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께서는 왜 부모를 공경하라고 하셨을까?
우리의 죄와 악함과 이기심에 대한 반성을 위해입니다. 무심해 지는 것을 막기 위해서입니다. 무시하는 것을 막기 위해서입니다. 더 악해지고 강퍅해지는 것을 막기 위해서입니다. 나아가 그 은혜를 헤아려 깨닫게 하려 함이요 행복이 길이 여기 있음을 알게 하려 하심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이 말씀을 들을 때 우리를 살피게 됩니다. 나의 내 삶이 바쁘다는 핑계로 외면하지는 않는지. 삶속에 혹시나 부모님을 아프게 해드린 것은 없는지. 혹시나 내 생각대로 고집을 부리고 깊은 뜻을 헤아리지 못한 것은 아닌지. 내 꿈을 위하여 부모를 이용해먹는 나쁜 놈은 아닌지 반성하게 합니다. 철이 안 들어 아직도 부모님의 은혜를 잊고 있는 불효자가 아닌지 깨우쳐 줍니다.
그러나 이 말씀이 내 영혼의 심금을 울리는 말씀으로 살아 있느냐 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살아있으면 순종할 것이요, 죽어 있으면 피하고 싶은 말씀이 되기 때문입니다.
이 말씀이 살아 있는 말씀이 되는 길은 예수 안에서 부모님을 볼 수 있어야 합니다. 자신이 죄인이라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예수를 바르게 만날 때 자신의 죄의 모습을 보게 됩니다. 부모님을 속 썩여드린 일, 거짓말 한일, 부모님의 마음을 모른 채 어린아이 같았던 모습들을 깨닫게 됩니다. 단순히 내가 잘 못했구나 하는 것이 아니라, 나로 인하여 아버지, 어머니의 영혼이 얼마나 아프고 힘드셨을까를 깨닫게 되는 것입니다.
심지어 나를 힘들게 하고 상처를 주었던 것 까지도 용서하고 아버지의 영혼, 어머니의 영혼을 향한 진정한 애정을 품을 수 있습니다.
또한 나를 나으시고 기르셔야 했고, 그러기 위해서 모진 삶을 살면서 때론 실수도 하시고 아픔도 주셨던, 그러나 동시에 한 영혼으로서 살아온 날들의 수고와 땀이 후회의 삶이 아니었음을 고백하고 싶은 소박한 한 인간으로서의 염원을 볼 수 있습니다. 아버지 어머니 이자 한 인간으로서의 연약한 영혼의 모습을 보는 것입니다.
이렇게 예수님의 눈으로 한 영혼의 아픔과 눈물을 알게 될 때 비로소 우리는 가슴 깊은 곳에서 나오는 진정한 회심의 눈물을 흘리고 어머니 아버지를 향한 새 마음을 품을 수 있습니다. 자식으로서 아버지 어머니를 향한 눈이 열리는 것입니다. 단순히 부모님이 아니라, 나의 기도와 사랑과 나의 인정과 나의 따뜻한 웃음이 필요한 한 영혼임을 보는 것입니다. 그럴 때 우리는 부모님의 은혜에 대한 감사와 더불어 사랑으로 네 부모를 공경하라는 이 말씀을 즐거이 순종하는 우리의 삶이 됩니다.
예수님의 은혜로 살아생전에, 더 늦기 전에 예수님 안에서 부모님을 이해하고, 혹은 용서받고 용서하며, 겸손히 높여 섬기십시오. 높여 존경의 마음을 담아 드리십시오.
이렇게 말씀에 따라 예수 안에서 부모님을 새롭게 볼 때 우리는 새로운 관계를 맺어 가게 됩니다.
1. 그래서 부모님께 대한 말과 태도가 달라집니다.
한 신문에서 50대 이상 205명에게 설문 조사를 했습니다.
평소 자식들에게 상처 받은 말은 무엇인가라는 질문에 이렇게 답을 했습니다.
