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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그래도 교회가 소망입니다”(베드로전서 2:9-10)2007-03-21 15:44
작성자 Level 10
2006년 10월 22일(주일) 주일예배 설교

“그래도 교회가 소망입니다”(베드로전서 2:9-10)

우리가 함께 살아가는 이 사회에는 여러 가지 조직이 존재합니다. 그리고 각각의 조직은 나름대로의 목적을 가지고 있습니다. 군대는 나라와 민족을 잘 지키기 위하여 존재합니다. 의료인들의 조직은 병든 자들을 잘 고치기 위하여 존재합니다. 교사들의 조직은 학생들을 잘 가르치기 위하여 존재합니다. 정치인들의 조직은 나라를 잘 다스리기 위하여 존재합니다.

그렇다면 우리 믿는 성도들의 조직인 교회는 무엇을 위해 존재하는 것일까요? 여러 가지 답이 가능하겠습니다만, 오늘 주시는 말씀에 따르면, 교회란 이 땅의 백성들에게 소망을 주기 위해 존재한다는 겁니다. 그렇습니다. 교회가 소망입니다. 그래도 교회가 소망입니다. 누가 무어라 해도, 교회는 세상의 소망입니다.

따라서 세상 사람들이 우리 교회를 통해 소망을 발견할 수 있어야 합니다. 온 세상 사람들이 소망이 없다 아우성을 쳐도, 교회만은 소망이 있다고 선포할 수 있어야 합니다. 세상 그 어디에서도 소망을 발견할 수 없는 세태라 하여도, 교회에서만은 소망을 발견할 수 있어야 합니다. 왜? 이 세상의 소망이 되는 것, 우리 교회를 세우신 하나님의 뜻이기 때문입니다.

물론 교회라고 해서 완전할 순 없습니다. 죄인들의 공동체이기 때문입니다. 특히 이 땅에 세워진 교회들 가운데는, 세인들의 지탄을 받는 교회도 있습니다. 소망을 주기보다 오히려 절망의 원인을 제공하는 교회, 그리스도의 빛을 발하기보다 오히려 그리스도의 영광을 가리는 교회, 해서 어느 모로 보나 소망일 수 없는 그런 교회들이 꼭 있습니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교회는 이 세상의 소망입니다. 또한 소망이어야 합니다. 마침내 소망이 될 수 있습니다. 왜요? 교회란 오직 하나님께만 소망을 두는 백성들의 공동체요, 소망의 빛으로 오시는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고백하는 이들의 공동체요, 소망으로 인도하시는 성령님의 도우심을 간구하는 공동체이기 때문입니다. 교회는 그 불완전성에도 불구하고, 이 세상의 소망입니다. 그래도 교회가 소망입니다.

오늘 주신 본문에서 사도 베드로는 교회가 왜, 어떻게, 세상의 소망인지를 구체적으로 설명해 줍니다. 여기서 그 말씀, 다시 읽으며 우리 가슴에 새겨보겠습니다. / 2:9 / (읽기) /

이 말씀 안에는 <족속>, <제사장들>, <나라>, 그리고 <백성>이란 네 개의 단어가 나옵니다. 모두가 개인이 아니라 집단을 지칭하는 단어라는 점에서 통합니다. 더 중요한 점은 이 네 가지 단어를 통해 우리는, 교회가 이 세상의 소망일 수 있는 네 가지 근거와 목적과 이유를 배우게 된다는 사실입니다. 이제 그 이유 하나씩 풀어가며 오늘 우리에게 주시는 은혜와 메시지를 받도록 하겠습니다.

1. 교회는 하나님이 <택하신 족속>이기에 세상의 소망입니다.

여러분, 교회는 이 세상 한 복판에 존재하지만, 동시에 세상과 구별되는 공동체입니다. 이 세상에서 택하여 불러낸 사람들의 공동체이기 때문입니다. 세상과 다른 차별성, 바로 이 차별성이 세상의 소망이라는 겁니다.

