앞으로 1주일 정도면 교회센터(The Link)가 완공이 됩니다. 내부공사도 거의 막바지에 접어들었고, 큰 숙제인 주차장 공사도 거의 마지막 단계만 남겨 놓고 있었습니다. 이 재건축에는 1,800,00달러, 15억원 이상이 들어가게 됩니다. 예전 교회센터가 1950년대 지어지고 난 뒤로 가장 큰 건축이 이루어지고 있는 셈입니다. 그리고 현재 살아계신 키위분들의 입장에서는 생애 마지막 건축이 됩니다. 이분들이 이러한 재건축을 결정한 이유는 자신들에게 하나님께서 맡겨주신 사명, 곧 영혼을 구하고, 지역 사회를 섬기는 교회로서 보다 온전한 역할을 감당하는 교회가 되고자 함입니다. 그래서 자신들의 현재 여건으로는 무리인줄 알면서도 믿음으로 결정하고 시행하기에 이르렀고, 이제 완공을 앞두고 있습니다.
그렇기에 이분들은 신중에 신중을 다하여 이 건축의 사명을 온전히 감당할 사람들을 찾았습니다. 그리고 계약을 했습니다. 이후 건축자들은 지난 약 8개월간 교회의 뜻을 받들어 충실하게 감당해 왔습니다. 만약 이들이 교회의 뜻과 상관 없이 자기들 마음대로 했다면 교회는 아마도 계약을 해지했을 것입니다. 그리고 더 충실한 다른 업체를 구했을 것입니다. 너무나 중요한 이 사명을 무시하는 사람들에게 맏길 수는 없기 때문입니다.
하물며 하나님의 일에는 더 말할 나위도 없습니다. 그것은 생명을 다루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그렇기에 하나님께서도 충실한 사람을 찾고 계십니다. 당신의 일을 맡길 만한 충실한 사람을 찾고 계십니다. 그렇다면 하나님께서 찾으시는 충실한 사람은 좀더 구체적으로 어떤 사람일까요?
2장 35절에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내가 나를 위하여/ 충실한 제사장을 일으키리니 그 사람은 내 마음 내 뜻대로 행할 것이라 ‘
하나님께서 말씀하시는 충실함이란 ‘하나님을 위하여, 하나님의 마음과 뜻대로 행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왜 이렇게 말씀하셨을까요? 이 말씀을 하실 당시 이스라엘은 영적으로 사회적으로 도덕적으로 무너져 내린 시대였기 때문입니다. 깨어말씀을 듣는 사람이 없고, 말씀을 들었다 해도 충실하게 그것을 시행하는 사람이 없었던 것입니다.
3장 1절에서 이렇게 말씀합니다. ‘아이 사무엘이 엘리 앞에서 여호와를 섬길 때에는 여호와의 말씀이 희귀하여 이상이 흔히 보이지 않았더라.’ 한 마디로 어두운 시대였습니다.
그런데 바로 이 때에 하나님께서 말을 걸기 시작한 대상이 있었습니다. 사무엘입니다. 아이를 갖지 못한 한나가 서원하여 아들을 주시면 하나님께 드리겠노라 해서 낳은 그 아들입니다. 이 한나는 사무엘이 젖을 떼자 마자 사무엘을 하나님께 드리고 성막에서 생활하게 했습니다. 그래서 젖을 떼고서부터 구별된 거룩한 아들로 자란 것입니다. 그리고 마침내 때가 되자 하나님께서 사무엘에게 말을 걸기 시작하셨습니다. ‘사무엘아 사무엘아’ 하고 부르신 것입니다. 처음에는 잘 못 알아 들었던 사무엘은 엘리 제사장을 통하여 그것이 하나님의 부르심임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네번째 부르심이 있을 때 ‘말씀하옵소서. 주의 종이 듣겠나이다’하고 대답을 합니다. 그리고 그 때부터 하나님께 앞으로 되어야 할 일과 하나님의 계획들을 보여주시기 시작했습니다. 그래서 사무엘은 하나님 앞에 거룩히 구별된 순결한 자로 하나님의 말씀을 들었고, 그대로 순종하여 하나님의 뜻을 성실하게 감당했습니다. 사사시대서 왕정국가로 넘어가는 시대에 왕이 사람의 뜻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을 받들어 섬겨야 할 자로 세움을 입는 기초를 마련하였습니다. 영적으로 타락한 백성들을 회개의 길로 이끄는 지도자가 되었습니다. 순종이 하나님께 제물을 드리는 것 보다 더 중요한 것임을 깨닫게 하는 사사요 선지자로 쓰임을 받았습니다.
