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주의 말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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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십자가의 꿈을 이루는 믿음 7(민14:1-12)2010-09-28 07: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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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스라엘 백성이 애굽에서 나와 홍해를 건너고 2개월 뒤에 시내산에 이릅니다. 여기서 십계명을 받습니다. 그러다가 시내 산에 머문 지 약 11개월이 지나서, 이스라엘과 함께 하는 구름이 떠오르자 다시 이동하기 시작합니다. 그리고 구름이 다시 멈춘 곳이 가데스 바네아 라는 곳인데, 현재 이스라엘에 있는 사해 호수 바로 밑입니다. 이제 하나님께서 약속한 땅에 거의 다 도착한 것입니다.


그래서 모세는 각 지파에서 12명을 뽑아 가나안 땅을 정탐하여 오라고 보냅니다. 12명의 스파이들은 40일 동안 가나안 땅을 구석구석 살피고 돌아와 서 모세와 백성 앞에서 보고를 합니다. ‘그 땅은 기름지고 풍요한 땅입니다. 이 물 좋은 싱싱한 포도송이와 석류와 무화과 보십시오.’

백성들은 ‘와-’탄성을 지릅니다. 보기만 해도 침이 넘어가고, 상상만 해도 행복했습니다. 물 없고 메마른 시나이 반도를 참고 건너온 보람이 있구나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바로 그 때 정탐꾼들의 이어지는 보고에 백성들은 두려워하기 시작했습니다. ‘들어가서 취해야 할 가나안 땅이 비록 풍요롭고 비옥한 것은 사실이지만, 그곳 사람들은 강하고, 그 성읍도 견고해서 우리가 이기기 어렵습니다. 게다가 우리보다 훨씬 몸이 커서 감히 싸울 엄두도 못낼 아낙사람들이 있고, 남쪽 지역과 산악지역해변요단강 가는 벌써 강한 다른 민족들이 차지하고 있습니다.’ 매우 부정적인 보고를 한 것입니다.


이에 12명의 정탐 꾼 중에 한명인 갈렙이 백성들을 안심시키면서 이렇게 말합니다.‘바로 올라가서 그 땅을 차지합시다. 능히 이길 것입니다.’

하지만 다른 정탐꾼들이 결정적으로 다음과 같이 보고합니다.

‘우리는 능히 올라가서 그 백성을 치지 못할 것입니다.
  그들은 우리 보다 강합니다. ’

‘그 땅은 전쟁의 땅입니다. 거기에는 우리 보다 훨씬 키가 큰 아낙자손들이
  있는데, 우리는 그들에 비하면 메뚜기에 불과합니다.’


이 보고에 백성들은 깊은 실망과 좌절감에 빠져 밤새 울며 이렇게 하나님을 원망합니다. ‘우리가 애굽 땅에서 죽었거나, 이 광야에서 죽었더라면 좋았을 것을 어찌하여 여호와가 우리를 그 땅으로 인도하여 칼에 망하게 하려 하는고 우리 처자가 사로잡히리니 애굽으로 돌아가는 것이 낮지 않는가? 지도자를 새로 뽑아 세우고 애굽으로 돌아가자!’(14:2-4)


이에 모세와 아론은 괴로운 마음에 할 말을 잃고 온 백성 앞에서 죄인처럼 엎드러집니다.(5절) 하지만 바로 이 때 열 명의 정탐꾼 중에 오직 두 사람, 여호수아와 갈렙은 옷을 찢으면서 원망하는 백성들에게 이렇게 외칩니다.

우리가 두루 다니며 탐지한 땅은 심히 아름다운 땅입니다.

  여호와께서 우리를 기뻐하시면 우리를 그 땅으로 들어가게 하실 것입니다.

  그 땅을 우리에게 주실 것입니다. 이는 정말 젖과 꿀이 흐르는 땅입니다.

  그러니 여호와를 따라야 합니다.

  그 땅 백성을 두려워하지 마십시오. 그들은 우리 밥입니다.

  그들의 보호자는 떠났고, 여호와는 우리와 함께 하십니다. 그들을 두려워하지
  마십시오.‘


여호수아와 갈렙은 매우 긍정적이고 희망적인 보고를 합니다.

