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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의 위로를 경험할 때입니다” _x000D_
(고후 1:3-7) _x000D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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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격의학의 창시자인 스위스의 폴 투르니에는 “상실과 고통을 넘어”라는 저서에서 인간이 부딪히는 상실감과 창조성의 관계를 이렇게 설명합니다. “고통에 대한 경험은 생을 살아가는 데 놀라운 창조력을 계발해준다.” _x000D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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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난이 없는 인생, 고난이 없는 신앙생활이란 있을 수가 없습니다. 고난이라는 과정 속에서 꽃피어나는 것이 우리의 삶이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도피한다고 고난의 문제는 해결되지 않습니다. 직면해야 합니다. 부딪혀나가야 합니다. _x000D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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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난은 우리에게 놀라운 신비를 가져다줍니다. 고난은 인간으로 하여금 아무것도 아닌 존재임을 깨닫게 만듭니다. 낙심하게 만듭니다. 자신감을 상살하게 합니다. 소망이 끊어지게 합니다. 의욕상실로 자기의 모든 가능성을 포기하게 만듭니다. _x000D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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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우리는 바로 그때가, 고난의 신비를 터득할 수 있는 때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때가 바로 우리가 변할 때입니다. 그때가 오히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다가와 하나님의 능력을 보여주실 때입니다. _x000D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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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도 바울은 8-9절에서 이렇게 말씀합니다. “힘에 지나도록 심한 고생을 받아 살 소망까지 끊어지고 우리 마음에 사형선고를 받은 줄 알았으니.” 나는 이제 끝났구나. 내게는 이제 소망이 없구나. 이젠 죽음을 맞이해야 되겠구나, 하고 생각했습니다. _x000D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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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이어지는 9절에서 이렇게 말씀합니다. “이는 우리로 자기를 위로하지 말고 오직 죽은 자를 다시 살리는 하나님만 의뢰하게 하심이라.” 하나님만이 내 생명이시고 하나님만이 내 소망이시라고, 하나님만 신뢰하겠다고 작정을 합니다. _x000D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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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원을 품고 기도하게 됩니다. 구약성경 사무엘상에 보면 아이를 낳지 못하던 한나는 마음 속에 소원을 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 앞에 나아와 기도하기 시작합니다. 여러분, 한나의 고통을 아십니까? 경험해본 사람만이 이 여인의 고통을 알겠습니다마는, 그래도 얼마나 고통스러웠을지 조금은 알 수 있습니다. _x000D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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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분, 한나가 이 고통스러운 상황에서 무엇을 했습니까? 하나님 앞으로 나왔습니다. 하나님의 위로를 받았습니다. 고통은 인간을 파멸시키는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인간을 강하게 하고 인간을 하나님의 사람으로 바꿉니다. 인격과 신앙을 더욱 성숙하게 합니다. 여러분, 여기에 고난과 고통의 신비가 있습니다. _x000D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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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면 한 번 생각해보실까요? 이 신비는 고난과 고통을 당하는 모든 사람들이 자동적으로 경험하는 것일까요? 아닙니다. 고통은 고통일 뿐입니다. 모든 사람이 고통을 당한다고, 모든 사람이 신비를 경험하지 않습니다. _x000D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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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면 무엇입니까? 고통에 직면하는 인간의 자세입니다. 고통에 직면하는 인간이 하나님 앞에 나아갈 때, 그 과정 속에서 하나님께서는 그 사람을 바꾸시는 겁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사용하시고 우리가 성숙하기를 원하실 때 종종 갈등하게 하시고 고통이라는 방법을 통해서 우리를 이끌어 주십니다. _x000D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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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분, 고난의 때는 하나님께서 일하시는 때입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도우시는 때입니다. 하나님께서 살아계심을 우리 안에 증거하시는 때입니다. _x000D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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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앙의 관점에서 보면, 너무 건강할 때가 사실은 문제일 수 있습니다. 집에 돈이 너무 많을 때가 문제일 수 있습니다. 아무 문제가 없을 때가 문제일 수 있습니다. 왜요? 그 때 하나님을 의지하지 않게 되기가 쉽기 때문입니다. 오히려 내가 가진 것이 없을 때, 내게 고난이 다가올 때 무릎 꿇고 하나님 앞에 서기 때문입니다. _x000D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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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드슨 테일러는 “하나님께서 하나님 자신을 의지할 만큼 충분히 연약한 자를 사용하신다”고 말했습니다. 여러분, 어떤 고통을 겪고 계십니까? 어디론가 훨훨 날아가버리고 싶은 아픈 마음을 가지셨습니까? 그때가 기도할 때라고, 하나님의 위로를 경험할 때라고 성경은 우리에게 말씀하십니다. _x000D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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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이 아침에 주시는 본문의 말씀은 우리에게 중요한 말씀을 합니다. 