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주의 말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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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주 예수의 오심을 기다리는 삶 2(마2:1-12)2011-02-01 06: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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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탄일이 점점 가까이 다가오고 있습니다.

성탄절이 되면 키위들은 선물을 마련해서 교환하는 풍습이 있다고 합니다.

우리들도 성탄의 기쁨을 함께 나누며 선물을 준비합니다. 예를 들면 자녀들을 위해 혹은 가까운 이웃들에게 선물을 작으나 정성껏 준비하여 드리는 것이지요.


이러한 풍습은 아마도 성경에서 유래 되었을 것입니다. 아기 예수가 태어날 때 동방 박사가 찾아와 예물을 드린 것을 생각하고 이웃들에게 그렇게 하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이 바로 그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별을 따라 동방에서 온 박사들이 예루살렘에 와서 왕으로 나신 이를 찾고, 다시 베들레헴에 이르러 황금과 유황과 몰약을 드려 경배합니다. 왕으로 오신 아기 예수를 높여 경배합니다.


지금은 강림절입니다. 예수님이 다시 오심을 기다리는 절기입니다. 오늘 본문을 계기삼이 이렇게 생각해보고 싶습니다. 이미 예수님은 2천 년 전에 태어나셨으니 우리에게는 그 예수를 경배할 기회가 없습니다. 우리게 남은 기회라면 예수님께서 다시 오실 때 입니다.

예수님이 죄인과 의인을 심판하기 위해 오실 때 나는 무엇을 주님께 드릴까?

다시 오실 주님께 드릴 나의 최고의 선물은 무엇일까?


선물은 의미와 뜻이 있을 때 좋은 선물이 됩니다. 하지만 그 선물이 받는 자의 입장에서 꼭 필요한 것이라면 더 좋을 것입니다. 그런점에서 일방적으로 선물을 우리가 고르기 보다는 주님의 입장에서 생각해 보면 좋을 것 같습니다. 여러분, 주님은 우리에게 어떤 선물을 받고 싶을까요?


황금을 좋아 하실까? 아니면 현금을 좋아하실까? 아니면 카드를 좋아 하실까?

아니면 최신 스마트 폰을 좋아하실까? 아니면 우리의 성공일까? 우리가 세상에서 명예를 얻는 일일까? 아니면 세상에서 제일 큰 기업의 총수가 되었다는 소식일까?

우리의 자녀들이 남들의 자녀보다 뛰어나다는 소식일까요? 잘 되었다는 소식일까요?

주님이 기뻐하시는 선물은 무엇일까요?


답을 찾기 위해 우리는 뭐니 뭐니 해도 성경을 보아야 합니다. 성경은 주님께서 우리에게 보내신 편지입니다. 그래서 그 속을 들여다 어떤 선물을 좋아하실 지를 알 수 있습니다. 지난 주 말씀에서 힌트를 얻을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다시 오심을 가르치면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깨어 있으라. 생각지 않은 때에 인자가 오리라’


그러면서 충성되고 지혜 있는 종에 대한 비유를 말씀하셨습니다. 주인이 올 때 충성되고 지혜 있는 종에게 더 큰 일을 맡기신다는 비유요, 반대로 악하고 게으른 종은 있는 것도 빼앗긴다는 것입니다. 이 두 다른 종의 비유를 통해 주님께서 우리들에게 기대하는 바가 무엇인지를 드러내십니다. 그것은 주님이 오실 때까지 충성되이 지혜롭게 종의 사명을 다하는 것입니다.


주님의 마음을 보다 분명하게 드러내는 말씀은 마태복음 25장에서 나옵니다. 이 장에서

예수님은 여전히 깨어 있으라 하십니다. 그리고 이어서 달란트 비유를 말씀하십니다.

다섯 달란트 받은 사람, 두 달란트 받은 사람, 한 달란트를 받은 사람에 대한 비유입니다.여기에서 다섯 달란트를 받은 사람은 열심히 일을 해서 두배, 열달란트를 만들었습니다.

그리고 두달란트를 받은 사람도 열심히 일을 해서 두배, 네 달란트를 남겼습니다. 주인이 돌아 왔을 그 모습을 보았습니다. 이에 두 사람에게 주인이 이렇게 칭찬합니다.