3위 바빠서 못 찾아뵙겠습니다.(21.2%)
2위 휴대폰, 인터넷 같은 기계 작동을 두고 흔히 ‘이것도 못하세요’라는 말
1위 아버지(어머니)와는 말이 안통해요.
한 정신과 전문의는 부모가 나이 들어 경제력 등 주도권을 상실하게 되면 ‘이것도 못하네.’ ‘말이 안 통하네.’ 같은 사소한 말에도 쉽게 상처를 받는 다고 합니다. 부모님도 상처 받은 영혼이라는 사실을 깨닫고 말과 표정과 행동을 삼가 행해야 하겠습니다.
오늘이 어버이 날인데, 이런 날에 부모님들께서 가장 듣고 싶은 말이 있습니다. 어떤 말을 듣고 싶어 하실까요?
3위 ‘오래 오래 건강하게 사세요’(18%)
2위 ‘저희 걱정은 마시고 이제 부모님만 위해서 사세요’(30%)
1위 ‘잘 키워 주셔서 고맙습니다’(41.2%)
박정희 이래 아동 가족 상담연구소장은 ‘혼자서 충분히 결정할 수 있는 일도 부모님 의견을 구하라’고 조언을 합니다. ‘자식에게 도움이 되는 존재라는 자존감을 통해 여전히 살아 있음을 느끼기 때문에 두툼한 현금보다 몇 배 더 큰 기쁨이 된 다’는 것입니다. (조선일보 2009년 5월 8일)
말과 태도를 바꿈으로 부모님을 높여 섬기시기 바랍니다. 부모님의 마음이 힘을 얻으시고 자식 둔 보람을 더 얻으실 것입니다.
2. 부모의 마음을 기쁘게 해드리는 더 좋은 모습은 부모님의 뜻을 존중해 드리는 것입니다. 때로는 자식들이 부모의 마음을 아프게 할 때가 있습니다. 자녀들이 쉽게 범하기 쉬운 실수요 잘못입니다. 물론 부모님께서 자식들의 마음을 잘 모르셔서 그럴 때도 있지만 자식들이 부모의 마음을 더 모를 때가 많습니다. 이럴 때 우리는 충분히 대화를 많이 해야 합니다. 그래서 서로의 생각과 뜻을 이해하고 바른 길을 찾고 합의해야 합니다. 그러나 보통 자식을 이기는 부모가 없습니다. 아무리 설득을 해도 자식들이 듣지 않을 때가 있습니다. 자식의 경험 없는 미숙한 지식과 지혜에서 나오는 확신은 때론 한심하기 짝이 없지만, 자식들은 그것을 모르고 고집을 부릴 때는 어쩔 수 가 없는 것이지요.
미국의 초대 대통령이 되었던 조오지 워싱턴은 그가 젊은 시절에 배를 타고 싶어 했습니다. 그래서 선원이 되겠다고 마음먹고 어머니에게 허락을 구하였습니다. 그런데 그의 어머니는 아들이 바다로 나가는 것을 기쁘게 여기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아들이 원한다고 하니 할 수 없이 허락을 해주었습니다. 드디어 떠나는 날이 다가 오자 워싱턴은 짐을 꾸려 하인에게 옮겨 줄 것을 부탁한 뒤 작별 인사를 하기 위해 어머니를 찾아 갔습니다. 아들의 인사를 받으며 그 어머니는 줄곧 눈물을 흘리고 계셨습니다. 워싱턴은 어머니의 눈물을 보더니 하인을 불러 마차에 실은 짐을 다시 내려놓으라고 했습니다. ‘어머니의 마음을 상심 시켜 드리면서까지 갈 수는 없다’는 것이 이유였습니다. 이런 아들을 보며 어머니는 ‘하나님께서는 분명히 부모님을 존중하는 자에게 축복을 주시겠다고 하셨다. 나는 그 약속을 믿는다.’ 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결국 그를 미국의 초대 대통령이요, 지금 도 존경 받는 지도자로 세워주셨습니다.
