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주의 말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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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다시 오실 주 예수를 기다리는 삶 1(마 24:42-44)2011-02-01 05: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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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대림절 셋째 주일입니다. 대림절은 영어로는 Advent라고 말합니다. 라틴어 adventus라는 옴, 도착이라는 단어에서 유래된 말입니다. 이는 그리스도의 오심을 뜻하지만, 예수님의 탄생일인 성탄절을 미리 준비하여 자신을 가다듬는 절기 입니다. 동시에 예수님의 아기 예수로 오심을 기억하여 다시 오실 주님을 기다리는 절기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이 기간 동안 우리는 다시 오실 주님을 맞이하기 위한 삶을 준비합니다.


이 대림절이 보다 의미 있게 하기 위해서 먼저 우리가 분명히 해야 할 것이 있습니다.

예수님은 반드시 다시 오신다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이 소속된 마태복음 24장은 ‘종말의 때’에 관한 기록입니다. 여기에서 예수님은 제자들에게만 마지막 때에 어떤 일이 일어날 것인가 하는 것과 그 때에 예수님께서 다시 오실 것을 말씀하십니다.


그 중 35절에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천지는 없어지겠으나 내 말은 없어지지 아니하리라’

하늘과 땅이 설령 없어지는 한이 있더라도, 예수님의 말씀은 그대로 된다는 말씀입니다.

무슨 일이 있어도 예수님의 말씀은 변함이 없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 말씀의 내용이 무엇입니까?

그 때에 인자의 징조가 하늘에서 보이겠고 그 때에 땅의 모든 족속들이 통곡하며 그들이 인자가 구름을 타고 능력과 큰 영광으로 오는 것을 보리라’(24:30)

즉 ‘반드시 종말이 온다’는 것이요, ‘반드시 내가 다시 온다’는 말씀이 그 핵심입니다.


우리는 보통 성경을 구약과 신약으로 나누어 부릅니다. 구약성경은 예수님 오시기 이전의 약속이고, 신약성경은 예수님 이후에 주신 새 언약이라 해서 신약이라고 부릅니다.

구약은 핵심은 이스라엘을 통하여 인류의 구원자 메시야가 오신다는 약속입니다.

그리고 그 약속은 메시야 이신 예수님께서 오심으로 이미 성취 되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생전에 제자들에게 다시 오실 것을 말씀하셨습니다.

오늘 말씀도 그 중 일부입니다. 즉 믿는 자들을 모으시고 부르시어 예비된 하늘나라로 인도하시고, 죄에 빠져 있는 영혼들은 영벌의 심판에 처하기 위해 다시 오신다는 재림의 약속입니다.

이것이 바로신약의 핵심입니다.


그렇기에 우리가 예수를 믿는 다고 할 때 가져야 할 필수적인 믿음의 내용은 바로 새 언약, 곧 신약에 대한 고백입니다. 즉 ‘하늘에 오르사, 전능하신 하나님 우편에 앉아 계시다가 저리로서 산 자와 죽은 자를 심판하러 오시리라’ 하는 사도들의 신앙고백이 그대로 우리의 고백이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렇기에 참 믿음은 예수님에 대한 일부의 내용을 믿는 것이 아니라, 모든 것을 믿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나를 위해 죽으시고 부활하셨음을 믿는 구원의 주로 그치는 것이 아니라, 의인과 악인을 심파하실 심판의 주로 오심을 믿어야 하는 것입니다.


이 믿음이 없이는 온전한 믿음이 아닐 뿐 아니라, 신앙을 거룩히 유지하는데 심각한 문제가 유발됩니다. 왜냐하면 이것을 분명히 믿는 자는 깨어 있고자 할 것이요, 그렇지 않는 자는 나태한 길을 가게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렇기에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만 특별히 말씀하여 깨우쳐 주십니다. ‘그 때에 땅의 모든 족속들이 통곡하며 그들이 인자가 구름을 타고 능력과 큰 영광으로 오는 것을 보리라’


다시 오신다는 것이 거짓말 이요, 엄한 소리인줄 알았는데, 심판의 주 예수께서

실제로 오심을 볼 때 죄인들은 때늦은 후회와 통곡을 하게 된다는 뜻입니다.


여러분 기억하십시오. 주님의 다시 오신다는 신약의 햄심을 놓치지 마십시오.

주님께서 말씀하십니다. ‘보라. 내가 속히 오리라. 내가 줄 상이 내게 있어 각 사람에게

그의 일한 대로 갚아주리라’(22:12)


두번째로 우리에게 주시는 말씀은 재림의 약속과 함께 자연스럽게 ‘깨어 있으라’는

명령으로연결 됩니다. 주님이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그러므로 깨어 있으라 어느 날에 너희 주가 임할는지 너희가 알지 못함이라’


이 문장의 맨 앞에 ‘그러므로’라는 말이 쓰였습니다. ‘그러므로’라는 단어는 앞의 내용이 뒤에 오는 내용의 원인·조건이 됨을 나타내는 접속 부사입니다. 그러니까 ‘깨어 있어라’ 말씀하신 데에는 그 분명한 이유가 있다는 것을 전제로 합니다.


