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주의 말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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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너희는 위로하라 내 백성을 위로하라"(사 40:1-5)2008-01-04 06:25
작성자 Level 10

2007년 12월 23일 주일설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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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희는 위로하라 내 백성을 위로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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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 4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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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레사 수녀는 이런 기록을 남겼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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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큰 질병은 결핵이나 문둥병이 아닙니다. 아무도 돌아보지 않고 아무도 위로하지 않고 아무도 사랑하지 않고 아무도 필요로 하지 않는 것, 이것이 가장 무서운 질병입니다. 세상에는 빵이 없어서 죽어가는 사람도 많지만, 작은 사랑이 없어서 죽어가는 사람이 더 많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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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본문에 하나님께서 말씀하십니다. “내 백성을 위로하라.” 여러분, 어떻게 위로하며 어떻게 위로받을 수 있습니까? 사느냐 죽느냐의 문제가 아닙니다. 부하냐 가난하냐의 문제가 아닙니다. 여러분, 우리에게는 위로가 꼭 필요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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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분, 참 위로의 길이 어디에 있습니까? 참 소망은, 참 사랑은 무엇입니까? 그것은 용서뿐입니다. 우리는 다 하나님 앞에 죄인입니다. 아무리 생각해도 가책과 불안과 공포에서 벗어날 길이 없어요. 그 근본은 죄의 문제입니다. <네 죄를 사했느니라.> 사죄의 은총 외에는 누구도 위로받을 수도 없고 위로할 수도 없습니다. 가장 위대한 사랑은 용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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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본문에, 복역의 때가 끝났다, 말씀합니다. 용서하노라... 진노의 때가 지났고, 복역의 때가 끝났고, 이제는 소망이요, 생명이요, 영생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이 메시지, 절대적 복음, 이것만이 우리의 소망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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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메시야가 임함으로 해서 이 사랑과 용서를 확증해주었습니다. 너희가 지은 죄의 값은 내가 대신 지노라. 그리고 그 사랑을 그 용서를 확증해주었습니다. 죄사함의 은총입니다. 율법을 초월하여 죄인을 사랑하는 메시아적 복음만이 우리의 소망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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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가 헤밍웨이의 단편 모음집 중에 이런 이야기가 나옵니다. 스페인에 어느 엄한 아버지가 있었습니다. 아들과 사사건건 충돌합니다. 아버지의 시각으로 볼 때에 아들이 하는 일은 못마땅합니다. 말도 안되고 사람도 아닙니다. 아들이 견디다 못해 집을 나가버렸습니다. 아들은 멀리 마드리드로 가서 몇 해 동안 방황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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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는 너무너무 괴로웠습니다. 내보내야 했고, 내 보낼만 했지만, 아들을 용서하지 못한 그 일로 절대로 편안할 수가 없었습니다. 마침내 아들을 용서하고 불러들이기로 했습니다. 그리고 신문에 광고를 냈습니다. 그 아들의 이름은 파코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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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고, 화요일 정오에 몬타나 호텔에서 만나자. 다 용서했다. 아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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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예정된 시간에 호텔에 나가보니까 무려 800명이나 되는 젊은이들이 모여 있더랍니다. 파코라는 이름이 아주 흔한 이름이랍니다. 용서받아야 할, 용서를 기다리고 있는 젊은이들이 그렇게 많았다는 이야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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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분, 이것이 복음입니다. 이제 뭘 더 가릴 것입니까? 다 용서했다. 이것만이 복음이요, 이것만이 삶의 힘입니다. 그런데 문제가 있습니다. 이 파코가 아버지의 마음이 담긴 광고문을 믿지 않았다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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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 말은 못 믿어. 전에도 그랬어. 이건 거짓말이야.” 또, “나는 아버지 아들 될 자격이 없어. 아버지 말이 맞아. 나는 구제불능이야. 그래서 나는 아버지께 갈 수 없어.” 그랬다면, 복음은 여전히 복음이 될 수 없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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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조건 용서한다.” 무조건 받아 들여야지요. 결국은 이 복음을 받아들이는 것, 믿음입니다. 다 용서했다, 아버지의 말 한 마디를 전적으로 받아들이고, 믿고, 감격해서, 자기가 잘했든지 못했든지, 다 지워버리고 그대로 염치없이 아버지께 돌아와서 아버지 품에 안기는 것, 이것이 믿음입니다. 이것이 중요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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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하나님의 아들 자격이 있어서, 하나님의 아들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나를 아들이라고 부르시니까, 나는 하나님의 아들입니다. 하나님의 딸 자격이 있어서, 하나님의 딸이 아닙니다. 내가 그만한 의가 있어서, 착함이 있어서가 아닙니다. 용서하신다고, 사랑하신다고, 돌아오기만 하면 된다고 하시니 받아들이는 것, 그게 믿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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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본문에서는 예비하라고 말씀합니다. 그리고, 예비할 것을 구체적으로 말씀하십니다. 산은 낮아져야 되겠다고, 골짜기는 높아져야 되겠다고, 첩경을 평탄케 해야겠다고 명령하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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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분, 그렇습니다. 오시는 예수, 그 복음을 받아들이려면, 산이 낮아져야 합니다. 바리새주의적인 교만, 자기 의를 의지하는 교만, 잘났다고 하는 교만, 뭔가 자기가 이룰 것같이 생각하는 교만, 다 낮아져야 합니다. 그렇지 않고는 오시는 주님을 바로 받아들일 수가 없고, <네 죄를 사했느니라>하는 복음을 수용할 수가 없습니다. 낮아질 때, 우리에게는 성탄의 기쁨이 올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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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골짜기는 높아져야 합니다. 나는 소망이 없다고 생각하지만, 주님이 나를 사랑하면 소망이 있습니다. 그가 나를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부르면, 나는 아들입니다. 그가 나를 하나님의 사랑하는 딸이라고 부르면 나는 딸입니다. 누가 뭐래도 나는 하나님의 사랑을 받는 확실한 하나님의 자녀입니다. 그러므로 골짜기는 높아져야 합니다. 주님과 만날 수 있을 만큼 자기 자신을 소중히 여길 줄 알아야 합니다. 사랑받는 존재이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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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아가서 첩경을 곧게 해야 합니다. 굽어진 마음, 갈고리 같은 마음, 편견, 오해, 이런 이야기 다 지워버리고 진실한 마음으로, 오시는 예수를 받아들일 수 있는 자세가 분명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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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분, 우리가 왜 힘듭니까? 왜 이렇게 어려운 겁니까? 하나님의 사랑에 대한 믿음을 잃어버렸습니다. 사랑 받을만한 존재도 못된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다른 방법이 없습니다. 절대적으로 사랑하면 우리는 절대적으로 받아 들여야 합니다. 무조건적으로 사랑한다면, 무조건적으로 수용해야 합니다. 그것이 성탄의 의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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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 위로는 죄사함에 있습니다. 무조건적 아가페의 사랑에 있습니다. 그리고 행동적 사랑, 하늘 보좌를 버리시고 찾아오셔서 위하여 십자가를 지신 그 구체적인 사랑에 있습니다. 이 절대적인 사랑을 받아서 위로받을 수 있는 길은, 겸손과 믿음과 새로운 소망과 용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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밝은 마음으로, 가슴을 열고, 오시는 주님을 영접하는 성탄의 계절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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