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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인생에게 행하신 기이한 일” (시편 107:1-9 / 20060903)2007-03-21 15:40
작성자 Level 10
“인생에게 행하신 기이한 일”
(시편 107:1-9 / 20060903)

고대 그리스의 설화에 이런 이야기가 있습니다.
한 여인이 현실 세계의 삶을 마치고 사후 세계로 가기 위해서
그 경계를 이루고 있는 스탁스 강 앞에 섰습니다.
그 때 웨이론이라는 요정이 나타나 여인에게 말합니다.
“스탁스 강을 건너기 전에 미틀스 계곡의 물을 한 번 드셔 보세요.
이 세상의 모든 고통을 잊을 수 있답니다.”

여인이 대답합니다. “이 세상의 모든 고통을 잊을 수 있다구요? 그런 물이라면 마시겠어요.”
요정이 말합니다. “그런데 그 물을 마시면 이 세상의 모든 기쁨도 잊어버립니다.”
“전 이 세상의 모든 고통과 실패의 기억들을 지우고 싶어요.”
“그러면 당신의 모든 성공의 기억들도 함께 망각하게 됩니다.”
“저는 빨리 세상의 모든 상처를 잊고만 싶습니다.”
“그러면 당신은 모든 사랑도 망각하고 말 것입니다.”

여인은 요정의 마지막 말에 조용히 생각을 합니다.
그리고는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그러면 저는 그 샘물을 마시지 않겠습니다.”

2차 대전이 끝난 후에 연합군이 독일의 수용소를 점령하고 들어갔습니다.
수용소를 돌아보고 또 사람들이 죽어가던 가스실을 보고 나오던
한 연합군 병사가 이런 외마디 비명을 질렀습니다.
“이곳이 지옥이다!! This is HELL!!”

다른 병사는 몇 군데를 더 돌다가 이렇게 소리쳤습니다.
“이것은 믿을 수가 없다!! This is unbelievable!!”
다른 병사들은 그의 손이 가리키고 있는 벽을 보았습니다.
그 벽에는 여러 가지 낙서가 있었는데,
그 낙서의 두 군데를 이 병사의 손이 가리키고 있었습니다.

거기에는 “하나님은 선하시다!! God is Good!! 하나님은 사랑이시다!! God is LOVE!!”
바로 이 문구를 보고 병사는 “이것은 믿을 수 없다”고 소리를 질렀던 것입니다.
최악의 상황에서 최선을 만들어내신 그 하나님께 대한 최선의 신앙고백이었습니다.

오늘 우리는 바벨론 포로에서 돌아왔던 이스라엘 백성들의 찬양에서 같은 고백을 발견합니다.
오늘 시편 107편 1절을 다같이 읽겠습니다.
“여호와께 감사하라 그는 선하시며 그 인자하심이 영원함이로다”.

여러분, 포로생활을 하다가 고국으로 돌아왔습니다.
아무 것도 없습니다. 모든 것이 엉망입니다.
그러나 그들의 입술에서 나온 고백은 <감사>였습니다.
하나님의 영원하신 선하심, 인자하심 때문입니다.

그들은 과거로 거슬러 올라가 민족의 역사를 회상하며
하나님의 선하심과 인자하심을 떠올립니다.
4절에 보시면 “저희가 광야 사막길에서 방황하며
거할 성을 찾지 못하고 주리고 목마름으로
그 영혼이 속에서 피곤하였도다”라고 고백합니다.

안주할 수 있는 곳을 찾지 못했습니다.
방황입니다. 아픔입니다. 슬픔입니다. 탄식입니다.
주림과 목마름 속에서 느끼는 영혼의 피곤함이었습니다.
총체적인 근심이 찾아왔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그들은 무엇을 했습니까?
6절에 보니까, “여호와께 부르짖으매” 여호와께 부르짖었습니다.
여러분, 이 부르짖음이란 무엇일까요?

저는 기도라고 단정지어 말씀드리지 않으려고 합니다.
때때로 우리는 너무 당연하게 생각합니다.
기도라고 말하는 것이 틀린 것은 아니지만,
때때로 너무 알기만 해서 탈이 날 때가 있습니다.
어떤 분은 기도라고 떠올리는 순간, 무거운 짐을 지시는 분도 보았습니다.
자기는 기도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물론, 기도하면 아무런 문제가 없습니다.

여러분, 저는 이 부르짖음을 종교적인 언어에 가두지 않고, 어떤 이미지로 묵상해 보았습니다.
<품에 푸~~욱 안기는 형상>입니다.
<모든 것을 다 내려놓고, 맡기며, 전적으로 의지하는 형상>입니다.

4년 전에 서울 영등포에서 사역하던 교회는 높은 언덕 위에 있었습니다.
차 한 대가 겨우 지나갈 수 있는 골목길이 있었습니다.
그 때 은수가 17개월이었던 때였습니다.
애가 얼마나 빠른지 동해 번쩍, 서해 번쩍 합니다.

