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년 5월 20일 주일예배 말씀
“가정같은 교회, 교회같은 가정”(엡 5:25-33)
미국 대통령 중에 윌리엄 맥킨리라는 대통령이 있었습니다. 그는 자신이 행복한 대통령이었을 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들을 행복하게 만들어주는 대통령이었습니다. 한번은 각료 중에 한 사람이 윌리엄 맥킨리 대통령에게 이렇게 물었습니다.
“각하의 행복을 유지하는 힘은 어디에서 옵니까?” “제 행복의 비결은 교회의 예배와 가정의 식탁입니다. 나는 교회에서 전능하신 하나님께 예배를 드릴 때마다 가정에서 식탁에 둘러 앉아 식사와 사랑을 나눌 때마다 행복을 유지할 수 있는 힘을 공급받습니다.”
에베소서는 크게 세 부분으로 나눌 수 있습니다. 1장과 2장은 한마디로 말하면 <예수 믿은 사람이 그리스도인으로 누리는 영적인 축복>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두 번째 부분은 3,4장입니다. 이 부분에서는 교회생활을 다루고 있습니다. 그리고 세 번째 부분은 5,6장인데 우리는 여기서 가정생활에 대한 교훈을 찾을 수 있습니다.
에베소서의 이러한 구성에 매우 중요한 의미가 있습니다. 사람은 예수를 믿고 새로운 삶을 시작할 때, 인생의 참된 의미와 풍성한 삶을 경험하기 시작합니다. 이러한 풍성한 삶을 경험하는 데 있어서 가장 중요한 자리는 교회입니다. 그리고 가정입니다. 그리스도인, 교회, 가정. 이렇게 바울 사도는 내용을 옮겨가고 있습니다.
무엇을 말하고 있는 걸까요? 그리스도인이 한평생 안고 가야 하는 주제가 있다면 그것은 바로 <가정>과 <교회>라는 얘기입니다. 이것이 왜 중요할까요? 이것들은 하나님의 은혜를 체험하는 통로이기 때문입니다.
어떤 사람들은 교회와 가정이 경쟁적인 관계에 있는 것처럼 말합니다. 또, <교회와 가정 중에 어느 것이 중요하냐?>하는 의미없는 논쟁으로 시간을 허비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성경은 가정과 교회의 중요성을 똑같이 인정합니다. 에베소서 5장과 6장을 보면 가정을 구성하는 중요한 인간관계의 태도가 기록되어 있습니다. 아내는 남편에게 교회가 그리스도에게 하듯 하면 됩니다. 남편은 그리스도가 교회를 사랑하시는 것처럼, 그리스도가 교회를 위해 조건 없이 몸을 내어주신 것처럼 아내를 사랑해야 합니다.
또 자녀들은 하나님의 자녀들이 하나님께 순종하듯 하면 됩니다. 부모들은 하나님이 자녀된 우리들을 양육하시는 것처럼 하면 됩니다. 성경은 이처럼 가정생활에 대한 태도를 그리스도와 교회의 관계에서 설명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가정은 축소된 교회라고 할 수 있습니다. 반대로 교회는 확대된 가정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가정생활의 비밀은 교회생활에 있습니다. 이 가정해체의 시대에 가정의 회복은 가능한 것일까요? 그 해답도 교회에 있습니다. 그래서 가정과 교회는 하나님의 은혜를 경험하는 상호통로가 됩니다. 왜 그렇습니까? 교회는 하나님의 은혜로 말미암아 존재할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에베소서 4장 마지막 절에서 바울은 다음과 같이 말씀하고 있습니다. “서로 친절히 대하며, 불쌍히 여기며, 하나님께서 그리스도 안에서 여러분을 용서하신 것과 같이, 서로 용서하십시오.”
여러분, 교회는 건물이 아닙니다. 교회는 사람입니다. 교회는 여러분과 저입니다. 이 교회가 어떻게 존재할 수 있었습니까? 어떻게 지금까지 올 수 있었습니까? 하나님의 용서 때문입니다. 이 하나님의 용서 때문에, 교회는 교회일 수 있었습니다.
가정도 마찬가지입니다. 이제 사도 바울의 손을 통해 5장 1절에서 말씀하십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은 사랑을 받는 자녀답게, 하나님을 본받는 사람이 되십시오. 그리스도께서 여러분을 사랑하셔서, 우리를 위하여 하나님 앞에 향기로운 예물과 제물로 자기 몸을 내어주신 것과 같이, 여러분도 사랑으로 살아가십시오.”
내가 하나님의 용서를 경험했습니다. 그것은 사랑이었습니다. 하나님이 나를 용서하심으로 사랑하셨습니다. 이제는 우리 차례입니다. 본받아야 합니다. 내 차례입니다. 여러분, 내 자신부터 먼저 용서해야 합니다. 죄책감으로 고통받고 계십니까? 그 죄책감으로부터 놓임 받으시고, 자신을 용서하시기 바랍니다. 아버지를 용서하셨습니까? 어머니를 용서하셨습니까? 오빠를, 형을, 누나를, 언니를, 동생을 용서하셨습니까? 내가 받은 사랑을 가족들에게 적용할 차례입니다.