우리는 보통 말을 할 때 뜸금 없이 ‘그러니까 밥먹어라.’ ‘그러니까 열심히해라’ 라고말하지 않습니다. ‘그러니까’라는 단어를 쓸때는 반드시 그 이유나 조건이 앞에 서술되어야 합니다. 예를 들면 ‘밥 안먹으면 너만 손해야. 그러니까 밥먹어!’

대충하면 실패하기 십상이다. 그러니까 열심히해’ 앞에 반드시 어떤 조건이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그러므로 깨어 있어라’ 하신 이유는 반드시 그렇게 하지 않으면 안될 이유가 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것은 예수님께 다시 오신다는 것과 아무도 그 오실 때를 모른 다는 것과 만약 다시 오게 되면 그 때에는 깨어있지 않은 사람들에게는 재앙이 될 것이라는 경고였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이 말씀을 하실 때 노아시대의 홍수 얘기를 하셨씁니다. 노아 시대에 많은 사람들이 먹고 마시며 장가들고 시집을 갔습니다. 다가오는 심판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전혀 준비하지 않는 삶을 살아갔습니다. 그러다가 어느날 거짓말 같이 홍수가 임한 것입니다. 그리고 예비되지 않은 모든 사람들은 물의 심판으로 다 죽게 되었음을 말씀합니다. 이는 전혀 예상치 못한 일이 돌현이 그들에게 닥침과 같이 예수님이 다시 임하고 거기에는 심판이 있음을 경고하신 것입니다.


홍수 사건 얘기 후 한 가지 비유를 더 말씀하셨는데 밭에서 일하는 두 남자와 두 여자의 비유입니다. 예수님께서 다시 오실 때에는 밭에서 일하는 두 남자와 두여 자 중 한 사람은 데려감을 당하고, 한 사람은 버림을 당할 것임을 말씀하셨습니다. 이는 예수님께서 다실 오실 그 때에는 알곡과 가라지가 구별 되는 심판이 있을 것임을 경고하는 말씀입니다.


, 주 예수께서 다시 오시는 그 때는 아무도 모르나, 오시게 되면 그 때는 심판의 때가 될 것임을 말씀하신 것입니다. 그렇기에 예수님께서 말씀하십니다. ‘그러므로 깨어 있으라’


그런데 이 말씀 뒤에 곧 바로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어느 날에 너희도 주가 임하늘지 너희가 알지 못함이라. 너희도 아는 바니 집주인이 도적이 어느 경점에 올줄을 알았더면 깨어 있어 그 집을 뚫지 못하게 하였으리라 이러므로 너희도 예비하고 있으라 생각 하지 않은 때에 인자가 오리라’


우리는 여기서 예수님께서 이 깨어 있으라는 말씀과 그 이유에 대하여 얼마나 중요하게 여기고 있는 지를 알 수 있습니다. ‘마지막 때’를 설명하시는 말씀에서 부터 시작하여 24장의마지막 부분에서 ‘그러므로’ ‘이러므로’ 라는 표현을 통하여 반복해서 강조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게다가 이어지는 25장 전체가 마지막 때를 준비하라는 말씀이라는 사실을 볼 때 ‘다시 오신다는 언약과 이 깨어 있으라’는 말씀을 얼마나 중요하게 다루고 계신가를 분명하게 알 수 있습니다.


왜 그럴까요? 주님은 불현 간 오실 것이요, 그 때는 심판이 때가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제자들이 그 마지막 때를 불현듯이 임하는 재앙의 때로 맞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입니다. 반대로 말하면 준비된 자로 주의 오심을 기쁘게 맞이 하도록 하기 위해서입니다. ‘그날을 준비하라’ 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깨어 있다는 것은 무엇입니까?

주님은 이 것을 잘 알도록 너무도 친절하게 45-51절의 비유로 설명해주십니다.

45-6절에 이런 말씀이 있습니다. ‘ 충성되고 지혜있는 종이 되어 주인에게 그 집 사람들을 맡아 때를 따라 양식을 나눠 줄자 누구뇨. 주인이 올 때 그 종의 이렇게 하는 것을 보면 그 종이 복이 있으리로다.’


여기에서 ‘충성되고 지혜 있는 종’이 등장합니다. 그리고 이 종이 ‘때를 따라 양식을 나눠주는 모습’이 나옵니다. 주인이 떠날 때나 돌와서 볼 때나 변함없이 충성스럽고 지혜있게 그 사명을 감당하는 모습니다. 즉 깨어 있다는 것은 자기의 사명을 충성스럽고 지혜롭게 감당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어떻게 이 길을 갈 수 있을까요?


