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주의 말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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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십자가의 꿈을 이루는 믿음 4(출14:10-31)2010-09-09 11: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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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7월 5일 칠레에서 일어난 일입니다. 급작스런 산사태로 인하여 금광에서 일하던 33명의 광부들이 매몰되었습니다. 금광이 매몰되자 가족은 말할 것도 없고 나라 전체가 큰 근심에 쌓이게 되었습니다. 이들이 살았는지 죽었는지 조차도 알지 못했습니다. 매몰되어 모두 목숨을 잃었을 가능성이 컸습니다. 구조대는 이들의 생사를 확인하기 위해 서둘러 직경 15cm의 구멍을 뚫으며 탐지를 했습니다. 하지만 상황은 점점 절망적으로 여겨졌습니다. 이렇게 탐지하기를 16일째가 지나는 날까지 7개의 탐지구멍을 뚫었으나 실패하고 아무 소식도 찾을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땅속에서 16일째라는 것은 너무나 긴 시간이요 희망을 갖기에는 너무 많은 시간이 지난 것입니다. 그러나 17일째 8번째 작은 구멍을 뚫었을 때 기적의 소식이 땅 밑에서 올라왔습니다. ‘우리 33명 피난처에서 무사하다’


이 소식이 전해지자 무너진 갱도 앞에서 천막을 치고 혹시나 기도하며 애타케 기다리던 가족들은 물론이요, 온 국민들이 환호를 했고, 전 세계가 이 기 소식을 들으며 기적이 일어났고 말들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들이 갱도에서 완전한 구조를 받으려면 4개월이 걸린다고 합니다. 그 사이에 이들이 할 수 있는 것은 아무 것도 없습니다. 무사하게 구조 될 수 있기 만을 침착하게 기다리는 것입니다. 이들의 구원은 이들을 구조하기 위해 있는 힘을 다해 구조하는 구조대의 손에 달려 있습니다. 매몰된 광부들이 할 수 있는 것은 구조될 것을 믿고 기다리는 것뿐입니다.


질문을 드리겠습니다. 여러분의 삶속에서 크고 작은 일로 인한 낙심과 좌절과 우울함이 찾아 올 때 여러분의 영혼을 다시 일으켜 세우는 것은 무엇입니까? 또 무엇을 의지하여 그 상황을 이기며 다시금 용기를 냅니까?


방향을 바꾸어 우리 교회를 생각해봅니다. 사랑의 섬김으로 행복한 교회가 되고, 하나님의 성품을 따라 사는 새로운 사회가 되어 이웃에게 새 삶에 대한 소망을 주는 교회되고, 세상에 하나님 나라를 세우기 위해 한 사람 한 사람을 장성한 믿음의 사람으로 세우는 교회가 되는 길은 열릴까요? 아니면 요원한 구호에 그치는 것일까요?

만약 이러한 상황을 700지하에 갇혀 있는 매몰 된 상황에 처하여 있는 사람들에 비유하면 어떨까요? 누가 여러분을, 우리 교회를 그 곳에서 건져내어 줄 수 있을까요? 희망의 빛은 어떻게 우리게 다가올까요?


오늘 본문은 이와 비슷하게 애굽 땅에서 종이 되어 고통 받고 신음하던 이스라엘 민족을 구원하여 내는 마지막 순간에 관한 말씀입니다. 장자의 죽음이라는 마지막 10번째 징계를 받은 바로는 이스라엘 민족을 떠나게 합니다. 하지만 다시 마음이 강팍해져 이스라엘 민족을 추격합니다. 특별히 뽑은 병거 600승과 군사들을 거느리고 거칠게 추격합니다. 애굽에서 자유를 얻었다고 좋아했던 기쁨도 잠시, 애굽의 바로가 다시 추격하여 오자 이스라엘 백성은 극심한 두려움을 못 이기고 불만을 터트립니다. 뒤에서는 맹렬하게 바로의 군대가 좇아오는데 앞에는 홍해가 가로막고 있기 때문입니다. 영락없이 바로의 군대에 다 죽게 될 것이 분명했습니다. 이에 백성들은 ‘매장지가 없어 우리를 이 광야에 이끌어 내어 죽게 하느냐, 우리는 다시 돌아가 애굽 사람을 섬길 것이라. 애굽 사람을 섬기는 것이 광야에서 죽는 것 보다 낳으리라’하면서 모세를 원망하며 흥분합니다.


이에 모세 아주 의미심장한 말을 두려움과 불만에 가득찬 백성들에게 말합니다. ‘너희는 두려워 말고 가만히 서서 여호와께서 오늘날 너희를 위하여 행하시는 구원을 보라....여호와께서 너희를 위하여 싸우시리니 너희는 가만히 있을지어다.


