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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한 사람으로 말미암아” (롬 5:12-19)2007-03-21 15:56
작성자 Level 10
2007년 3월 4일 주일설교

“한 사람으로 말미암아”(롬 5:12-19)

스콧틀랜드의 한 교회에서 부흥회가 열렸습니다. 매일 저녁 예수 믿을 사람들을 초청하고, 결신자를 초청했는데 한 사람도 응답하지 않았습니다.

사흘째 저녁에 겨우 어린 소년 하나가 손을 번쩍 들고 앞으로 나왔습니다. 그러나 그 다음날도 결신자는 없었습니다. 한 주간의 부흥회를 마치면서 목사님은 얼마나 실망이 됐는지 이런 말을 했습니다. 이번 집회에는 겨우 어린 소년 한 명 밖에는 결신자가 없었습니다.

그러나 그로부터 20년이 지난 어느 날 그 교회 목사님은 그 옛날 자기가 했던 그 고백을 크게 후회하게 되었습니다. 왜냐하면 그 부흥집회 기간 동안에 유일하게 예수 믿기로 결심했던 그 어린 소년이 잘 자라서 바로 저 유명한 데이비드 리빙스턴이 되었기 때문입니다.

검은 대륙 아프리카를 복음으로 놀랍게 변화 시켰던 위대한 선교사 리빙스턴! 여기서 우리는 한 사람의 가치를 확인하게 됩니다. 내가 지나쳐버린 <한 사람>이 그리고 앞으로 내가 만나가 될 한 사람이 바로 이런 가능성을 지닌 사람일 수 있습니다. 한사람으로 시작된 구원의 역사는 어떤 결과를 가져올지 아무도 모르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에서 가장 많이 등장하는 단어는 “한 사람”이라는 말입니다. ‘한 사람’ 아담과 ‘한 사람’ 예수 그리스도를 대조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본문은 한 사람 아담이 인류에게 끼친 어마어마한 영향을, 또 한 사람인 예수 그리스도가 인류에게 끼친 어마어마한 영향과 대조하고 있습니다.

본문은 아담의 범죄가 온 인류를 대표하는 범죄였다는 사실을 증거하는 것으로부터 시작합니다. 12절 말씀.
“이러므로 한 사람으로 말미암아 죄가 세상에 들어오고 죄로 말미암아 사망이 왔나니 이와 같이 모든 사람이 죄를 지었으므로 사망이 모든 사람에게 이르렀느니라.”

최초의 사람 아담 때문에 죄가 세상에 들어오고 그 결과로 사람은 죽게 되었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바꿔 말하면, 온 인류는 아담의 죄 때문에 원죄를 가지고 태어나며, 그래서 태어날 때부터 죽음을 향해 살아가는 존재가 되었다는 말씀입니다.

이것은 우리 편에서 보면 보통 억울한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나는 착하게 살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그렇게 죽음을 결정지을 만한 죄를 저지른 적도 없습니다. 그런데, 내가 태어날 때부터 죄인이라니요. 참 받아들이기 어려운 설명입니다.

그러나 이 말씀이 피할 수 없는 진리인 이유가 있습니다. 아담 한 사람의 행동은 자기 혼자만의 행동이 아니라 인류를 대표한 행동이었기 때문입니다. 이런 대표적인 한 사람의 행동에 의해서 나머지 사람들이 그 결과에 참여하게 되는 사례는 우리의 삶의 현장 속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파일럿 한 사람의 실수 때문에 그 비행기에 탄 승객들 모두는 같은 비극을 경험해야 합니다. 회사의 대표 한 사람의 잘못 때문에 그 회사 안에 참여한 모든 사람들이 같은 고통을 나누어야 합니다.

존 던이라고 하는 시인은 “인류는 누구나 섬이 아니다. 우리는 모두가 다 대륙의 한 부분이다”라는 시를 썼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모두 아담 때문에 태어날 때부터 죽음이 예정된 존재로 살아갑니다.

오늘 말씀은 이런 대표성이 원리를 율법과 연관시켜서 풀어가고 있습니다. 먼저, 13절 말씀을 보면, “죄가 율법 있기 전에도 세상에 있었으나 율법이 없을 때에는 죄를 죄로 여기지 아니하느니라.”

구약성경을 보면, 하나님께서는 사람들이 살아갈 때 필요한 삶의 기준, 다시 말하면 죄인지 아닌지 구별할 수 있도록 율법을 주셨습니다. 그런데 이 율법이 없었던 시대가 있었습니다. 바로, 아담의 범죄 이후부터 모세 시대 전까지입니다. 이 때 살았던 사람들은 실제로 범죄했지만, 율법이 없었기 때문에 자신들의 잘못을 죄로 인식하지 못했습니다.

그렇지만, 오늘 14절 말씀은 “아담으로부터 모세까지 아담의 범죄와 같은 죄를 짓지 아니한 자들 위에도 사망이 왕 노릇하였나니”라고 증거하고 있습니다. 무슨 말씀입니까? 그들도 아담과 같이 죽었다는 말씀입니다. 그러므로 이것은 아담의 범죄 때문에 생긴 결과라는 말씀입니다.

