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메리 크리스 마스, 예수님께서 오셨습니다.
우리에게 기쁨과 평화의 왕으로 오신 주님을 찬양합니다.
온 열방의 창조자 되시고 통치자 되신 예수님이 오셨습니다. 할렐루야.
주 예수의 평안과 소망이 여러분 가정에, 우리 교회에, 온 세상에 가득하기를 바랍니다.
우리가 이렇게 기쁜 것은 오늘이 우리를 진정으로 사랑하는 주 예수께서 오신 날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오늘 이 한 자리에 모여 오신 주 예수를 높이고 축하를 드립니다.
오늘 함께 나눌 말씀은 주 예수의 나심을 증거하는 말씀입니다. 이 말씀에서 누가는 들에서 양을 돌보는 목자들에게 천사들이 천한 소식을 증거합니다.
‘보라 내가 온 백성에게 미칠 큰 기쁨의 좋은 소식을 너희에게 전하노라’
여기에서 ‘온 백성’이란 이스라엘 백성뿐 아니라, 온 세상의 모든 사람들을 말합니다. 우리들 도 포함해서 입니다. 그리고 앞으로 태어날 모든 영혼들까지도 다 포함됩니다.
그리고 이 모든 이들에게 전해져야만 하는 ‘큰 기쁨의 좋은 소식’이 있다고 증거하는데,
11절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오늘날 다윗의 동네에 너희를 위하여 구주가 나셨으니 곧 그리스도 주시니라’
가고 오는 모든 사람들에게 전해져야 할 기쁜 소식은 ‘그 모든 사람들을 구원하실 구원자가 나셨다.’는 소식입니다.
죄로 인하여 하나님과 원수가 되어 비참한 절망을 향하여 나아가는 우리들을 구원하실 구원자가 오셨습니다. 하나님과 분리되어 방황하다가 죽게 될 우리들에게 삶의 의미를 주시는 구원자가 오신 것입니다.
우리에게 이 구원자 오심이 기쁜 것은 이 구원자로 오신 분이야말로 인생의 고통에서 우리르 자유케하시는 분이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 30세가 되셔서 비로서 구원자의 사명을 감당하기 시작했을 때 였습니다.
어느날 회당에 들어가셔서 예수님이 오시기전 750년 이전에 한 이사야 선지자가 예언했던 구약성경의 말씀을 소리내어 읽었습니다.
‘주의 성령이 내게 임하셨으니 이는 가난 한 자에게 복음을 전하게 하시려고 내게 기름을 부으시고, 나를 보내사 포로된 자에게 자유를, 눈먼 자에게 다시 보게함을 전파하며, 눌린 자를 자유케하고, 주의 은혜의 해를 전파하게 하려 하심이라’(눅4:18)
예수님께서 이 말씀을 읽으신 이유는 무엇일까요? 750년 이사야가 예언한 내용 곧 ‘주의 은혜의 때’가 도래할 것이라는 그 예언이 지금 이루어졌음을 선포하기 위해서입니다.
세상에 가난한 영혼들, 포로된 영혼들, 눈먼 영혼들, 눌린자들이 흘리는 그 눈물이 그치고 그 고통에서 벗어나 자유할 때 그 얼마나 기쁘고 감격스러울까요?
우리는 다른 사람의 경험을 통해서 기쁨과 감격을 간접적으로 경험 할 수 있습니다. 누가복음 7장에 우리가 잘아는 나인성의 한 미망인의 이야기가 나옵니다. 남편이 없는 이 여인은 참으로 슬픈 영혼 가난한 영혼입니다. 남편없는 불쌍한 처지에 그나마 있는 아들이 죽었기 때문입니다. 얼마나 애처롭고 슬펐던지 이 여인의 이 슬픈 눈물에 그 성의 많은 사람들이 함께 나와 울정도 였습니다. 그러나 이들이 함께 운다 한들 죽은 아들이 살아날리 없습니다.