그리고 나서 모세는 ‘지팡이를 들어 손을 바다 위로 내밀라’라는 말씀에 순종하여 내 밀자 밤새도록 큰 동품을 불게 하여 바닷물이 좌우로 물러나 큰 벽이 되고 물이 겉힌 바닥은 마른 땅이 되었습니다. 이에 백성들은 죽을 줄 알았다가 마른 땅으로 변한 바다를 따라 건너편에 도달하였습니다. 백성들이  바로의 손에서 다 구원을 받은 것입니다. 반면 뒤 따라 추격하던 바로의 군대들은 멋도 모르고 바다 속 마른 땅으로 뒤 좇아 들어왔습니다. 하지만 그 때 하나님 그 군대를 어지럽게 만들고, 병거의 바퀴를 벗겨내 달리지 못하게 하였습니다. 이윽고, 모세는 바다로 손을 내밀어 물이 다시 흐르게 하였습니다. 이에 뒤 좇던 애굽의 군대는 그 자리에서 다 몰살 되고 말았습니다.


모세가 백성에게 말한 그 대로 된 것입니다. 백성은 바다가 갈라져 벽이 되고 바다의 바닥이 마른 땅이 되자 거기로 달려서 건너편으로 도망 간 것 밖에 한 것이 없습니다. 이들이 구원받은 것은 오직 하나님의 능력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이 사건을 통해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무엇을 말씀하시는 것일까요? 우리는 그 답을 31절에서 찾을 수 있습니다. ‘이스라엘이 여호와께서 애굽 사람들에게 베푸신 큰 일을 보았음으로 백성이 여호와를 경외하며호와와 그 종 모세를 믿었더라


이는 홍해의 기적 사건이 이스라엘 민족에게 믿음의 눈을 열어주었음을 말씀합니다. 오직 여호와가 참 하나님이심을 증거하신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믿고 의지할 참 신은 여호와 외에는 없음을 깨우치신 것입니다. 여호와만이 믿어야 할 진정한 하나님이요, 이 여호와가 바로 이스라엘 너희의 하나님이심을 깨우쳐주신 것입니다.


오늘날 이 말씀을 읽고 대하는 우리들에게는 무엇을 말씀하시는 것일까요?

현재의 무력함과 미래의 두려움에 움츠린 자들, 나는 약하다고 생각하는 이들에게 말씀하십니다. ‘너 자신을 보지 말고 네 하나님, 여호와, 권능의 하나님을 바라보라


당시에 이스라엘 백성들은 나라나 국가가 아니었습니다. 하나의 민족에 불과했습니다. 군대도 없고 조직도 없었습니다. 스스로 생각할 때 뭐 내세울만한 것이 없는 처지였습니다. 애굽과 비교해보았을 때 그 초라함은 더 말할 나위도 없는 참으로 미래에 그다지 소망이 없는 연약한 존재였습니다.


여기에서 의문이 하나 일어납니다. 기왕에 세우는 나라이고, 하나님의 백성으로 세워질 나라이면 애굽 처럼, 혹은 더 강한 국가로 만들어 주변 나라를 호령하며 사는 나라가 되게 할 것이지 왜 이렇게 초라한 백성으로 만드셨을까요?

왜 이렇게 작고 초라한 모습으로 만들었을까요? 모세의 다음 말에서 그것을 알 수 있습니다. ‘두려워 말고 가만히 서서 여호와께서 오늘날 너희를 위하여 행하시는 구원을 보라.’


이스라엘을 작고 초라하게 만든 것은...약한 것이 도리어 하나님의 능력으로 채움을 입는 복임을 알게 하려 하심입니다. 자기 힘으로 사는 자가 아니라 하나님의 힘으로 사는 백성이 되게 하려 하심입니다. 오직 하나님 만 바라보는 백성이 되게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미약한 이 이스라엘로 세상을 이기는 하나님의 능력 앞에 세상이 엎드리게 하려 하심이었던 것입니다. 온 천하로 여호와가 참 하나님이심을 드러내려 한 것입니다. 누구를 통해서? 약하고 초라한 이스라엘을 통하여!


그렇기에 우리 중에 스스로 연약하다고 미약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복 받은 사람입니다. 남들과 비교하여 내세울 것이 없는 사람은 복 받은 사람입니다. 이것이 성경의 역설입니다.