여러분, 오늘 말씀을 가만히 묵상해보면, 주님께서 교회를 얼마나 사랑하시고 아끼시는 지 알 수 있습니다. 주님께서는 교회를 자기 몸같이 여기신다고 성경은 증거하고 있습니다.
25절에 있는 것같이 “그리스도께서 교회를 사랑하셔서 교회를 위하여 자신을 주심같이” 하시며, “교회를 물로 씻고, 말씀으로 깨끗하게 하여서, 거룩하게 하시고”(26절), 결과적으로 “티나 주름이나 또 그와 같은 것들이 없이, 아름다운 모습으로 교회를 자기 앞에 내세우시려는 것이며, 교회를 거룩하고 흠이 없게 하시려는 것”(27절)입니다. 이것이 궁극적인 목표입니다.
여기에서 우리는 하나님께서 어느 수준만큼 요구하셨는가 하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또한, 주님께서 이루시고야 말겠다는 집념을 어느 정도 나타내셨는가 하는 것도 볼 수 있습니다. 이것이 교회입니다.
교회는 흠이나 주름 잡힌 것 없는 완전한 영광의 자리에 갈 것입니다. 주님께서는 그것을 이루시기 위하여 우리를 그의 몸이라고 하실 만큼의 집념을 가지고 계십니다.
30절 말씀을 보면, “우리는 그 몸의 지체임이니라” 하는 말씀이 나옵니다. 이 말씀을 풀면, 이렇게 됩니다. “저와 여러분은 그리스도의 몸의 한 부분이요 그 살과 뼈니라”하는 말씀입니다. 여러분, 창세기 2장의 아담과 하와에 관한 이야기를 여기서 발견할 줄 예상하셨습니까?
하나님께서 아담에게 하와를 만들어주면서 뭐라고 하셨습니까? “돕는 배필”이라고 했습니다. 이 말은 그의 보조자라는 뜻이 아닙니다. 하와가 없으면 아담은 완전하지 못한 자라는 뜻입니다. 불구자라는 뜻이 됩니다. 그래서 아담이 하와를 보고 “이는 뼈 중의 뼈요 살 중의 살”이라고 하지 않았습니까?
우리 몸에 뼈와 살이 없다면 무엇이 남겠습니까? 가죽만 남습니다. 그러면 그게 어떻게 사람이겠습니까? 아담과 하와가 그렇게 하나입니다. 그래서 “이러므로 부모를 떠나 둘이 한 육체가 될지라”는 말씀은 예수 그리스도와 교회의 관계에도 동일하게 적용됩니다.
우리는 이 신비를 다 짐작할 수 없습니다. 창조주이신 예수님께서 피조물인 우리와 한 몸을 이룬다는 것은 너무나 놀랍고 도무지 납득할 수 없는 일입니다.
그러나 성경은 이것을 분명히 증거합니다. 주님은 우리를 그렇게 대접하고 계시다는 사실입니다. 여기에 우리가 상상할 수 없는 신비한 연합이 있습니다. 그 연합을 주님께서는 원하고 계십니다. 그렇게 우리를 부르고 계십니다.
우리는 그 몸의 지체입니다. 그의 살과 뼈입니다. 사람은 부모를 떠나 그 아내와 합하여 그 둘이 한 육체가 됩니다. 예수님께서 바로 우리를 그 살과 뼈로 인정하십니다.
하늘 보좌를 버리시고 우리를 찾아오셔서 우리를 위하여 그 몸을 버리셨습니다. 피로 값 주고 우리를 사셨습니다. 그 터 위에 교회를 세우시고, 우리를 신부로 부르고 계십니다. 우리는 실패할 수 없습니다. 아무도 우리를 방해할 수 없습니다.
이것이 로마서 8장에서 “어떤 것도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우리 아버지 되신 하나님의 사랑으로부터 우리를 끊을 수 없으리라”는 표현으로 선언되었습니다. 이것이 바로 에베소서 5:32에서 “이 비밀이 크도다 내가 그리스도와 교회에 대하여 말하노라”고 하는 이야기입니다.
가정의 회복이 없다면 교회의 미래도 없습니다. 가정의 회복이 없이는 하나님 나라의 미래도 기약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무엇으로 우리의 가정을 건강하게 세울까요? 무엇으로 우리의 교회를 건강하게 세울까요? 관계와 관계들도 엮어진 이 공동체를 무엇으로 건강하게 세울까요?
<그리스도께서 교회를 사랑하셔서 교회를 위하여 자신을 내주심 같이 하신 그 사랑으로>입니다. 그 사랑 안에서만이, 가정과 교회는 하나님의 은혜를 경험하는 통로일 수 있습니다. 그 사랑 안에서만이, 교회는 가정같은 교회, 가정은 교회같은 가정일 수 있습니다. 그 사랑 안에서만이, 비밀을 간직하여 행복한 그리스도인일 수 있습니다. 그 사랑이 저와 여러분에게 차고 넘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기도> 하나님, 사랑을 받고자 하는 사람은 많으나, 사랑을 주는 사람이 없어, 사랑에 목말라하는 시대입니다. 조건적인 사람의 사랑이 아닌, 무조건적인 하나님의 사랑이 있음을 믿습니다. 그 하나님의 사랑을 우리의 모든 관계 속에서 넘치도록 부어주시옵소서. 그로 인해, 가정같은 교회, 교회같은 가정의 행복을 누리게 하여 주시옵소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