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주의 말씀

예배와 말씀

PRESBYERIAN CHURCH

금주의 말씀

제목"염려를 기도와 감사로" (2004.11.28 / 빌 4:6-7)2007-03-21 05:00
작성자 Level 10
"염려를 기도와 감사로"
(2004.11.28 / 빌 4:6-7)

어떤 화가가 자녀들을 데리고 그림을 그리고 있었습니다. "아빠가 그림을 그릴 테니까 잘 봐라. 오늘 그림의 주제는 평화다."

화가는 연필을 들어 스케치를 시작합니다. 먼저 바다를 그리기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잔잔한 바다가 아니라 거센 파도가 일렁거리는 험난한 바다였습니다.

화가의 어린 딸이 고개를 갸우뚱하면서 묻습니다.
“아빠, 그게 평화야?”
화가는 잠깐 기다려보라고 말한 뒤, 다시 배 한 척을 그리기 시작합니다. 무서운 파도가 일렁이는 바다 위에 떠 있는 배 역시 금방이라도 뒤집힐 것처럼 위태로운 모습입니다. 그러자 또 딸이 묻습니다.
"아빠, 배가 이상해. 무서워."

"기다려봐."
말한 뒤에 화가는 계속해서 그림을 그립니다. 이번에는 그 기울어진 배에 타고 있는 승객들의 모습을 그립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그들은 하나같이 아주 평화스럽게 웃고 있었습니다.

그러자 딸이 또 이야기합니다.
"아빠, 파도가 있고, 배도 기울었는데, 어떻게 사람들이 웃어?"
"조금만 기다려"

이제 화가는 배의 앞 부분에 위치한 선장실을 그리기 시작합니다. 그리고 그 배의 키를 잡고 있는 조타수의 모습을 그립니다. 아마도 선장이었을 것입니다. 이때 아빠가 그리는 선장의 모습을 가만히 보고 있던 딸이 갑자기 소리칩니다.
"알았다, 알았어! 그 배를 예수님이 운전하고 계시니까, 배 안에 있는 사람들이 웃었던 거구나."

우리말 성경은 이 평화라는 말을 평강, 평안, 화평이라는 말과 같은 의미로 사용합니다. 모두가 peace로 통하는 말들입니다.

본문에는 <평강>이라는 단어가 여러 번 나옵니다.
히브리 사람들에게 <평강>이라는 말은 <샬롬>입니다.
참 중요한 말입니다. 의미도 깊고 뜻도 다양한 말입니다.

<평강>은 온전함을 가리킵니다.
전인교육이라는 말이 있습니다마는 이것은 전인적인 것만이 아닌 전체적인 것까지 말씀함입니다.
구원과 자유와 번영과 건강과 화목과 행복입니다. 소극적인 것이 아닙니다. 도피적인 것이 아닙니다.
감상적인, 감각적으로 다가오는 정신적인 기쁨과 평안만을 뜻하는 것도 아닙니다.

그래서 엄밀하게 말하면 고독은 결코 평강이 될 수 없습니다. 가난도 평강이 아닙니다. 공동체적인 것, 모든 것이 다 갖추어진 완전한 관계가 평강입니다.

평강이란 하나님과의 바른 관계, 이웃과의 화목한 관계, 나 자신과의 관계에서 진실과 평안을 얻는 자유한 관계를 말합니다. 또한 물질에 대하여 넉넉한 관계, 곧 물질을 섬기는 것이 아니라 물질을 다스릴 수 있는 관계를 평강이라고 말합니다.

오늘 본문을 보면, <하나님의 평강>, <평강의 하나님이 너희와 함께 계시리라> 이런 표현이 있습니다.
무엇을 알 수 있습니까? 평강의 뿌리가 하나님께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로서 평강이 옵니다. 사람은 스스로 평안을 얻을 수 없습니다. 하나님은 평강을 주시는 분입니다.
시편 29편 11절을 보면 “여호와께서 자기 백성에게 힘을 주심이여 여호와께서 자기 백성에게 평강의 복을 주시리로다”고 말씀합니다.

우리는 하나님이 주시는 평강을 누릴 뿐만 아니라 그 평강을 깨뜨리지 말아야 합니다.
이것을 위해 마음과 생각을 지켜야 합니다. 평강을 깨뜨리는 주범은 염려입니다.

염려라는 단어를 헬라어로 생각해보면 참 재미있습니다. ꡐ메림나ꡑ라는 말인데, 좀 이상하죠?,  "마음이 나누어진다, 마음이 찢어진다"는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여러분, 마음이 나누어지고 찢기면 어떨까요?