하나님께서 그 땅을 주실 것이라는 확신과 담대한 확신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상하지 않습니까? 똑 같은 가나안 땅을 보고 왔는데 서로 보고가 다릅니다. 10명은 ‘그 땅은 들어가면 죽는다. 우리는 메뚜기에 불과하다.’하고 지극히 부정적이고 보고를 합니다. 그런데 여호수아와 갈렙은 하나님께서 그 땅을 주실 것을 믿습니다. 게다가 가나안 땅의 민족들을 우리의 밥이라고 말하며 전혀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똑 같은 상황을 보았음에도 불구하고, 왜 한 쪽은 절망적인 보고를 하고, 한 쪽은 그 반대로 소망의 멧세지를 강하게 선포할 수 있었을까요? 이유가 무엇일까요?


여러분은 이런 상황에서 어떤 보고를 올렸겠습니까? 긍정적인 믿음의 사람은 여호수아와 갈렙 처럼 보고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부정적인 믿음의 사람은 나머지 10명의 보고를 처럼 올리고 여론을 부정적으로 끌고 갔을 것입니다.


그런데 이 모습을 하나님께서 다 보고 계셨습니다. 이들의 모습에 대단히 실망을 하시고 진노를 하십니다. 다 멸하려 하시다가 모세의 기도에 진멸하려는 계획을 내려놓으시고는 징계를 하십니다. 40년의 광야생활이 그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말씀하십니다.

‘나를 거역하는 이 악한 온 회중에게 내가 단정코 이 같이 행하리니 그들이 이 광야에서 소멸되어 거기서 죽으리라’, ‘오직 내 종 갈렙은 그 마음이 그들과 달라서 온전히 좇았은 즉 그의 갔던 땅으로 내가 그를 인도하여 들이리니 그 자손이 그 땅을 차지하리라


참으로 무서운 말씀이 아닐 수 없습니다. 하나님의 진노를 머리 쌓았던 이스라엘 백성들에 하나님께서 이렇게 진노 또 있었을까 싶을 정도로 진노하셨고, 40년간의 광야 생활이라는 징계를 통해 당시 하나님을 원망하고 믿지 않았던 이스라엘 백성 중 20세 이상에 해당 되었던 사람은 다 광야에서 죽게 하셨습니다. 20 세 이상 이었던 사람 중에 오직 여호수아와 갈렙 만이 가나안 땅에 들어갔을 뿐입니다.


자, 우리는 여기서 중요한 믿음의 원리를 발견하게 됩니다. 하나님은 믿음 없는 다수의 편에 서지 않고, 믿음 있는 창조적인 소수의 편에 서신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다수의 힘, 여론에 의해 움직이지 않습니다. 하나님을 움직일 수 있는 오직 한 가지 길은 하나님께 대한 믿음입니다. 하나님을 신뢰하는 창조적인 소수와 하나님은 함께 하십니다. 하나님께서 그 창조적인 소수의 믿음을 기뻐하시고, 귀하게 보시기 때문입니다. 저는 여러분이 그러한 창조적인 소수가 되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


우리는 여기서 이러한 질문을 던져야 합니다. 어떻게 여호수아와 갈렙은 자신들보다 훨씬 강한 적들을 보고 ‘그들은 우리 밥이라’할 만큼 담대하였을까? 하니님께서 그 땅을 주실 것이라고 어떻게 확신하였을까?


성도님들께서는 어떻게 답을 하실 수 있겠습니까? 이 답을 하기위해서는 10명의 정탐꾼의 모습을 바르게 보아야 합니다. 12명중 10은 다 무섭고 두렵고 이길 수 없다고 보았습니다. 자신들의 현재 능력과 싸워야 할 적들의 능력을 비교 평가 해보니 답이 정확히 나왔던 것입니다. 그래서 10명의 정탐꾼은 그러한 점에서 사실대로 보고 한 것입니다. ‘우리는 안 된다.’


그러나 여기에 이들의 중대한 문제가 있습니다. 그것은 현실 상황만 보았지 권능의 하나님을 보지 않은 것입니다. 하나님과 그 능력을 보지 않은 것입니다. 그 모든 장애물을 뛰어넘어 이기게 하시는 하나님을 보지 않은 것입니다. 그렇기에 이들은 현실 앞에서 절망하고 만 것입니다. 자신들의 초라하고 무능한 모습만이 보였고, 자신들이 맛서야 할 앞의 적들의 강하고 무서운 모습만 보였습니다. 그래서 이들은 부정적인 보고 외에는 할 것이 없었습니다.