이런 사무엘의 모습을 통해서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세 가지 질문으로 말씀하십니다.
첫째, 너는 순결한 자인가?
사무엘이 하나님께서 말을 걸 대상으로 삼으신 이유는 그가 거룩히 구별되어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렇기에 그가 어린 아이임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는 그에게 말씀하기 시작했던 것입니다.
도덕적으로 영적으로 혼란한 시대입니다. 하나님은 언제나 거룩히 구별된 영혼을 찾습니다. 거룩한 그릇만이 하나님의 거룩한 뜻을 담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이러한 하나님의 거룩한 요구 앞에 절망할 수 밖에 없습니다. 우리의 속 자체가 이기심의 덩어리요, 미움의 덩어리요, 무관심의 덩어리요, 음란의 덩어리요, 악의 덩어리고 가득 가득 채워져 있기 때문입니다. 그렇기에 우리는 절망할 수 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 쓰임 받을 만큼 선한 자는 이 세상에 아무도 없습니다. 모두 죄인이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하나님께서 쓰실 만한 순결한 그릇이 될 수 있다는 것일까요?
사도바울은 그릇의 비유를 통해서 우리에게 이렇게 가르쳐주고 있습니다.
‘큰 집에는 금과 은의 그릇이 있을 뿐아니요, 나무와 질그릇도 있어 귀히 쓰이는 그릇도 있고 천히 쓰이는 그릇도 있나니, 그러므로 누구든지 이런 것에서 자기를 깨끗하게 하면 귀히 쓰이는 그릇이 되어 거룩하고 주인의 쓰심에 합당하며 모든 선한 일에 예비함이 되리라.’(딤후2:20-21)
하나님께 귀이 쓰이는 그릇이 될 수 있는 길은 다른 것이 아닙니다.
자기를 깨끗케 하는 자입니다. 죄의 때를 벗기는 것입니다.
교회센터 The Link가 확 달라진 것이 많습니다. 그런데 그 중에 신기하게 느껴지는 것은오랫동안 사용하여 때로 먼지로 덮혀져 거무틱틱했던 마루바닥들입니다. 마치 새로 깔은 듯한 모습으로 변했기 때문입니다. 오래되고 변색되어 시커멋던 것들을 한꺼풀을 벗겨내니 나무 본래의 아름답고 밝은 색깔이 고스란이 되 살아 난 것입니다. 바닥이 완전히 거듭난 것입니다.
우리도 마찬 가지입니다. 우리의 때를 벗겨내면 우리 영혼은 하나님의 형상을 닮은 본래의 모습을 회복하여 나갑니다. 그래서 부정한입술이 거룩한 입술이 되고, 부정한 마음이 하나님의 거룩을 찬양하는 새 마음이 되는 것입니다.
이를 위해 우리가 꼭 해야 할 것이 한가지가 있습니다. 그것은 매일 한 번씩 영적인 샤워를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 앞에 부끄럽고 죄된 것을 내어 놓고 용서의 은혜로 샤워를 하는 것입니다. 진실한 마음으로 영혼의 구석구석을 살펴 죄의 용서를 구할 때 영혼이 새롭게 되는 은혜가 반드시 임하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 혼탁한 시대에 선명한 사람을 찾으십니다. 그 마음과 몸을 깨끗케 하여 하나님 쓰시기에 합당한 사람을 찾으시는 것입니다. 매일 주님 앞에 나아가 새롭게 하시는 은혜를 덧입기 위한 시간을 마련하십시요. 하나님께서 쓰실 귀한 새 그릇이 되게 하실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이 찾으시는 충실한자의 기본바탕입니다.
하나님께서 물으십니다. 너는 순결의 길을 가고 있는가?
둘째, 너는 내 말을 듣는 자인가 묻습니다.
하나님께서 찾으시는 충실한 사람은 하나님의 마음과 뜻을 아는 자입니다. 즉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귀를 가진 사람입니다.
하나님께서 사무엘아, 사무엘아부르실 때 ‘말씀하시옵소서. 주의 종이 듣겠나이다’하고 하나님의 말씀에 귀를 기울였습니다. 그런 그에게 하나님은 하나님의 마음가 뜻을 보여주었습니다. 하나님의 큰 일과 계획을 말씀해주셨습니다.
