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인터넷상에서 트고 있는 할머니 한분이 계십니다. 이분의 이름은 차사순이라 하고, 현재 나이 68세입니다. 이분이 뜨고 있는 이유는 할머니인데도 불구하고 유독 예뻐서 그런 것이 아닙니다. 할머니께서 자동차 면허를 딷기 때문입니다. 그것도 무려 949번의 실패 후 950번째 필기시험에 합격하였고, 10번째 실기시험을 통과하여 마침내 자동차 면허를 받았기 때문입니다. 자동차 면허 그 자체는 흔한 것이기에 대단한 결과도 아닙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분이 국내뿐 아니라 외국신문에도 날 정도의 유명인사가 된 것은 이분의 불굴의 의지 때문입니다. 목표를 정해놓고 절대로 포기하지 않고 마침내 목표를 이룬 그 인간승리의 모습이 사람들을 감동케 한 것입니다.
이 차사순 할머니는 조금 힘들다고 조금 환경이 열악하다고 쉽게 포기하고 낙심하는 우리들에게 특히 젊은이들에게 많은 도전을 주시는 분이라 생각이 듭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에서는 이와 반대로 한 젊은 소년이 우리를 부끄럽게 도전을 주고 있습니다. 바로 다윗입니다. 오늘 본문은 우리가 너무나 잘아는 내용으로 소년 다윗과 골리앗과의 싸움을 소개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겨우 돌맹 몇 개와 지팡이를 들고 나아가는 다윗, 그러나 위대한 하나님을 믿고 나아가는 다윗이 그 누구도 감히 맞설 엄두도 내지 못하는 골리앗을 물리쳤음을 보고합니다.
그 자리에는 사울 왕과 군대를 통솔하는 장군들과 무사들이 있었습니다.
다윗이 골리앗을 물리치는 모습에 어떤 느낌이 들었을까요?
골칫거리인 골리앗을 이기자 이스라엘 진영은 용기백배하여 일어나 도망하는 블레셋을 추격하여 물리치지만, 속으로는 부끄러웠을 것입니다. 소년 다윗은 무기도 없이 돌맹이 몇 개와 지팡이를 만 가지고도 이겼기 때문입니다.
이 사건에서 하나님은 우리에게 무엇을 말씀하실까요?
하나님 앞에 견고한 진이란 없다, 믿음으로 십자가의 꿈을 이루라 말씀하십니다.
오늘 싸움에 나오는 골리앗은 난공불락의 요새와 같은 존재였습니다. 키가 최소한 270-80cm이상이었습니다. 이 큰 키에 50Kg 이상 나가는 동이나 철로 된 갑옷을 입고 있었습니다. 이런 거대한 사람이 어깨에는 단창을 메었고, 8kg이나 나가는 창을 들고 떡 버티고 있었으니, 이스라엘 백성들에게는 너무나 두려운 대상이었습니다.
게다가 이런 거대한 난공불락의 요새와 같은 사람이 이스라엘 진 앞에 나와서 아침저녁으로 나와서 한판 붙어보자며 이스라엘을 조롱합니다. 그러나 어떤 누구도 감히 나서서 골리앗을 상대할 수는 없었습니다. 골리앗이 주는 위압감은 너무나 컸기 때문입니다.
골리앗은 오늘날 우리에게 있어서 내가 넘을 수 없고, 도전할 엄두도 못내게 하는 유형무형의 두려움과 장애물을 상징합니다. 바울은 이것을 견고한 진이라 말합니다.(고후10:4)
견고한 진이라고 할 때 우리가 잘 아는 성이 있습니다. 중국 북방지역 흉노족의 침입을 막기 위해 세운 성입니다. 그 이름은 만리장성이고, 세계에서 가장 길다하여 유명합니다. 무려 2700Km이르나 실제로는 5000km라고 말합니다. 하지만 이 성도 현재의 명성과는 달리 과거에는 침입자를 제대로 막을 수는 없었습니다. 결국은 무너져 내렸습니다. 아무리 견고한 진이라 해도 상대가 누구냐에 따라 버티기도 하고 무너지기도 합니다.
우리에게 있어서의 견고한 진이란 나 자신 일수도 있습니다. 자신의 장점보다는 단점을 주목하고 괴로워하며 얽매여 있는 모습이 그런 것입니다. 어쩌면 자신의 뜻과 반대로 움직이는 세상이 견고한 진일 수가 있습니다. 주변 사람들이 까닭 없이 음해를 하고 오해로 옭아 맬 때가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오늘 성경에서 말씀하는 견고한 진이란 세상의 생각을 말합니다.
