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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심령이 견고한 믿음의 사람(창39:1-6)2011-05-03 08: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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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어린이 주일입니다. 이 자리에 계신 성도님들께서는 하나님께서 주신 자녀들을 어떻게 키우고 싶습니까? 그리고 함께 하고 있는 청소년 청년 여러분은 어떤 모습으로 자라고 싶습니까?

 

최근 한국의 빅 이슈 중에 하나가 카이스트 학생들의 잇단 자살에 관한 것입니다. 최근 4명의 학생이 잇달아 목숨을 버렸고, 심지어 이들을 가르치는 교수마저 그 길을 갔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서남표 카이스트 총장의 무리한 개혁에 의한 부작용이라고 말을 하고 있습니다. 대표적인 예로 4년 전액 장학금을 주던 정책에서 일정한 성적을 내지 못하면 등록금을 내는 형태로 바뀌었습니다. 또 한 가지는 세계최고의 과학기술대학이라는 목표에 도전하면서 모든 강의를 영어로 진행합니다. 하여 이에 적응하지 못한 학생들이 발생하고 급기야 줄지어 목숨을 버리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한국과학기술원이라는 이 대학은 영재 수재들만 가는 대학입니다. 4년 전액 장학금을 나라에서 주기 때문에 요즘 같은 시대에 얼마나 인기가 좋겠습니까? 1년 학비가 천만 원 가까이 되는 시대 아닙니까? 그러니 그만큼 공부에 소질 있는 학생들이 많이 몰리고 수준이 높습니다. 그래서 이런 학교에 입학했다는 것은 집안의 경사입니다. 그런데 이렇게 명예스럽고 수준 있는 대학에 들어갔는데 목숨을 버립니다.

 

앞서 말씀드린 대로 어느 정도 구조적인 문제가 있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정신적. 신앙적 관점에서 보자면 이는 나약한 심령의 문제라고 보는 것이 더 정확할 것입니다. 좋은 대학, 남이 부러워하는 대학에는 들어갔고 영재요 수재이지만 정작 자신 앞에 닥친 문제에 대해서는 어린 아이 같이 미숙했던 것이 아닌가 하는 것입니다. 머리는 영재이지만 마음은 너무나 유약한 모습이라는 것입니다.

 

회복탄력성이라는 책의 저자인 김주환 연세대 언론홍보 영상학부교수는 최근의 젊은이들의 잇단 자살에 대해 이렇게 말을 합니다.‘구조적인 문제가 없는 것은 아니지만 마음의 병이 무엇보다 심각하다

 

그러면서 최근 카이스트의 문제에 대해서도 이렇게 얘기합니다. 카이스트 내 살인적인 경쟁이나 징벌적 등록금 제도 등은 촉발제이지 근본 원인은 아니라고 본다....젊은이들의 마음 상태, 정신 건강이 굉장히 나약해져 있다.’

 

이분의 표현대로 하자면 시련과 고난을 딛고 일어서는 힘’, 즉 회복탄력성이 약하다는 것입니다. 마음이 병들었기에 시련과 고난을 맞서 싸우고 일어서는 힘이 약하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 분은 회복탄력성을 높여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매사에 긍정적인 생각을 해야 한다라고 말합니다.

 

참 감사한 것은 성경에는 회복탄력성에 있어서는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인물들로 가득 가득하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믿음의 선배들이 어떻게 그 고난을 맞서 싸우고 이겼는가에 대한 풍부한 산 증거를 성경을 통해서 배울 수 있습니다.

 

그 중에 오늘 본문의 주인공 요셉은 우리와 비슷한 처지에 있어서 더 공감이 가는 인물입니다. 요셉도 고향을 떠나 이민자의 삶과 다를 바 없는 인생을 살았다는 점이 우리와 똑 같을 뿐만 아니라, 우리와는 비교 할 수 없는 고난과 고통 속에 처하여 있었음에도 그것을 뛰어넘은 인물이라는 점에서 더욱 그렇습니다.

 

잠시 믿음의 선배 요셉의 인생을 들여다보겠습니다. 셉은 야곱이 진짜로 사랑했던 아내 라헬이 낳은 첫째 아들입니다. 얼마나 사랑했던지 이미 얻은 다른 10명의 아들들 보다 훨씬 더 사랑했습니다. 그러다 보니 배다른 형제이며, 형들이 요셉을 미워했습니다. 끄떡하면 형들의 모난 행동들을 일러바치고 건방지게 꿈속에서 형들이 자기한테 절하더라는 얘기를 해서 더 미움을 받았습니다.