이 여인은 인생이 원망스러울 수 밖에 없는 고통에 사로잡힌 인생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런데 이 모습을 예수님께서 보시고 불쌍히 여기십니다. 그 슬픈 눈물과 영혼의 아픔을 긍휼이 여기십니다. 관을 메고 슬프게 우는 이 가련한 어미의 아픔을 함께 느낍니다. 이에 이 불쌍한 영혼을 위로하시려고 관위에 손을 얹어 기도하십니다.
‘청년아 내가 네게 말하노니 일어나라’(눅7:14) 이에 죽었던 청년이 살아나고 슬피우는 어머니의 그 절망의 눈물은 가슴벅찬 감격의 눈물로 바뀝니다. 이 어머니를 사로잡고 있던 그 깊은 슬픔과 절망의 덧은 끊어지고 자유, 곧 기쁨과 새로운 소망이 임하였기 때문입니다. 이 여인은 다시 살아나 자기 앞에 서있는 아들을 보았을 때 얼마나 놀라고 기뻤을까요?
그 어머니만 알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도 짐작이 갑니다. 그 기쁨이 얼마나 컸을까!
딸이 아플 때가 있습니다. 왠만하면 집에서 쉬고 약을 먹여서 났기를 바랍니다. 하지만 왠 일인지 낫기는 커녕 심하질 때 왠지 불안해 집니다. 혹시나 더 큰 병이 생긴 것은 아닌지, 혹은 몸에 불미스러운 이상이 있는 것은 아닌지 속이 탑니다. 그래서 무슨 큰일이나 난 줄 알고 심각한 마음으로 병원에 갑니다. 의사를 만납니다. 진찰을 합니다. 그리고 바로 그후 의사 선생님의 한 마디 ‘아무 이상 없습니다’, 이 말을 들을 때 움츠려 들었던 가슴이 펴지는 자유와 감사가 임합니다. 걱정과 염려로부터 자유가 임합니다.
그리고 집으로 돌아가는 발걸음이 가볍습니다. 기쁩니다.
예수님이 말씀하시는 ‘가난 한자, 포로 된자, 눈 먼자, 눌린 자’는 이 땅의 모든 영혼들을 말합니다. 죄와 슬픔과 고통과 절망으로 포로 된 인생의 눈물에서 벗어나기를 부르짓는 영혼들입니다. 바로 우리들입니다. 그리고 우리들에게 성령께서 오늘 말씀을 통해서 선포하십니다. ‘온 세상에 미칠 큰 기쁨의 좋은 소식, 너희를 구원할 구원자가 임하였다.
지금 너희에게 은혜의 때가 임하였다’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에게 은혜로 임한 것입니다. 나의 죄와 인생의 고통에서 자유하게 하시는 사랑이 구원자,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우리에게 임한 것입니다. 이 은혜를 받을 자격이 없는 우리들에게 값이 사랑으로 임한 것입니다. 그 어떤 허물도 용서하시는 사랑이 우리에게 임하였습니다. 그 어떤 초라한 자의 아픔과 눈물일지다로 외면치 않으시고 찾아오셔서 그 눈물 닦아 자유하게 하시는 위로가 우리에게 임한 것입니다. 할렐루야.
그러나 기억해야 할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이 은혜, 모든 영혼을 그 죄와 삶의 고통에서 자유하게 하는 이 사랑이 모든 민족에게 임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군림하지 않고 도리어 십자가에 자신을 내어주시는 그 겸손하신 참 사랑으로 우리를 구원하시는 이 은혜와 이 기쁜 소식이 모든 민족과 영혼들에게 이르러야 합니다.
단지 우리끼리 기분내고 즐거워하는 것으로 그친다면 우리는 세상의 아픔과 눈물을 외면하는 무정한 존재라 조롱받아야 할 것입니다. 오늘 본문이 증거하는 대로 예수님은 가장 낮은 자의 모습으로 태어나셨습니다. 산모와 태어날 아기를 위해 정결하고 안전하게 마련된 방이 아니라, 말이나 소를 가두는 마굿간에서 태어난 것입니다. 이것은 예수님께서 섬김을 받기 위해서가 아니라 섬기기 위해서 오셨음을 증거하는 말씀입니다.
