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6년 주일예배 설교 - 서장원목사
“나를 살리려고 예수님은 피를 흘리셨습니다”(히 9:11-14;10:11-14 / 20060806)
여러분에게 퀴즈를 내겠습니다. 지금부터 제가 말씀드리는 지시어들은 이 단어를 가리킵니다. 이 단어는 무엇일까요? 1)헬라어로 크리스티아노스 2)그리스도에게 속한 사람 3)예수쟁이. ...... 예, 그렇습니다. 답은 그리스도인입니다.
풀어드리자면, 헬라어 크리스티아노스 “그리스도에게 속한”이란 뜻에서 유래된 말로서, 하나님이 보내신 아들 예수를, 죄인인 나를 죽음으로부터 구원한 자로 믿는 사람, 이 바로 그리스도인입니다.
전도를 하거나, 전도를 받을 때, 다시 말해서 그리스도를 전하거나, 그리스도 전함을 받을 때, 피차 간에 난감하고 어려운 이유는, 죄인이라는 말 때문일 것입니다. 죄인임을 전하고, 받아들이기가 어렵기 때문입니다.
왜 예수를 믿을 때, 나는 죄인이 되어버리고 말까요? 이 질문에 대하여 신약성경 로마서 5장 12절은 다음과 같이 대답하고 있습니다. “이러므로 한 사람으로 말미암아 죄가 세상에 들어왔고, 또 그 죄로 말미암아 죽음이 들어온 것과 같이, 모든 사람이 죄를 지었기 때문에 죽음이 모든 사람에게 이르게 되었습니다.”
여기에서 한 사람이란 바로 인류 최초의 인간이었던 아담을 의미합니다. 즉 아담 한 사람이 하나님의 명령을 어기고 죄를 범한 결과, 그에게서 태어난 모든 인간이 다 죄인이 되었다는 말씀입니다.
그렇다면, 또다시 묻지 않을 수 없습니다. 우리는 아담처럼 하나님께서 먹지 말라시던 선악과를 에덴 동산에서 따먹은 적이 없습니다. 그 죄는 아담 혼자서 저질렀습니다. 우리는 그때 태어나지도 않았고 이 세상에 존재하지도 않았습니다.
그런데 어떻게 우리가 아담과 똑같은 죄인이어야 하는 걸까요? 여기에 대해서는 로마서 5장 14절이 답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아담 시대로부터 모세 시대에 이르기까지는 아담의 범죄와 같은 죄를 짓지 않은 사람들까지도 죽음의 지배를 받았습니다. 아담은 장차 오실 분의 모형이었습니다.”
본문에서 조심해서 읽어야 할 부분은, ‘범죄’와 ‘죄’를 구별해서 증거하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범죄’가 드러난 행위를 의미한다면, ‘죄’란 보이지 않는 본질적인 상태를 뜻합니다. 아담이 에덴동산에서 금지된 열매를 먹은 것은 범죄였습니다. 우리는 그와 같은 범죄를 저지르지 않았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최초의 인간인 아담으로부터 비롯된 우리는, 동일한 범죄를 저지르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본질적으로 이미 죄인입니다. 왜냐하면, 범죄로 말미암아 아담은 본질적으로 죄인이 되었고, 그 죄인된 본질로부터 우리가 태어났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비록 우리가 살인이나 강도 혹은 강간과 같은 범죄를 단 한 번도 저지른 적이 없다 할지라도, 아담의 후예인 인간으로 이 땅에 태어났다는 사실만으로 우리는 모두 똑같은 본질적 죄인들입니다.
본질적인 죄인에게 약속된 것은 영원한 죽음입니다. 그래서 죽을 수 밖에 없는 죄인이라고 말합니다. 내 자력으로는 이 죽음과 본질적인 죄의 굴레에서 벗어날 수가 없습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이 굴레에서 우리를 구원해 줄 구원자가 필요합니다. 그분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그분은 하나님의 아들로 이 땅에 오셔서 본질적인 죄인들을 살리시기 위해 고난 당하시고, 십자가에서 죽으셨습니다. 그리스도의 고난과 죽으심의 중심에는 ‘피’가 있었습니다. 이것은 예수님의 보혈이라고 말합니다.