 

결국 형들은 아버지 몰래 죽이고자 하는 음모를 꾸미기도 했지만 장남의 만류로 죽이지는 않고 에집트로 가는 상인들에게 요셉을 팔아넘깁니다. 형들은 아버지에게 가서는 짐승에게 물려 죽었다고 하며 염소의 피를 동생의 옷에 뭍여 갈기갈기 찢어 아버지에게 보여줍니다.

 

아무리 배다른 형제라고 하지만 한 아버지를 두고 있는 동생을 팔아넘기고 다시는 아버지를 볼 수 없게 만든 것입니다. 비참한 요셉의 노예 인생이 시작되었습니다. 전혀 예상치 못한 삶이었습니다. 하루아침에 귀공자에서 노예로 전락하였습니다. 어제까지만 해도 아버지의 모든 사랑과 관심을 온 몸에 받으며 화려한 옷을 입고 부러움 없이 살다가 사람 축에도 들지 못하는 노예가 된 것입니다. 이제 사람이 아니라 돈으로 사고파는 물건이 된 것입니다. 너무나도 기막힌 비참한 인생으로의 반전이 아닐 수 없습니다.

 

보통 이러한 경우 사람은 정신적인 충격에 빠집니다. 자기의 정체성을 잃어버립니다. 자기 존재의 하찮음과 비참함의 충격으로 인해 살아야 할 의욕을 상실합니다. 자기의 비참한 모습을 맨 정신으로 볼 수 없어서 술로, 마약으로 인생을 허비하고, 혹은 세상과 단절된 자기만의 세계로 빠져 들어갑니다. 정상적인 인간의 모습을 잃어버리는 것입니다.

 

그런데 요셉은 달랐습니다. 자신이 노예라는 현실을 받아들입니다. 그리고 그 상황에서 최선을 다합니다. 심지어 아무 잘 못 없이 누명을 씌고 옥에 들어가게 되어도 그것을 원망하지 않습니다. 여전히 그 상황에서 자신이 할 수 있는 것에 최선을 다합니다. 나아가 자신의 인생을 그렇게 한 없이 추락하는 것을 뻔히 아시면서도 막지 않으신 여호와 하나님께 대하여서도 불평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하나님을 신뢰합니다. 그리고 나중에는 애굽의 총리가 됩니다. 노예가 총리가 되는 일어날 수 없는 대 반전이 그의 인생에서 일어납니다.

 

요셉은 이러한 사람입니다. 누구라도 다시 일어서기란 쉽지 않았을 처지에 떨어졌지만 그것에 눌려 자기 인생을 망치지 않고 그것을 이겨냈습니다. 노예가 된 비참함을 이겨냈고, 반드시 복수해도 시원치 않은 형들에 대한 원망을 사랑과 용서로 이겨냈습니다. 억울함을 풀길이 없어 원통함으로 끓어오르는 가슴을 부여잡고 스스로 목숨을 버려도 여러 번 그러해야 했을 사람인데도 그는 그 13년간의 노예의 삶을 견디어 낸 것입니다.

 

우리는 여기서 요셉이 어떠한 사람이었는가를 알게 됩니다. 그는 마음이 흔들림이 없는 견고한 사람이었습니다. 처지를 생각하면 눈물을 흘릴 수밖에 없는 비참한 상황이었음에도 그는 비관하지 않고 그 마음을 지키는 사람이었습니다.

오늘 말씀의 제목과 같이 심령이 견고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13년간의 노예 생활을 한 결 같이 성실하게 생활했고 그 모든 아픔을 인내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 모두가 이와 같은 영혼의 소유자가 되기를 원하십니다.

그래서 어떠한 고난이 앞에 있다 할지라도 두려워하거나 비관해하지 않고

담대히 맞서 싸워 승리하는 심령이 견고한 자가 되기를 원합니다.

 

예수님 같이 십자가 앞에서 담대히 그 길을 가는 영혼이 되기를 원하십니다.

몸이 자랄 뿐 아니라 영혼이 견고한 성과 같이 단단히 세워지기를 원하십니다.

장성한 사람들이 되기를 원하십니다.

 

왜냐하면 우리 앞에 다가오는 모든 인생의 파도를 이기고 승리하기를 원하시기 때문입니다. 요셉이 그 앞에 처한 그 비참한 인생의 파도를 이김 같이 우리도 이기고 승리의 찬양을 부르게 하려 함입니다.

 

여러분은 어떤 부모님이십니까? 여러분의 자녀를 심령이 견고한 사람으로 세우고 있습니까? 자녀를 사랑한다 하여 어려움과 고난을 모르고 자라게 해서는 안 됩니다. 왜 그러면 안 되는지 알려 주는 극단 적인 사례 한 가지를 말씀드리겠습니다.