염려는 불안한 마음입니다. 염려는 우유부단한 마음입니다. 두 마음을 품은 상태입니다. 바다 물결에 요동하는 물결과 같은 마음입니다. 초점을 상실한 마음입니다. 비생산적인 마음입니다. 마태복음 6장 27절은 “너희 중에 누가 염려함으로 그 키를 한 자나 더 할 수 있느냐”고 말씀합니다.

염려한다고 되는 것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오히려 염려 때문에 혼란과 불안과 두통, 위궤양 같은 질병을 얻기도 합니다.

뿐만이 아닙니다. 염려는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 귀를 막습니다. 염려는 다른 사람의 아픔을 볼 수 있는 눈을 가립니다. 염려는 다른 사람의 고통에 동참하는 따뜻한 마음을 품지 못하게 합니다.

염려는 우리의 행복을 빼앗아 가는 원수입니다. 염려는 우리가 극복하고 추방해야 할 적입니다.
그러므로 염려를 정복하고 평강의 강이 우리 가슴에 넘치게 하는 지혜를 배워야 합니다.
그 지혜가 오늘 본문에 나와 있습니다.

첫 번째 지혜는 염려를 기도와 간구로 바꾸는 것입니다.

오늘 말씀을 다시 읽어보면, 6절에서 염려를 정복하기 위하여 제일 먼저 해야할 것을 가르치고 있습니다.
무엇입니까? ... 아무것도 염려하지 말고.

여러분, 성경이 증거합니다. 염려를 이기려면 염려 하지 말라고. 우리에게는 너무나 당연하게 말씀을 넘겨짚는 경향이 있어요. 염려를 극복하려면 기도하라, 그렇게 무턱대고 하나님이 말씀하지 않으십니다. 무엇부터요? 기도하기 전에 염려부터 중단하라시는 거에요. 중요한 부분입니다.

우리는 대부분 염려하면서 기도하지 않습니까? 기도가 잘 되시던가요? 잘 될 리가 없어요. 염려와 기도는 같이 갈 수가 없습니다. 기도하면서 이 궁리, 저 궁리하니까, 마음이 갈라지니까, 집중이 안되는 거에요. 그러다보면, 어느새 자고 있고...

여러분, 염려를 멈추는 게 우선이에요. 이걸 구분하세요. 좌우의 분들과 함께 다짐하시겠습니다.
<염려 뚝! 합시다>

자, 그 다음에 하는게 무엇입니까? 이제 기도합니다. 본문 6절을 보십시오. “아무것도 염려하지 말고 오직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로 하나님께 아뢰라.“ 염려한 모든 것을 기도의 내용으로 바꾸는 작업입니다. 염려해봤자 해결이 안되니까 염려할 일이 생겼으면 우리가 뭐라고 생각을 해야 되요?
<아, 이건 기도할 일이다, 기도제목이 생겼구나>.

사도 바울은 기도하고 간구하라, 이렇게 말씀합니다. 이 둘 사이에는 어떤 차이가 있을까요?

기도란 무엇입니까?
하나님을 바라보고 찾는 것입니다. 우리가 예배의 자리에 나올 때나 기도를 시작할 때 하나님을 먼저 찾지 않습니까? 내 마음이 정말 하나님을 향할 때 어떤 일이 일어나는지 아십니까? 하나님이 점점 크게 보입니다. 전지전능하신 하나님, 그 하나님께 압도당해서 그분의 은혜와 영광이 내 마음을 지배하기 시작할 때 나는 서서히 간구로 들어갑니다.

간구는 무엇입니까?
특정한 문제에 대해 구체적으로 간절히 구하는 것입니다. 기도를 통해서 간구로 들어온 사람은 이미 승리한 사람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이 크게 보인 사람에게는 문제가 작게 보일 수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내 문제가 아무리 커 보여도, 전능하신 하나님이 크게 보인다면 감당하지 못할 문제가 어디 있겠습니까? 하나님이 나와 함께하신다는 이 사실을 확신한 사람에게는 감당하지 못한 상황이란 없습니다. 그래서 먼저 기도부터 하고 그 다음에 간구로 나아가야 합니다.

그런데 간구부터 시작하면 문제에 눌려 버립니다. 두려움과 불안이 증폭됩니다. 그러므로 먼저 하나님을 묵상해야 합니다. 영광의 하나님, 은혜의 하나님, 자비의 하나님, 긍휼의 하나님, 역사를 지배하시고 인생을 다스리시는 하나님을 먼저 바라보아야 합니다.

두 번째 지혜는 염려를 감사로 바꾸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은 말씀합니다.
“아무것도 염려하지 말고 너희 구할 것을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아뢰라.”