이는 우리에게 임하신 주의 은혜를 기뻐하고 축하하는 것을 넘어, 우리의 기도와 위로와 사랑을 필요로 하는 민족과 이웃들을 섬기는 섬김으로 나타나야 함을 말씀하고 있음을 명심해야 합니다. 즉 우리는 우리 자신을 은혜로 채울 뿐 아니라, 그 은혜를 나누기 위한 사명의 길로 초대 받은 사람들이라는 것입니다.
그렇기에 우리가 먼저 용서함으로 화평을 선포하고, 짐을 나누어지는 소망을 선포함으로 세상을 섬기는 길을 믿음으로 걸어가야 합니다.
믿음의 한 가정이 중화요리 집을 하고 있었습니다. 성탄절 무렵 어느 저녁에 식당 문이 열리더니 한 여자아이가 동생 둘을 데리고 들어왔습니다.
초라한 차림의 아이들은 잠시 머뭇거리다가 주방에서 가장 가까운 테이블에 자리를 잡았습니다. 남편 집사님이 주문을 받기 위해 아이들 쪽으로 갔을 때 큰아이가 동생 둘에게 물었습니다.
"뭐 시킬까?" "자장면." "나두......"
"아저씨, 자장면 두 개 주세요."
남편 집사님은 주방에 있는 아내 집사님에게 음식을 주문한 후 난로 옆에 서 있었습니다. 그때 아이들의 말소리가 그의 귓가로 들려왔습니다.
"근데 언니는 왜 안 먹어?"
"응, 점심 먹은 게 체했나 봐. 아무것도 못 먹겠어."
일곱 살쯤으로 보이는 남자 아이가 나무젓가락을 입에 물고 말했다.
"누나, 그래도 먹어. 얼마나 맛있는데."
"누나는 지금 배 아파서 못 먹어. 오늘은 네 생일이니까 맛있게 먹어."
큰 아이는 그렇게 말하며 어린 남동생의 손을 꼭 잡아주었습니다.
"언니, 우리도 엄마 아빠가 있었으면 얼마나 좋을까. 저렇게 같이 저녁도 먹구."
이번에는 작은 여동생이 건너편 테이블에서 엄마 아빠랑 저녁을 먹고 있는 제 또래의 아이들을 부러운 눈으로 바라보고 있었습니다.
바로 그때 주방에 있는 아내 집사님이 주방에서 급히 나왔습니다.
그녀는 고개를 갸우뚱거리며 한참 동안 아이들 얼굴을 유심히 바라보았습니다.
"왜? 아는 애들이야?" "글쎄요. 그집 애들이 맞는 거 같은데....."
잠시 생각에 잠겨 있던 아내 집사님은 아이들에게 다가갔습니다.
"너 혹시 인혜 아니니? 인혜 맞지?" "네 맞는데요. 누구세요?"
아내 집사님의 갑작스런 물음에 아이는 어리둥절해 했습니다.
"엄마 친구야. 나 모르겠니? 영선이 아줌마." "한 동네에 살았었는데,
네가 어릴 때라서 기억이 잘 안 나는 모양이구나. 그나저나 엄마 아빠 없이 어떻게들 사니?"
그녀는 너무나 반가운 나머지 아이들의 얼굴을 하나하나 어루만지고 있었다.
"인정이도 이제 많이 컸구나. 날엔 걸음마도 잘 못 하더니."
그제야 기억이 났다는 듯 굳어 있던 아이들의 얼굴에 환한 미소가 번졌다.
"조금만 기다리고 있어. 아줌마가 맛있는 거 해다 줄게."
아내 집사님은 서둘러 주방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잠시 후 짜장면 세 그릇과 탕수육 한 접시를 내왔습니다.
아이들이 음식을 먹는 동안 그녀는 내내 흐뭇한 얼굴로 아이들을 바라보고 있었습니다.
"안녕히 계세요."
"그래, 잘 가라. 차 조심하구. 자장면 먹고 싶으면 언제든지 와, 알았지?" "네....."