우리는 십자가의 꿈을 이룰 자들로 부름받는 교회입니다. 우리의 영광을 위해서, 우리의 일을 위해서 모인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사무엘을 세우기전 ‘내가 나를 위하여 충실한 제사장을 일으키리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여기에서 ‘나를 위하여’라고 분명하게 말씀하십니다. 즉 하나님께서 찾으시는 영혼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서 입니다. 그렇기에 하나님께서 쓰시기에 합당한 사람은 하나님의 말씀에 예민한 귀를 가진 사람입니다. 그런 사람이라야 하나님의 마음과 뜻을 깨닫고 하나님의 뜻을 수행 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지난 번 칠레에서 33명의 광부들이 700미터 지하 매몰 광구에서 전원 구조 되었습니다. 그런데 이들이 매몰되어 발견되기까지 걸린 시간 18일 이나 된 시점입니다. 상식적으로는 죽었을 가능성이 큰 상황이었습니다. 그런데도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탐침을 하던 중 18일째 관을 타고 올라오는 작은 소리를 들었습니다. 그 소리는 매몰된 광부중 한 명이 자기가 가지고 있던 열쇠로 지하 700까지 뚫고 내려온 탐침파이프를 두드리는 소였습니다. 만약 이 때 이 탐침을 내리를 사람이 주의하지 않고 그 소리를 못들었다면 어떻게 되었을까요? 아마도 이들에게 더 어려운 일이 닥쳤을 것을 것이며, 끔찍한 사건으로 기록되었을 지도 모릅니다. 관을 타고 올라오는 세미한 소리를 들었던 것은 그 작업을 하는 사람이 그 만큼 혼 힘을 기울여 그 소리를 듣거나, 그 소리를 탐지하는 기계장치에 집중하고 있었기 때문이었을 것입니다. 듣는 귀가 그들을 살린 것입니다.
영적으로 어두운 시대에 유일하게 사무엘은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 귀를 가진 자였습니다. 하나님은 그런 그에게 말씀하시고 이스라엘을 살리는 사명을 맡겨주셨습니다. 이 시대에 누가 십자가의 꿈을 이룰 수 있는자로 쓰임을 받을 수 있을까요? 하나님의 말씀을 들을 수 있는 귀를 가진 자입니다. 하나님의 마음과 뜻을 헤아릴 수 있는 귀를 가진 사람입니다.
이러한 귀는 어떻게 가지게 될까요? 하나님 앞에 귀를 열어 놓는 것입니다. 이를 위해서는 내 삶에 있어서 제일 중요한 우선 순위가 하나님을 만나는 시간임을 자신에게 선언해야 합니다. 그래서 하루의 생활을 정리하고, 기도로 하나님을 만날 수 있도록 시간을 계획해야만 합니다.
이를테면 기도할 시간이 새벽 밖에 없다하면 새벽에 기도가 가능하도록 하기위해 잠자는 시간을 조정하고 정한 시간에 잠을 자는 것입니다. 그리고 정한 시간에 자기위해서는 그렇게 하지 못하도록 방해하는 것이 무엇인가 세심하게 살펴서 그것을 끊어버려야합니다. 낮에 충분히 끝낼 수 있는데도 질질 끄는 습관이 있다면, 그습관이 자신의 계획과 삶을 엉망으로 만드는 요인임을 알고 생산적인 사람이 되도록 자신을 고쳐야 합니다. 한 마디로 자기 생활을 충실하게 수행함으로써 기도 시간을 마련해야 합니다.
청소년이나 청년 같은 경우 특별히 할 일도 없는데 밤늦도록 컴퓨터 앞에 앉아 있는 시간을 끊어야 합니다. 자기 생활을 단순하게 정리하지 않고는 하나님을 만날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을 만나기 위한 진지함 자세가 결여되어 있고, 그런 자세에서는 진정한 기도가 나올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렇기에 하나님을 만나기 위해서 그것을 방해하는 모든 것을 하나씩 차근히 정리해나가야 합니다. 그래야 사무엘 같이 준비되어 하나님의 마음과 뜻을 아는 자가 되는 것입니다. 반대로 하나님께 귀를 기울이는데 게으른 사람은 나중에 반드시 후회하게 될 날이 오게 될 것입니다. 그것은 하나님을 무시한 죄에 대한 값입니다.