첫째는 거룩하고 성령충만을 덧 입어야 합니다. 이 모습이 우리 삶의 기초입니다. 이것이 없이는 인생은 뒤죽 박죽이 됩니다. 점점 하나님을 무시하는데 익숙한 사람이 되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기도를 통해 하나님을 만나야 하고 성령을 덧 입어야 합니다. 그럴 때 우리 영혼은 거룩의 빛이납니다. 성령께서 들려주시는 음성에 민감하고 순종하는 기쁨속에 살게 됩니다.


둘째는 하나님을 예배하고 교회를 섬기는데 충성하는 것입니다. 매 주일 진정한 예배를 드리며 교회의 직분에 합당한 모습을 가지고 섬겨야 합니다. 그래서 교회를 세우신 주님의 뜻을 자신의 비전으로 삼고 충성되이 교회를 세워나가야 합니다.


셋째는 자신이 해야 할 공부, 혹은 직장의 일을 하나님 앞에서 성실하게 감당하는 것입니다. 이에 관련하여 주의 할 것이 있습니다. 공부하고 직장생활을 하는 목적이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것임을 분명히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즉 공부와 일이 하나님 뜻에 맞게 조정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혹 공부나 직장의 일이 하나님을 예배하는 것에 방해가 되도록 해서는 안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만큼만 공부와 직장에 시간과 정열을 투자하십시요.

그 이상은 자칫 자기 욕심이 되어 가시가 될 것입니다. 그것은 하나님보다 자기 생각을

앞세우는 것이요, 이는 하나님을 무시하는 죄에 해당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반대로 자신의 해야할 공부와 일에 있어서 게으른 사람 또한 하나님을 무시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준비해야 할 실력을 준비하지 않는 것은 태만의 죄입니다.

또 주어진 일에 최선을 다하지 않고 대충 대충하는 위선적인 모습 또한 하나님의 싫어하시는모습입니다.

자신이 지금 하나님 앞에 있다는 것을 잊고 하나님을 속이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우리에게 이런 모습이 있다면 하나님이 인내를 더 이상 시험하지 말고, 어서 돌이켜 자신의 일에 최선을 다하여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야 합니다.


이렇게 거룩하고 성령 충만을 덧입고, 하나님을 진정으로 예배하고 교회를 충성되이 섬기며, 자신이 지금 해야 하는 일에 하나님의 뜻에 따라 바르게 감당하는 길을 가는 사람에게 주시는 축복의 약속이 있습니다.


46절에서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주인이 올 때 그 종이 이렇게 하는 것을 보면 그 종이 복이 있으리라.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주인이 그 모든 소유를 저에게 맡기리라’


우리는 이 말씀에서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주시리라.’ 말씀이 그대로 이루어지는 길은 바로 하나님께서 주신 사명에 최선을 다하는 것임을 알 수 있습니다. 이는 단순히 돈 더 벌고 재물을 소유하는 정도가 아니라 위대하신 하나님의 큰 일을 담당하는 사람으로 쓰게 해주신다는 것입니다.


요셉이 그 예입니다. 그가 하나님을 섬기고 자신의 일을 충성스럽고 지혜롭게 감당 할 때 애굽을 다스리는 총리의 직임을 주신 것과 같습니다. 요셉이 총리의 직을 쫒아 간것이 아닙니다. 하나님 앞에 바르게 서있고 자신의 사명을 성실히 수행할 때 저절로 따라 온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깨어 있는 자에게 임하는 축복입니다.


그러므로 교우 여러분, 청소년 여러분,

먼저 거룩하고 성령충만을 덧 입는 길을 가십시오. 이를 위해 매일 하나님과 교제하십시오.

거룩한 삶에 바탕을 둔 예배를 드리고 교회를 충성되이 섬기십시오.

자신이 해야할 미래를 준비하고, 하나님께서 주신 직업을 성실하게 감당하되,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정도로만 하십시오. 그래서 그것이 하나님을 섬기고 예배하고 기도하는데 방해가 되지 않게 하십시오.

그럴 때 이 세상에서 필요한 것은 하나님께서 알아서 채워줍니다.


그러므로 이 세상의 복을 얻기 위해 쫓아가는 삶이 아니라, 마지막 때에 다시 오실 주님을 기억하고 깨어 있음으로 복이 따라오게 하는 길을 가십시오.

구약이 이미 이루어진 것 같이, 심판의 주로 오시마 하신 신약이 이루어 질 날이 이를 것입니다.

그 마지막 때에 합당한 삶, 곧 두려움이 아니라 기쁨과 감격의 만남이 되는 삶이 되도록 하루 하루를 준비 하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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