잘하였도다 착하고 충성된 종아!’네가 작은 일에 충성하였으매 내가 많은 것으로 네게 맡기리니 네 주인의 즐거움에 참여 할지어다’


그런데 한 달란트 받은 사람은 아예 땅에 묻어둡니다. 그리고 어뚱한 얘기를 하면서 한달란트 그대로를 주인게 드립니다. 이제 주인이 책망을 합니다. ‘악하고 게으른 종아! 그에게서 그 한 달란트를 빼앗아 열 달란트 가진 자에게 주어라’’이 무익한 종을 바깥 어두운 데로 내어 쫓으라 거기서 슬피 울며 이를 갊이 있으리라’(25:26, 28,30)


우리는 여기서 주님께서 그 제자들에게 무엇을 원하시는지 분명히 알게 됩니다. 그것은 제자된 사명을 충성되게 감당하는 존재가 되는 것입니다. 주님이 다시 오실 때까지

이 땅에서 부여 받은 사명의 길을 충성되게 걸어가는 존재가 되는 것입니다.


이 달란트 비유가 끝나면 다시 오신 예수님이 심판하는 장면을 비유로 설명하십니다.

여기에서 예수님이 천사와 함께 오셔서 심판의 자리에 않으십니다. 그리고 의인들은 오른 편에 악인들은 왼 편에 두십니다. 그러면서 오른 편에 선 의인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내가 주릴 때 먹이고 목마를 때 마시게 하였고, 나그네 되었을 때 영접하였고, 벗었을 때 옷을 입혔고, 병들었을 때 돌아 보았고, 옥에 갇혔을 때에 와서 보았느니라’

이에 의인들이 ‘우리가 언제 주님께 그렇게 하였습니까? 그런적이 없습니다.’하고 묻습니다. 이에 ‘너희가 여기 내 형제 중에서 지극히 작은 자 하나에게 한 것이 내게 한 것이니라’하고 말씀하십니다. 주님의 가르침대로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는 길을 간 삶을 칭찬하신 것입니다. 이는 예수님이 하늘 보좌를 버리고 연약한 인간들에게 오셔서 위로와 소망이 되신 것 같이 이 땅에서 그 삶을 소외 된 이웃들에게 펼쳐가는 삶의 열매가 있는 제자가 되라는 것입니다. 진짜 예수의 제자가 되라는 것입니다. 이것을 예수님께서 기뻐하십니다.


반면에 외편에 선 악인들에게는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저주를 받은 자들아 나를 떠나

마귀와 그 사자들을 위하여 예비된 영영한 불에 들어가라’(25:41)

그러자 악인들이 이렇게 묻습니다.

주여 우리가 어느때에 주의 주리신 것이나 목마르신 것이나, 나그네 된 것이나,
벗으신 것이나, 병드신 것이나, 옥에 갖히신 것을 보고 공양치 아니하더이까?’

이에 예수님 말씀하십니다.

이 지극히 작은 자 하나에게 하지 아니한 것이 곧 내게 하지 아니한 것이니라’(45)


여기에서 예수님의 말씀은 분명합니다. 연약한 이웃들에게 무관심하고 자기 만을 위하여 살아가는 자들의 태만의 죄, 즉 예수님의 가르침을 따르기 위한 제자가 아니라 그져 이 세상에서 필요한 종교처럼 교회 다니며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는 가르침을 거역한 가짜 그리스도인들을 책망하고 있습니다. 거짓되고 위선 된 가짜 그리스도인이 되지 말라는 것입니다.


신약성경의 마지막 책인 요한계시록으로 넘어가보겠습니다. 예수님께서 여기에서 어떤 사람들을 칭찬 할까요? 계시록 3장에 예수님께서 빌라델비아 교회를 칭찬하는데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내가 네 행위를 아노니 네가 적은 능력을 가지고도 내 말을 지키며 내 이름을 배반치 아니하였도다’


여기에서 예수님은 거의 아무런 힘도 없음에도 불구하고 말씀을 대로 순종하고 따른 모습을 칭찬하고 있습니다. 당시에 많은 유대인들이 예수 믿는 사람들을 핍박했습니다. 그러나 그 때 빌라델비아 교우들은 믿음을 굳게 지켰고, 말씀대로 행하였던 것입니다. 즉 성도로서의 사명을 끝까지 인내로 감당한 한 것입니다.

믿음대로 행하는 길을 진짜로 간 것입니다.

[길리기아의 총독 막시무스가 다소에 있을 때 세 명의 그리스도인이 그의 앞으로 끌려 왔습니다. 가장 나이 많은 타라쿠스에게 그의 신분이 무엇이냐고 물었습니다. 그는 “그리스도인입니다.”하고 대답했다. 총독은 화가 나서 다시 물었으나 대답은 똑같았습니다. 그러자 총독은 그에게 ‘부유해지고 명예를 얻을 수 있는 유일한 길은 신에게 제사를 드리는 길뿐이다’고 말했습니다.

