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울은 이스라엘의 첫째 왕입니다. 그이 시작은 시작은 좋았습니다. 예를 들면 사울은 왕이 되기 전에는 존경받을 만한 모습을 가진 사람이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그를 불러 왕으로 세웠는데 겸손한 사람이었기 때문입니다. 순수한 애국심도 있었습니다. 자기를 비난하는 사람에 대해서 참고 이기는 관대한 아량도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러한 사울이 조금씩 변하기 시작했습니다. 오늘 본문 말씀과 같이 하나님을 순종하지 않기 시작한 것입니다. 자기 편한 대로 하기 시작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무시한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사울왕의 왕위와 이스라엘을 다른 사람에게 넘길 것이라 말씀하셨고, 그 말씀대로 사울의 왕위는 사울에게서 끝이 나는 것은 물론이요, 전쟁에 나가 두 아들과 함께 한 날에 죽는 비극의 주인공이 되었습니다. 오늘 본문은 그러한 사울이 죄를 짓는 첫번째 장면입니다. 오늘 본문을 통해서 하나님을 무엇을 말씀하실까요?
첫째 어떤 일이 있어도 하나님을 신뢰라하고 말씀하십니다.
사울의 가장 큰 잘못은 불순종이었습니다. 그런데 그 불순종의 가장 큰 원인은 하나님께 대한 신뢰의 부족이었습니다. 왕이 된지 2년 만에 블레셋과 큰 전쟁을 하게 되었을 때 입니다. 사무엘이 사울에게 자신이 올 때 까지 기다리라고 하였습니다. 하지만 약속한 날이 되어도 사우엘이 올라오지 않았습니다. 그러자 백성들이 동요하기 시작했고, 불안한 해 했던 백성들은 적 앞에 흩어지기 시작했습니다. 게다가 블레셋 군대는 막 공격 해올 태세였습니다.
사무엘이 오기만을 기다리던 사울은 그 때 큰 잘 못을 범합니다. 사무엘이 드릴 번제를 사울이 대신 드린 것입니다. 제사장의 일을 자신이 대신 한 것입니다. 어떻게 보면 큰 잘못도 아닌 것 같이 보입니다. 상황이 급하니 번제를 대신 드린 것이고, 그것도 위급한 상황이이니 그럴 수도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바로 거기에 있습니다. 즉 사울이 하나님을 신뢰하지 않음이 여기서 드러나기 때문입니다. 그가 하나님께 번제를 드렸다는 것은 하나님을 믿는 사람의 모습 처럼 보입니다. 하지만 이것이 하나님을 신뢰하지 않는 모습을 보여줍니다. 왜냐하면 사울이 번제를 드린 이유가 하나님을 신뢰해서 드린 것이 아니라, 신뢰하지 못하기 때문에 나온 행동이기 때문입니다.
만일 사울이 하나님을 신뢰했다면 사무엘이 올 때까지 기다리라는 말씀을 끝까지 순종했어야 합니다. 그러나 그렇게 하지 않았습니다. 왜냐하면 기다리라는 말씀대로 기다렸다가는 전쟁에 패할 것 같이 여겨졌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나온 행동이 스스로 번제를 드린 것입니다. 하나님을 신뢰하지 못하였기에 말씀을 어기고 하지 말아야 할 행동을 한 것입니다. 하나님을 하나님으로서 믿지 못한 것입니다.
사울은 여기에서 한 가지 테스트에서 떨어진 것입니다. ‘위급하고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질리 만무하게 보이는 상황에서 사울이 어떻게 하는가?’를 보려는 하나님의 테스트에서 실패한 것입니다. 위급한 상황에서 자기 마음대로 행동하는 모습을 나타냈기 때문입니다. 자신의 판단과 상황을 하나님과 그 명령을 신뢰하는 것 보다 더 중하게 여긴 것입니다.