성경에서 가장 존경 받는 왕은 다윗 왕입니다. 다윗이 왕이 된 연유를 한 목사님은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그의 인품을 보셨다는 것입니다. 다윗은 아버지 이새의 7곱 번째이자 막내아들입니다. 아버지 이새는 다윗이 막내임에도 불구하고 그에게 양을 치는 일을 맡겼습니다.
‘양치기소년’의 우화에서 알 수 있듯이 양치는 일은 지루하기 짝이 없는 일입니다. 얼마나 재미없으면 ‘늑대가 나타났다’라는 장난을 쳤겠습니까? 이렇듯 재미없고 따분하고 힘든 말할 것도 없는 이 양치는 일을 다윗은 소년의 나이에도 불구하고 잘 수행했습니다. 양치는데 전문적인 소질을 가졌다는 것이 아니라 아버지의 뜻을 따라 아버지의 양을 지키는데 힘을 다했다는 것입니다. 심지어 다윗은 짐승들이 양을 헤치려 할 때도 피하지 않고 그것을 맞서 싸우며 지켜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부모의 것을 지키기 위해 최선을 다하는 다윗의 모습 속에서 왕의 모습을 보았습니다. 즉, 부모의 뜻을 따르기 위해 최선을 다하는 모습가운데 미래의 모습이 담겨 있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뜻을 따를 자임을 본 것입니다.
부모님은 하나님의 뜻과 사랑을 대신하여 우리를 사랑하고 가르치고 이끌어주시는 분들입니다. 그 마음을 헤아려 삼가 높여 뜻을 존중해 드리는 자녀들이 되십시오. 이는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부모를 세우신 뜻을 높여 드리는 것입니다. 이러한 자녀를 둔 부모님은 행복한 분들입니다. 부모님의 뜻을 존중함으로 부모님을 공경해야 하겠습니다.
3. 우리는 부모의 희생의 수고와 사랑의 눈물을 기억해 늘 감사의 마음으로 높여 섬겨야 합니다. 우리 부모님들은 자식을 위하여 생명을 아끼지 않는 사랑을 쏟아 부으십니다.
오늘 주보 앞면에 한 사진이 실렸습니다. 한 아기 어머니께서 갓 태어난 아기를 보며 행복해 하는 모습입니다. 이 어머니는 일본인입니다. 이 어머니는 지난 지신으로 인한 쓰나미 속에서 만삭의 몸으로 겨우 살아남았습니다. 그리고 옹색하기 그지없는 대피소에서 아기를 낳았습니다. 이 어머니는 자신의 배속에 있는 아기를 살렸고 이렇게 보고 있음에 그 재난의 와중에서 행복한 웃음을 짓고 있습니다. 어머니의 깊은 사랑의 마음을 보여주는 사진입니다.
이렇듯 자식에 대한 부모의 사랑은 자기 생명보다 더 귀합니다.
[학교 운동회를 하는 날이었습니다. 하늘에 만국기가 걸리고 아이들은 예행연습을 통해 연마한 실력을 부모님들 앞에 드러내기 위해 준비된 날이었습니다. 그동안 몇 차례에 걸쳐 연습한 아이들은 그 날을 기대하고 부모님을 초청하였습니다. 시골에서 용돈을 받지 못하던 아이들이 그날만은 부모님으로부터 돈을 받아 풍선도 사고, 먹고 싶은 과자도 사고 나팔도 사곤 하였습니다. 모두가 마음이 가을 하늘 높은 곳을 날아가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영희 만큼은 운동회 날이 다가오면 다가올수록 마음이 무거웠습니다.
매년 마다 하는 운동회도 아니지만 이제까지 한 번도 어머니를 학교에 모시고 오지 않았습니다. 간혹 선생님이 부모님을 모시고 오라고 하면 아버님을 모시고 온 경험은 있었지만 어머니만큼은 6학년이 되기까지 한 번도 학교에 모시고 오지 않았습니다. 이제 마지막 운동회입니다. 다른 아이들은 즐거움에 차있었지만 영희는 운동회 날이 다가올수록 마음에 검은 그림자가 짙어지고 있었습니다.
