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주의 말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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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영적 소경들에게 고함(요9:1-7, 사순절넷째주일)2011-04-05 12: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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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말씀은 태어날 때부터 보지 못하는 소경을 예수님께서 고쳐주신 사건에 대한 것입니다. 당시에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 사람의 부모가 죄가 많아 그렇게 태어난 것으로 이해했습니다. 하지만 예수님은 이것은 부모의 죄 때문에 그렇게 된 것이 아니라고 분명히 말씀합니다. 오히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그렇게 태어났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하시는 일을 나타내고자함이라

 

그리고는 이 소경의 눈을 뜨게 하고 보게 합니다. 그런데 문제는 여기서부터 생깁니다. 하필 소경의 눈을 고쳐준 날이 안식일입니다. 이 날에는 그 어떤 일들도 해서는 안 됩니다. 그러자 그러지 않아도 고깝게 보지 않았던 엄격한 율법주의자들이었던 바리새인들이 걸고넘어집니다. 안식일에는 일하지 말하는 계명을 어기고 소경의 눈을 뜨게 한 것을 볼 때 이 사람은 하나님에게서 온 사람이 아니다.

 

하지만 문제는 태어나면서부터 소경이었던 이 사람이 눈을 떴다는 것입니다. 안식일을 범했다고 욕을 하긴 하는데 눈을 떴으니 보통 일이 아닙니다. 무시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 바리새인들이 눈을 뜬 소경이었던 사람을 두 번이나 불러서 확인을 합니다. 네가 볼 때 네 눈을 뜨게 한사람이 누구라고 생각하느냐

 

두 번째로 불려간 소경은 이 질문에 이렇게 대답을 합니다.

이상하다. 이 사람이 내 눈을 뜨게 하였는데 당신들이 그가 어디서 왔는지 알지 못합니까. 하나님이 죄인을 듣지 아니하시고 경건하여 그의 뜻대로 행하는 자는 들으시는 줄을 우리가 다 아는 바입니다. 세상이 창조된 이후 소경으로 태어난 자의 눈을 뜨게 했다 말을 들어보지 못하였으니, 이 사람이 하나님께로부터 오지 않았다면 아무 일도 할 수 없었을 것이다.’(30-33)

 

소경의 입장에서 볼 때 의심하는 바리새인들이 이상하게 보였습니다. 세상이 창조된 이후로 태어날 때부터 소경된 사람이 눈을 떴다는 얘기를 들어본 적이 없을 만큼 놀라운 일이 자기 자신에게 일어났고, 그 자신이 지금 바리새인들 앞에서 산 증인이 되어 말하고 있는데도 예수님이 하나님께로부터 온 것을 의심하는 사람들을 이해 할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자기에게 일어난 일은 하나님께로부터 온 분이 아니고서는 할 수 없는 일임이 분명했기 때문입니다.

 

이에 바리새인들은 네가 온전히 죄 가운데 태어나서 우리를 가르치느냐하고 책망하며

이 사람을 쫓아냅니다. 그리고 쫓겨난 이 사람을 예수님이 다시 만납니다.

그리고 묻습니다. 네가 인자를 믿느냐?

 

이 질문의 의미는 네 눈을 고쳐준 이가 구원자임을 믿느냐?’라는 질문입니다. 이 질문을 통해 이 소경이 자신의 눈을 고쳐준 사람을 어떻게 여기고 있는지를 확인하십니다. 이에 이 사람이 말합니다. ‘주여 그가 누구입니까? 내가 믿고자 합니다.’

 

태어날 때부터 소경된 자신에 볼 수 있는 눈, 빛을 준 이 놀라운 사실에 그는 주저함이 없습니다. 그런 일은 하나님께로부터 온 자가 아니면 일어날 수 없다고 믿었던 것입니다. 소경된 입장에서 볼 때, 남들이 죄 때문에 소경이 되었다고 비난 받던 이 사람이 눈을 뜨게 해주셨다는 것은 이제 죄인이라는 굴레에서 벗어났다는 것을 의미하고, 하나님의 용서가 임했다는 것을 말합니다. 그렇기에 이러한 일은 아무나 하는 일이 아니요, 오직 하나님께서 아시는 일이라고 믿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그렇기에 그는 주저 없이 내가 믿고자 합니다.’라고 말합니다.