여러분들께서는 위급한 상황이 되고, 하나님은 보이지 않는 것 같은 상황에서 어떻게 행동하십니까? 하나님을 신뢰하고 하나님의 뜻을 구합니까? 그래서 하나님께 원하시는 대로 순종하며 나아갑니까?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말씀하십니다. 어떠한 상황에 처할지라도 하나님을 신뢰하라.
다윗은 이렇게 고백합니다. ‘여호와여 주의 이름을 아는 자는 주를 의지하오리니 이는 주를 찾는 자들을 버리지 아니하심이니이다.’(시편9:10)
하나님은 말로만의 하나님이 아니십니다. 이 온 우주를 지으시고 통치하시는 하나님, 즉 역사를 주권자 하나님이십니다. 모든 권세와 능력을 소유하신 분이십니다. 게다가 아들을 주시기까지 우리를 구하기 원하시는 사랑의 하나님이십니다. 하늘과 땅을 지으시는 권세와 능력으로 함께 하시는 분이십니다. 할렐루야.
다윗은 이러한 하나님이 함께 계심을 믿었습니다. 시편 16편에서 이렇게 고백합니다. ‘내가 여호와를 항상 내 앞에 모심이여 그가 내 우편에 계심으로 내가 요동치 아니하리로다’
변함없는 사랑의 하나님을 앞에 모시는 사람은 흔들리지 않습니다. 항상 하나님이 함께 계심을 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약속의 말씀을 붙듭니다. 하나님은 그 말씀을 이루시고 지키시는 분이기 때문입니다.
제자들이 예수님과 함께 갈릴리 호수를 건너갈 때 였습니다. 갑자기 큰 풍랑이 일어 타고가던 배가 전복될 상황에 처하였습니다. 제자들은 두려워 떨었습니다. 물에 빠져 죽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이 때 주무시던 예수님의 제자들의 믿음 없는 모습을 꾸짖습니다.
‘어찌하여 무서워하느냐 믿음이 적은 자들아!’ 그런 후 바람과 바다를 잠잠케 하십니다.
제자들은 놀라 ‘어떠한 사람이기에 바람과 바다도 순종하는고?’
우리 주, 우리 하나님은 어떤 분이십니까? 자연 만물을 지으시고 통치하시는 창조주 하나님이십니다. 할렐루야!
창조주 하나님께 능치 못한 것이 무엇이있습니까? 창조주 하나님께서 다스리지 못할 것이 무엇이 있습니까? 그 어떤 위험과 그 어떤 상황속에 처하여 있다하여 잔잔케 하실 능력의 하나님이십니다.
신뢰한다는 것은 의지하는 것이요, 맡기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능력의 하나님께 여러분의 길을 맡기십시오. 하나님께서 우리의 인생을 요동 가운데서 보호하시고, 흑암같은 어둠에서 이끌어 내실 것입니다. 할렐루야.
둘째, 너는 나를 순종하라.
13절에서 사무엘이 사울에게 이렇게 말합니다.
‘왕이 망령되이 행하였도다. 왕이 왕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명령하신 것을 지키지 아니하였도다. 그리하였더면 여호와께서 이스라엘 위에 왕의 나라를 영영히 세우셨을 것이어늘지금은 왕의 나라가 길지 못할 것이라 여호와께서 왕에게 명하신 바를 왕이 지키지 아니하였으므로 여호와께서 그 마음에 맞는 사람을 구하여 그 백성의 지도자를 삼으셨느니라.’
하나님을 신뢰하지 못함으로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지 못한 사울에게 하나님의 징계의 말씀이 선포된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순종하지 아니하는 사울에게 왜 징계를 내릴까요? 우리는 그 이유는 사울이 두번째로 하나님을 불순종하였을 때 그에게 이르신 말씀을 통해서 알 수 있습니다. 사무엘이 이렇게 말합니다.
