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주의 말씀

예배와 말씀

PRESBYERIAN CHURCH

금주의 말씀

제목"잘 살기 위해 믿음을 점검할 때입니다!"(요한일서 5:9-11)2007-09-25 08:21
작성자 Level 10

2007년 9월 23일 주일설교

_x000D_

 

_x000D_

"잘 살기 위해 믿음을 점검할 때입니다!"

_x000D_

(요한일서 5:9-11)

_x000D_

 

_x000D_

-우리가 사는 세상을 보면, 예수를 믿는다고 꼭 다 부자가 되는 것도 아니고, 예수를 안 믿는다고 꼭 다 가난해지는 것도 아닙니다. 예수를 믿는다고 다 세상적으로 형통해지고, 안 믿는다고 세상적으로 다 어려워지는 것도 아닙니다. 조금의 차이는 있겠지만, 그와 같은 것들은 예수 안 믿어도 얼마든지 얻을 수 있는 것들입니다.

_x000D_


_x000D_

예수를 믿어야만 얻을 수 있는 것들이 있습니다. 예수를 믿지 않으면, 세상의 그 어떤 사람도 절대로 얻을 수 없는 귀한 것들이 있습니다. 그것을 한 마디로 말씀드리자면, 그것은 ‘생명’입니다.

_x000D_


_x000D_

제가 지금 말씀드리는 생명은 그저 이 세상에서 죽지 않고 건강하고 부자로 형통하게 사는 생명과는 좀 다른 차원의 생명입니다. 오늘은 그 생명에 대한 말씀을 여러분과 나누려고 합니다.

_x000D_


_x000D_

요즈음에 제가 생각하고 있는 것 중의 하나는, 잘 사는 것에 대한 것입니다. 어떻게 하면 잘 살 수 있을까,에 대해서 생각합니다. 여러분과 저는 요즈음 잘 살고 있습니까?

_x000D_


_x000D_

사람들은 잘 살고 못 사는 것이 소유에 있는 줄로 생각하고 사는 것 같습니다. 그래서 소유가 많은 사람을 부자라 이야기하기 보다는, 잘 사는 사람이라고 이야기하고, 소유가 적은 사람을 가난한 사람이라 이야기하기 보다는 못 사는 사람이라고 이야기합니다. 그러나 이것은 옳지 않은 말입니다. 그리고 아주 위험한 생각입니다.

_x000D_


_x000D_

만약에 부자가 잘 사는 사람이라면, 부자는 적어도 자살은 하지 말아야 하지 않습니까? 대기업의 딸이면 부자인데, 그 부자가 잘 살았다면, 도대체 자살한 이유는 무엇입니까? 여러분, 그러므로 부자는 부자일 뿐이지, 꼭 잘 사는 사람은 아닙니다. 반대로, 가난한 사람은 가난한 사람일 뿐이지, 꼭 못 사는 사람은 아닙니다.

_x000D_


_x000D_

우리는 우리 삶의 대부분을, 한 마디로 말하면, 부자가 되는 것을 위하여, 세상적으로 성공하고 출세하는 것을 위하여 씁니다. 부자가 되기 위하여 쓰는 우리의 힘과 노력은, 진정으로 잘 살기 위하여 쓰는 우리의 힘과 노력과 비교가 되지 않습니다.

_x000D_


_x000D_

여러분, 부자이기 때문에 잘 못 사는 사람들 참 많이 있습니다. <저 사람은 차라리 가난했으면 저렇게까지 안돼었을텐데> <저 사람은 오히려 성공하지 않고 실패했더라면 좋았을 껄> 이런 말 하게 만드는 사람들 있습니다.

_x000D_


_x000D_

여러분, 가난하냐 부하냐 하는 것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처럼, 그다지 심각한 게 아닙니다. 아무것도 아닌 건 아니지만, 정말 심각한 것은, 잘 사는 사람이 되느냐, 잘 살지 못하는 사는 사람이 되느냐에 달려 있습니다.

