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월 3일 주일설교 _x000D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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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통에는 하나님의 뜻이 있습니다!” _x000D_
(욥 33:14-18) _x000D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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욥이 고통당하는 이유에 대해 오랫동안 설전을 벌렸던 세 친구들은 드디어 말이 막혀 입을 다물고 말았습니다. 이 때, 엘리후라는 젊은이가 뛰어듭니다. 그는 세 친구들처럼 재판장의 자리에 앉아 욥을 내려다 보려 하지 않았습니다. _x000D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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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와 나는 하나님 앞에서 일반이라”는 입장에서 욥을 이해하려는 자세를 취했습니다. 엘리후는 욥이 죄 때문에 고통을 당하고 있다기 보다는 고통 때문에 죄를 짓고 있다고 나무랬습니다. _x000D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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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리후는 욥을 나무라는 데서 머무르지 않습니다. 한 걸음 나아가서, 예리한 영적인 통찰력을 가지고 욥의 고통을 한 단계 높은 수준으로 끌어올려 놓고 있습니다. 고통은 그 자체가 매우 견디기 어렵고 가까이 하기가 싫은 것입니다. 그렇지만, 잘 사용하면 다른 데서 얻을 수 없는 큰 유익을 얻을 수 있다고 말합니다. 고통에는 하나님의 뜻이 있다고 말합니다. _x000D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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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분, 고통에는 어떤 하나님의 뜻이 있을까요? _x000D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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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째로, 고통에는 교훈의 통로로 사용하시려는 하나님의 뜻이 있습니다. _x000D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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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은 자기 자녀가 고통을 당할 때, 특별히 가까이 하셔서 교제를 나누시고 대화를 하십니다. 다른 데서는 맛볼 수 없는 진한 영적인 교제가 고통 가운데서 이루어집니다. _x000D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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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본문 14~16절에서 하나님은 엘리후를 통해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표준새번역으로 읽어드리겠습니다. _x000D_
“사실은 하나님이 말씀을 하시고 또 하신다고 하더라도, 사람이 그 말씀에 주의를 기울이지 못할 뿐입니다. 사람이 꿈을 꿀 때에, 밤의 환상을 볼 때에, 또는 깊은 잠에 빠질 때에, 침실에서 잠을 잘 때에, 바로 그 때에, 하나님은 사람들이 귀를 여시고, 말씀을 듣게 하십니다. 사람들은 거기에서 경고를 받고, 두려워합니다.” _x000D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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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세기 최고의 기독교 변증가로 알려진, C. S. 루이스는 “사람에게는 무서운 일이 일어나기 전에는 하나님께 귀를 기울이지 않는 습성이 남아 있다. 그러므로 고통이란 것은 귀머거리에게 알아 듣도록 하는 하나님의 확성기이다”라고 말했습니다. _x000D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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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통은 우리 영혼의 귀를 열고 잡음을 없애줍니다. 사람의 소리와 하나님의 음성을 구별하게 해줍니다. 여러분, 기억하십시다. 고통에는 교훈의 통로로 사용하시려는 하나님의 뜻이 있습니다. _x000D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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둘째로, 고통에는 고통을 예방의 수단으로 사용하시려는 하나님의 뜻이 있습니다. _x000D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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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고통을 미리 허락하셔서 더 큰 화를 막을 수 있게 하십니다. 왜냐하면 고통을 가지고 조심하라고 미리 경고를 하시기 때문입니다. 오늘 본문 17~19절은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_x000D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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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은 사람들이 죄를 짓지 않도록 하십니다. 교만하지 않도록 하십니다. 하나님은 사람에게 질병을 보내셔서 잘못을 고쳐 주기도 하시고, 사람의 육체를 고통스럽게 해서라도 잘못을 고쳐 주기도 하십니다.” _x000D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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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은 처음에는 말씀을 통해서, 그 다음에는 작은 문제를 통해서 교훈하십니다. 귀가 어두워 듣지 못하면 더 큰 고통을 가지고 교훈하십니다. 교만을 꺽으려고 명예를 앗아가실 지도 모릅니다. 자신 있다고 우쭐대는 자랑을 꺽으려고 자기 죄에 빠져 크게 망신하게 하실지도 모릅니다. 영원히 버림 당하지 않게 하시려고 바닥에까지 떨어지게 하실 수 있습니다. _x000D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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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분, 기억하십시다. 고통에는 고통을 예방의 수단으로 사용하시려는 하나님의 뜻이 있습니다. _x000D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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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으로, 고통에는 고통을 치료의 과정으로 사용하시려는 하나님의 뜻이 있습니다. _x000D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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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본문이 있는 33장 29~30절의 말씀을 다함께 읽어보도록 하겠습니다. _x000D_