여호와께서 번제와 다른 제사를 그 목소리 순종하는 것을 좋아하심 같이 좋아하시겠나이까 순종이 제사보다 낫고 듣는 것이 숫양의 기름보다 나으니 이는 거역하는 것은 사술의 죄와 같고 완고한 것은 사신 우상에게 절하는 죄와 같음이라. ’
아말렉 족속과 전쟁이 났을 하나님께서는 사울 왕에게 아말렉의 모든 사람과 짐승을 다 멸하라 했는데, 사울 왕은 좋은 양과 소, 기름진 것과 어린양은 남겨 놓았습니다. 탐이 난 것입니다. 이에 잘 못을 꾸짓는 사무엘에게 사울은 하나님께 제사를 드리기 위해 제일 좋은 것을 남겨 놓았다고 말합니다. 그리고 그 때 사무엘이 사울에게 방금 읽어드린 말을 한 것입니다. 하나님은 번제와 그 제물보다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순종하는 것을 더 좋아하신다고.
그러면서 사울의 죄를 비유하여 설명합니다. ‘거역하는 것은 사술의 죄와 같고, 완고한 것은 사신 우상에게 절하는 것과 같다.’ 사술의 죄라는 것은 점치는 것이요, 사신이라는 헛된 우상을 말하는 것입니다. 하나님 앞에서 점을 치고, 헛된 우상을 섬기는 죄는 어떤 죄에 해당합니까? 모세에게 주신 제 1계명 ‘너는 나 외에는 다른 신들을 네게 있게 말지니라’와 제 2계명 ‘우상에게 절하지 말라’는 계명을 어긴 중죄에 해당합니다.
이 두 가지 죄가 다 하나님외에 다른 신을 섬기는 것이요, 이는 여호와 하나님을 멸시하고 부정하는 죄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제일 싫어하는 대 죄를 짓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불순종을 이렇게 크게 다루고 계십니다. 불순종은 하나님을 부인하고 다른 신과 우상을 섬기는 죄인 것입니다. 그러니 우리가 마음이 강퍅해져 따르지 않을 때 하나님께서 얼마나 괴로워 하실지 알게됩니다.
혹시 여러분 주위에서 누군가 여러분을 향해서 ‘저 인간은 인간도아니다’라고 말하면서 사람 대접을 안할 때 어떨 것 같습니까? 길거리 지나가는데 갑자가 키위가 ‘더러운 김치, 한국으로 꺼져?’라고 할 때 어떨 것 같습니까? 심장이 폭발하지 않겠습니까? 그 억울한 심장이 터지지 않겠습니까? 가슴이 찟어지는 것입니다. 혼이 나가는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순종치 않고, 성령을 근심하게 할 때 하나님의 가슴이 이렇게 찟어지는 것입니다. 사울이 바로 그렇게 하나님의 가슴을 찟어놓았습니다. 하나님의 뜻을 거부하고 자기 좋을 대로 행동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사울에 의해 완전히 무시를 당한 것입니다. 이에 하나님은 그 왕의 위를 사울의 자손이 아닌 다른 사람에게 넘김으로 그 왕위를 단절시킵니다.
여기에서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참으로 원하시는 것이 무엇인가를 말씀하고 계십니다. 그것은 순종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것입니다.
그것보다 하나님을 하나님으로 더 높이는 것이 없고,
순종하지 않는 것 보다 하나님을 더 모욕하는 것이 없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 순종하는 것보다 하나님을 기쁘게 하는 것은 없습니다. 순종이야 말로 완전한 헌신과 의탁에서 나오는 행동이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어떤 헌신과 의탁입니까?
‘하나님 저는 주님의 것입니다. 주님께서 원하시는대로 행하십시요. 저는 더 이상 제 인생을 주장하지 않겠습니다. 제 몸에 배인 습관도 제가 느끼는 어떤 감정도 저를 주장하지 않을 것입니다. 어떤 상황에서도 제 논리와 경험을 따르지 않겠습니다. 주님께서 말씀하시는 대로만 하겠습니다. 커피한 잔도, 신문을 보는 것도, 지금 무엇을 해야 한다는 판단이 들때도 주님께 맡기겠습니다. 저는 주님의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말씀하시는 대로만 하겠습니다.’ 하고 주권을 하나님께 이양하는 것입니다.