분명히 말씀드립니다. 여러분의 매일의 삶속에 제일 중요한 것은 영혼이 샤워하는 시간이요, 하나님을 만나 그 하시는 말씀을 듣는 시간입니다. 만약 우리가 하나님을 만나는 시간을 내 매일의 삶에서 제일 우선 순위에 두고 그 시간을 하나님께 드린다면 하나님의 마음과 뜻을 깨닫는 귀를 가지게 될 것입니다. 그러므로 삶을 정리하고 하나님을 만나는 시간을 삶의 제일 우선 순위로 두고, 제일 중요한 가치를 부여하시고 실천하십시오. 하나님께서 물으십니다. 너는 내 말을 듣는 귀인가 아닌가?
셋째, 너는 온전히 순종하는 자인가 물으십니다.
사무엘이 하나님의 부르심에 ‘말씀하옵소서. 주의 종이 듣겠나이다’라고 대답했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 말은 하나님의 말씀을 깨어서 들을 뿐 아니라, 그 들은 말씀대로 순종한다는 것을 의미하는 말씀입니다.
당시에 엘리 세사장도 하나님의 말씀을 듣을 수 있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그 들은 대로 하나님께 순종하지 않았다는데 문제가 있었습니다.
2장 29절에 이렇게 기록되어 있습니다. ‘너희는 어찌하여 내가 나의 처소에서 명한 나의 제물과 예물을 밟으며 네 아들들을 나보다 더 중히 여겨 내 백성 이스라엘의 드리는 가장 좋은 것으로 스스로 살찌게 하느냐’
여기에서 ‘네 아들들을 나 보다 더 중히 여겨’라는 말씀이 나옵니다. 엘리에게는 하나님보다 자식들의 입장이 더 중요했습니다. 그래서 엘리는 하나님의 성소에서 두 아들이 온갖 망나니 짓을 해도 막지 않았습니다.
이에 하나님께 엘리에게 징계를 선포하시며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나를 존중히 여기는 자를 내가 존중히 여기고, 나를 멸시하는 자를 내가 경멸히 여기리라’
하나님의 말씀대로 순종하지 않은 것은 ‘나를 멸시하는 것’이라고 분명히 말씀하십니다. 엘리의 죄가 이것이었습니다. 생명의 근원이 되신 하나님보다 자신의 소유를 더 중히 여김으로 하나님을 모욕하고 멸시한 것입니다.
반면 하나님께서 사무엘을 부를 때 ‘말씀하옵소서. 제가 듣겠나이다’라고 대답을 합니다.
이것은 당시의 시대상과 달리 사무엘은 하나님의 말씀을 듣을 뿐 아니라 온전히 순종하는 사람이었다는 것을 상징적으로 드러내는 말씀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이 찾으시는 사람이 바로 이와 같이 말씀을 듣고 충실하게 순종하는 자임을 나타냅니다. 순종함이 없이는 하나님의 뜻이 시행 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순종하지 않음은 하나님을 무시하고 멸시하는 행위이기에 하나님께서 쓸만한 존재가 되지 못합니다. 엘리 제사장과 두 아들이 그랬습니다. 순종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순종하는 자에게는 위대한 일을 맡기십니다. 오늘 본문의 사무엘 뿐만 아니라 성경의 모든 주인공들운 한 결같이 순종하는 자들이었습니다. 아브라함은 100세가 되어 겨우 약속의 아들 이삭을 낳았습니다. 그런데 어느날 하나님께서 그 이삭을 제단에 바치라고 합니다. 청천병력과 같은 명령이 아닐 수 없었습니다. 그러나 아브라함은 아무 말 없이 아들을 데리고 산으로 갑니다.
그리고 단을 쌓고 ‘제물은 어디 있어요 아버지?’ 묻는 아들 이삭을 묶습니다. 그런 후 단에 이삭을 눕힌 후 칼을 들어 내려 치려는 순간 ‘아브라함아 아브라함아’ 부르시면서 말씀하십니다. ‘네 아들 독자라도 내게 아끼지 아니 하였으니 내가 이제야 네가 하나님 경외 하는 줄을 아노라’(창22:12)
그리고 이 때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놀라운 약속을 해주십니다. ‘네 아들 네 독자를 아끼지 아니하였은 즉, 내가 네게 큰 복을 주고 네 씨로 크게 성하여 하늘의 별과 같고, 바닷가 모래와 같게 하리니, 네 씨가 그 대적의 문을 얻으리라. 또 네 씨로 말미암아 천하 만민이 복을 얻으리니 이는 네가 나의 말을 준행하였음이라’ 그리고 이 약속대로 아브람은 이스라엘의 조상이 되었고, 모든 믿는 자의 조상이 되었습니다.
