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본문은 예수님의 수석 제자였던 베드로가 세 번이나 예수를 부인한 사건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이 사건을 통하여 죄가 어떤 결과를 만드는지 보여줍니다.
75절에서 그것을 볼 수 있습니다. 거기에 이렇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이에 베드로가 예수의 말씀에 닭 울기 전에 네가 세 번 나를 부인하리라 하심이 생각나서 밖에 나가서 심히 통곡하니라”
베드로는 자신의 안일을 위해 3년이나 동거동락한 주를 부인하는 자신의 비열한 모습을 처음 부인 할 때부터 알았을 것입니다. 이것은 아닌데 하면서도 주를 부인해야 만 살 수 있다는 본능에 충실하여 하나님 보다 자신을 더 가치 있게 여기는 자신의 모습에 당황하였을
것입니다.
결정적으로 닭이 울 때 자신의 결의와 예수님의 말씀이 떠 올랐습니다. “오늘 밤 너희가 다 나를 버리라” 말씀할 때 “모두 주를 버릴지라도 나는 결코 버리지 않겠나이다” 했던 의기양양한 자신의 모습과 그런 베드로에게 “내가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오늘 밤 닭 울기 전 네가 세 번 나를 부인하리라” 하셨던 말씀이 떠 오른 것입니다.
마음에 하나님이 없는 자들은 이런 죄를 범하여도 내가 뭔 죄를 범했나 하고 개의치 않습니다. 그러나 마음에 하나님을 모신 자들은 마음에 깊은 고통을 격습니다. 성령께서 죄를 깨닫게 하실 뿐 아니라, 죄를 짓는 순간 하나님과 단절 되는 영적 어둠이 임하고,
하나님을 기뻐하는 마음이 즉시 사라지기 때문입니다.
다윗이 우리야의 아내를 범하고 더 나아가 우리야를 교살한 죄로 괴로워하며 성령의 부재를 경험하며, 더 이상 하나님을 친근히 부를 수 없는 고통에 싸여 있는 영혼처럼 되는 것입니다.
살아 있으되 죽은 영혼처럼 깊은 죄책감과 수치감에 싸여 있는 어두운 영혼이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를 믿는 믿음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도리어 죄책감에 시달립니다. 우울한 영혼이 되는
것입니다. 생명력을 잃은 영혼이 되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베드로 처럼
아픔 마음을 품고 울며 괴로워 할 수 밖에 없게 되는 것입니다.
물론 죄책감이 주는 유익도 있습니다. 죄책감으로 인하여 자신의 행동을 절제 하게 되기 때문입니다. 양심을 거슬러 행하지 않게 하는
것입니다. 또 죄책감을 인하여 자신의 잘못을 뉘우치고 새롭게 될 기회를 줍니다. 이런 점에서 장점이 되기도 합니다.
그러나 해로운 면도 있습니다. 죄책감이 바르게 해결 되지 못 할 때 육신과 정신에 큰 영향을 끼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자신을
고립시키고 영적으로 무기력하게 됩니다. 오늘 베드로가 괴로워하며 통곡한 것 같이 사람을 심히 움츠려 들게
합니다.
우리 모두는 죄와 그 것으로 인한 죄책감에서 벗어나는 자유가 필요합니다.
어떻게 해야 우리는 죄와 죄책으로부터 자유케 되는 영혼이 되되,
날갯짓하며 창공을 가르듯 높이 나는 독수리 같이 될까요?
다윗이 바세바를 범하고 그녀의 남편 우리야를 죽였을 때 그는 괴로워하면 깨달았습니다. 하나님께 구하시는 것은 많은 소와 양을 바치는 제사가 아니라, 상한 심령, 상하고
통회하는 마음이라는 것을 깨달았습니다.(시51:17)
즉 자기 죄를 인하여 그 죄를 진정으로 회개하는 마음입니다.
하나님을 아프게 죄를 인하여 하나님 앞에 죄를 고백하며 하나님의 자비와 긍휼을 구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우리가 주께 나아 갈 때 “신실하시고 의로우신 하나님께서 우리 죄를 사하시고 모든 불의에서 깨끗하게 하사 죄책감에서 자유를 주십니다. 용서 받은 새 영혼의 자유가 임하는 것입니다.
창공을 가르고 높이 솟는 독수리 같은 자유를 주시는 것입니다.
[어떤 분이 오래 전에 지은 죄로 깊은 죄책감에 시달렸습니다. 과거에 지었던
죄가 그 자신을 파고 들어왔던 것입니다. 이상할 정도로 죄가 마음을 괴롭게 했습니다.
그래서 구원의 확신마저 흔들렸습니다. 그 죄로 인하여 눌려 죽을 지경이 되었습니다.
그러자 밥 맛도 사라졌고 사람들 만나는 것이 실어졌습니다. 밤엔 잠을 잘 수가 없었습니다.
정말로 잠이 오지 않아 괴로워하던 어느 날 밤엔 지었던 죄와 착한 일 한 것을 생각해 내었습니다. 그리곤 착한 일 하나 빼고, 죄 하나 빼고, 착한 일
하나 빼고, 죄 하나 빼기를 밤새도록 했습니다. 그러나 결국에 남는
것은 죄뿐이었습니다. 결국 이 죄 짐에 눌려 기도원까지 들어가 금식하며 기도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면서 말씀을 묵상했습니다.
그러다 골로새서 1:14절 “그 아들 안에서 우리가 속량 곧 죄사함을 얻었도다”을 읽는 순간 그렇게 짓누르던 죄책감이 한 순간에 도망갔습니다. 또 이 말씀 앞서 13절 “그가 우리를 흑암의 권세에서 건져내사 그의 사랑의 아들 나라로 옮기셨으니”을 다시 읽으며 완전한 자유가 임했습니다. 그리곤 이 놀라운 자유에 감격하여 추운 겨울 인데도 밖으로 나가 두 손을 벌려 하나님을 찬양하며 감사했습니다. 두 시간을 이렇게 찬양하다 보니 손이 얼어 양 호주머니에 넣고 발로 뛰면서 “하나님 감사합니다” 고 고백했습니다. 나중에는 숨이 차 누워서 “하나님 감사합니다” 할 때 두 눈에서 뜨거운 눈물을 쏟아져 내렸습니다. 죄에서 자유하게 되는 은혜와 감격이 휘감은 것입니다.] 할렐루야!
나를 억누르던 그 어떻게 할 수 없는 나 만이 아는 그 죄와 고통을 용서 받고 씻음 받을 때
우리 영혼은 자유를 누립니다. 되 살아 나는 것입니다.
진실하시고 변함없는 사랑의 주와 하나님께서
상하고 통회하는 마음으로 주 앞에 엎드린 영혼을 아무런 책망 없이
그 큰 사랑을 맞아 주사 다 용서하여 주시기 때문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 영혼이 나를 짓누르고 억압하고 움츠리게
하는 죄의 권능과 그 죄책감에서 벗어나 자유 할 수 있는 길은 우리를 책망치 않고 품어 용서하사 새롭게 하시는 주님 밖에 없습니다.
이 고난 주간 동안, 아니
매일의 삶 속에서 죄가 우리 자신을 억누를 때
지체 주님 앞에 상하고 통회하는 마음으로 나아가야 하겠습니다.
주의 자비와 긍휼을 구하며 엎드려야 하겠습니다.
그리하여 주님처럼 우리도 또한 큰 사랑으로 품고 용서하며 자유케 하는 길을 가야 하겠습니다. 거기에 하나님 나라가 임하는 놀라운 역사 일어날 것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