 

이에 예수님께 분명하게 말씀하십니다. ‘네가 그를 보았고 지금 너와 말하는 자가 그이다’’이 말씀은 구원자로 온 이가 지금 너와 얘기 하고 있는 나이다.’라는 말씀입니다.

이제 소경은 내가 믿나이다.하고 엎드려 절합니다. ‘예수님이 구원자로 하나님께로부터 오신 분이심을 믿는다.라고 고백합니다.

 

이 때 예수님께 아주 중요한 말씀을 하십니다.

내가 심판하러 이 세상에 왔으니 보지 못하는 자들은 보게 하고 보는 자들은 소경이

되게 하려 함이라’(39)

 

오늘 이 스토리의 중심은 소경된 자에게 맞추어져 있는 것 같이 보입니다. 그러나 오늘의 스토리는 소경을 통하여 하나님의 일을 나타내시는 예수님께 초점이 맞추어져 있습니다. ‘예수님은 누구냐?’ 하는 것입니다.

 

이 이야기 속 5절 에서 예수님은 자신을 세상의 빛이라고 말씀하셨음을 증거합니다. 그리고 소경이 눈을 뜨는 놀라운 사건을 통하여 세상의 빛으로 오신 예수님이심을 상징적으로 증거합니다. 그러면서 사도 요한은 이 사건의 좌우에 부모의 죄 때문에 태어날 때부터 소경된 비참한 인생의 길을 아무런 소망이 없이 걸어가는, 그래서 그야말로 오직 하나님의 긍휼이 아니면 살아갈 수 없는 낮아진 사람이 있고 반대편에 모세의 율법대로 산다고 자부하여 최고의 경건의 모양을 갖춘, 그러나 실제로는 율법의 잣대로 남을 정죄하기에 바쁜, 그래서 심지어 구원자로 오신 예수마저 율법의 잣대로 죄인으로 몰아붙이는 바리새인들, 한 마디로 교만의 정점에 올라 있는 자들을 배치해 놓았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의 역설적인 심판의 말씀으로 이 사건을 정리합니다. 내가 심판하러 왔으니 보지 못하는 자들은 보게 하고 보는 자들은 소경되게 하려 함이라

 

이 말씀은 오늘날 세 부류의 영적 소경에게 말씀하십니다.

첫째, 예수가 우리의 구원자이심을 믿지 못하는 영적 소경에게 말씀하십니다.

나는 네 인생의 빛이다

5절 말씀에서 예수님은 나는 세상의 빛이다라고 제자들에게 말씀하셨습니다. 오늘 말씀에서 소경으로 태어나고, 소경으로 살고 있고, 또 그렇게 죽어갈 한 소경의 눈을 뜨게 해주십니다. 어두운 인생의 영혼에게 육체적인 눈이 떠지게 하는 그것을 통해, 이 불쌍한 영혼의 마음을 죄와 어둠의 구렁에서 건져 자유인이 되게 하십니다. 육체의 눈을 뜨게 하여 그것을 통해 죄인으로 지탄 받으며 살아가는 이 부모와 이 사람에게 자유를 주십니다.

실제로는 이들에게 죄가 있었던 것이 아닙니다. 그러나 당시의 종교적 사회적 평가는 부모가 죄를 지어 그렇게 되었다고 평가하고 있었기에 이들은 죄인으로 낙인찍힌 삶을 살아가는 비참한 모습이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아니면 할 수 없는 치유의 역사를 통하여 하나님의 은혜가 임하였고, 이는 그 동안의 모든 죄의 짐이 용서받고 풀린 것임을 선포하는 것과 다름이 없었습니다. 예수님은 이 영혼의 아픔을 이렇게 풀어주셨습니다.