 

201086일 모 인터넷 신문기사내용입니다. ‘중국의 23세 청년이 굶어 죽었는데 이 것이 영화로 제작 된다는 기사였습니다. 흥미 있는 것은 왜 이 팔팔한 23세 청년이 굶어 죽었느냐 하는 것입니다. 그 이유는 한 마디로 부모의 과잉보호와 빗나간 사랑이었습니다.

 

이 청년의 부모는 이 아들을 낳은 후 얼마나 사랑스럽고 좋았던지 다칠 것을 생각해 밖에도 나가 놀지 못하게 했고, 심지어 학교에도 보내려 하지 않았습니다. 아들이 원하는 것이라면 무엇이든지 해주었습니다. 그 덕에 이 아들은 손가락 한번 움직이지 않았고 점차 아무 것도 할 수 없게 되었습니다. 심지어 13살 때 아버지가 세상을 떠난 후 어머니 혼자 농사일을 하며 집안일을 꾸려야 하는데도 여전히 집안일조차 손대지 않았습니다. 결국 18살 때 어머니까지 피로 누적으로 숨져 홀로 서야 했는데 그런 환경에 적응을 하지 못했습니다.

 

그는 스스로 할 수 있는 것도 없었고, 스스로 그것을 해결해야 하는 이유도 모른 자기 인생을 귀찮아 하다가 몇 년 뒤에 어느 날 겨울에 굶어 죽었습니다. 주민들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이웃에서 밥 한 끼 얻어먹고 배가 부르면 잠자는 것이 일과 였다. 추위가 닥치자 집에서 나오는 것조차 귀찮아 하다가 죽은 것 같다.’

 

어려서 어머니를 잃고, 또 형들에 의해 청소년의 나이에 아버지와 강제로 헤어져야 했고, 노예라는 비참한 인생으로의 추락이라는 환경에도 불구하고 그것을 이겨낸 요셉과 중국의 한 청년의 삶은 너무나 대조적이지 않습니까?

 

우리는 이 지음에서 이런 질문을 던져야 합니다. “요셉은 어떻게 그러한 환경에서도 흔들림이 없는 견고한 심령을 유지할 수 있었을까?, 요셉의 인생은 어떻게 시련과 고난을 딛고 일어서는 높은 회복 탄력성을 가지고 있었을까?”

 

그것은 아버지로부터 물려받은 신앙 때문입니다. 단순히 종교로서가 아니라 하나님은 언약을 지키고 인도하시는 분이라는 믿음을 물려받은 것입니다.

 

요셉의 아버지 야곱은 공교롭게도 요셉과 비슷한 모습이 있습니다. 형 에서를 속인 죄로 형에게 죽임 당할 것을 두려워하여 어머니의 고향으로 도망을 간 것, 이 때 빈손으로 떠나 이방 땅에서 20년 간 고생했지만 12 아들과 큰 재산을 가지고 돌아오고, 형 에서와 화해한 것이 그것입니다. 이러한 야곱의 인생은 내가 너와 함께 있어 네가 어디로 가든지 너를 지키며 너를 이끌어 이 땅으로 돌아오게 할지라. 내가 네게 허락한 것을 다 이루기까지 너를 떠나지 아니 하리라’(28:15)하신 언약을 하나님께 그대로 이루셨음을 의미합니다.

 

, 요셉은 이미 아버지의 험난한 인생 여정을 통하여 하나님은 이방 땅에서의 삶에도 함께 계시는 분이요 주신 언약을 이루어 가시는 분임 알게 된 것입니다. 그래서 그는 아버지의 인생을 통해서 배운 대로 그렇게 애굽에서 자신의 길을 인도하실 하나님을 신뢰하였습니다. 믿음의 인내로 성실한 삶의 모습을 잃지 않았습니다. 마음이 흐트러짐 없이 자신을 바르게 지켰습니다.

 

만약 요셉이 자신의 처지를 비관하고 인생을 허비하였다면 요셉은 다시는 형들과 아버지를 만나지 못하였을 것이며, 성경에서 요셉의 얘기는 매우 초라하게 기록되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요셉은 이미 아버지의 삶의 모습 속에서 이해 할 수 없는 고난과 억울함에 처할지라도 하나님께서는 주신 꿈을 이루어 가시는 분, 언약을 이루어 가시는 분임을 깨달은 것입니다. 그렇기에 노예로 전락한 비참한 인생의 처지에서도 하나님의 손길을 기다리며 인내할 수 있었고 그 자신의 위치에서 성실한 삶을 지켜 갈 수 있었습니다. 하나님을 신뢰함으로 다가온 고난과 아픔과 억울함을 이겨낼 수 있었습니다.

