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주의 말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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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마음을 새롭게 하는 길” (엡 3:14-19)2007-03-21 15:51
작성자 Level 10
2007년 1월 21일 주일예배 설교

“마음을 새롭게 하는 길”(엡 3:14-19)

우리 한국 역사에는 조선 태조 이성계와 무학대사가 나눈 한 토막의 대화가 전해지고 있습니다.
어느 날 이성계가 무학대사 보고 이렇게 농담을 했습니다. “대사의 얼굴을 자세히 보니 돼지 상이오.”

그런데 무학대사는 이성계를 새삼 쳐다보고는 “임금님은 부처님 상입니다”라고 화답했습니다. 이태조는 다시 말했습니다. “아니, 아무리 임금과 신하 사이의 농담이라고해도 그렇지 나는 대사가 돼지같다고 했는데 대사는 어째서 내가 부처님같다고 하는 거요?”

무학대사는 시치미를 뚝 떼고 대답합니다. “그야 사람이란 누구든지 자기 마음 생긴대로 남의 얼굴을 보는 법이니까요.” 무슨 말입니까? 나는 내 마음이 부처님 같으므로 다 부처님으로 보이고, 당신은 마음이 돼지 같으니까 나를 돼지로 보는 거 아니겠느냐, 이것입니다.

여러분, 한 번 생각해보세요. 사람이란 자기 마음 생긴대로 생각합니다. 자기 마음 생긴대로 남을 봅니다. 자기 마음 생긴대로 행동합니다. 마음에 없으면 봐도 보지 못합니다. 들어도 들리는 것이없습니다.

여러분, 우리가 여기에 앉아서 예배 드립니다마는, 내 마음이 어디에 있느냐에 따라서 말씀이 들려지기도 하고 안들려지기도 하고, 이렇게도 듣고 저렇게도 듣고, 이렇게 깨닫기도 하고 정반대로 깨닫기도 합니다.

그런데 문제는 그 마음을 내가 마음대로 할 수 없다는 데 있습니다. 잠언 16장에 보면 “자기의 마음을 다스리는 자는 성을 빼앗는 자보다 나으니라”했습니다. 자기 마음을 자기마음대로 할 수 있는 사람은 그 어떤 용사보다 더 낫다는 말씀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가 이걸 인정해야 합니다. 내 마음을 내 마음대로 다스리지 못한다는 것을 인정해야 합니다. 이걸 인정하면서부터 사람이 사람답게 살 수 있습니다.

뉴질랜드에 온 이후에 새삼스럽게 신기한 것이 있습니다. 이상하게도 잡초는 심지 않아도 잘 나고 가꾸지 않아도 잘 자랍니다. 우리 마음의 정원도 그렇습니다. 알게 모르게 못된 생각은 그저 무성하게 자랍니다. 별다른 노력하지 않아도 자랍니다. 그러나 좋은 생각은 보전하려고 애를 써도 어느 사이에 그만 시들어버리고 맙니다. 나도 모르게 그리됩니다.

그래서 불끈불끈 화를 내고 깜짝깜짝 놀랍니다. ‘내가 이런 사람이었던가? 어찌 내 마음 속에 이런 악한 마음이 있단 말인가.’ 내 마음 속에 무서운 생각이 들어올 때 이렇게 놀랍니다. 이제 내 마음을 누가 다스릴 수 있습니까.

이성과 마음은 별개라고 합니다. 지식과 감성이 다릅니다. 느끼는 것과 생각하는 것, 또 의지와 마음이 별개로 갑니다. 이 따로따로 노는 괴리를 인정하고 바로 터득해야 합니다. 감정, Feeling이라고 하는 것은 이성과 의지보다 더 원초적입니다. 자, 보세요.

사랑해야 될 줄 알면서 사랑해지지를 않습니다. 어차피 저 사람하고 이제 한평생 살다가 갈 거라면 사랑해야 하지 않습니까? 마땅히 사랑해야 할 줄 알면서 만나기만 하면 미워합니다.

또, 용서해야 되겠다고 생각은 합니다. 그래서 잘못했다, 하고 내가 얘기하겠다, 내가 잘못했다고 얘기를 해야겠다고 다짐하다가도 딱 만나면 “어떻게 용서해”하고 맙니다.

정직해야겠다, 생각하면서 번번이 거짓말합니다. 부지런해야겠다, 봉사하고 살아야겠다, 하면서도 어느 사이에 섬김 받으려는 마음이 앞섭니다.

생각해보니 감사해야 할 일이 많습니다. 그래서 범사에 감사해야겠다, 생각하지만 어느 사이에 한숨과 원망이 나옵니다.

내 마음 내 마음대로 할 수 없습니다. 마음은 별도예요. 속사람이라는 것은 모든 것보다 더 깊은 세계, 더 원초적인 그런 속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래서 오늘 성경은 이렇게 말씀합니다. 마음을 새롭게 하는 길은 성령의 능력으로만 가능하다, “그의 성령으로 말미암아 너희 속 사람을 능력으로 강건하게 하옵시며” - 의지 이전의 일입니다. 내 생각이나 의지로 된다는 것이 아닙니다. 주의 영이 내게 함께하심으로, 하나님의 영이 내 마음을 주장해서 내 생각보다 훨씬 더 먼저 깊은 곳에서 변화를 일으킵니다.