“하나님이 사람에게 이 모든 일을 재삼 행하심은 그 영혼을 구덩이에서 끌어 돌이키고 생명의 빛으로 그에게 비취려 하심이니라.” _x000D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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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준새번역으로 읽어드리겠습니다. _x000D_
“이 모두가 하나님이 하시는 일입니다. 하나님이 사람에게 두 번, 세 번, 이렇게 되풀이하시는 것은, 사람의 생명을 무덤에서 다시 끌어내셔서 생명의 빛을 보게 하시려는 것입니다.” _x000D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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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리후는 하나님이 사람을 무덤에서 끌어내셔서 생명의 빛을 볼 수 있는 자리까지 나아갈 수 있는 사람으로 치료하신다고 보았습니다. 고통을 끌어안고 몸부림치는 중에 약한 것이 강해집니다. 부족한 것이 채워지며 어리석은 것이 지혜롭게 됩니다. 깨끗하지 못한 것이 깨끗해지며, 균형잡히지 않던 것이 균형을 이루게 됩니다. 천박하던 것이 고상해지고, 미숙한 것이 성숙해집니다. 좁은 마음이 넓어집니다. 이것이 치료입니다. _x000D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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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분, 기억하십시다. 고통에는 고통을 치료의 과정으로 이용하시려는 하나님의 뜻이 있습니다. _x000D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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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는 해밀턴한인교회 교우 여러분, 교회 달력으로 볼 때, 이번 주 수요일, 6일부터는 사순절기가 시작됩니다. 이 기간은 그리스도의 고난을 묵상하면서, 고난의 의미를 되새기고, 그리스도인으로서의 자세를 새롭게 하는 기간입니다. _x000D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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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여 우리 교회는 다음 주 월요일, 11일부터 전교인 특별 새벽기도회로 모이려고 합니다. 모여서, “고통, 고난 속에 숨어 있는 하나님의 손길”에 대해 말씀을 나누고 기도하려고 합니다. 여러분, 고통당해오지 않았습니까? 여러분, 고통당하는 중에 있지 않습니까? 여러분, 우리는 고통당하지 않겠습니까? 여러분, 우리는 고통을 피할 수 없습니다. _x000D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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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고통을 바로 이해할 필요가 있습니다. 우리가 살아가면서 배우는 것은 무엇입니까? 그것은 의인이라고 반드시 고통에서 면제받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또, 죄인이라고 반드시 고통의 손아귀에 잡혀 사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_x000D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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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면에서 우리는 고통을 바라보시는 하나님의 마음을 제대로 읽고 느끼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날마다 하나님의 말씀 앞에서 고통을 다루시는 하나님의 손길을 지켜보며 그의 뜻을 이해하려는 노력을 게을리하지 말아야 합니다. _x000D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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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은 세상을 살아가는 우리에게 고통으로부터 완전히 면제해 주시겠다는 약속을 하신 일이 없습니다. 하나님은 지혜의 왕이었던 솔로몬을 통해 전도서에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좋은 때에는 기뻐하고, 어려운 때에는 생각하여라. 하나님은 좋은 때도 있게 하시고, 나쁜 때도 있게 하신다. 그러기에 사람은 제 앞일을 알지 못한다.” _x000D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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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므로 우리의 시선을 고통 그 자체가 아니라, 고통 속에 숨어 있는 하나님의 손길에 고정시켜야 합니다. 우리가 번민과 불안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본질적인 원인은 고통 그 자체 때문이라기 보다는, 고통 속에 숨어 있는 하나님의 손길을 보지 못하는 데 있기 때문입니다. _x000D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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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순절 기간, 새벽을 깨우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고통과 하나님의 손길에 대하여 새롭게 눈 뜨심으로, 믿음과 생활의 회복을 경험하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_x000D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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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시는 여러분, _x000D_
고통에는 교훈의 통로로 사용하시려는 하나님의 뜻이 있습니다. _x000D_
고통에는 고통을 예방의 수단으로 사용하시려는 하나님의 뜻이 있습니다. _x000D_
고통에는 고통을 치료의 과정으로 사용하시려는 하나님의 뜻이 있습니다. _x000D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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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통에 담긴 하나님의 뜻과 마음을 생각하면서, 하나님 앞에서 고통의 멍에를 벗고 승리하는 저와 여러분들이 다 되실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