초등학교 1학년 때 반 친구 아이들과 먼지 나는 신작로를 걸어가는데 어머님이 밭에서 일하고 오다가 영희를 만났습니다. 어머니는 반가워 영희를 불렀습니다. 영희는 아무 말도 않고 어머니를 바라보고 친구들과 갔지만 아이들은 영희에게 물었습니다.
"저분이 너희 어머님이시냐?" "왜 발은 저렇게 저느냐?"
"너희 어머니 너무 못생겼다" "얼굴에 저렇게 왜 흉터가 많아"
그 후 영희는 친구들과 함께 길을 가다 어머니를 만날까 겁이 났습니다.
그리고 학교에 어머님을 모시고 가는 것은 상상하기도 싫었습니다.
"나도 다른 아이들의 어머니처럼 예쁜 어머니가 있었으면 좋겠다" 라고 생각할 때가 한 두 번이 아니었습니다. 초등학교 3학년 때 어머니날이었습니다. 학교에서 어머니를 다 모시고 오라고 했습니다. 영희는 선생님의 엄하신 말씀을 생각하면 모시고 가지 않을 수가 없었습니다. 그렇다고 어머니를 모시고 가면 분명 아이들의 놀림감이 될 텐데 모시고 갈 수도 없었습니다. 영희는 집에서 나와 산으로 올라갔습니다. 뒷동산에 올라가니 이름 모를 꽃들이 피어 있었습니다. 조금은 추웠지만 개울물이 흐르는 계곡에서 하루 종일 혼자 놀았습니다. 영희는 아무도 없는 산 속이 너무도 좋았습니다.
학교가 끝마칠 시간에 맞추어 집으로 돌아갔습니다. "학교에 갔다가 왔느냐?" 어머니가 물었습니다. 영희는 자연스럽게 학교에서 재미있게 지내고 왔다고 말했습니다. 그러나 영희 어머니는 영희가 거짓말을 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습니다. 이미 옆집에 있는 순이가 학교에서 집에 오자마자 "왜 영희 학교에 오지 않았어요?"라고 영희 어머니에게 물어 보았기 때문입니다. 그래도 영희 어머니는 모른 체 하였습니다. 영희가 학교에 가지 않은 이유를 너무나 잘 알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이제 6학년이 되어 초등학교 마지막 운동회였습니다. 영희는 청군이 되어 열심히 싸웠습니다. 남자 아이들은 기마전도 하고 기계체조도 하였습니다. 영희는 농악놀이를 하였고 부채춤을 추웠습니다. 릴레이를 하는데 영희가 대표로 뽑혀 달렸습니다. 이제 운동회 마지막 행사로 릴레이가 시작되었습니다.
청군과 백군이 양쪽으로 갈라져 "이겨라 청군, 이겨라 백군" 열심히 응원을 하였습니다. 딱총소리가 나고 첫 주자가 출발을 하였습니다. 학년별로 청군 대표와 백군 대표를 뽑아 하는 경주이기 때문에 전 학년이 학교가 떠나가라고 응원을 하였습니다. 영희는 6학년이기 때문에 마지막 주자였습니다. 백군이 약간 우세하였습니다. 마지막 바톤을 받은 영희는 있는 힘을 다하여 달려갔습니다. 결국 영희는 백군을 따라 잡았습니다. 아이들은 환호하였습니다. 영희를 보고 모두 박수를 쳐주었습니다.
영희는 아버지가 있는 나무 밑을 바라보았습니다. 아버지도 힘을 다해 박수를 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 옆에 어머니가 아버지와 함께 박수를 치고 있었습니다. 점심때까지도 어머니는 오시지 않았는데 어느새 어머님이 오신 것입니다. 영희는 그것을 보는 순간 마음에 기쁨보다는 두려움이 앞섰습니다. "친구들이 보면 어떻게 하지? 왜 어머니가 운동회에 와? 이제까지 오지 않았는데?" 영희는 릴레이가 끝난 후 아버지 있는 곳을 바라보지 않았습니다.