예수님께서 니고데모에게 가르치신 말씀이 있습니다. 요한복음 3장 8절에 나옵니다. “바람이 임의로 불매 네가 그 소리를 들어도 어디서 오며 어디로 가는지 알지 못하나니 성령으로 난 사람은 다 이러하니라.” 나도 모르게 성령이 내 마음을 주장할 때, 성령이 내 마음에 오실 때, 내가 이 모든 악으로부터 자유하게 되고 내 심령이 거룩하게 됩니다.

<완덕에의 길>이라고 하는, 요한 타울러라고 하는 분이 쓴 책이 있습니다. 내적 생명을 갉아먹는 것이 무엇이냐를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먼저는, “세속적 교만”입니다. 언젠가 교만했습니다.

또 하나는, “감각적 만족”입니다. 감각적 만족에는 반드시 죄책감이 있습니다. 육체를 따라간 일에는 반드시 후회가 있게 마련입니다. 또 하나는, “분노와 의심과 성급함”입니다.

그런데 이런 것들을 무엇으로 이겨낼 수 있습니까? 내가 이길 수 있는 겁니까? 여러분, 내가 겸손할 수 있습니까? 내가 스스로 내 마음을 비울 수 있습니까? 이 모든 악한 마음을 물리칠 수 있느냐구요. 여러분, 그래서, 오직 성령으로만 가능합니다. 하나님의 영이 내게 임할 때 중생, 다시 태어납니다. 그래서 어두운 마음을 물리치고 밝은 마음으로 돌이킬 수 있습니다.

“그의 성령으로 말미암아 너희 속사람을 능력으로 강건하게 하옵시며” 그리고 두 번째는 “그리스도께서 너희 마음에 계시게 하옵시고”, 믿음으로 예수님을 영접, 받아들여서 그리스도께서 나를 주장하시게 하는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는 그리스도인을 예수 믿는 사람이라고 부릅니다. 구체적으로 무슨 뜻입니까? 그리스도를 주로 고백하는 사람이란 의미입니다. 그리스도를 왕으로, 그리스도를 나의 주인으로 받아들이는 것이, 그 믿음이 바로 믿는다는 뜻입니다.

교회 다닌다는 것과 믿는다는 것은 다릅니다. 그리스도께서 내 마음의 주인이 되어주시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에게 내 마음을 바칩니다. 그리고 그가 나를 다스려주십니다. 이것은 희한한 능력입니다. 그때만이 자유할 수가 있습니다.

그리고 18절에 “지식에 넘치는 그리스도의 사랑을 알아”라는 말씀이 있습니다. 새 사람의 윤리성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오직 사랑을 깨달아나가는 것입니다. 다른 말로, 은혜를 깨닫는 것입니다. 은혜로만 마음은 깨끗해질 수 있고 은혜로만 마음을 굳게 할 수 있습니다. 십자가의 사랑, 넘치는 사랑을 깨닫게 될 때, 그 사랑으로 충만하게 될 때 새로운 세계가 전개됩니다.

어떤 청년이 차사고로 인해서 큰 충격을 받고 그만 두 눈, 안구를 다 잃어버리게 되었습니다. 의사는 말했습니다. “자네가 너무 출혈이 심하기 때문에 수술을 하겠지만 어차피 안구가 다 빠져나가서 눈을 볼 수 없을 걸세.”

의사의 말을 끊고서 청년은 소리소리 질렀습니다. 장님으로 살기보다는 죽는 것이 낫지, 나 수술하지 말라고, 이대로 죽을 것이라고 악을 썼습니다. 의사는 말을 이어갔습니다. “이 사람아, 생명은 소중한 거야. 이 어려움을 극복해야지. 그 무슨 말인가? 다행스러운 것은 자네를 위해서 안구를 기증해주신 분이 있어 눈 하나는 볼 수 있을 것같네.”

청년은 또 소리질렀습니다. “애꾸눈이로 사느니 죽는 게 낫지.” 의사는 큰 소리로 꾸중했습니다. “자네를 위해서 멀쩡한 눈을 빼준 고마운 분이 있는데, 이 무슨 발악인가?” 실갱이 끝에 수술은 진행되었습니다. 수술 며칠 후 의사는 붕대를 풀어주었습니다.

청년의 눈앞이 뿌옇게 보이기 시작합니다. 점점 윤곽이 드러납니다. 어머니의 모습이 보였습니다. 가만히 보니, 어머니의 눈 한 쪽이 없는 것이었습니다. 이 청년은 여기서 큰 감명을 받고 말합니다. “어머니, 저는 한평생 절대로 원망을 하지 않겠습니다. 오로지 감사한 이 감격으로 살아가겠습니다.”

양귀자 씨의 <모순>이라는 책에 보면, 이런 대목이 나옵니다. “사람들은 작은 상처는 오래 간직하고 큰 은혜는 얼른 망각해 버린다. 상처는 꼭 받아야 할 빚이라고 생각하고, 은혜는 꼭 돌려주지 않아도 될 빚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인생의 장부책 계산을 그렇게 한다.”

여러분, 내 마음의 건강지수는 얼마입니까? 나는 내 인생의 장부책 계산을 어떻게 하고 있습니까? 상처는 얼른 씻고, 은혜는 오래오래 간직하는 쪽으로 바로 잡아야 하겠습니다. 내 마음은 내 마음대로 할 수가 없습니다. 내 마음을 주께 드리고 성령 안에서, 그리고 그리스도의 은혜 안에서 십자가의 사랑을 확인하세요. 이 사랑이 마음에 가득할 때, 은혜로 충만할 때, 삶 자체가 소중해지고 관계가 풍성해질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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