오늘 본문 히브리서 9장 11-12절은 예수님이 흘리신 피에 대해서 이렇게 증언하고 있습니다. “
그렇다면 여러분, 왜 예수님께서는 그토록 피를 흘리시며 처참하게 죽으셔야만 했을까요? 나의 죄를 대신해서 죽는다 할지라도 왜 공자나 석가처럼 고상하고 품위있게 죽으실 수는 없었을까요?
하나님께서는 거룩하신 분이시기 때문에 결코 죄를 용납하시지 않으십니다. 죄에는 반드시 하나님의 형벌과 심판이 뒤따랐습니다. 그래서 이스라엘 백성들은 죄를 범했을 때마다 하나님 앞에 양을 잡아 제사를 드렸습니다. 이른바 속죄양이었습니다.
죄의 형벌을 받아야 할 인간을 대신하여 양을 잡아 피를 뿌리면, 그 피를 보신 하나님은 인간을 사랑하는 하나님이시기 때문에 그냥 넘어가셨습니다. 이것이 바로 Pass Over, 유월절의 의미입니다.
히브리서 9장 22절에 보면, “율법에 따르면, 거의 모든 것이 피로 깨끗해집니다. 그리고 피를 흘림이 없이는, 죄를 사함이 이루어지지 않습니다”라는 말씀이 나옵니다.
그러나 그와 같은 제사는 완전한 제사일 수가 없었습니다. 이 사실을 오늘 본문 히브리서 10장 11절은 이렇게 전해줍니다. “모든 제사장은 날마다 제단에 서서 직무를 수행하면서 똑같은 제사를 거듭 드리지만, 그러한 제사가 죄를 없앨 수는 없습니다.”
그 이유는 인간의 죄를 대신하는 제물이 짐승이므로, 불완전한 제물일 수밖에 없었고, 그 제사를 주관하는 제사장 역시 죄인인 불완전한 인간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죄를 범할 때마다 쉬임없이 반복하여 양을 잡아 피를 뿌리면서도 본질적인 죄의 굴레로부터 자유로울 수가 없었습니다. 그것이 인간의 한계였습니다.
마침내 하나님께서는 인간들이 본질적인 죄의 굴레로부터 벗어날 수 있도록 친히 영원한 제사를 마련해 주셨습니다. 바로 십자가였습니다. 그 십자가 위에서 드려지는 제물은 더 이상 불완전한 짐승이 아니었습니다. 흠없고 죄없는 예수 그리스도, 그 분이 제물이었습니다. 완전한 제물이었습니다. 그 제사를 하나님께 바쳐 드리는 제사장 또한 임마누엘이신 예수 그리스도셨습니다. 완전한 제사장이었습니다. 완전한 제사장에 완전한 제물, 그야말로 완전한 제사였습니다.
오늘 본문 말씀인 히브리서 10장 12-14절 말씀을 표준새번역으로 읽어드립니다. “그러나 그리스도께서는 죄를 사하시려고, 단 한 번의 영원히 유효한 제사를 드리신 뒤에 하나님 오른쪽에 앉으셨습니다. 그리고서 그는 그의 원수들이 그의 발 아래에 굴복할 때까지 기다리고 계십니다. 그는 거룩하게 되는 사람들을 단 한 번의 희생제사로 영원히 완전하게 하셨습니다.”
짐승으로 드리는 제사의 효력은 언제나 일회적일 수밖에 없었습니다. 제물로 바쳐진 짐승이 죽어버렸기 때문입니다. 그것으로 모든 것은 끝나버렸습니다. 그 다음에는 또 새로운 제물로 처음부터 다시 시작해야만 합니다.