 

예수님은 우리 인생의 어두움을 몰아내시는 빛이십니다. 예수님은 내 인생의 어둠속을 뚫고 들어오셔 내 안에 영원이 꺼지지 않는 빛이 되시고자 오신 분이십니다. 죄와 그 죄책감과 형벌의 두려움에서 건져내어주시는 분이시요, 인생의 무의미와 허무의 고뇌에서 건져내어 주시는 분이십니다. 나의 무기력함과 패배의 의식에서 건져 내어 소망을 주시는 분이십니다. 그 증거로서 소경의 인생에 빛을 주신 이 사건을 통해서 우리 모두에게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이 소경에게 빛을 준 나를 너는 믿느냐? 아니면 너도 바리새인의 편에 설 것이냐?’

 

우리 중에 누구든지 , 이 소경에게 인생의 의미와 빛을 주사 그 긴 인생의 어둠과 죄책감에서 벗어나게 해주신 예수님이 나의 인생을 위해 오신 구원자요 빛이심을 믿고 싶습니다.’하고 진심으로 고백하며 겸손히 자신을 낮추고 받아들이는 영혼에게는 예수님이 그 인생을 생명의 길로 인도하시는 주가 되어 주실 것입니다.

 

세상의 헛것을 붙들고 있는 모든 영혼들에게 예수님은 말씀하십니다. ‘나를 믿고 영적인 소경에서 벗어나라예수님께서 말씀하십니다.

 

둘째로 예수를 믿지만 예수 보다 다른 것을 더 의지하는 영적소경들에게 말씀합니다.

내가 네 인생의 빛임을 신뢰하고 네 인생의 길을 내게 맡겨라

이 사건의 다른 한 쪽에는 하나님을 잘 믿는다고 자부하면서도 실제로는 눈이 먼 사람들이 나옵니다. 율법을 잘 지킨다고 하면서 남을 정죄하고 더 중요한 실제 계명,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는 계명은 헌신짝처럼 버린 종교인들입니다. 겉으로는 하나님을 잘 믿습니다. 번지르르 합니다. 경건한척 하는 모양에 있어서는 둘째가라면 서러운 사람들이 당시에 바리새인들이었습니다.

 

예수님은 이들을 육신의 눈은 떴지만 실제로는 소경이라고 책망하였습니다. 하나님을 믿는 다고 하면서 하나님께서 보내신 예수를 멸시하고 죄인으로 몰아부치는 영적 소경이었던 것입니다.

오늘날 이러한 사람들은 누구입니까? 예수를 믿는 다고 하면서도 실제로는 안믿는 사람들입니다. 다시 말해서 예수님께 내 인생의 빛이심을 신뢰하지 않습니다. 믿는다고는 하지만 자신의 인생을 주 예수께 맡기지 않는 사람들입니다. 예수님은 꿔다 논 보리자루 같습니다. 예수님의 사랑과 하나님 되심과 내 인생의 빛이 되심을 신뢰하지 않습니다. 이 신뢰가 없으면 믿음은 흔들리고 믿지 않는 사람과 똑 같이 우왕좌왕하며 흔들리는 삶을 살게 됩니다. 그래서 이러한 사람에게 나타는 특징은 믿음의 능력이 나타나지 않는 다는 것입니다. 예수님 보다 다른 것을 더 의지하기 때문입니다. 돈을 붙듭니다. 사람을 붙듭니다. 자기 능력을 붙듭니다. 이런 저런 것도 없으면서 신뢰하지 않는 사람은 깊은 우울과 상실감에 빠져 헤맵니다. 내 인생은 어째 이 모양이냐 하고 슬피 웁니다.