하나님 없이도 삶이 가능 하다 라는 높아진 생각을 말합니다. 이 높아진 생각이 세상을 장악하고 있는 듯이 보입니다. 이를 테면 공립학교에서는 기독교의 진리를 가르치지 않습니다. 그 대신 진화론의 가설에 근거한 과학이론을 가르칩니다. 눈에 보이는 실재와 경험적 증거만이 논의의 대상이 될 수 있고, 그 외의 것은 확인이 어렵다고 합니다. 그래서 눈에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얘기하는 것은 마치 옛날 구닥다리 얘기를 하는 것 같이 받아들입니다. 시대에 뒤진 사람처럼 여깁니다.
또 평화와 공존의 가치를 진리보다 더 중요하게 여깁니다. 그래서 종교가 다른 사람에게 기독교를 말하는 것은 마치 실례가 되는 것처럼 여겨지는 사회속에 우리가 살고 있습니다. 그래서 다원적 종교가 공존하는 사회속에서 기독교의 진리를 고수하고 또 전하는 것이 마치 지나치게 배타적인 모습인양 비쳐지는 풍토속에 거하고 있습니다. 다시 말해서 기독교의 진리가 유일한 진리라는 것을 의심하는 사회속에서 살고 있다는 것입니다. 즉, 기독교의 진리 곧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는 진리도 다른 종교의 모습과 같이 하나의 종교로 여겨진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전도하는 것을 부끄러운 것이요 미련한 모습인양 생각합니다. 주 예수님께서 이 땅에 전도하러 오셨다고 제자들에게 가르치고, 이를 위해서 제자들을 부르셨음에도 그렇습니다. 교회가 존재하는 목적이 진리를 지키고 진리를 전하기 위함인데도, 이 사회는 그것을 이상한 일 같이 여기는 시대에 우리가 살고 있고, 심지어 우리 자신도 그런 모습을 가지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하나님의 복음이 갈 길을 잃은 것입니다. 세상의 견고한 진의 포로가 되었습니다. 그래서 우리에게 복음을 전하였던 서방세계는 이제 우리가 복음을 들고 다시 들어야 가야 할 선교지가 되었습니다.
한 예로 유럽은 교회가 급속하게 감소하고 있고, 개신교 출석교인은 3%도 안됩니다. 그나마 복음주의자들은 1%도 안 되는 나라가 22개국이나 됩니다. 프랑스의 경우 60년 전에는 96%가 천주교 미사에 참석했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6%만 미사에 참석하고 개신교는 2%에 불과하고 그 중애 복음주의자는 0.6%에 불과합니다. 이러한 현상은 뉴질랜드도 비슷합니다. 5%이하의 사람들이 예배를 드릴 뿐입니다. 세상이 하나님과 교회를 이긴 것 같습니다.
그러나 오늘 말씀은 오직 복음을 믿고, 복음을 위해 살고자하는 믿는 자들에게 큰 위로와 힘을 줍니다. 제 아무리 높고 견고한 세상의 진도 참 믿음의 사람 앞에서는 허무하게 쓰러지는 골리앗의 신세가 될 것임을 분명하게 보여주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년 전 아프가니스탄에서 한국의 분당샘물교회 선교팀이 납치되고, 그 때 배형규목사와 심성민청년이 순교하였습니다. 한국의 많은 사회와 언론들이 이 교회를 욕하고 심하게 비판했습니다. 왜 외교부의 권고를 받아들이지 않고 갔느냐, 모두가 죽을 각오를 하고 일부러 들어 간 것이 아니냐 하는 등의 얘기였습니다. 그러나 언론보도의 80-90%는 사실과 달리 호도 된 것이고 진실에 근거를 둔 얘기가 아니었습니다. 여하튼 그 사건은 분담샘물교회가 잘 못해서 그런 것이 아니라, 버스기사가 탈레반에 매수되어 정해진 코스를 가지 않아서 생긴 문제였고, 탈레반은 이들을 이용해서 자신들의 목적을 이루고자 하였던 것입니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그 당시 분당샘물교회 선교팀을 인질로 잡아 두었던 마을에서 지금 복음의 열매가 맺히고 있다는 것입니다. 비록 두 사람은 죽임을 당하였지만 그들의 죽음이 헛되지 않은 열매로 돌아오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당시 인질로 된 선교팀원의 절반의 부모들이 신앙이 없었지만 지금은 그들의 7곱 가정이 세례를 받았다고 합니다. 하나님은 살아계십니다.