이에 타라쿠스는 ‘탐욕은 죄며 그 자체가 다른 것과 같은 미워할 만한 우상이다’고 말했습니다. 그리고 ‘그리스도인라는 명예로운 명칭보다 더 큰 것은 바라지 않는다’라고 했습니다. 나아가 ‘황제들은 마귀에게 인도되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이 말을 했다고 해서 막시무스는 그의 턱뼈를 부셔버렸습니다. 그런 후 다시 그는 매를 맞았고 쇠사슬에 채인 채 감방 속에 던져졌습니다.

그런 다음 막시무스는 푸로보스에게 ‘이름이 무엇이냐’ 물었습니. 그러자 그는 ‘그리스도인 이라’는 이름이라고 대답했습니. 이 말에 대하여 멕시무스는 “그리스도인이라는 네 이름은 내게 아무 도움도 안 된다. 그러니 내가 인도해 주는 대로 해라. 신들에게 제사를 드리고 나와 친분을 맺고 황의 호의를 받도록 하라.”라고 말합니다.

이에
프로부스는 자기가 그리스도의 군사가 되기 위하여 총독과의 친분도 항제로부터의 호의도 상관치 않는다고 명백하게 대답했습니다
. 그러자 그는 채찍질을 당하였습니. 그러나 몹시 채찍질을 당하여도 전과 마찬가지로 용감한 태도로 반복 뿐이었습니. 내 육체가 고난을 받고 피를 많이 쏟으면 쏟을수록 내 영혼은 더욱 강건해 질 것이며, 승리자가 될 것이다.” 결국 다시 그는 감옥에 투옥되었고 그의 손발은 쭉 펴진 채 기둥에 묶여지고 말았습니.

그 다음에 앤드로니커스가 끌려나와 같은 질문을 받고 이렇게 대답했습니. 나는 에베소 태생인 그리스도인입니다. 그리고 나는 에베소에서 제일 처음 있었던 가족 중 한 후손입니다.” 결국 앤드로니커스도 다른 두 사람과 같은 고문을 받고 다시 감옥에 투옥되었습니다.

며칠 후 이 세 사람은 막시무스 앞에 다시 끌려 나왔습니. 그는 타라쿠스에게 아직도 희망이 있다고 말하면서 설득시켰으나 듣지 않자 그에게 온갖 방법으로 고통을 주라는 명령을 내렸습니. 막시무스는 거꾸로 매달린 타라쿠스에게 소금과 식초를 은 것을 코로 쏟아 부었습니. 그런 상태에서 그는 다시 감옥에 쳐 넣어졌습니.

두 번째로 다시 불려나온 푸로부스는 제사를 신에게 드리겠냐는 질문을 받고 “나는 전보다 죽을 준비가 더 잘되어 있습니다. 왜냐하면 내가 이미 받은 고난은 내게 나의 결심을 재확인해 주었기 때문입니다.”라고 대답했습니. 이에 막시무스는 푸로부스가 불경스러운 말을 했다고 해서 입을 몹시 내려치도록 명령했습니. 그의 몸은 뜨거운 쇠로 지져졌습니. 그의 머리는 깍여졌고, 빨갛게 단 석탄이 면류관처럼 올려졌습니. 그리고 모든 고통을 받고는 다시 감옥에 던져졌습니.

마지막으로 앤드로니커스가 다시 막시무스 앞에 끌려나왔을 때 막시무스는 마치 타라쿠스와 푸로부스가 그들의 고집을 꺽고 로마제국의 신들을 섬기기로 한 것처럼 속였습니. 이말에 앤드로니커스가 대답했다. 나는 그들이 우리 하나님께 대한 그들의 소망을 포기했다고는 믿을 수 없으며 나도 우리들 공동의 구세주에 대한 믿음에는 그들보다 뒤지지 않을 것입니다. 당신이 얼마든지 위협해보십시오. 당신의 권력으로 모든 잔인한 수단을 다 써 보십시오. 나는 그리스도 때문에 그 것을 다 견딜 준비가 다 되어 있습니다.”

이 용감한 그리스도인들은 세 번째 시험에 불려나와서도 시일관 같은 태도를 보여서 고통을 당하고 끝내는 사형선고를 받았습니. 그들은 원형극장으로 끌려가 사자의 밥이 될 운명이 되었습니다. 하지만 이 세사람을 잡아 먹으라고 풀어놓은 굶주린 대여섯 마리의 맹수들 가운데 어떤 것도 들을 해치지 않았습니. 그러자 맹수지기는 그날 세사람을 죽인 곰을 끌고 나왔다. 그러나 이 곰도 이 그리스도인들을 건드리지 않았습니. 맹수들로 죽이려는 계획이 아무 소용이 없자 시무스는 그들을 칼로 죽이라고 명령을 했습니. …. 결국 순교를 합니다.

