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주의 말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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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고난주간 둘째날-사랑으로 우리를 품으시는 예수2016-03-28 12:29
작성자 Level 10

오늘 본문은 예수님이 받은 수난의 본격적인 모습을 담고 있습니다. , , , 요의 기자들은 이 수난을 동일하게 포함하여 기록하고 있습니다. 십자가 죽음에 이르는 일련의 수난의 여정 중에서 오늘 본문 예수께서 체포 당하시는 모습, 그런 예수를 보고 도망치는 제자들, 예수를 죽일 거리를 찾으려고 혈안이 되어 있는 대제사장들과 공회원들의 심문, 자신을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임과 장차 영광과 권능으로 다시 임할 자이심을 밝히시는 예수님, 그런 예수를 신성 모독 죄로 몰아 사형에 처해야 할 자로 규정하고, 갖은 수욕과 모욕을 당하는 예수님을 묘사합니다.

 

이러한 묘사를 해나가면서 마태가 특별히 강조하는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이모든 일들이 구약성경에 되어야 하리라 한 그 대로 이루어가는 일임을 강조합니다. 56그러나 이렇게 된 것은 다 선지자들의 글을 이루려 함이니라는 예수님의 말씀이 마가복음에도 기록 되어 있지만, 마태복음에는54 내가 만일 그렇게 하면 이런 일이 있으리라 한 성경이 어떻게 이루어지겠느냐는 말씀이 한 번도 강조 되어 등장하고 있는 것이 그 증거입니다.

 

즉 예수께서 가시는 이 십자가의 길이 철저히 하나님의 구원의 역사를 완성하기 위한 뜻임을 분명히 합니다. 동시에 앞으로 임하게 될 예수님의 십자가 죽음은 한 죄인의 죽음이 아니라 철저히 구약에 예언 된 오시마 한 그 메시야의 죽음임을 분명히 합니다. 반대로 말하면 이 마태복음의 독자인 유대인들, 즉 여호와 하나님의 백성이란 자들이 구약에 예언 대로 여호와께서 보내신 메시야를 죽이려고 철저히 모의 했고, 사형언도를 내렸고, 있을 수 없는 치욕을 메시야에게 행하였음을 고발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백성들이 하나님께서 보내신 메시야를 모독하되, 그 강퍅한 고집을 내려놓기를 끝까지 거절함으로 성부와 성자를 버렸다는 것입니다.

 

왜 이렇게 되었을까요? 하나님을 믿는 다 하지만 여전히 자기를 버리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렇기에 강퍅과 교만에 사로잡혀 진리이신 예수를 거절 한 것입니다. 진리를 받아들일 문이 닫혀 있었고 받아들일 마음 구석이 없었던 것입니다. 그리하여 이 모습으로 끝까지 예수를 대적하여 십자가에 죽이는데 까지 갑니다.

 

이들의 모습은 우리의 모습입니다. 비록 우리가 예수님의 그 죽으심의 은혜로 값없이 용서함을 받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지만, 우리 안에 여전히 남아 있는 죄의 모습이 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을 따를 것인가 내 유익을 따라 행할 것인가의 사이에서 갈등할 때 슬쩍 내 뜻을 따라 행하려 하고, 그렇게 행하는 모습입니다. 완벽하지 않아서가 아니라 우리 안에 여전히 죄로 물든 옛 모습이 살아 있어 하나님을 거절 할 때가 있는 것입니다.

 

유대인들이 예수님을 거절한 그것과 본질적으로 동일한 마음, 곧 하나님 보다 나를 더 중하게 여기고 하찮은 욕심에 하나님을 팔아 먹는 죄가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실은 본문에 나타나는 그 강퍅한 자들의 모습은 실은 우리의 모습입니다. 이들이 우리의 죄의 본성을 대변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본문의 가야바는 바로 나요, 예수께 침 뱉고, 때리고, 조롱하던 그 악한 자들이 바로 나인 것입니다. 그 만큼 우리는 큰 죄인이요, 하나님의 은총과는 너무나 먼 자격 없는 자들입니다. 그런 점에서 우리는 다 우리는 은총이 아니라 저주와 치욕과 정죄를 받아 마땅한 죄인 것입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누가 그 치욕과 정죄와 모욕을 당하고 있습니까?