성경에서 하나님의 극적인 위대한 능력을 경험한 사람들은 대부분 최고의 겸손을 보였던 사람들입니다. 즉 자신이 하나님 앞에서 아무 것도 아님을 알고 하나님을 의지했던 사람들입니다. 아브람이 마므레 상수리 나무 밑에서 다가오는 세 사람을 보고 엎드려 절하며 섬긴 것이 그것입니다.

   모세가 불타는 떨기나무에서 부름을 받을 때 ‘자기가 무엇인대 백성을 구원하러 가겠느냐’고 말하면서 자신이 아무 것도 아님을 고백함이 그렇습니다.

   사사 기드온을 부를 때 ‘주여 내가 무엇으로 이스라엘을 구원하리이까 나의 집은 므낫세 중에서 극히 약하고 나는 내 아비 집에서 제일 작은 자니이다’ 말하는 모습이 그렇습니다.

   사울 왕이 다윗을 잡으려고 자기 딸 미갈과 결혼하여 사위를 삼으려 한다는 말을 들었을 때 다윗이 이렇게 말합니다. ‘왕의 사위 되는 것을 너희는 경한 일로 보느냐 나는 가난하고 천한 사람이로라’ 다윗은 자신을 왕의 사위가 될 자격이 없는 가난하고 천한 사람이라고 본 것이 그 예입니다.


그렇기에 자신이 약하고 실제로 아무런 재주가 없는 것은 복입니다. 하나님께서 그 사람을 온 세상을 창조하신 하나님의 능력으로 사는 믿음의 사람이 되게 하려 하시기 때문입니다. 그렇기에 약자의 능력은 하나님의 능력이 되는 것입니다.


어떤 사람들은 똑똑하니까 하나님께 더 잘 쓰임 받는 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그렇지 않습니다. 똑똑한 사람이 더 잘 쓰임 받는 것은 똑똑해서가 아닙니다. 똑똑함에도 불구하고 자신이 하나님 앞에서 아무것도 아님을 알고 하나님의 능력을 구하기 때문입니다. 바울이 그렇습니다. 그는 당시에 당대의 최고의 교육을 받은 자요 뛰어난 자였습니다. 그러나 그가 똑똑하고 많이 배워서 그렇게 쓰임 받았을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바울은 항상 자신이 하나님의 일일을 감당하기에는 심히 큰 죄인임을 알았고, 자신이 하나님의 일을 감당할 만한 자격이 없다고 여겼던 사람입니다. 그렇기에 그는 하나님 앞에 고백하기를 ‘나의 나 된 것은 오직 하나님의 은혜라’라고 고백하였던 것입니다.(고전15:10)

그렇기에 자신의 실체를 아는 것이 필요합니다. 자신이 정말 아무 것도 아님을 아는 사람이 똑똑한 사람이요 지혜로운 사람입니다. 그 사람이 하나님의 능력을 덧입는 사람, 하나님의 능력으로 자신의 한계와 약함과 마귀의 권세를 깨트리는 사람이 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그 자신의 약함을 알고 의지하는 사람에게 오사 함께하십니다.


하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내가 높고 거룩한 곳에 거하며 또한 통회하고 마음이 겸손한 자와 함께 거하나니 이는 겸손한 자의 영을 소성케 하며 통회하는 자의 마음을 소성케 하려 함이라(사57:15)


자신이 아무것도 아님을 알고 겸손히 하나님을 바라보는 자와 하나님은 함께 거하십니다. 그리고 그 영혼을 살리고 그 마음을 새롭게 하십니다. 그 능력으로 함께 하십니다. 그러므로 약한 자는 감사해야 합니다.


자신의 모자람과 약함이 보일 때 마다 비록 눈에는 눈물이 흐르지만 마음은 하나님을 바라보고 ‘내 영혼의 하나님, 나의 능력과 소망은 오직 전능하신 하나님 외에는 없으니, 내가 전심으로 주를 기다리고 바라이다’하고 믿음으로 하나님을 바라보고 의지해야 합니다.


신학자이며, 저술가이고, 음악가이며, 캐나나 밴쿠버의 Regent College 와 Christians Equipped for ministry에서 영성신학을 가르치는 Marava J Dawn은 자신을 이렇게 말합니다.

[나는 이런 물음을 던지지 않을 수 없었다.

“내 삶이 늘 이렇게 힘든데, 하나님은 어떻게 이런 생활을 계속하라고 하시는 걸까?”