 

그러나 무엇을 가졌다 한들 이러한 것들은 다 없어지고 말 것들이며 힘이 없습니다. 하나님 되신 예수님의 그 능력과 권세와 사랑과는 비교조차 할 수 없는 것들입니다. 그런데도 예수님 만을 의지하는 것이 아니라 눈에 보이는 것을 찾습니다.

 

나무가 흔들리는 이유는 보이지 않지만 바람이 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영적인 소경은 나무가 흔들리기 때문에 바람이 생긴다고 봅니다. 예수님이 빛으로 오셨음에보 불구하고 보이지 않는다 하여 보이는 것을 쫓는 사람이 그와 같은 사람입니다. 소경입니다.

 

그러나 신뢰하는 자들은 예수님과 그 말씀을 신뢰합니다. ‘이것을 너희에게 이름은 너희로 내 안에서 평안을 누리게 하려 함이라. 세상에서는 너희가 환난을 당하나 담대하라 내가 세상을 이기었노라하는 말씀과 이 말씀을 하신 예수님을 신뢰하고 주를 따릅니다.

 

예수님과 그 하신 말씀은 오늘도 믿는 자들에게 살아있는 분이요 말씀은 살아있는 분의 약속이기 때문입니다. 자기 생명마저도 내어주시는 그 큰 사랑으로 그 약속을 지금도 지키시는 분이심을 믿기 때문입니다. 주 예수께서 죽으신 그 십자가를 통해 예수님은 이렇게 말씀합니다. ‘이 십자가가 내가 너희에게 한 모든 약속의 산 증거이다. ’ 그리고 부활을 통하여서는 이것이 단지 한 사람의 희생적인 사랑이 아니라, 하나님의 약속임을 보여주십니다.

 

여러분이 붙들고 있는 것은 무엇입니까? 십자가와 부활의 주 예수 그리스도를 신뢰하십시오. 소경의 영혼에 빛을 비추어 주심같이 우리에게 오셔서 내 영혼의 어둠을 몰아내실 분은 내 인생을 위하여 친히 십자가를 지시까지 사랑으로 우리에게 오신 하나님 예수입니다.

 

셋째로 예수를 믿으나 세상에서 빛으로 살지 못하는 소경들에게 말씀합니다.

나를 신뢰하고 나를 따르라

본문에서 바리새인들은 하나님을 믿는 자들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의 역할은 빛으로 오신 예수의 생명을 빼앗는 역할을 하였습니다. 그들은 세상의 어둠이었습니다.

 

반면 소경이었던 사람은 당시에 사회적으로 볼 때 죄인이었습니다. 함께 하고 싶지 않는 사람이었습니다. 사람의 눈으로 볼 때는 그는 그 사회의 어둠이었습니다. 그러나 이 사람은 예수를 만남으로 지금 우리에게까지도 예수의 빛을 발하는 사람으로 남아 있습니다. 어둠이었던 사람이 빛이 된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에베소교회에게 이렇게 편지합니다.

너희가 전에는 어둠이더니 이제는 주 안에서 빛이라 빛의 자녀들처럼 행하라 빛의 열매는 모든 착함과 의로움과 진실함에 있느니라. 주께 기쁘시게 할 것이 무엇인가 시험하여 보라(5:8,9,14)

죄와 인생의 어둠에서 건지움을 받은 빛의 자녀로 합당하게 살아갈 것을 교훈하는 말씀입니다. 빛의 열매는 [모든 착함:관대함과 온유함, 의로움: 하나님과 사람 앞에서의 공정함, 과 진실함:순수하고 정직함]이라 말씀합니다.

 

예수님을 주로 믿고 살아가는 성도는 예수님의 삶을 따르는 사람들입니다. 예수님의 방식을 삶의 제 일 원리로 두고 있는 사람들입니다. 예수님께서 이 땅에서 보여주신 자신을 낮추고, 의와 사랑의 길을 생명 다해 걸어가신 그 삶의 방식을 따르는 사람들입니다. 이것이 하나님이 자녀, 빛의 자녀들의 모습입니다.