순종이 무엇이기에 하나님께서 큰 복을 주신 것일까요? 아브라함의 경우 100세에 얻은 아들보다 더 중한 것은 없습니다. 자기 생명보다 더 중합니다. 그러나 하나님만은 예외입니다. 아브라함 자신과 100세에 나은 이삭뿐아니라 그 어떤 존재와도 비교 할 수 없는 높고 높으신 하나님이시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그는 묵묵히 순종하였습니다. 하나님의 뜻을 높여 드린 것입니다. 순종이란 이처럼 높고 높으신 하나님의 이름에 합당한 높임을 올려드리는 행위 그자체 입니다. 하나님을 하나님으로 제대로 높여드림의 결정체입니다. 그렇기에 신앙은 부르심으로 시작해서 순종으로 결론이 난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아브라함은 그렇게 순종을 한 것입니다. 더이 상 드릴 수 없는 높임을 하나님께 드린 것입니다.
온전히 하나님께 자신을 드리는 헌신을 한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도 하나님께 순종하여 자신을 십자가에 드렸습니다. 우리를 위해 생명을 헌신한 것입니다. 이 순종이 우리를 구원한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바로 이러한 사람을 찾고 계십니다. 순종함으로 하나님을 존중히 여기는 자를 찾으십니다. 그런 사람만이 자신의 사욕에 흔들림 없이 하나님의 거룩한 명령을 바르게 수행하고, 하나님의 뜻을 이룰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무엇에 순종해야 합니까?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삶에 순종해야 합니다. 예수님의 십자가의 꿈을 이루기 위한 부르심에 순종해야 합니다. 네 이웃을 섬기라는 명령에 순종해야 합니다.
이를 위해서 앞서 말씀드린대로 매일 자신을 순결하고 깨끗한 그릇으로 준비하라는 말씀에 순종해야합니다. 또 개인적으로 하나님께 나아가 그 말씀을 듣는 시간을 매일의 삶에 제일 우선순위로 놓으라는 말씀에 순종해야 합니다. 그리고 주일 말씀과 하나님을 만나는 시간에 들려주시는 말씀에 순종해야 합니다. 영적인 샤워를 하고, 시간을 내어 뜻을 묻고, 순종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나를 위하여서가 아니라 하나님을 위하여 부름받는 자들이기 때문입니다.
저는 지난 주 우리 교회 론 목사님과 대화를 나누다가 한가지 궁금증이 풀렸습니다. 키위사람들은 목회자이건 성도님들이건 간에 새벽기도회를 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늘 궁금한 것이 있었는데, 키위 들은 어떻게 자신의 신앙을 지켜가는가 였습니다. 얼른 볼 때 기도하는 것 같지도 않고, 열심을 내는 것 같지도 않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론 목사님과 대화를 통해서 그것을 깨달았습니다. 그것은 매일 새벽에 일어나 하나님과 개인적인 경건의 시간을 갖는 것이었습니다.
아 그렇구나. 깨어서 하나님과 만남의 시간을 갖는 구나.
이것이 이분을 살게 하는 것이구나 하고 알게 되었습니다.
우리 모두 이 처럼 깨어 자신을 깨끗게 함을 받고, 하나님의 뜻을 들으며, 그 뜻에 순종함으로 하나님을 높이는 참 성도의 길을 가야 하겠습니다. 우리가 이길을 쉼 없이 걸어갈 때 비로서 주님께서 십자가에 달려 죽으시며 꾸었떤 꿈이, 우리의 꿈이 되고, 우리를 통해서 그 꿈이 성취 되어 나아갈 것입니다. 깨끗하게 준비되고 하나님의 뜻을 찾고 순종하는 자가 하나님이 찾으시는 사람이요, 그를 통해 하나님께서일하시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사무엘 처럼, 날마다 깨어 영적인 샤워 시간과 위해, 하나님의 뜻을 듣기 위한 시간을 삶의 제일 우선 순위에 두고 실천하고, 그 들은 말씀대로 순종하십시오. 하나님께서 십자가의 꿈을 이룰자로 부르실 것 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