자세히 읽어보면, ‘위로’라는 말이 열 번이나 나옵니다. _x000D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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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말씀은, 첫째로, 위로는 하나님으로부터 온다는 것을 증거합니다. “모든 위로의 하나님”, 하나님만이 위로하실 수 있습니다. 사람은 위로하지 못합니다. 진정으로 위로가 되지 않습니다. 오직 하나님 앞에 나아가서 하나님과 나 사이에 바른 관계를 맺을 때, 비로소 거기에 위로가 있습니다. _x000D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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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요? 그분에게 진정한 의미의 능력이 있기 때문입니다. 능력 없는 말이 무슨 소용 있습니까? 지혜 없는 설득이 무슨 소용 있습니까? 오직 하나님에게만 능력이, 지혜가 있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 앞에서, 하나님으로부터만 위로를 받을 수 있습니다. _x000D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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둘째로, 오늘의 말씀은 환난 중에 위로하신다는 것을 증거합니다. 평안한 가운데서 위로를 주시는 게 아닙니다. 우리는 잘 살고, 잘 되고, 성공하고, 출세하고, 건강해야 위로가 될 것이라고 생각하는데, 그렇지 않습니다. 오히려 가난과 역경과 실패, 고난 가운데 위로가 있다고 말씀하십니다. _x000D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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셋째로,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으로부터 위로를 받은 우리가 다른 사람들을 위로하기 원하신다는 것을 증거합니다. 오늘 말씀 4절 중간에 보시면, 사도 바울은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께 받는 위로로써 모든 환난 중에 있는 자들을 능히 위로하게 하시는 이”시라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_x000D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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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면, 여러분, 사도 바울은 어떤 위로를 받았을까요? 그리스도로 말미암은 위로였습니다. 5절 말씀을 다같이 읽어보겠습니다. 시작. “그리스도의 고난이 우리에게 넘친 것같이 우리의 위로도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넘치는도다.” _x000D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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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말씀은 우리가 믿고 있는 예수 그리스도가 어떤 분이신지를 묵상하도록 인도합니다. 어떤 분이십니까? 상한 갈대를 꺽지 아니하시며 꺼져가는 등불을 끄지 아니하시는 분이십니다. 그래서 그분은 가난한 자를 만나십니다. 병든 자를 만나십니다. 아무도 돌아보지 않는 외롭고 버려진 사람들을 당신의 친구로 부르십니다. 그리고 그들을 다시 하나님의 자녀로 회복시켜주시고 이 세상에서 힘 있게 살도록 초청하십니다. _x000D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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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에 아주 중요한 사실이 있습니다. 고통을 겪은 사람만이 다른 사람의 고통을 감싸줄 수 있습니다. 눈물을 흘려본 사람이 다른 사람의 눈물을 닦아줄 수 있습니다. 예수님이 바로 그런 분이십니다. _x000D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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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을 알고 바울은 6절에서 이렇게 고백합니다. “우리가 환난받는 것도 너희의 위로와 구원을 위함이요 혹 위로받는 것도 너희 위로를 위함이니.” 바울, 그가 고난을 받음으로 다른 사람들을 위로하고 구원받게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눈물을 닦은 바울이 다른 사람의 눈물을 닦아 주기로 결정합니다. _x000D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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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 영성신학의 거장, 헨리 나우웬이라는 분이 “상처 입은 치유자”라는 책을 썼습니다. 거기에 이런 내용이 나옵니다. “예수 그리스도, 그분은 상처입은 치유자다. 그는 상처를 받았기에 우리가 상처받았을 때 우리의 상처를 끌어안고 치료하신다. 그는 십자가에 달리셔서 눈물을 흘리신 분이기 때문에 우리가 눈물을 흘릴 때 우리의 눈물을 닦아주신다.” _x000D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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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분, 예수님으로부터 위로를 받습니다. 이런 위로를 받은 사람만이 남을 위로할 수 있습니다. 아무 말 없이도 위로할 수 있습니다. 이렇게 위로받을 때, 어떤 일이 일어납니까? 6절에 보시면, 우리가 환난받는 것도 너희의 위로와 구원을 위함이요 혹 위로받는 것도 너희 위로를 위함이니, 그 다음부터 다같이요, “이 위로가 너희 속에 역사하여 우리가 받는 것 같은 고난을 너희도 견디게 하느니라.” 아멘. 여러분, 모든 고난을 잘 견딜 수 있습니다. _x000D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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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위로의 하나님.” 여러분, 지금은 하나님의 위로를 경험할 때입니다. 한 번뿐인 인생을 살아가는 비결이 어디에 있겠습니까? 내가 얼마나 강한가, 내가 얼마나 옳은가, 내가 얼마나 가졌는가에만 달려 있지 않습니다. _x000D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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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믿는 하나님이, 내가 믿는 예수님이 얼마나 능력과 위로와 사랑이 많으신 분인가, 얼마나 고통 중에 있는 사람들의 눈물을 닦아주시는 분인가를 알고 그분을 믿고 나아갈 때, 우리는 위로를 경험하는 사람이 될 것입니다. 더 나아가서, 고통받는 사람들을 위로하고, 그들의 눈물을 닦아줄 수 있는 하나님의 사람이 될 것입니다. _x000D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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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도> _x000D_
하나님,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가 위로받게도 하시고, 위로하며 살 수 있게 하심을 감사드립니다. 모든 위로의 하나님, 오늘도 환난을 통하여 위로하시는, 그 놀라운 신비를 깨닫고, 환난 중에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위로를 받고, 또 환난 중에 있는 사람을 위로하는 사람으로 살고, 위로하면서 위로받고, 위로로 충만한 그런 생을 살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리옵나이다. 아멘. _x000D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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