_x000D_


_x000D_

잘 살고 못 사는 것은 소유가치에 있지 않습니다. 잘 살고 못 사는 것은 존재가치에 있습니다. 진정한 의미의 행복은, 사랑하는 여러분, 소유의 많고 적음에 달려 있는 것이 아닙니다. 소유가치는 환경에 따라 변하기 때문입니다. 소유가치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중요한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존재가치입니다.

_x000D_


_x000D_

그렇다면, 존재가치는 어떻게 얻을 수 있을까요? 존재가치는 예수를 믿어야만 얻을 수 있습니다. 예수를 믿지 않아도 얼마든지 소유가치는 높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예수를 믿지 않고는 절대로 존재가치가 높아질 수 없습니다.

_x000D_


_x000D_

존재가치는 존재목적으로부터만 옵니다. 존재의 목적은 존재 자체로부터 오지 않습니다. 그것을 존재케 한 대상으로부터 오기 때문입니다. 여기 있는 Over Head Project는 가치가 있습니다. OHP의 가치는 OHP의 존재목적에서부터 옵니다. OHP의 존재목적은 작은 것을 크게 확대하여 비추는 것입니다.

_x000D_


_x000D_

지금 이것은 그 목적대로 잘 존재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가치가 있습니다. 그러나 어느 날 그 목적을 수행하지 못하게 되는 때가 옵니다. 고장나서 수리를 못하는 때입니다. 그때 이것은 존재가치가 없어지게 되고 결국 버려질 것입니다.

_x000D_


_x000D_

그런데 그 중요한 존재목적은 존재가 스스로 결정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것을 만든 사람이 결정합니다. OHP의 존재목적은 OHP가 만들지 않았습니다. OHP를 만든 사람이 만들었습니다. 그것은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것의 원칙입니다. 존재가 스스로 존재의 목적을 결정하는 것은 세상에서 하나님 한 분 외에는 없습니다.

_x000D_


_x000D_

그러므로 창조주 하나님을 인정하지 않는다면, 받아들이지 않는다면, 믿지 않는다면, 절대로 잘 사는 사람이 될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절대로 자신의 존재목적을 찾아내지 못할 것이고, 때문에 당연히 가치있는 존재가 될 수 없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_x000D_


_x000D_

여러분, 그래서 믿음이 방법입니다. 믿음은 우리에게 달려갈 길을 가르쳐 줍니다. 사람답게 사는 법을 가르쳐 줍니다. 잘 사는 법도 가르쳐 줍니다. 저는 이것이 생명이라고 생각합니다.

_x000D_


_x000D_

오늘 우리가 읽은 성경말씀이 바로, 예수와 생명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성경은 더하지도 빼지도 않고, 확실하게 분명하게 뚜렷하게 증거하고 있습니다. “아들이 있는 자에게는 생명이 있고, 하나님의 아들이 없는 자에게는 생명이 없느니라.”

_x000D_

여러분, 이 말씀을 암송하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_x000D_


_x000D_

여러분, 여기서 ‘생명’이란 말은 희랍어로 ‘조에’라는 말입니다. 그런데 이 말은 단순히 생물학적인 생명의 의미가 아닙니다. 이것은 ‘질적인 삶’을 의미합니다. 다시 말해서, 의미와 보람과 기쁨으로 가득 차 있는 것을 의미합니다.

_x000D_


_x000D_

그런데, 여러분, 하나님은 하나님의 아들, 예수에게 이 생명이 있다고 하십니다. 예수를 믿는 자에게는 이 생명이 있고, 예수를 믿지 않는 자에게는 이 생명이 없다고 하십니다. 여러분, 그분이 없는 우리의 삶은 죽음일 수밖에 없습니다. 요한계시록 3장 1절을 보면 이런 말씀이 나옵니다. “살았다 하는 이름은 가졌으나 죽은 자로다.”