 

이 삶에서 모든 착함과 의로움과 진실함의 열매가 맺힙니다. 그 결과 빛의 자녀들을 대하는 영혼 안에도 믿음의 싹이 돋습니다. 예수를 향한 마음의 문이 열리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만일 우리가 여전히 어둠의 자녀들처럼 행한다면, 우리가 아무리 우리는 빛의 자녀다. 우리는 성도다말하여도 아무런 힘이 없을 것입니다.

 

어둠의 일은 무엇입니까? 음행과 더러운 것과 탐욕과 누추함과 어리석은 말과 희롱의 말을 하는 것입니다. 특히 우리는 말을 조심해야 합니다. 바울이 말하는 더러운 것, 누추함, 어리석은 말, 희롱의 말이라고 말하는 바와 같이 의 악한 모습을 강조하여 버리라고 말하는 것 같이 말이 영혼을 다치게 하기 때문입니다.

 

성도의 마음속에는 어떤 말이 살아있어야 합니까? ‘내 이웃의 영혼을 살리는 말이 살아있어야 합니다. 예수님이 우리를 부르심은 내 영혼을 빛으로 채울 뿐 아니라, 그 빛으로 이웃의 영혼을 살리는 빛이 되게 하려 부르셨기 때문입니다. 그렇기에 예수님을 진실로 믿는 자들은 어떤 마음을 품고 있습니까? 예수님과 같은 마음을 품고 있습니다. 즉 원수일망정 그 영혼이 하나님의 형상을 회복한, 하나님의 성품을 닮은 사람이 되기를 위하여 끝까지 사랑의 길을 가는 예수님의 마음을 품습니다. 그래서 이러한 예수님의 뜻이 이루어지기까지 눈물 흘려 기도하고, 때로는 강퍅하여진 자신의 마음에 채찍질을 하며 다시 예수의 마음으로 돌아섭니다. 예수님께서 참 인생이란 이웃을 사랑하는 것이라라는 말씀 앞에 순종합니다.

 

우리는 요즘 구역 예배를 통하여 영혼을 살리는 대화에 대해서 책을 읽고 나누고 있습니다. 이 책의 핵심요지는 우리 모두는 영혼을 살리는 대화를 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의 대화가, 보이지 않는 곳에서의 우리의 기도와 말이 우리 공동체의 한 영혼 한 영혼을 하나님으로 가득 채워지게 하는 길을 갈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이 책을 통하여 하나님은 우리게 말씀하십니다. ‘영혼을 살리는 영혼의 대화를 하는 사람이 되라

 

예수님을 신뢰하고 따름은 바로 예수님과 그 삶의 방식을 따르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러한 예수님을 따르는 자로 내 이웃의 영혼이 하나님의 형상이 되기까지 져야할 십자가를 지라고 부름 받은 사람들입니다. 영혼을 살리라고 부름 받았습니다. 이제 우리 안에 빛으로 오신 예수님의 길을 따름으로 율법의 잣대로 사람을 정죄하던 바리새인의 모습에서 떠나야 할 것입니다. 그리고 다시 그 옛길로 돌아서지 말아야 할 것입니다.

 

내 이웃과 우리 공동체의 한 영혼 영혼이 하나님으로 가득 채워진 모습을 꿈꾸며, 모든 것을 믿고, 견디며 주님과 같이 깨어 기도하고 십자가를 지십시오. 이 길이 주님을 신뢰하고 따르는 길입니다. 어둠의 길을 버리고, 빛의 자녀 같이 사랑으로 깨어 주를 따르십시오.

 

우리의 인생의 빛이 되신 예수님을 마음에 모심으로 영적 소경에서 벗어나십시오.

십자가와 부활로 말씀하시는 예수님이 내 인생의 빛이심을 신뢰하십시오. 신뢰함으로 예수님과 그 삶의 방식을 따르십시오. 생명과 진리와 빛이 되신 예수님 우리 안에 계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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