그렇다면 교회가 지니는 차별성의 내용이 무엇이기에 교회가 세상의 소망이란 말씀일까요? 그 답이 9절 후반부에 나오는데요, <너희를 어두운데서 불러내어 그의 기이한 빛에 들어가게!> 하셨기 때문이라는 겁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은 우리 각 사람을 어두운데서 불러내어, 그 분의 기이하고도 놀라운 빛 가운데 거하게 해 주셨습니다. 이제 우리는 어두움 속에 있지 않습니다. 이제 우리는 어두움과 짝할 수도 없습니다. 이제 우린 모든 어둠을 싫어합니다. 오직 그리스도의 빛 가운데 거합니다.

그래서 우리가 소망입니다. 어두움을 밝히는 놀라운 빛, 어두움을 물리치는 기이한 빛, 그래서 생명의 길로 안내하는 구원의 빛으로 살기에 교회가 이 세상의 소망인 것입니다.

교회의 존재 이유, 그것은 이 세상을 향한 소망의 빛으로 사는 것입니다. 그런데요, 교회가 이름값을 하기 위해서, 가족인 내가 해야 할 일이 있습니다. 그것은 내가 빛으로 사는 일입니다. 이미 우리는 빛이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마태복음 5장에서 말씀하십니다. “너희는 세상의 빛이다. 너희 빛을 사람에게 비추어서, 그들이 너희의 착한 행실을 보고,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라.” 빛으로 사는 일은 빛을 비추는 일입니다. 무엇으로 비출까요?

얼굴표정으로 비출 수 있습니다. 자, 한 번 얼굴표정으로 빛을 비추어보실까요? 어떻게 해야 얼굴에서 빛이 날까요? 우리는 얼굴이 굳어 있거나, 근심으로 가득 차 있는 사람을 보고 <왜 그렇게 얼굴이 어둡냐>고 말합니다. 빛이 없는 얼굴입니다. 그러므로 빛이 있는 얼굴이란 한 마디로 웃는 얼굴입니다.

어떨 때 보면, 참 안되보이는 분들이 있어요. 그러면, 마음이 답답해져요. 얼굴가에 웃음이 없는 분들, 불평으로 가득차 있는 분들, 세상 짐 다 짊어지고 이마에 내천자 새기신 분들입니다. 여러분, 우리 믿는 사람들이 세상 사람들에게 안되보이는 사람들, 마음을 답답하게 하는 사람들로 보여서야 되겠습니까?

또 하나 있습니다. 무엇으로 비출까요? 몸으로 비출 수 있습니다. 내 시간을 쪼개서 누군가를 위해 움직여요. 거저 받았으니, 여기저기 둘러보고 필요한 사람에게 나눠줘요. 부족한 부분이 보일 때, 조용히 그 부분을 보충해요.

여러분, 이런 모습이 착한 행실입니다. 이런 모습을 보면, 사람들의 마음이 더 어두워질까요? 아니요. 밝아집니다. 그러면, 교회는 온 세상을 밝히는 기이한 빛, 소망의 빛이 될 수 있습니다. 그래서 교회가 소망입니다.

2. 교회는 <왕 같은 제사장들>의 공동체이기에 세상의 소망입니다.

그러나 이 말씀 무시하고, 아주 먼 옛날, 교회가 이 세상에서 왕 노릇하던 때가 있었습니다. 그 때 교회는 주님의 가시 면류관 보다, 온갖 보석으로 치장한 이 세상의 왕관을 더 좋아했습니다. 세상 가운데로 나가 착한 행실로 빛이 되는 일 보다, 어떻게 하면 세상으로부터 더 많은 재물을 모을까 골몰했습니다. 그러다가 결국 면죄부까지 만들어 팔면서 오히려 세상을 어둠 속으로 몰아갔습니다.

그래서 역사는 교회가 왕관을 쓰고 있던 시대를 가리켜 암흑기라고 부릅니다. 부끄러운 일인데요, 세상의 소망이 되어야 할 교회가, 오히려 세상을 절망으로 몰고가버린 암적 존재로 전락했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교회는 왕이 아닙니다. 교회는 왕일 수 없습니다. 교회가 이 세상의 왕관을 받아쓰는 순간 교회는 빛을 잃고 타락하기 시작합니다. 교회는 왕 같은 제사장들의 모임일 뿐입니다.

그렇다면 왕 같은 제사장들의 모임인 교회가 어떻게 세상의 소망이 될까요? 그것은 제사장들에게 주어진 독특한 직무 때문입니다. 다시 말해, 제사장에 부여된 직무가 죄의 문제를 해결하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그렇습니다. 죄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하나님 택하신 공동체가 교회입니다. 죄의 문제를 끌어안고 기도하는 유일한 공동체, 바로 교회입니다. 그래서 왕 같은 제사장이라 하신 거요, 그래서 교회가 세상의 소망이라는 겁니다.

