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주의 말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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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본이 되는 교회(2)” (살전 1:2-8 / 20061015)2007-03-21 15:43
작성자 Level 10
“본이 되는 교회(2)”
(살전 1:2-8 / 20061015)

기독교 서적 분야에서 한때 베스트셀러였던 재미있는 책 한 권이 있습니다. 그 책이름은 <교회에 가기 싫은 77가지 이유>입니다. 책에서 말하는 요점은 이렇습니다. 교회 안 다니던 사람이든, 다니던 사람이든 교회 가기 싫은 일흔 일곱가지 이유가 있다.

이 책은 카피라이터겸 칼럼니스트로 이름을 날리던 이만재 씨가 40대 이후에 예수를 믿고 그리스도인이 된 이후에 쓴 책입니다. 그 중의 몇 가지를 소개하면 이렇습니다.
 
교회에 가기 싫은 77가지 이유… 첫째는 시끄럽고 유난스럽기 때문이랍니다. 거리에서 노방전도한다고 북치고, 교회에 나오기만 하면, 붙들고 “어디에 사느냐? 이름이 뭐냐? 직업이 뭐냐?”하면서 아주 유난스럽게 물어본다는 거에요. 어떻습니까?
 
다음은, 각종 모임에 참석하는 것을 지나치게 강요하기 때문이랍니다. 교회 오자마자 “여선교회에 나와라. 구역예배 나와라. 남선교회 나와라. 봉사하러 가자”한다는 겁니다. 믿음이 자라는 것과 이것을 병행해야 하는데, 너무 강요하니까 지친다는 거에요. 또 한 번만 빠져도 당장 찾아와서 “왜 안 나왔느냐”고 따진다는 겁니다. 여러분, 어떻습니까?
 
또 하나는, 교회가 배타적이고 고리타분하기 때문이랍니다. 그래서 자기만 잘났다고 하고, 먼저 믿었다고 해서 나중에 온 사람을 무시한다는 겁니다. “그것도 모르냐?”고 잘난 척 한다는 겁니다. 이건 우리가 좀 생각해야겠습니다.

여러분, 교회에 처음 오신 분들한테는 잘 알려주셔야 합니다. 어리둥절하니까요. 그래서 불편함 없이 예배드릴 수 있도록 배려해야 합니다. 어쨌든, 잘난 척 하는 사람들이 보기 싫다는 얘기구요. 자기들만 다 의인이고 세상 사람은 다 죄인인 것처럼 몰아치는데, 이런 것들이 거슬린다고 합니다.
 
마지막으로는, 교회와 세상이 다르지 않기 때문이랍니다. 교회에서도 보니까 학력, 신분 따라 대우하고, 경쟁심 많고, 자기 이름 내려 하고, 시기, 질투가 많고, 돈으로 사람을 평가하고, 더 함부로 말하더라는 얘기입니다. 그래서 결론이 이렇게 난답니다. “예수는 좋으나 교회는 가기 싫다”
 
여러분, 교회의 존재 목적이 무엇입니까? 교인이 된다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 것입니까? 오늘 여러분은 교회에 왜 나왔다고 생각하십니까?
 
우리는 지난 주일에 <데살로니가교회>를 모델 삼아 본이 되는 교회에 있는 3가지에 대해서 생각해보았습니다. 그것은 <믿음의 역사>, <사랑의 수고>, <소망의 인내>였습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을 읽어보면, 이 세 가지를 있게 했던 모습이 데살로니가교회에 있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여러분, 교회는 건물이 아닙니다. 한 마디로 사람들입니다. 그 의미가 에클레시아, <예수를 믿고 따르기 위하여 모인 사람들의 모임>이니까요. 그러므로 교회가 타락했다면, 그것은 건물이나 제도가 썩었다는 말이 아닙니다. 곧 교회인 우리 자신이 부패했다는 의미입니다.

여러분, 여기에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교회다운 교회이기 위하여 자신을 가꾸어 나가야 하는 중요한 이유가 있습니다. 자, 그러면 데살로니가교회는 어떤 교회였을까요?

“우리 복음이 말로만 너희에게 이른 것이 아니라 오직 능력과 성령과 큰 확신으로 된 것이니”라고 5절에서는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것이 데살로니가교회입니다. 아주 모범적인 훌륭한 교회입니다. 말씀이 말로만 아니고 - 무슨 말씀입니까? 말로만이 아니라 능력으로 전해졌다는 의미입니다.