 

우리 부모님들께서 자녀들에게 보여 주어야 할 것이 바로 이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인생의 주인이심을 신뢰하고 하나님을 의지하는 믿음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때로 힘들고 어려울 때 그것을 피하고 도망하는 모습이 아니라, 하나님을 신뢰하고 기도하며 의지하는 모습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힘들고 아픈 상황이 있을 수 있음을 자녀들과 나누고, 그러한 아픔을 하나님을 신뢰하고 기도하며 이겨 나가는 모습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자녀들이 어려움에 처하지 않도록 기도하기 보다는 어떠한 어려움이 다가와도 두려워하지 않고 하나님을 신뢰함으로 이겨나가는 믿음의 사람이 되기를 위해서 기도해야 합니다.

 

아픔과 어려움이 있을 때 그것을 함께 나누되 슬퍼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신뢰하고 기도하며 그 뜻을 기다리며 하나님을 붙드는 믿음의 인내를 보여주어야 합니다. 그리고 마침내 승리하게 하시는 하나님께 감사와 영광을 돌려야 합니다.

 

한편 오늘 이 자리에는 부모님과 떨어져 홀로 홈스테이를 하며 공부하는 청소년 청년들이 있습니다. 이러한 친구들을 이렇게 생각하십시오.

나는 요셉이다. 비록 공부는 계획대로 안 되고, 외롭고, 모든 것이 우울하게 여겨지지만, 부활하신 예수님이 나와 함께 계시다. 예수님께서는 나의 인생을 이끌고 계시다. 때가 되면 나를 이 땅에 태어나게 하신 큰 뜻을 이루어주실 것이다. 그 때까지 지금 내 자리에서 하루하루 해야 할 최선을 다하자. 요셉이 청소년과 청년의 시절에 노예가 되어서도 하나님을 신뢰하고 그 모든 것을 인내하며 이긴 것 같이 그렇게 하자. 나는 요셉이다.’

 

멋있는 인생은 고난이 없는 편안한 인생이 아닙니다. 모든 고난을 이기고 승리한 인생입니다. 그렇기에 힘들고 어렵고 연약함이 엄습할 때 하나님께서 나를 위대한 인생으로 세우려고 하시는 구나하고 생각해야 합니다.

 

우리나라 전통 가구 중에 전주장이라고 유명한 가구가 있는데, 이 전주장은 용무니가 아름다운 용목이라는 나무를 씁니다. 오랜 세월 병 때문에 몸의 일부가 옹이 지고 뒤틀린 나무가 그렇게 용무늬로 나타나는 것입니다. 목공예 소목장들은 구하기도 어렵고 부르는 게 값인 그런 나무의 무늬를 최고로 칩니다.

 

마찬 가지로 우리에게 어떤 어려움과 고통과 상처가 있다면 그것도 용목과 같은 존재가 되기 위한 하나님의 연단이요 훈련이요 최고의 인생으로 인도하시는 하나님의 손길이라고 믿으면 그것이 틀림없습니다. 이러한 믿음으로 부모님들은 그 앞에 있는 어려움을 대처하실 때 그것을 보고 자라는 자녀들은 모든 풍파를 맛서 싸우며 견고히 서서 승리하는 인생, 용목과 같은 존귀한 인생이 될 것입니다.

 

인생은 끝없는 파도로 출렁입니다. 그래서 인생을 거친 파도를 헤치고 가야만 하는 항해와 같다고 말합니다. 이 길을 여러분의 자녀가 헤쳐 갈 수 있는 사람으로 세워지고 있습니까?

 

여기저기서 내 인생은 왜 이래하고 자신을 내 팽개치는 소리가 가득한 시대에, 여러분의 자녀와 여러분께서는 요셉의 아버지가 되고 요셉이 되어야 합니다.

고난 중에도 함께 계서서 인도하시는 하나님을 신뢰하고 믿음의 인내로 자신의 길을 성실하게 걸어가는 믿음을 유산으로 물려주십시오. 그러면 심령이 견고한 사람이 되어 가족을 구하고, 회사를 구하고, 나라를 구하는 위대한 하나님의 사람들이 될 것입니다.

 

하나님은 말씀하십니다.

주께서 심지가 견고한 자를 평강에 평강으로 지키시리니 이는 그가 주를 의뢰함이라’(26: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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