그런데 우리는 제사장으로 서기 보다는 왕으로 서기를 더 좋아합니다. 죄의 문제를 해결해 주기 보다는 자꾸 정죄하려고 합니다. 아니오, 죄의 문제를 해결하라 하셨지 정죄하라 하신 것이 아닙니다. 형제자매를 죄에서 건지기 위해 죽어야 한다면 죽기까지 순종하라 하셨지, 뒷짐 지고 서서 율법의 잣대로 정죄하라 하신 것 아닙니다.

때로는 기가 막히고 답답할 때가 있죠. 그래도 우린 정죄할 권한이 없습니다. 우린 판단할 자격이 없습니다. 누가 누구를 정죄하고 판단합니까? 안 되는 일입니다. 깊이 생각해야 합니다.

여러분, 기독교 신앙에서는 내가 누구인가, 이것이 중요합니다. 이것을 바로 알아야 순조롭습니다. 그래서 이 순서가 중요합니다. 먼저, 하나님을 바라봐야 합니다. 그 다음에는 나를 봅니다. 그리고 제일 나중에 이웃을 봅니다.

하나님은 바다를 먹물 삼아도 표현할 수 없는 사랑이 많으신 분입니다. 나만큼 추하고 악하고 더러운 사람은 없습니다. 그런데 그 하나님이 나를 사랑하십니다. 그 사랑을 내가 받고 삽니다. 그리고나서 이웃을 봅니다. 여전히 납득할 수 없습니다.

하지만 내 모습을 보는 것 같아 내가 받은 사랑을 떠올리며 사랑합니다. 내가 받은 용서를 생각하여 용서합니다. 내가 받은 이해를 헤아리며 이해합니다. 그리고 위해서 기도합니다. 언제일지는 모릅니다. 그러나 때를 기다리며 하나님께 맡깁니다. 여러분, 이 마음이 예수님의 마음입니다.

여러분, 신앙생활하면서 하나님 보다, 사람을 먼저 봐서는 안됩니다. 신앙생활을 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을 보고, 나를 보고, 너를 봐야 신앙생활을 할 수 있습니다. 그리스도인들이 신앙생활을 잘 할 때, 그 때 교회는 세상의 소망일 수 있습니다. 그래서 세상의 소망입니다.

감사한 것은 우리가 죄를 고백하고 용서를 구하기만 하면, 우리 하나님, 긍휼을 베푸시고, 모든 죄를 용서해 주신다는 사실입니다. 우리가 용서받지 못할 죄는 없습니다. 확실히 믿으시기 바랍니다. 할렐루야!

해서 주신 말씀, 2장 10절인데요, 함께 읽으며 마음에 새깁니다. / 2:10 / (읽기) / 아멘. 그래서 교회가 세상의 소망입니다.

3. 교회는 <거룩한 나라>이기에 세상의 소망입니다.

그런데 자본주의 사회에서 너무 오래 살다 보니, 이젠 우리 교회마저도, 우리 성도들마저도, 거룩함이 아닌 세속적인 것으로 이 세상에게 다가가려고 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거룩함 아닌 것, 곧 세속적인 것이, 이 세상에 소망을 줄 수 있다고 착각하는 경우입니다. 그러나 잊지 말아야 할 것은, 거룩한 나라일 때 교회가 세상의 소망이 된다는 사실입니다.

교회에 와서 병을 고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교회가 병원은 아닙니다. 교회에 와서 많은 것을 배울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교회가 학교는 아닙니다. 교회에 잘 다녀 큰 복 받아 부자가 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교회가 기업이나 은행은 아닙니다. 교회는 오직 교회입니다. 교회는 오직 거룩함으로 소망을 전하는 공동체입니다.