어떤 능력일까요? 구원의 능력입니다. 구원의 능력을 교회용어로 중생과 성화입니다. 말씀이 전해지면서 성령과 함께 역사할 때 중생의 역사가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말씀 안에서 내가 태어나는 것입니다. 다시 태어나는 역사가 이루어집니다. 중생의 역사가 이루어지는 것, 그것은 생명적인 역사입니다. 나의 모든 의심과 걱정, 비판, 다 없어집니다. 다 없어지고 말씀을 그대로 받아들이게 되면서 생명의 역사가 나타납니다.

동시에 성화의 역사가 이루어집니다. 거룩해집니다. 나도 모르게 선해집니다. 나도 모르게 어느 사이에 내가 이렇게 부지런한 사람이 되었습니다. 그저 가지려고만 하고 빼앗으려고만 하던 내 마음이 이제는 주는 마음이 되었습니다. 이것이 바로 성화라는 것입니다.

말씀 안에서 중생하고 말씀 안에서 성화하는 것, 창조적 역사입니다. 이것을 구원의 능력이라고 합니다. 말씀을 능력으로 받을 때 이같은 역사는 이루어집니다.

그리고 오늘 본문에 보니, “환난 가운데서”라고 말씀합니다. 편안한 가운데 받은 것이 아닙니다. 환한 가운데서입니다. 이게 무슨 말씀입니까? 예수 믿는 사람들이 핍박당하는 것을 보면서 예수를 믿었습니다. 환난 가운데 받아들였습니다. 이것이 더욱 순수합니다. 질적인 수준이 높습니다.

환난 가운데서입니다. 평안한 가운데서, 예수 믿는 사람들이 칭찬받고 존경받고, 하는 가운데서 받아들여진 것이 아니고 환난과 핍박 속에서 받아들인 것입니다. 그걸 알면서도 예수를 믿습니다. 이런 것을 말씀하는 것입니다.

또한 “성령의 기쁨으로”하였습니다. 예수 믿는 것은 곧 기쁨입니다. 이 은혜를 받고 보면 감사합니다. 기쁜 마음이 앞섭니다. 성령의 기쁨으로 - 이것은 물질을 얻는 기쁨이 아니요, 추수하는 기쁨도 아니요, 사람들로부터 칭찬받는 기쁨이 아닙니다.

이것은 중생한 자의 기쁨이요, 하나님의 자녀가 된 자의 기쁨이요, 하늘나라의 영광을 바라보는 그런 기쁨입니다. 기쁨으로 말씀을 영접하였습니다. 이 놀라운 일 아닙니까?

환난과 핍박 속에서, 그리고 성령의 은혜 가운데서 기뻐하는 것입니다. 큰 기쁨으로 받아들입니다. 이것은 세상이 주는 기쁨과 다릅니다. 오직 구원받은 기쁨, 하나님의 자녀가 된 엄청난 기쁨으로 이렇게 받아들였습니다.

그리고 이제 “주를 본받은 자가 되었으니”라고 말씀합니다. 주를 본받은 자가 되었다 - 예수 믿는 것만이 아니라 예수를 본받았습니다. 예수처럼 살려고 하는 마음을 가지게 되었더라는 것입니다. 아주 귀한 일입니다.

예수 믿는 사람은 예수를 믿고 예수의 은혜로 구원만 받는 것이 아닙니다. 예수의 마음을 받고 예수의 마음을 배우고 예수의 마음을 따라서 살아가는 것입니다. 그 넓은 마음, 그 거룩한 사랑, 그 거룩한 희생, 그리고 고난당하심, 우리가 본받아나가야 합니다. 바로 그것이 살아 있는 교회의 모습입니다.

데살로니가 교회는 이런 교회였습니다. 복음을 능력으로 받고, 환난과 핍박 속에서 기뻐하고, 예수 그리스도를 본받는 교회였습니다. 참으로 건강한 교회였습니다. 이제 사도 바울은 말씀합니다. “너희가 마게도냐와 아가야 모든 믿는 자의 본이 되었지라.” 대표적인 교회입니다. 본이 되었다고 말씀합니다. 본이 된 교회요 동싱에 온 지방에 소문이 퍼졌다, 합니다. 소문난 교회입니다.

본이 되고 소문난 교회, 이것이 무엇을 말씀하는 것입니까? 이 교회로 인하여 다른 교회들도 뒤따라오게 되었습니다. 우리도 데살로니가 교회처럼 - 이런 마음을 가지고 따라오게 되었습니다. 그러니까 데살로니가교회는 본이 되는 교회가 되고 칭찬받은 교회가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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