시상식이 시작되었습니다. 교장 선생님이 나와 상품을 주었습니다. 모두 다 기뻐하였습니다. 그리고 시상식이 끝날 무렵 교장선생님이 "오늘은 특별히 장한 어머니 상을 주겠습니다. 이 상은 학교에서 주는 상이 아니고 면에서 면장님이 주시는 상입니다. 면장님이 앞으로 나오실 때 박수를 쳐주시기 바랍니다."
면장이 앞에 나왔습니다. 이제까지 딸을 잘 길러주신 어머니께 주신 상이었습니다. 면장은 상을 주면서 말했습니다. "영희 어머니는 집에 불이 났을 때 영희를 살리기 위해 모든 사람이 말리는데도 불구하고 불 속에 뛰어 들어갔습니다. 그 때 그 불길 속에서 영희 만큼은 살리기 위해 자신의 옷을 벗어 그 옷으로 영희를 감싸 안고 불길 속에서 뛰어 나왔습니다. 저 발은 그 불길 속에서 나오다 발이 나무에 걸려 저렇게 된 것입니다. 그러나 그 와중에서도 영희 만은 밖으로 던졌습니다. 영희를 이렇게 훌륭하게 기른 영희 어머니에게 박수를 보냅시다." 영희 어머니의 눈엔 눈물이 고여 있었습니다](김필곤 목사 예화)
생명을 마다한 어머니의 사랑의 용기로 영희가 살았고, 저는 다리는 어머니 생명을 건 사랑의 흔적이었습니다.
어디 영희 어머니의 희생뿐이겠습니까? 우리 모두의 부모님은 자식을 자신의 생명보다 귀하게 여기고 모든 것을 주셨고 지금도 그렇게 하고 계십니다.
우리는 어버이 이 은혜를 결코 잊어서는 안 됩니다. 이것을 모를 때 부모님의 인생은 그처럼 쓸쓸하고 외롭고 허무하게 만드는 일이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이것을 깨닫고 감사의 마음을 섬길 때 그 부모만큼 행복한 부모는 없을 것입니다. 자신의 눈물과 그 수고를 자식이 인정해 줄 때 그 모든 수고가 ‘참 잘 하였구나.’하는 기쁨의 고백을 비로소 할 수 있기 때문이요, 그 모든 수고가 의미 있는 삶임을 증거 해 주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내게 주신 부모님의 희생의 수고와 눈물의 의미를 깊이 헤아려야 감사하며 높여 공경하여야 하겠습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뜻입니다. 용서하고 용서받고 사랑하고 감사하고 높이는 자녀의 길을 가십시오. 그 가정에 행복의 축복이 가득하게 될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이해인 수녀의 ‘어머니께 드리는 노래’의 시로 말씀을 마치겠습니다.
어디에 계시는지
사랑으로 흘러
우리에겐 고향의 강이 되는
푸른 어머니.
제 앞길만 가리며
바삐 사는 자식들에게
더러는 잊혀지면서도
보이지 않게 함께 있는 바람처럼
끝없는 용서로
우리를 감싸안은 어머니.
당신의 고통 속에 생명을 받아
이만큼 자라 온 날들을
깊이 감사할 줄 모르는
우리의 무례함을 용서하십시요.
기쁨보다는 근심이
만남보다는 이별이 더 많은
어머니 언덕길에선
하얗게 머리 푼 억새풀처럼
흔들리는 슬픔도 모두 기도가 됩니다.
삶이 고단하고 괴로울 때
눈물 속에서 불러보는
가장 따뜻한 이름 어머니
집은 있어도
사랑이 없어 울고 있는
이 시대의 방황하는 자식들에게
영원한 그리움으로 다시 오십시오 어머니.
아름답게 열려 있는
사랑을 하고 싶지만
번번히 실패했던 어제의 기억을 묻고
우리도 이제는
어머니처럼 살아있는 강이 되겠습니다
목마른 누군가에게 꼭 필요한
푸른 어머니가 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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