완전히 하나님께 그냥 인생을 드린 존재가 되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하나님의 것이기 때문입니다. 뭐 더 따지고 말 것도 없습니다. 하나님이 말씀하십니다. ‘너는 내것이다.’
‘나의 영광을 위해서 지은 것이라’ 이사야 선지자를 통해서 말씀하십니다. (사43:21)
이렇게 산다는 것은 어려울 것 같습니다. 그런데 오히려 이게 더 쉽습니다. 아예, 주님의 것임을 선포하고 주님이 원하시는 대로 하면 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이러한 마음으로 주님을 바라보는 사람은 하나님의 뜻을 분별하는 것이 쉽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분명하게 그 내면의 귀와 마음에 해라 하지마라 말씀해주시기 때문입니다.
반면에 내가 하나님의 것임을 완전히 선언하지 않고 긴가 민가 하면서 하나님을 믿게 되면 늘 부딧힙니다.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것과 내가 하고 싶은 것 사이에서 충돌이 일어나고, 왠만한건 다 자기 뜻대로 하는데 익숙해 있기 때문입니다. 오늘 사울과 같은 모습이 나타나는 것입니다. 자기의 욕심과 자기 생각에 따라 적당히 하나님을 무시하고 순종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을 믿는 다고는 하지만 하나님을 신뢰하지 않으며, 하나님의 것임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것인양 소유권을 주장합니다. 그래서 이러한 사람은 순종이 힘듭니다. 아직 소유권이 이전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사랑하는 교우 여러분, 우리는 하나님이 만드셨습니다. 하나님의 것입니다.
사랑하는 교우 여러분, 우리는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존재합니다. 하나님의 것입니다.
사랑하는 교우 여러분, 예수님이 우리 위해 죽으셨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것입니다.
사랑하는 교우 여러분, 다 하나님께 드리세요.
어제 이 설교를 준비하면 늘 마시던 커피를 안마셨습니다. 식사를 하면 으레 먹는 거라서 습관 처럼 먹었습니다. 그러다가 아냐 나는 하나님께서 내 주인데, 하나님께 물어봐야겠다 하고 잠시 앉아 기도했습니다. ‘하나님은 거피를 마실까요?’ 그때 하나님께서 곧 답을 주셨습니다. ‘먹지마라’ ‘예 알겠습니다.’하고 안 먹었습니다.
제가 책상 앉아 커피를 마시면 으레 인터넷을 켜고 주로 뉴스를 보게 됩니다. 그러다 보면 30분이 훌쩍 지나갑니다. 그래서 늘 고쳐야지 하고 있었습니다. 하나님 앞에서 시간을 낭비하는 것 같아서 보고나면 후회가 되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어제는 커피를 마시지 말라고 해서 안마시면서 그러면 인터넷 신문을 보면서 쉬면 어떻까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이번에도 ‘나는 주님의 것이니, 주님이 원하시는대로 해야지’ 하고 ‘주님, 인터넷 뉴스좀 봐도 될까요?’하고 물었습니다. 그랬더니 ‘설교 준비나 해라’하시길래 ‘네, 알겠습니다’하고 설교준비를 했습니다. 참 편안합니다.
내가 하고 싶고 말고 싶고 상관없습니다. 나는 주의 것이니, 하라는 대로 하는 것입니다. 나는 없고 주님만 있는 것입니다.
설교준비를 하다가 오늘 말씀 첫째 요지까지 설교 준비가 끝이났습니다. 그리고 저녁을 먹고 사무실에 돌아왔습니다. 그런데 사무실에 오다가 생각이 나기를 내일 설교는 이정도만 해도 되지 않을까 싶었습니다. 내용도 조금 길어지고 어려운 내용이 전개 될 것 같아서였습니다. 그래서 막 고민을 할라칠 때 ‘아참 기도하자 나는 하나님의 것이니 하나님께서 하라는대로 하면되지’ 하고 기도를 했습니다.