그러나 십자가 위에서 제물로 돌아가신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죽음을 깨뜨리시고 영원히 부활하셨기 때문에 그 분이 드린 제사의 효력 또한 영원해졌습니다. 주님께서 친히 제물되신 십자가의 제사가 완전한 제사였음과 동시에 영원한 제사였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다시는 그와 같은 제사를 반복할 필요가 없어져 버렸습니다. 그러므로 이제 인간의 죄를 완전히 그리고 영원히 사하여 주시기 위하여, 자기를 십자가 위에서 제물로 삼아 영원하 속죄의 제사를 드려주신 예수 그리스도를 믿기만 하면 되는 것입니다.
십자가에 못 박히시기 전 예수님의 머리에는 가시나무로 엮어진 가시관이 씌여졌습니다. 중동지방의 가시나무는 사람이 만든 못보다도 더 예리하고 날카롭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의 머리는 피투성이가 되었습니다.
왜 죄 없는 주님의 머리가 피투성이가 되어야만 했을까요? 자신의 머리를 제물로 드림으로, 내가 머리로 지었던 모든 죄를 하나님의 심판으로부터 넘어가게 해주시기 위함이었습니다.
예수님의 가슴이 로마 군병들의 채찍에 맞아 갈갈이 찢어져 피를 흘리심으로, 내가 아무도 몰래 마음속으로 지었던 모든 은밀한 죄들이 패스오버되었습니다. 예수님의 그 여린 두 손에 대못이 박히어 피를 흘리심으로, 내 손이 지었던 모든 죄가 비로서 사함을 얻었습니다.
예수님의 두 발이 못 박히어 피를 뿌리심으로, 내가 가서는 안될 곳을 돌아다니므로 내 발이 지은 죄가 용서함을 받았습니다. 로마 군병의 창에 옆구리를 찔려 마지막 피와 물 한방울까지 다 흘리심으로, 썩어 문드러질 이 몸뚱이로 지었던 모든 죄가 깨끗함을 받았습니다.
왜 예수님은 그토록 참혹하게 사지가 찢어져 피투성이가 되어 죽으셔야만 했을까요? 왜 예수님은 다른 성현들처럼 고상하고 품위있게 죽을 수는 없으셨을까요?
나 같은 죄인을 사랑하시사 나의 죄를 머리에서부터 발끝까지 하나도 빠짐없이, 철저하게, 온전히, 본질적으로, 그리고 영원히 대속해 주시기 위함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 나의 죄값을 완전히 치르시기 위하여 그처럼 철저한 제물이 되어주셨기에, 십자가의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나의 죄를 심판 받았고 나는 생명을 얻은 것입니다. 다시 말하자면, 십자가 위에 달리신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의 공의와 하나님의 사랑은 동시에 완벽하게 완성된 것이었습니다.
저는 수 많은 세월 속에서 지구상의 인류에게 빛을 던져주었던 성인들이 있었음을 인정합니다. 그러나 아무리 그 분들에게 배울 것이 많고 본받아야 할 것이 많다 해도, 그 분들을 나의 구원자로 받아들이고 섬길 의사가 전혀 없습니다. 그 분들은 나의 죄를 위하여 단 한 방울의 피도 흘리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오늘 이 말씀을 기록한 히브리서 기자는 자신이 예수님의 피, 그 뜨거운 사랑을 경험한 심정으로 오늘 우리에게 이렇게 묻고 있습니다. 아니 호소하고 있습니다. “염소나 황소의 피와 암송아지의 재를 더러워진 사람들에게 뿌려도, 그 육체가 깨끗하여져서, 그들이 거룩하게 되거든, 하물며 영원한 성령을 힘입어 자기 몸을 흠 없는 제물로 삼아 하나님께 바치신 그리스도의 피야말로, 더욱더 우리들의 양심을 깨끗하게 해서, 우리로 하여금 죽은 행실에서 떠나서 살아 계신 하나님을 섬기게 하지 않겠습니까?”