거대한 중국이 빠르게 변하고 있습니다. 경제적인 면에서 특히 빠른 성장을 보여주고 있고, 이제 중국이 주도권의 패를 쥐고 있다고 말할 만큼 성장하였습니다. 그러나 장기적으로 볼 때 중국은 이제 민주주의 국가 될 것입니다. 왜냐하면 엄청난 기독교의 부흥이 중국에서 일어나기 때문입니다. 가진 것은 많고 세계를 인도할 양식과 철학이 아직은 부족한 중국이지만 시간이 지나면 기독교인들의 가치혁명이 일어나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의 나라의 가치와 복음의 진리대로 나라가 세워져야 한다는 의식이 이 나라를 변화시켜 나갈 것입니다. 그리고 마침내 전 세계를 향한 뜨거운 선교의 사명을 감당하는 나라가 될 것입니다. 하나님을 부인하는 나라가 하나님을 가장 뜨겁게 믿고 헌신하는 나라가 될 것입니다.
중국은 오늘날 난공불락 같은 불신의 만리장성이 복음에 의해 해체되고 있는 생생한 증거입니다. 하나님이 세상을 통치하십니다.
다윗이 골리앗을 물리친 것은 약한 자를 들어서 강한자를 부끄럽게 하시는 하나님의 놀라운 역사가 담겨있습니다. 돌맹이와 막대기가 전부였던 초라한 소년이었지만 중무장한 거대한 골리앗을 물리친 이 사건은 위대하신 하나님 앞에 세상의 그 어떤 것도 맞설 수 없음을 우리게 증거합니다.
십자가의 복음이 세상을 이김을 증거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부르신 이유는 바로 이것입니다. 골리앗의 눈으로 볼 때 다윗은 초라하기 짝이 없는 애송이 이었듯이, 세상이 볼 때는 한심한 무리 같고 시대에 안 맞는 사람들 같이 보이는 믿음의 사람들을 통해 하나님 없는 세상의 높아진 생각을 깨트리고자 하심입니다.
즉, 하나님을 부인하고, 하나님 없이 살아가는 세상의 영혼들을 하나님의 품에 들어오게 하려는 십자가의 꿈을 이루려고 우리를 부르신 것입니다.
우리는 이 위대한 부르심을 받은 사람들입니다. 주님의 그 깊은 고뇌의 아픔과 고통의 값으로 우리가 부름을 받은 것입니다. 그리고 오늘 말씀을 통해 너희가 세상을 이긴다는 사실을 분명하게 보여주고 계십니다.
이것은 우리에게 무엇을 말씀합니까? 적은 숫자의 모습이지만 우리가 할 일 있다는 것이요, 그 일을 우리는 능히 감당할 수 있음을 말씀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할 일은 무엇일까요? 십자가의 꿈을 위해 온전히 헌신된 교회가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우리가 존재하는 이유이기 때문입니다.
저는 지난 코스타 대회에 참석했습니다. 시간시간 마다 은혜 받으며 힘을 얻었습니다. 비록 우리 교회 청년들은 거의 없지만, 저는 이 대회를 위해서 계속 기도를 해왔습니다. 그 기도의 과정을 통해서 감사했던 것은 이 코스타대회에 참석하는 청년들을 향한 간절한 기도의 마음을 주셨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이들을 위해 기도할 때 뜨거운 마음이 일어났습니다. 제가 청년 때에 하나님을 찾고 했던 그 심정으로 이들 마음과 영혼속에 하나님의 강한 임재가 임하기를 위해서 기도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첫날 저녁 집회에 교회 회의 때문에 조금 늦게 도착했는데, 현장에 들어서서 앉을 자리도 없고 해서 벽에 기대고 바닥에 앉았습니다. 그리고 이 청년들을 품고 기도할 때 청년들을 향한 간절한 마음에 눈물을 흘리며 기도하게 되었습니다.
‘하나님, 이 젊은이들의 아픈 마음과 영혼을 만져 주소서. 하나님을 만나고 새꿈을 발견한 기쁨으로 춤을 주고, 그 자신을 하나님께 드리는 헌신의 기쁨으로 충만케 하옵소서.’
코스타 대회기간 동안 많은 청년들이 진지하게 십자가의 꿈과 복음의 가르침에 그 자신을 드려 헌신하고 그대로 살겠다고 하나님 앞에 나아가는 모습을 보았습니다. 분위기에 이끌리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에 사로잡혀 그 자신을 드리는 모습을 보았습니다.