그러므로 아무리 많은 돈을 투자한다 해도, 아무리 많은 사람이 모였다 해도, 아무리 화력하게 치장한다 해도, 아무리 많은 인기를 모은다 해도, 거룩함을 상실한 교회는 교회가 아닙니다. 거룩함을 상실한 봉사, 거룩함을 상실한 구제, 거룩함을 상실한 모든 행사로는 결코 세상의 소망이 될 수 없습니다. 오직 너희는 거룩한 나라요, 그래서 소망이라 하셨습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거룩한 나라가 되기 위해 무엇을 해야 하나? 1장 15절을 보니, 너희를 부르신 거룩한 자처럼, 너희도 모든 행실에 거룩한 자가 되라고 하십니다.

저는 우리 해밀턴 한인교회가 오직 거룩한 공동체로 온전히 서게 되기를 소망합니다. 거룩한 지체들이 모여 거룩한 빛을 발하는 동광 교회, 그렇게 이 세상의 소망이 되기를 간절히 기원합니다. 그래서 교회가 소망입니다.

4. 교회는 <그의 소유된 백성>이기에 세상의 소망입니다.

돈의 소유된 백성, 우리의 소망이 되기는 어렵습니다. 눈을 뜨면 오직 돈, 돈, 돈 하는 사람, 결국 돈을 사랑하다, 그만 돈 때문에 돌아버리기 때문입니다. 돈의 소유, 곧 돈의 노예가 된 백성, 결코 소망일 수 없습니다.

권력도 마찬가지, 권력의 소유가 된 백성이 우리의 소망이 되기는 어렵습니다. 권력의 속성상, 그것을 잡기 위해 선을 행하기보다 악을 행하는 경우가 더 많기 때문입니다. 또한 일단 권력을 장악한 사람, 동시에 거룩함을 유지한다는 것이 거의 불가능하기 때문입니다.

돈과 권력만이 아닙니다. 하나님 아닌 다른 어떤 것에 매인 백성이 이 세상의 소망이 되기는 어렵습니다. 하나님 아닌 것에 매인 상태가 바로 우상을 숭배하는 상태이기 때문입니다. 우상을 숭배하는 자를 따라가는 인생, 비참할 뿐입니다. 해서 오직 그 분의 소유된 백성, 곧 하나님의 교회가 세상의 소망이라 하신 겁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오직 하나님께만 매이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의 확실한 소유가 되시기 바랍니다. 하나님 아닌 그 어떤 것에도 매이지 마시기 바랍니다. 그러기 위해서 우리가 해야 할 일, 오직 하나님의 주권을 인정하는 일입니다.

나의 주인 되시는 하나님을 인정하고, 나의 나 된 것 역시 오직 주님의 은혜인 것을 인정하며, 평생 하나님의 소유된 백성으로, 그리스도와 함께 살아갈 것을 다짐하고 또 다짐해야 합니다. 그 때 우린 세상의 소망이 될 수 있습니다. 그래서 교회가 소망입니다.

말씀을 마치려고 합니다. 이 땅에 존재하는 교회들안에 문제가 없는 건 아닙니다. 하늘 아래 어떤 교회도 완전할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그 불완전성에도 불구하고 교회가 세상의 소망일 수 있음은, 교회만이 갖는 특이성 때문임을 오늘 알았습니다. 남은 과제는 그 특이성을 잘 유지해야 한다는 점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가 오직 택하신 백성, 왕 같은 제사장, 거룩한 나라, 그리고 그 분의 소유된 백성으로 설 때에, 우린 세상의 소망이요, 구원의 빛으로 살 수 있습니다. 그래도 교회가 세상의 소망인 이유입니다.

이 소망을 우리에게 다시 주시고자 우리 주님 이 땅에 오십니다. 이제 주님 맞이할 준비를 하십시다. 주님의 순결한 신부로서, 몸도 마음도 영혼도 가장 순결한 상태를 유지할 수 있도록 애써 주시기 바랍니다.

그렇습니다. 우리는 언제 어디서나 하나님의 찬송을 부를 수 있어야 합니다. 세상은 다 죽겠다고 아우성을 쳐도, 우린 찬송을 부르며 그 분의 아름다운 덕을 선전할 수 있어야 합니다. 세상은 다 죽겠다고 통곡을 해도, 우린 소망이 있다고 외치며, 희망의 찬송을 부를 수 있어야 합니다.

그래서 택하신 족속이요, 그래서 왕 같은 제사장이요, 그래서 거룩한 나라요, 그래서 그의 소유된 백성이라 하신 겁니다. 그래서 교회가 세상의 소망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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