하나님이신 예수께서 마치 죄인처럼 우리 대신 하나님께 징계를 받으십니다. 우리 자신이 받아야 할 그 수치와 모욕과 고통을 예수님이 대신 짊어지며 우리 아픔과 슬픔을 대신 하신 것입니다. 우리는 예수를 정죄하나, 예수는 우리의 그 죄 마저 품으시고 우리 대신 그 죄인이 당할 수치와 아픔을 가기 것으로 삼으신 것입니다.

 

왜요? 사랑하사 죄인 위에 임할 하나님의 영원한 징계로 슬피 울며 아파할 우리의 눈물과 고통을 보신 것입니다. 자기 죄로 하나님을 버렸지만, 죄로 인해 하나님의 그 큰 사랑과 영광에 이르지 못한 우리 영혼의 고통과 아픔과 눈물을 사랑으로 보신 것입니다. 그리곤 그 큰 사랑으로 우리를 대신하여 멸시와 수치와 조롱을 당하셨고, 급기야는 죽임을 당하셨습니다. 우리의 모든 죄 값을 하나님이신 예수께서 깊고 깊은 사랑으로 담당하셨습니다.

 

우리의 모든 수치와 허물과 죄를 다 품어 주신 것입니다

책망치 않고 다 품어 용서하는 그 큰 사랑이 우리를 죄와 정죄에서 자유 한 새사람이 되게 한 것입니다. 간음한 여인을 정죄하지 않고 새 삶의 자유를 주신 그 큰 사랑이 우리를 자유케 한 것입니다. 할렐루야!

 

이것이 우리를 부르신 예수님의 사랑입니다. 이것이 예수님의 모습입니다.

그것은 사랑입니다. 우리가 이 사랑을 입었습니다.

 

이 주님 앞에 고요히 나갈 때 그 사랑으로 다시 우리를 받아 주실 것입니다.

우리를 맞이하여 주실 것입니다.

우리의 모든 강퍅과 아픔과 눈물을 고통을 녹이는 큰 사랑으로 다시 품어주실 것입니다. 일찌감치 예수를 버리고 도망쳤던 그 제자들도 허물치 않고 다시 받아 주사 참 제자의 길을 가게 하신 것 같이 우리를 품어주실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에게 필요한 것이 무엇입니까?

먼저 사랑의 주님 품에 날마다 나아가 안기는 것입니다.

주의 큰 사랑만이 우리를 새롭게 하고 온전히 고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주의 큰 사랑만이 우리를 억매는 모든 것을 끊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주의 사랑이 모든 것을 이기게 하는 원천이기 때문입니다.

 

이를 위해 주님의 고난과 수치와 십자가의 주를 깊이 묵상해 보십시요.

진정 주를 찾고 만나고 주의 뜻으로만 살고자 하는 간절함으로 주를 묵상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내 죄의 아픔과 수치와 고통과 죽음을 대신 짊어지신 예수님과 아들을 주시기까지 하신 사랑하는 성부 하나님이 그 큰 사랑으로

꼭 안아 주실 것입니다. 고치고 새롭게 하실 것입니다.

용서의 은혜로 감격하게 하시며 용서의 길을 가게 하실 것입니다.

 

오늘날 우리가 잃어버린 언제나 변함없는 사랑과 능력과 영광으로 충만하신 예수입니다. 비록 짧은 기간이나마 이 때 십자가의 예수를 깊이 대면하여 바라 보십시요. 은혜와 권능이 희박해진 시대, 빛나는 예수의 영광과 은혜와 진리로 충만케 될 것입니다. 교회와 시대를 새롭게 하는 한 사람이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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