자신을 얽매고 묶어놓았던 죄와 자신의 못남에서 벗어나 하나님께서 주시는 자유와 기쁨과 소망을 인하여 기뻐 뛰는 청년들을 보았습니다.
하나님께서 그들의 마음을 만져주신 것입니다.
그곳에 와서 일하는 많은 봉사자들도 있었습니다. 그들은 대학을 졸업하고 직장 생활하는 사람들이었습니다. 이들은 이 코스타를 위해 긴 시간을 기도하였고, 이 대회를 위해서 휴가를 내 섬기고 있었습니다. 어떤 분은 직장에서 절대 안된다고 하였음에도 불구하고 이 대회를 위해서 포기하지 않고 기도를 한 결과 극적으로 허락이 되어 3일을 섬기고 곧 바로 직장으로 돌아가는 사람도 있었습니다.
저는 생각해 보았습니다. 무엇이 이들을 이렇게 자신을 기꺼이 희생하며 헌신하게 하는가, 무엇이 이 청년들로 하여금 세상의 명예와 부가 아니라 복음과 선교를 위해 헌신하게 하는가?
그것은 살아계신 하나님에 대한 선명한 깨달음이었습니다. 하나님의 살아계심과 진리 앞에서 자신의 성공과 명예를 위한 삶은 진정한 그리스도인의 모습이 아님을 깨달은 것입니다. 그렇기에 그 길이 비록 험한 십자가의 길 임에도 불구하고 자신을 그 길에 올려놓고 복음의 삶을 위해 드릴 수 있었던 것입니다. 십자가에 죽으시기까지 우리를 사랑하심으로 부르신 그 부르심의 뜻이 내 삶의 계획과 세상의 평가보다 더 중하게 믿어졌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없는 세상 한 복판에서 일어나는 이 놀라운 사건을 보면서 저는 소망을 발견하였습니다. [보이지 않으나 믿어지는 하나님을 따라 사는 이들이 우리의 소망이요, 한국의 소망이요, 세상의 소망이다. 비록 초라한 것 같고, 21세기에 어울리지 않는 것 같은 2천 년 전의 미련한 십자가 사건을 붙들고 있는 이들이 이 시대의 다윗이다. 이들 앞에서 세상의 골리앗은 무릎을 꿇을 것이다.]
이들이 아직은 미숙하지만 하나님을 믿고 나아가는 이들을 하나님께서는 다윗을 돕는 것 같이 도우실 것입니다.
다윗이 골리앗을 향하여 외칩니다.
‘너는 칼과 창으로 내게 오거니와 나는 만군의 여호와의 이름, 곧 네가 모욕하는 이스라엘 군대의 하나님의 이름으로 네게 가노라.
오늘 여호와께서 너를 내 손에 붙이시리니 내가 너를 쳐서 네 머리를 베고 블레셋 군대의 시체로 오늘날 공중의 새와 땅의 들짐승에게 주어 온 땅으로 이스라엘에 하나님이 계신 줄 알게 하겠고,
또 여호와의 구원하심이 칼과 창에 있지 아니함을 이 무리로 할게 하리라 전쟁은 여호와께 속한 것인 즉 그가 너희를 우리 손에 붙이시리라.‘
이에 하나님은 다윗의 이 고백대로 골리앗 앞에서 하나님의 실재와 그 능력을 드러내셨습니다. 하나님은 살아계십니다.
헤밀턴의 영적 부흥, 십자가의 부흥을 위해 우리가 부름을 받았습니다. 여기 이곳에서 이 시대의 다윗이 되라고 우리를 부르신 것입니다.
우리 교회가 나아가는 길 앞에 있는 그 어떤 골리앗도 무너질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권위와 이름으로 세움을 입은 믿음의 사람들이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승리가 우리 앞에 있고, 이 승리를 우리에게 주시고자 합니다.
이에 우리 교회는 십자가의 꿈을 위해 헌신하고, 이 꿈을 이루는 교회가 되고자 믿음으로 나아가야 하겠습니다. 이렇게 나아갈 때 그 앞에 어떤 높은 것도 이길 것입니다. 우리 자신을 위한 교회가 아니라, 주님의 부르심과 목적이 우리를 이끌어가는 교회, 십자가의 꿈이 우리를 이끌어가는 교회가 될 것입니다. 우리 앞에 견고한 진은 더 이상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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