_x000D_


_x000D_

살아도 재미가 없고, 그 삶이 권태로울 수밖에 없는 이유는, 그 삶 속에 진정한 생명이 들어 있지 않기 때문입니다. 예수 안에 있는 생명은 시간적으로도 무한한 영원한 생명입니다. 그 뿐이 아닙니다. 지금 여기에서도 새로운 삶을 살게 하는 질적으로 새로운 생명입니다. 이 생명이 진짜인데,  여러분, 이것이 없으면, 재물을 모아도, 명예를 쥐어도, 남들보다 무언가를 더 많이 가져도, 삶은 허무일 수밖에 없습니다.

_x000D_


_x000D_

여러분, 그렇다면, 누가복음 13장에서 예수님이 어리석은 부자의 비유를 시작하시기 전에 하셨던 말씀, “사람의 생명이 그 소유의 넉넉한 데 있지 아니하니라.”는 말씀의 의미는 무엇일까요? 이런 말씀이 아니겠습니까? “행복한 인생은, 잘 사는 인생은 단순히 소유에 있는 것이 아니다.” 그러면 어디에 있다는 말씀일까요?

_x000D_


_x000D_

조에, 질적인 삶, 생명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요한복음 10장 10절에서 우리에게 말씀하십니다. “내가 온 것은 양으로 생명을 얻게 하고 더 풍성히 얻게 하려는 것이라.” 예수님은 바로 저와 여러분에게 이 풍성한 생명을 주시기 위해 오셨습니다. 이 생명을 정말로 믿으며 사는 저와 여러분이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_x000D_


_x000D_

요한복음 14장 6절을 보면, 예수님은 당신 스스로를 이렇게 소개하셨습니다.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저는 이런 생각을 해보았습니다. <교회를 세상에 복음을 파는 영적인 기업이라고 보았을 때, 복음의 중심이신 예수님의 자기  알림은 맞기는 맞지만, 세상 사람들이 볼 때, 너무 매력이 없는 것 아닌가>. 여러분, 이래가지고 복음이 팔리겠습니까? 이래야 잘 팔리는 거 아닙니까? “내가 곧 돈이요 1등이요 명예요 대통령이요 박사학위요 영주권이니.”

_x000D_


_x000D_

그러면 믿으라고 말 안해도 믿을 사람 많지 않겠습니까?. 여러분, 저는 이런 예수님이 참 좋습니다. 세상과 통하는 방법이 있는데도, 예수님의 식대로 하시는 예수님이 좋습니다.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이 눈에 보이는 것보다 더 소중하다는 것을 고수하시는 예수님이 좋습니다. 저는 이것이 예수님의 지혜라고 생각합니다.

_x000D_


_x000D_

보이는 것은 잠깐입니다. 그러나 보이지 않는 것은 영원합니다. 사람들은 보기를 원합니다. 그래서 보여줍니다. 사람들은 보고 난 후에 말할 것입니다. “뻔하네 뭐...” 뻔히 보이는 데 믿겠습니까? 예수님은 안 속으십니다. 여러분, 우리는, 하나님이 우리보다 한 수 위시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_x000D_


_x000D_

여러분, 예수는 생명입니다. 누가 뭐래도 예수 안에 생명 있습니다. 이것이 변하지 않는, 변할 수 없는 진리입니다. 그 생명에는 진정한 의미의 행복이 있습니다. 잘 사는 방법이 있습니다. 그러나 이 생명은 다른 그 무엇으로도 얻을 수 없습니다. 그것은 오직 예수를 믿음으로만 얻을 수 있습니다. 이 생명이 있어야 우리는 잘 살 수 있습니다.

_x000D_


_x000D_

여러분, 저와 함께 부자가 아니라, 잘 사는 삶에 도전해보시지 않겠습니까? “내가 곧 생명이라”고 당당하게 말씀하신 예수의 말씀을 따라 소유가치가 아니라, 존재가치에 인생을 걸어보시지 않겠습니까? 하나님을 알고, 예수를 믿음으로, 하나님의 아들이 있는, 참생명의 삶, 행복하게 잘 사는 삶을 살아가는 저와 여러분이 될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_x000D_

댓글
자동등록방지
(자동등록방지 숫자를 입력해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