‘하나님 설교를 더 준비할까요?’하고 물었습니다. 그러자 금방 ‘더 준비해라’하셨습니다. 그러면 그 다음은 무슨 말씀을 전할까요? 하고 물었습니다. ‘첫째가 나를 신뢰하라는 내용이니, 그 다음은 반드시 순종이 나와야 한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래서 ‘네, 알겠습니다. 순종에 대해서 전하겠습니다.’하고 지금 이 내용을 준비한 것입니다.
하나님께 맡기면 쉽습니다. 걱정할 것이 없습니다. 하나님의 것, 하나님께 맡겼으니, 하나님께서 하라는 대로 하기만 하면 됩니다. 시편 118편에서 하나님께서 이런 말씀을 주십니다. ‘여호와께 피함이 사람을 신뢰함보다 나으며 여호와께 피함이 방백들을 신뢰함보다 낫도다.’ 나보다, 어떤 힘있는 사람보다 하나님을 의지함의 천배 만배 낫습니다.
하나님은 모든 지혜와 권세와 능력의 하나님이시요, 온 우주와 역사의 주인이시요
사랑이기 때문입니다.
여호와는 하나님이십니다. 우리 주인이십니다. 반대로 우리는 여호와의 것입니다.
여호와 외에 세상 더 좋은 것이 없고, 내 인생을 맡길 곳도 여호와 외에는 없습니다.
죄인들인 우리를 위해 아들을 주시기까지 하시는 하나님의 참 사랑의 하나님은 우리의
주인입니다. 나를 위해 모든 것을 주신 하나님께 우리를 드릴 수 있다는 것 보다 더 큰 복은 없고, 그것보다 더 하나님을 영화롭게 해드리는 것은 없습니다.
십자가의 꿈을 이루기 위해 부르시는 주님 앞에 나아가 선언하십시오. ‘이순간부터 저는 주님의 것입니다. 주님께서 원하시는 대로 저는 믿고 따르겠습니다. 기도라하면 기도하고, 가라면 가고, 용서라하면 용서하고, 죽으라면 죽겠습니다. 십자가의 꿈을 위해 제가 필요하다면 말씀하십시요. 말씀하시는 대로 하겠습니다. 저는 주님의 것입니다.’
이렇게 선언하고 십자가의 꿈으로 부르시는 주님 앞에 나아간다면 신령한 눈이 열리게 될 것입니다. 영의 귀가 열리고, 마음의 문이 열리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은 더욱 친밀하게여겨지고, 가까이서 내 중심을 보시는 하나님을 만나게 될 것입니다. 갈 수록 더욱 선명하게 하나님의 뜻을 분별하고 원하시는대로 순종하되 두려움없이 순종하는 믿음의 용사가 될 것입니다.
그리고 살아계신 하나님의 역사가 그를 통해서 다른 영혼들에게 증거될 것입니다.
새 영혼이 열매를 맺는 역사가 나탈 것이요, 나태하고 게으른 신앙인을 위해서 울며 기도하는 사람이 될 것이요. 성령의 음성으로 연약한 자를 위로하는 사람이 될 것입니다.
드디어 부흥이 시작되는 것입니다. 십자가의 꿈이 서서히 피어나기 시작하는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 우리 교회 안에 이 역사가 일어나기를 주님께서 간절히 원하십니다. 해밀턴의 교회 안에 이 역사가 일어나기를 간절히 원하십니다. 이 땅의 모든 교회 안에 이 역사가 일어나기를 원하십니다.
주님이 말씀하십니다. 깨어나라 깨어나라. 너는 내 것이다. 내 말을 들으라. 내 말을 들어라. 십자가의 꿈이 네 앞에 있지 않느냐 말씀하십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