염려를 감사로 바꾸는 작업은 우리 생각의 초점을 바꾸는 작업입니다. 우리는 생각의 초점에 따라 염려할 수도 있고, 감사할 수도 있습니다. 염려는 아직 일어나지 않은 일이나 과거에 이미 일어날 일에 초점을 맞추는 것입니다. 잃어버린 것, 바꿀 수 없는 것, 소유하지 않은 것에 초점을 맞추는 것이 염려입니다.

그러나 감사는 현재에 초점을 맞추는 것입니다. 소유하고 있는 것, 남아 있는 것, 앞으로 누릴 복을 믿음으로 바라보는 것이 감사입니다.

그렇다면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아뢰라는 말씀은 어떤 의미일까요? 받았고, 받을 은혜를 생각하면서 기도하라는 말씀입니다.

우리는 감사기도의 능력을 예수님에게서 발견합니다. 나사로를 살리실 때 예수님은 이제까지 당신 기도에 응답해 주신 하나님께 먼저 감사했습니다. “아버지여, 내 말을 들으신 것을 감사하나이다(요 11:41)” 하신 후에 “나사로야 나오너라”고 소리치셨습니다. 감사가 먼저였습니다.

광야에서 오천 명을 먹이실 때에도 떡 다섯 덩이와 물고기 두 마리를 들고 먼저 하나님께 감사하셨습니다.
우리말 성경은 “축사하시고(마 14:19)”라고 간단히 기록했지만, 예수님은 우러러 하나님 앞에 감사하셨습니다. 감사하고 나누어 주셨습니다. 감사의 기도에서 능력이 나타난 것입니다.

원망하고 불평하며 몸부림쳐 봐도 거기에는 응답이 없습니다. 언제라도 받은 은혜를 깊이 생각하며 감사와 더불어 기도할 때, 거기에 응답이 있습니다.

자, 그러면 어떤 약속이 주어집니까? 7절을 다함께 읽어보겠습니다. "그리하면 모든 지각에 뛰어난 하나님의 평강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 마음과 생각을 지키시리라"

여기서 흥미로운 사실은 이렇게 기도와 간구로,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아뢴다고 해서, 그 염려가 하루 아침에 사라진다, 이렇게 약속하지 않으셨다는 거에요. 그러면 얼마나 좋겠어요.

기도했는데, 간구했는데도 불구하고 염려할 상황, 염려할 환경은 아직도 우리 앞에 버티고 있어요.
그러나 주님의 약속은 뭐에요? <기도하고 간구하면 환경이 순식간에 바뀐다>가 아니라, <하나님의 평화가 내 마음과 생각을 지켜준다>입니다.

"지킨다"는 말은 군대 용어입니다.
하나님의 평화가 내 마음과 생각을 빈틈 없이 지켜준다는 것은 얼마나 놀라운 복입니까?
염려 가득한 환경은 있지만, 하나님의 평화가 내 마음과 생각을 지켜 주시면 어떻게 될까요?

우리는 염려에도 불구하고 그 염려를 돌파할 수 있는 새로운 힘을 얻습니다. 혼란 속에 있으면 마음과 생각이 흔들립니다. 마음과 생각이 흔들리면, 올바로 판단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평강이 나의 마음과 생각을 지킨다면, 흔들리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우리의 헤아림, 우리의 지혜를 뛰어넘는 하나님의 평강으로부터 오는 하나님의 지혜, 그 건강한 판단력을 가지고 문제를 새로운 시각에서 바라볼 수 있습니다. 여러분, 이게 정말 복 중의 복 아닙니까?

하나님의 평강이 나를 덮으면 내 근심따위는 문제도 아닙니다. 모든 문제가 해결됩니다. 하나님의 평강이 있는데, 세상문제, 관계문제, 물질문제, 미래문제가 무슨 문제가 되겠습니까?

여기서 한 가지 깊이 생각해야 합니다.
염려는 심리적인 것입니다. 내 마음을 내 마음대로 못합니다. 하나님의 평강이 내 마음을 덮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평강이 내 마음을 덮으면 슬플 일밖에 없어도 기쁘고, 아무리 고통을 당해도 찬송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평강이 내 마음에서 떠나면 만나는 일마다 모두 걱정입니다.

하나님의 평강이 내 마음을 덮을 때에 내 마음에 진정한 평안이 있고, 이것이 우리를 감사로 인도하고, 은혜로 인도하고, 약속으로 인도하고, 믿음으로 인도합니다. 또한 우리를 소망에 넘치게 하고, 감정적인 마음과 지적인 생각을 다 지켜 주십니다. 이 은혜가 우리 모두에게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댓글
자동등록방지
(자동등록방지 숫자를 입력해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