반면에 여호수아와 갈렙은 무엇을 보았습니까? 이들도 다른 10명의 정탐꾼과 똑 같이 가나안 땅의 현실을 똑똑히 보았습니다. 자신들은 메뚜기 같고 적들은 날쌘 늑대요 사자 같음을 이 두 사람도 똑똑히 보았습니다. 그러나 이들이 다른 10명의 사람과 달리 하나님께 쓰임 받는 창조적 소수가 된 데는 이유는 10명이 갖지 못한 또 다른 눈을 이 두 사람이 가지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믿음의 눈이었습니다. 갈렙과 여호수아는 하나님을 신뢰했습니다. 그 능력을 신뢰했습니다. 함께 하사 보호하시는 분이심을 믿었습니다. 바로의 군대와 홍해 사이에서 진퇴양난에 처하여 두려워 떨 때 바다를 가르시고 마른 땅으로 지나가게 하시는 하나님의 능력을 보았던 것입니다.  최강의 군사력을 가지고 호령하는 바로와 그 군대조차 아무 것도 아닌 것 같이 여기시며 무너뜨리는 하나님을 본 것입니다. 동시에 이집트의 신조차도 바닷물에 수장되는 바로의 군대를 구하지 못하는 생생한 증거를 통해, 애굽의 신은 아무 것도 아니요, 오직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만이 권능의 하나님이심을 깨달았던 것입니다.


게다가 구름 기둥과 불기둥이 여전이 자신들과 함께 동행 하고 있는 모습을 통해, 권능의 하나님이 지금도 함께 하고 계심을 믿었던 것입니다. 함께 하셔서 보호하시고 이기게 하실 것을 믿은 것입니다. 그렇기에 이런 하나님을 믿음의 눈으로 바라보고 확신을 가지고 담대하게 외칠 수 있었던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현재의 나의 약한 모습과 앞에 있는 이기기 어려운 문제를 보는 것이 아니라 믿음의 눈으로 권능의 하나님을 볼 때 두려움과 절망과 장애물을 뛰어넘을 수 있습니다. 그렇기에 우리가 보아야 할 것은 무엇인가?

1. 나의 초라한 모습이 아니다.

2. 앞에 장애물이 아니다.

3. 주의의 손가락질이 아닙니다.

4. 과거의 실패의 모습이 아닙니다.

5. 다른 사람들이 잘나가는 모습이 아닙니다.


내가 보아야 할 것은 마른 막대기조차도 홍해를 가르게 하는 지팡이로 만드시는 하나님과 그 능력입니다. 자신의 능력 혹은 무능함, 앞에 있는 장애물과 주변의 손가락질, 다른 사람의 성공을 바라보지 마십시오. 이것은 교묘한 사탄의 전략입니다. 하나님의 무한한 권능과 자원을 덧입지 못하고 결국에는 패배자로 살게 하려는 사탄의 전략입니다. 이스라엘이 가나안 정탐을 하고 패배자의 시각으로 자신을 보고 하나님의 능력을 보지 못한 것과 같은 것입니다.


우리는 우리의 현실을 정확히 진단해야 합니다. 그러나 동시에 현실의 약함과 절망의 상활 넘어 나를 향한 하나님의 비전, 아들을 주시기까지 결코 포기하지 않는 하나님의 사랑과 그 사랑으로 부어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을 바라보아야 합니다.


여러분께서는, 특히 청소년, 청년 여러분은 여러분의 눈은 무엇을 바라봅니까? 내  꿈을 이루기에는 너무나 준비 안 되고, 실력이 안 되고, 공부도 못하는 현재의 실망스런 모습입니까? 하나님께서 말씀하십니다.

너를 보지 말라, 네 초라함을 보지 말라. 나를 보라.

  네 하나님 나 여호와와 그 능력을 보라. 나는 너에게 꿈을 줄 것이요,

  그 꿈을 이룰 힘과 지혜를 줄 것이다.

너를 들어 나의 영광을 드러내는 위대한 믿음의 사람이 되게 할 것이다.

내가 너를 떠나지 아니 할 것이라. 반드시 내가 너와 함께 하리라.

나를 찾으라. 그러며 네가 나를 만날 것이라!

나를 찾으라. 그러며 네가 나를 만날 것이라! 하나님을 간절히 찾으십시오.


하나님을 만나는 자는 눈에서 비늘이 벗겨집니다. 비전이 없이 방황하게 하는 미련함과 무능함으로 자신의 위대한 인생의 길을 보지 못하게 하는 어두운 비늘이 벗겨집니다. 할렐루야.