아내 집사님은 문 앞에 서서 아이들이 저 만큼 걸어갈 때까지 손을 흔들어주었습니다.
아이들이 가고 난 뒤 남편 집사님은 아내 집사님에게 물었습니다.
"누구네 집 애들이지? 나는 아무리 생각해도 기억이 안 나는데....."
"여보, 사실은, 나도 모르는 애들이에요.
엄마 아빠가 없는 아이들이라고 해서 무턱대고 음식을 그냥 주면 아이들이 상처받을지도 모르잖아요. 그래서 엄마 친구라고 하면 아이들이 또 올 수도 있고 해서"
"그랬군. 그런데 아이들 이름은 어떻게 알았어?"
"아이들이 말하는 걸 들었어요. 주방 바로 앞이라 안에까지 다 들리던데요."
"이름까지 알고 있어서 나는 진짜로 아는 줄 알았지."
"오늘이 남동생 생일 이었나 봐요. 자기는 먹고 싶어도 참으면서
동생들만 시켜주는 모습이 어찌나 안돼 보이던지....." 아내 집사님의 눈에 맺혀 있는 눈물은 금방이라도 흘러내릴 것만 같았습니다.
가난으로 주눅 든 아이들에게 상처를 주지 않으려고 했던 아내 집사님을 보며 남편 집사님은 많은 생각을 했다고 합니다.
참 슬프면서도 따뜻한 얘기입니다.
우리 주변에 이렇게 따뜻한 사랑을 기다리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만약 우리 교회가 연약한 자들을 섬기는 교회로 자란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저는 가끔 이런 생각을 해봅니다. 뉴질랜드에서야 우리가 나그네요 이방인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이러한 소극적인 생각에서 벗어나 큰 생각을 품으면 어떨까요?
비록 나그네 이방인 이지만 우리도 여기서 더 어려운 이웃을 섬기는 존재가 되는 것입니다.
이를 테면 6.25때 대한민국을 구하고자 젊은 이들을 보낸 나라들이 있습니다. 그 때 대한민국과는 아무 연고도 없는 젊은 이들이 와서 목숨을 잃었고, 부상을 당하였습니다. 이들의 희생과 헌신으로 인해 마침내 대한민국은 살아났습니다. 그리고 오늘에 이르게 되었습니다. 이들의 희생이 없었다면 오늘의 대한 민국은 없었을 지도 모릅니다. 참으로 고마운 일이요 우리나라와 그 후손이 진 빛을 이루다 말 수가 없습니다.
그런데 1950년대에 대한민국을 위해서 피같은 젊은 이들을 보내 준 나라들 중에는 아프리카 국가들도 있습니다. 그리고 이들 국가중에서 극심한 가난으로 인하여 고통하는 나라들도 있습니다. 그리고 이들 중에는 아직 예수님을 알지 못하는 사람들도 부지기수입니다. 우리가 만약 이들 국가중 한 나라를 정해 그 우리가 받은 빚을 갚아 나가기 위해 학교를 세우고 이들을 그 나라를 살리는 지도자들로 세울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세상에 섬김의 왕으로 오셔서 용서하시며 막힌 담을 허무시고 세상에 평화를 전하신 예수님의 정신으로 생명 다해 그 백성을 섬김으로 하나님 나라가 임하게 지도자를 세우는데 우리가 힘을 모으고 기도한다면 이 처럼 뿌듯한 일이 있을까요? 우리가 받은 은혜의 빛을 갚은 교회가 된다면 세상은 우리 교회를 통하여 소망을 발견할 것입니다. 그리고 그 뜻에 동참하고자, 정말 뜻있는 하나님의 일에 함께 하고자 하는 사람들이 함께 하고 싶은 교회가 될 것입니다.
우리에게 구원의 빛으로 오신 예수님을 기쁨으로 맞이하고, 그 빛의 은혜를 나누는 성도, 우리 교회가 되라고 하십니다. 이웃에게 자유를 선포하라고 하십니다. 섬김의 길로나가하십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