그러면 이런 죄와 죽음의 문제에 대한 하나님의 처방은 무엇일까요? 하나님은 그대로 방치해놓지 않으십니다. 만약 그러셨다면, 인류에게는 아무런 소망이 없었을 것입니다. 오늘 성경은 분명히 증거합니다. 하나님께서 처방을 내리셨다고. 그 처방은 바로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죄와 죽음의 자리에 있었던 인류에게 하나님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은혜를 주셨습니다.
15절 말씀.
“그러나 이 은사는 그 범죄와 같지 아니하니 곧 한 사람의 범죄를 인하여 많은 사람이 죽었은즉 더욱 하나님의 은혜와 또는 한 사람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로 말미암은 선물이 많은 사람에게 넘쳤으리라.”

한 사람으로 말미암아 인류에게 찾아온 죄와 죽음을 치료하기 위해서 하나님은 은혜를 주시고자 했습니다. 그 뿐이 아닙니다. 오늘 성경은 은혜, 예수 그리스도를 통한 선물이 있다고 증거합니다.

16절 말씀.
“또 이 선물은 범죄한 한 사람으로 말미암은 것과 같지 아니하니 심판은 한 사람을 인하여 정죄에 이르렀으나 은사는 많은 범죄를 인하여 의롭다 하심에 이름이니라.”

여러분,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무엇을 받을 수 있게 되었습니까? 여러분, 우리는 놀라지 않을 수 없습니다. 어디서도 받을 수 없는, 돈으로 살 수 없는 세 가지의 선물이 있습니다. 무엇으로 이 선물의 의미를 다 표현할 수 있을까요?

17절에 보시면 “의”라는 단어가 “죄” 대신에 강조되고 있습니다. 죄를 범한 인류에게 하나님은 죄 용서만 해주신게 아닙니다. 한 걸음 더 나아가서, 의롭다 하시기를 기뻐하셨습니다.

또, 18절에 보시면, 또 하나의 단어가 강조되고 있습니다. “생명”입니다. 영원한 죽음 속에 갇힐 수 밖에 없었던 인류에게 생명을 선물로 주셨습니다.

그 다음, 오늘 본문은 아닙니다마는, 21절에 또 하나의 단어가 강조되고 있습니다. “영생”입니다. 또 하나의 생명을 넘어서는 영원한 생명을 주셨습니다.

여러분, 여기 세 가지의 놀라운 선물이 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죄 대신에 의를 주셨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사망 대신에 생명을 주셨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우리에게 심판 대신에 영원한 생명을 주셨습니다.

여러분, 우리가 어떻게 때때로 환희에 찬 감동의 찬양을 하나님께 올려드리지 않을 수 있습니까? 이 모든 선물이 누구 때문에 저와 여러분의 것이 되었습니까? 예수 그리스도. 우리는 잊지 말아야 합니다.

우리가 이 분을 잊지 말아야 하는, 아니 잊을 수 없는 이유가 있습니다. 저와 여러분에게 놀라운 선물을 주시기 위해 “순종”하셨기 때문입니다.

오늘 19절 말씀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어떤 순종을 하셨는지 밝히고 있습니다. 다같이 읽겠습니다. 시작. “한 사람의 순종치 아니함으로 많은 사람이 죄인 된 것같이 한 사람의 순종하심으로 많은 사람이 의인이 되리라.”

한 사람 아담은 불순종했습니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죄인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한 사람 예수 그리스도는 순종했습니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의인이 되었습니다.

여러분, 불순종이 쉽습니까, 아니면 순종이 더 쉽습니까? 여러분의 경험으로 대답해보시기 바랍니다. 저는 불순종하는 것이 훨씬 쉽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면, 의롭게 사는 것이 쉽습니까, 아니면 죄 짓는 것이 쉽습니까? 죄 짓는 것이 더 쉽습니다. 왜 그럴까요? 그것은 아마도 쾌락이 있기 때문일 것입니다. 이상하지요? 불순종은 언제나 쾌락을 수반합니다.

불순종보다 순종하는 것은 어렵습니다. 순종하지 못하는 이유는, 반대로, 고통이 수반되기 때문입니다. 이상하게 순종에는 고통이 따릅니다. 그렇지만, 그 이후에는 놀라운 열매가 따라옵니다. 그 예가 바로 십자가입니다.

예수님의 순종은 구호가 아니었습니다. 행동이었습니다. 십자가에서 못박히셨습니다. 고통입니다. 그러나 그 이후에는 놀라운 열매가 있었습니다. 죄 대신 의의 열매가 맺혔습니다. 죽음 대신에 생명의 열매가 맺혔습니다. 심판 대신에 영생의 열매가 맺혔습니다.

신약성경 히브리서 5장 8절을 보면, 말씀을 기록한 기자는 예수님의 일생을 이렇게 적었습니다.
“그가 아들이시라도 받으신 고난으로 순종함을 배워”.

예수님은 하나님의 아들이십니다. 그런 분이 고난의 과정을 통해서 순종을 배워가셨다면 저와 여러분은 얼마나 더 이 순종을 연습해야 하겠습니까? 그 분의 한평생은 순종을 연습하는 생애였습니다. 그가 이 땅에 오신 이유는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기 위해서였습니다.

한 사람 아담의 불순종으로 말미암아 많은 사람들에게 죄와 죽음이라는 어둠이 드리워졌습니다. 그러나 한 사람 예수 그리스도의 순종으로 말미암아 의와 생명이라는 빛이 드리워졌습니다.

2007년 사순절기에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와 순종을 묵상하기를 원합니다. 저와 여러분이 하나님의 뜻에 순종함으로, 삶의 현장에서 사람을 살리는 일에 쓰임 받는, 이 시대의 한 사람이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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