어떤 날에는 과도한 긴장 때문에 완전히 진이 빠져 버리는 때가 있다. 나는 늘 관절염에 걸린 두 손과, 저는 한쪽 다리와, 보지 못하게 된 한쪽 눈과 듣지 못하는 한쪽 귀와, 17%정도만 기능하는 양쪽 신장과 꿈틀 운동을 하지 못하도록 죽어 버린 위 신경과 장 신경, 암 수술과 턱 수술 이후 남은 통증과, 남은 한쪽 눈의 시력마저 곧 잃어버릴지도 모른다는 가능성과 다리뼈 고정 수술 이후 떨어져 나온 뼈 조각들이 계속 염증을 일으켜 결국 다리를 절단 할 수도 있다는 가능성을 알고 살아가야 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위에 열거한 것도 전체 목록은 아니다. 하나님은 정말로 나를 이토록 약하게 하실 필요가 있으신가? “그렇다

나를 비록 이해하지 못하나 그렇다고 믿는다. 우리의 인간적 약함 때문에 우리는 하나님의 일하심이 언제나 ‘비밀스럽고’ 신비하고 우리의 인간적인 이해를 초월한다고 느끼게 된다. 그러나 우리의 부지의 한 복판에 하나님은 새롭게 내주 하신다.](세상권세와 하나님의 나라, P86)


Marava Dawn 이처럼 이해하기 힘든 자신의 연약함의 고통을 믿음의 눈으로 바라봅니다. 그리고 그 연약함 가운데 오셔서 자신을 붙드시고 깨우쳐주시는 깊은 은혜의 경험을 바탕으로 하나님을 증거합니다. 그의 약함 속에 오시는 하나님을 통하여 참된 그리스도의 길을 가는 사람들에게 영적인 안내자가 되고 있습니다.


세계적인 전도자요 설교자인 무디(Moody)는 초등학교 교육밖에 받지 못했다.

교회학교 생활도 엉망이었다.

그는 요한복음을 찾기 위해 창세기부터 침을 묻혔다.

무디는 성경학교 입학도 거절당했다. 이유는 간단했다. '기독교교육이 미흡하고 학교생활을 계속할 준비가 되어있지 않다'는 것이었다.


무디는 그래서 친구들로부터도 따돌림을 당했다.

"너처럼 희망 없는 사람이 과연 어디에 사용될까?

네가 우리의 친구라는 것이 부끄럽다."

친구들은 무디를 향해 놀려댔다. 무디는 그래서 늘 고독했다.


그래서 그는 고독한 시간들을 하나님께 드렸다.

무디는 미약하나 겸손한 마음으로 매일 기도를 올렸다.

결국 무디는 세계적인 전도자가 됐다.


하나님은 작고 미미한 것을 놀랍게 사용하신다.

무디는 사람들의 눈에는 어리석은 존재로 비쳐졌지만

하나님의 눈에는 '희망의 재료'였던 것이다.

하나님의 섭리는 인간의 지식과 상상을 초월한다.

약하고 약한 자입니까? 하나님께서 말씀하십니다.

너는 너의 약함이 아니라 능력의 하나님을 보라’ ‘오직 믿음으로 살아라’

하나님께는 능치 못하신 것이 없음을 믿으십시오. 이러한 하나님을 신뢰하고 의지하십시오. 하나님 안에서는 자기의 약함을 알고 엎드리는 자가 하나님의 능력과 함께 하심의 은혜를 덧입게 됩니다. 약한자가 지혜로운자요 강한자입니다. 약한자가 하나님의 능력으로 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능력으로 사는 자가 되기를 간절히 구하는 겸손한자가 되십시오. 이것이 하나님의 뜻입니다.


그렇기에 우리 교회도 약함을 자랑해야 합니다. 그래서 우리가 서로를 겸손히 섬기기를 다한다면 행복한 교회가 되는 기적이 꿈같이 우리에게 임할 것입니다. 우리가 우리 자신이 약함을 알고 오직 하나님의 은혜를 좇아 나를 버리고 하나님 닮기를 구한다면 우리는 이 땅에서 새로운 사회가 될 것입니다. 세상에 새로운 대안 사회를 이루게 되어 소망을 줄 것입니다. 우리가 겸손히 자기를 어린 아이 같이 여기고 배우기를 힘쓸 때 말씀의 은혜와 능력이 임할 것입니다. 약함으로 세상을 이기는 믿음의 사람이 될 것입니다.


오직 하나님만 의뢰하는 믿음의 길을 가는 약한 자가 되십시오. 이 모습으로 하나님을 섬길 때 하나님은 우리에게 임하사 십자가의 꿈을 이룰자, 십자가의 꿈을 이루는 교회가 되게 할  것입니다. 오직 하나님을 의지하는 자를 통해 기적을 일으키시는 하나님의 능력의 손에 붙잡히는 자가 되기를 사모하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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