그때, 교회 마당에 내려놓으면 어느새 달려가는 곳이 있었습니다.
골목길 밑 구멍가게입니다. 모퉁이를 돌아 있었으니까, 상당히 떨어진 곳입니다.
그런데 이상한 소리가 들립니다. 자동차 소리입니다.
그 소리가 들리자, 쏜살같이 <아빠~~~~>를 부르며 달려와 제 품에 안깁니다.

여러분, 제가 안으면서 생각했습니다.
<자식~~~, 놀랬구나. 감당할 수 없었구나>
<또 하나, 사람은 감당할 수 없는 순간을 만나면, 안길 품을 찾는구나>.

여러분, 우리 중에 혹시 지나온 삶을 돌아보며, 혹은 지금의 삶을 생각하며,
방황/주림/목마름을 떠올리는 분이 계십니까? 육체는 건강하지만,
영혼의 피곤함으로 항상 무거움을 느끼며 사시는 분이 있습니까?
총체적인 근심 중에 계십니까?
여러분, 이제 어쩌시려고 합니까? 무엇을 하시겠습니까?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께 부르짖었던 것처럼,
우리도 다함께 하나님께 부르짖을 수 있기를 바랍니다.
모든 것을 다 내려놓고 맡기며 전적으로 의지하며
하나님의 품에 안길 수 있기를 바랍니다.

감당하기 힘들고 어려운 일을 만날 때,
모든 것을 내려놓고 안길 수 있는 품이 있다는 것은 얼마나 큰 행복입니까?
그렇게 품어주시는 분을 알고 있다면 우리는 행복한 사람입니다.
우리를 영원히 품으시는 하나님, 그분은 말씀하십니다.

“배에서 남으로 내게 안겼고 태에서 남으로부터 내게 품기운 너희여
너희가 노년에 이르기까지 내가 그리하겠고
백발이 되기까지 내가 너희를 품을 것이라
내가 지었은즉 안을 것이요 품을 것이요 구하여 내리라”.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믿으시기 바랍니다.
옆에 있는 분에게 권면하시겠습니다. 하나님의 품에 안기시기 바랍니다.

여러분, 그러면 부르짖으면, 품에 안기면, 어떤 고백을 하게 될까요?
8절을 다같이 읽겠습니다.
“여호와의 인자하심과 인생에게 행하신 기이한 일을 인하여 그를 찬송할지로다.” 할렐루야!
그런데 너무 궁금합니다. 과연 하나님은 어떤 기이한 일을 나타내실까요?

1. 그 고통에서 건져주십니다.
고통이 없어지는 게 아닙니다. 고통은 있습니다.
그러나 그 고통에서 살려주십니다.
삶 속에 있는 주림과 목마름과 영혼의 피곤함 가운데 회복과 생명의 생수를 부어주십니다.

2. 바른 길로 인도하십니다.
여러분, 어디로 가야할 지, 어디를 가고 있는지를모른다는 것은
얼마나 불안하고 답답하고 안타까운 일입니까?
그러나 그 때, 이 진리를 떠올리시기를 바랍니다.
나는 길을 모르지만, 하나님은 길을 아신다.

그래서 하나님은 솔로몬을 통해서 우리에게 지혜의 말씀을 주십니다.
잠언 3장 5,6절의 말씀입니다.
“너는 마음을 다하여 여호와를 의뢰하고 네 명철을 의지하지 말라
너는 범사에 그를 인정하라 그리하면 네 길을 지도하시리라.”

3. 만족게 하시며 좋은 것으로 채워주십니다.
오늘 말씀 9절을 다함께 읽겠습니다.
“저가 사모하는 영혼을 만족게 하시며
주린 영혼에게 좋은 것으로 채워 주심이로다.”

여러분, 사람은 스스로의 힘으로 결코 만족할 수 없습니다.
만족은 하나님이 주시는 복입니다. 우리가 이것을 알아야 합니다.
뿐만 아니라, “좋은 것으로 채워주신다”고 했습니다.
하나님이 주시는 것은 모두 다 좋은 것입니다.

내가 볼 때는 한 없이 부족하지만, 하나님이 보실 때는 그것이 최고입니다.
왜요? 자녀에게 주시는 것이거든요.
오늘 말씀을 자세히 보면, 주시는 것을 넘어서서 채워주십니다.

여러분, 감당할 수 없는 상황을 만나십니까? 안심하고 믿으시기 바랍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어디까지 감당할 수 있는지 아십니다.
그 믿음 속에서 하나님을 부르며 그 품에 안길 때,
마침내 우리는 이렇게 고백할 수 있을 것입니다.
“여호와의 인자하심과 인생에게 행하신 기이한 일을 인하여 그를 찬송할지로다.”

하나님이 허락하시는 기이한 인생의 일들 속에서 행복한 삶을 살아가는
저와 여러분이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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