다윗이 이런 고백을 하였습니다.

내가 여호와를 기다리고 기다렸더니 귀를 기울이사 나의 부르짖음에 들으셨도다. 나를 기가 막힐 웅덩이와 수렁에서 끌어 올리시고 내 발을 반석 위에 두사 내 걸음을 견고케 하셨도다.

새 노래 곧 우리 하나님께 올릴 찬송을 내 입에 두셨으니 많은 사람이 보고 두려워하여 여호와를 의지하리로다.‘(시편40:1)


이제 절망이요 남은 것을 죽을 일 밖에 없는 기가 막힌 인생의 고통 중에 처하였을 때 그는 여호와 하나님을 바라보았습니다. 끝까지 좌절하지 않고 하나님만 바라보았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정말 기적 같이, 기가 막힐 절망의 웅덩이, 실패의 수렁에서 다윗을 끌어 올려주셨습니다. 실패한 인생이라고 조롱 받을 다윗을 견고한 반석위에 다시 세워주셨습니다. 하나님께서 다윗의 인생을 고쳐 주신 것입니다. 하나님의 사랑과 그 능력을 부어주신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만지시면 다 고쳐집니다. 어두운 비늘, 무력한 모습, 죄의 유혹, 우두한 껍데기들이 벗겨집니다. 그리고 앞에 가로막는 거대한 절망의 별도 깨트리고 뛰어넘어갈 힘을 주십니다. 그래서 우리 마음에 새 일이 일업니다. 희망과 비전에 대한 열정과 용기와 힘이 생깁니다. 그 어떤 것도 막아 설수 없는 불굴의 의지가 생깁니다.


동시에 그 꿈을 이루어 나갈 때 주변사람들의 생각이 바뀝니다. 실패한 인생인 줄 알았는데 다시 일어서는 모습에 조롱하던 자들을 놀라고 하나님의 살아계심 앞에 머리를 숙이는 역사가 일어납니다. 믿음의 창조적인 소수가 되어 하나님께 쓰임 받는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 교회가 십자가의 꿈,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영혼들에게 놀라운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으로 이 땅에 하나님 나라가 임하게 하는 교회가 되고자 하나님을 바라 볼 때 하나님께서 우리를 그렇게 인도하실 것입니다.


동시에 청소년, 청년, 아니 그 누구라도. 하나님을 바라보고 기다리며 의지할 때, 다윗이 기가 막힐 좌절과 절망에서 건져 올림을 받은 것 같이, 새 비전을 발견하고, 하나님의 능력을 덧입게 될 것입니다. 마침내 그 비전을 이루는 사람이 될 것입니다. 나아가 그 사람을 통해 많은 사람들은 놀라우신 하나님을 바라보게 될 것입니다.

이 놀라운 인생의 기막힌 역전을 하나님께서 우리 모두에게, 우리 교회에게 주시길 원하십니다. 나를 새롭게 하사 비전을 주시고 그 능력과 승리를 주시는 하나님을 바라보십시오.

나와 함께 계시는 분이심을 경험하십시오.


특히 이번 수련회를 통해 청소년들은 다 참여해서

나를 사랑하시는 하나님을 만나십시오.

나에게 위대한 꿈을 주시는 하나님을 찾으십시오.

나의 어두운 비늘, 보지 못하는 비늘, 무기력의 껍데기를 벗겨달라고 간절히 기도하십시오. 모든 것 내려놓고 오직 하나만을 바라보십시오. 그럴 때 여호수아와 갈렙과 같이 담대한 믿음으로 자신의 연약함을 뛰어넘어 도전하는 믿음의 사람 될 것입니다.


그럴 때 여러분도 다윗과 같이 고백할 날이 반드시 올 것입니다.

내가 여호와를 기다리고 기다렸더니 귀를 기울이사 나의 부르짖음에 들으셨도다. 나를 기가 막힐 웅덩이와 수렁에서 끌어 올리시고 내 발을 반석 위에 두사 내 걸음을 견고케 하셨도다.


믿음으로 하나님을 바라보고 찾는 자는

다 이런 고백을 하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은 그 사람을 믿음의 창조적인 소수가 되게 하사

당신의 그 위대한 일을 감당하는 사람이 되게 하실 것입니다.

아들을 주시기까지 나를 사랑하시는 하나님만 바라보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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