나갔다고 말합니다. 이로서 예수는 그리스도와는 아무런 상관도 없는 단지 인간에 지나지 않는다고 말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사도 요한 “말씀이 육신이 되어”라고 말합니다. 태초에 계셨던 모든 존재하는 것의 근원과 목적이 되신 하나님이 참으로 인간이 되셨다고 말합니다. 그래서 우리 가운데 거하셨습니다. 실제로 인간이 되어서 여기에 함께 시간을 보냈고, 고통을 경험했고, 우리의 죽음을 당하셨습니다. 그래서 예수는 허공에 메아리치는 신이 아니라, 실제로 우리의 모든 인간 된 처지와 연약함을 아시는 하나님이십니다. 그런데 사도 요한이 이렇게 말합니다. “우리가 보니” 여기에서 보니라는 단어는 “자세히 보니”라는 뜻입니다. 예수가 누구인가 깊이 생각하고 또 생각해 보았다는 것입니다. 자세히 살펴보았다는 것입니다. 그 결과 그가 무엇을 보았습니까? “하나님의 독생자의 영광”을 보았다고 합니다. 즉 사람들은 예수는 십자가에 못 박혀 죽은 사형수에 불과하다고 말하거나, 혹은 예수는 단지 그리스도라는 영이 빌려쓴 껍데기에 불과하다고 말하는 자들에게 “아니다, 자세히 살펴보니 예수는 하나님의 유일한 외 아들이다”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십자가에서 죽은 예수를 자세히 보니 “그는 하나님의 유일한 외아들, 즉 하나님과 같은 출생의 기원을 가진 자, 곧 하나님과 동등한 신성을 가진 하나님이다”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즉 사도 요한은 예수 안에서 무엇을 본 것입니까? 예수는 하나님의 아들, 곧 하나님과 동일한 본성을 가진 하나님의 영광을 본 것입니다.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그런 놀라운 영광을 보았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가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영광을 가진 분인데, 그 안에무엇이 충만하다고 했습니까?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더라고 말합니다. 지속되고 한이 없고 계속해서 다가오는 은혜로 가득하다는 것입니다. 이 은혜가 바로 우리에게 생명을 주는 은혜입니다. 그 생명을 지켜 가도록 계속해서 부어지는 은혜입니다. 그래서 예수 안에 있을 때 이 은혜로 말미암아 마침내 내가 되어져야 할 그 생명으로 새롭게 변화되어가고, 완성되어가는 은혜가 넘치는 것입니다. 또 진리가 충만하다고 말합니다. 진리는 무엇입니까? 모든 사람들이 찾기를 원하는 진리입니다. 진정한 실재입니다. 세상의 헛된 우상, 혹은 거짓 된 주장, 생명 없는 신이 아니라, 진정한 생명을 주는 그 진리로 충만하다는 것입니다. 무슨 뜻입니까? 예수는 태초에 계신 하나님이시오, 모든 만물의 목적이요 존재의 근원이며, 모든 것이 그의 손으로 지으신 이가 육신을 가지고 이 땅에 오셨는데, 그는 바로 하나님의 아들, 하나님과 동일한 본성을 가진 하나님이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 하나님이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셨습니다. 얼마나 우리를 사랑했으면 예수님은 하나님이심에도 인간이 되셨고, 나아가 우리 죄를 대신하여 십자가에 죽기까지 하셨을까요? 그리고 그를 믿음으로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이 놀라운 은혜가 임하였으니 이 얼마나 놀라운 일입니까? 그렇기에 육신을 가졌으나 참으로 하나님이신 예수를 만나는 자, 곧 그 영광을 발견하는 자마다 어떻게 됩니까? 그 삶을 하나님께 드리는 것입니다. 그 가운데 대표적인 사람이 바울입니다. 그는 얼마나 예수를 놀렸습니까? 사이비 이단이라고요? 그러나 그가 부활하신 예수를 비로소 만나고 알았을 때 그의 눈은 뒤집어 졌습니다. 그는 십자가의 예수 모든 만물의 창조자요 구원자요 하나님이심을 알았습니다. 그래서 그는 예수 외에는 다른 모든 것을 배설물로 여긴다고 했습니다. 그는 이 예수에 사로잡혔습니다. 예수야 말로 모든 존재가 믿고 받아들여야 할 하나님이시오, 예수의 하나님 되심과 그 은혜라는 영광에 사로잡힌 것입니다. 2018년 예수의 능력과 영광을 더 깊이 사로잡히는 성도와 교회 되가 되고자 표어를 이렇게 정했습니다. 이 예수의 은혜와 그 영광스런 하나님 되심에 사로잡히는 2018년이 되기를 사모하십시오. 이 예수를 깊이 알고 경험하고 깨닫는 은혜, 그 영광에 사로잡혀 오직 예수 위해 살고, 예수 안에 있는 그 생명을 받아 누리며 모든 영광을 주 예수께 돌리는 새 삶이 되십시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