이들은 죽음에 이르렀으나 끝까지 그 순결한 믿음을 지키며 자기를 부인하고 십자가 짐을 졌습니다. 끝까지 성도의 본분을 지키는 사명을 다한 것입니다.


요한계시록 1413절에 ‘사명을 다한 참 믿음의 사람’을 감동케 하는 말씀이 나옵니다.

나는 또 "이제부터는 주님을 섬기다가 죽는 사람들이 행복하다' 고 기록하여라" 하고 외치는 소리가 하늘에서 나는 것을 들었습니다. 그러자 성령께서 "옳은 말이다. 그들은 수고를 그치고 쉬게 될 것이다. 그들의 업적이 언제나 남아 있기 때문이다" 하고 말씀하셨습니다.


이 말씀에 따르면 사도 요한은 하늘에서 나는 소리를 들었습니다. 그런데 그 말씀인 즉 , ‘주안에서 죽는 자들은 행복하다’라는 것입니다. 믿음을 지키고 그 길에서 생명을 다한 사람들, 즉 순교의 상황에 이르러도 배반치 않고 말씀을 지킨 사람들은 복되다라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들은 그 사명을 다한 성도들에게 하나님께서 예비하신 참 안식이 주어지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믿음의 성도를 맞으러 오시는 주님 품 안에서 영원한 참 안식을 누리는 것입니다. 그 때 이들의 눈물과 땀과 인내와 수고의 길은 그치고 주안에서 안식을 누립니다.

주님의 십자가의 삶을 뒤따른 자들에게 임하는 참 위로와 안식입니다.

이 땅에서의 흘린 그 뜨거운 눈물을 주님이 친이 닦아 주시는 것입니다.

이처럼 주님께서는 믿음을 지키며 그 사명의 길을 끝까지 걸어간 성도들을 칭찬하십니다. 어떠한 어려움이 있어도 주를 떠나지 않고, 말씀의 가르침대로 순종하며, 그 사명을 감당하는 사람, 곧 자기를 부인하고 십자가를 지기까지 그 성도의 사명을 다한 사람을 칭찬하십니다. 우리는 이러한 주님의 모습에서 우리에게 기대하시는 선물이 무엇인가를 알 수 있습니다.


그것은 이 세상에서 높게 여기고 가치있게 여기는 것과는 다른 것입니다. 그 반대로 이 세상에서는 별것 아닌 것 같이 여기는 것입니다. 그것은 예수 안에서 자신의 사명을 감당하는 것입니다. 말씀대로 연약한 이웃을 네 몸 같이 사랑하라는 말씀에 순종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주님께서 인정하시는 진정한 위대함입니다.


그렇기에 주님이 다시 오실 때 우리가 준비해야할 선물은 세상의 업적이나, 부나, 성공스토리가 아닙니다. 주님께서 우리 각 자에게 부여하신 사명, 곧 가정과 학교와 직장과 교회라는 사회 속에서 믿음의 가치를 실천하는 삶이요. 그 모든 삶이 주님의 뜻을 이루는데 맞추어진 삶이 되도록 최선을 다한 삶이요, 말씀에 따라 연약한 자들을 사랑으로 섬기는 삶을 사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가정에서 그리스도인의 모습에 합당하게 생활하십시오.

학생들은 자기 능력껏 공부하고 성실하게 미래를 준비하십시오.

남을 어떻게 섬길 것인가를 고민하고 그에 필요한 실력을 갖추십시오.

직장과 하는 일에서 그리스도 예수의 가르침에서 벗어나지 말고, 그 일을 통해 이웃을 아름답게 섬기십시오. 여러분의 일과 서비스를 통해 이웃을 진실하게 섬길 때 거기에 행복과 평화와 하나님의 나라가 임합니다.

이웃과의 관계속에서 진실함과 겸손과 사랑을 실천하십시오. 특히 연약한 이웃을 외면치 마십시오. 애써 찾아 섬기십시오. 이 삶이 없이는 주님 앞에 바르게 설 수 없습니다.


성도여, 삶의 각 처소와 상황에서 그리스도를 따르십시오.

주님이 십자가를 지시기까지 그 사명을 감당하신 것 같이,

우리가 가정과 학교와 직장과 이웃과의 관계에서 복음의 정신을 바르게 실천하고,

그에 따른 어려움과 수고를 마다하지 하지 않고 걸어간다면,

그 인생은 주님이 다시 오실 때 드릴 가장 위대한 선물을 준비한 사람이 될 것입니다.

이 삶보다 더 값이 나가는 위대한 삶은 더 이상 없습니다.

더 가치 있는 인생의 선물은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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