오늘은 성찬예식을 맞이하는 주일입니다. 성찬식은 교회가 정한 예식이 아닙니다. 예수님께서 친히 행하신 예식입니다. 고난을 당하시다가 죽음을 눈 앞에 두시고, 친히 성찬을 집례하셨습니다. 그리고, “내 살과 내 피를 먹고 마실 때마다 기념하라”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의 말씀을 따라 우리 교회는 매달 첫째 주일에 성찬예식을 갖습니다. 여기에는 빵과 포도음료가 준비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그 너머에 있는 의미와 상징을 잊어서는 안됩니다. 그냥 목을 축이고 배를 채우는, 단순한 의미의 빵과 포도음료가 아닙니다. 나를 살리시기 위해 찢기시고 흘리신 예수님의 살과 피를 상징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반드시 이것이 예수님의 살과 피를 상징하는 것임을 믿고 성찬에 임해야 합니다.
사도 바울은 이렇게 무게를 실어 고린도전서 11장에서 이렇게 권면한 바 있습니다. “누구든지, 합당하지 않게 주님의 빵을 먹거나 주님의 잔을 마시는 사람은, 주님의 몸과 피를 범하는 죄를 짓는 것입니다. 그러니 각 사람은 자기를 살펴야 합니다. 그런 다음에 그 빵을 먹고, 그 잔을 마셔야 합니다. 몸을 분별함이 없이 먹고 마시는 사람은, 자기에게 내릴 심판을 먹고 마시는 것입니다.
여러분, 그러므로, 부디 감정의 소외없이 이 권면을 받아들이셔서 성찬에 참여해주시기를 부탁드립니다. 예수님을 믿고, 예수님의 살과 피를 상징하는 것으로 믿으신다면, 빵과 잔을 받으시기 바랍니다. 다만, 그 믿음의 확인과 확증의 표시로, 빠른 시일 내에 일정한 단계를 거쳐 세례받으시기를 권면합니다.
이미 세례를 받으셨더라도, 혹, 회개하지 않은 죄 가운데 있거나 믿음 가운데 의심이 있다면, 성찬참여를 유보하시되, 성찬에 참여하시는 것이 다시금 믿음을 회복하는 데에 유익할 수 있으니, 깊이 기도하시고 참여여부를 결정하시기 바랍니다.
유아세례를 받은 어린이나 학생들도 참여할 수 있으나, 그냥 먹는 것으로 이해하지 않도록 부모님들이나 넓은 의미에서 유아세례자들의 영적인 부모인 어른들께서 인도해주시기 바랍니다. 유아세례를 받지 않은 어린이나 학생들의 경우에는, 부모님들이나 주변에서 도와주시어, 또는 본인들이 자각한 믿음 속에서 참여할 수 있으나, 마찬가지로 빠른 시일 내에 세례받으시기를 바랍니다. 절대로 호기심에서 참여하지 않도록 주의해주시기를 부탁드립니다.
여러분과 저에게 새로운 살 길을 열어주시기 위해 예수님께서는 십자가에서 피를 흘리셨습니다. 피는 생명입니다. 이 피를 믿는 자마다, 받는 자마다, 먹는 자마다 살 것입니다.
<기도> 하나님, 본질적인 죄인으로 영원히 죽을 수 밖에 없는 저희에게, 외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피흘리심을 통해, 새로운 살 길을 열어주시니 감사합니다. 그 피흘리심의 의미를 굳게 믿음으로 소망 가운데 살아갈 수 있도록 도와주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리옵나이다. 아멘.
<축도> 지금은 우리에게 새로운 살 길을 열어주시기 위하여 십자가에서 보혈을 흘리신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와, 독생자를 보내시어 사랑을 확증하신 하나님의 무한하신 사랑하심과, 성령님의 감하 감동 늘 함께 동행하시는 역사가, 예수님의 보혈로 죄에서 자유함을 얻고, 시험을 이기며, 병들고 어두운 모든 것들로부터 놓임 받아, 날마다 새로운 생명 가운데 행복한 삶 건강한 공동체를 경험하기 원하는 하나님의 교회 모든 가족들 머리머리 위에, 지금부터 영원토록 함께 하시기를 간절히 축원하옵나이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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