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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의 꿈은 이 땅에 오직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살아가는 영혼들을 세우는 것이었습니다.
죄에서 벗어나 하나님의 자녀가 되어 오직 하나님의 그 은혜를 감사하며 살아가는 새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러한 새 사람을 통해서 또 다른 사람들이 동일하게 오직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살아가는 사람으로 세워지는 것을 꿈꾸셨습니다.
그래서 한 사람이 또 다른 한 사람을 세우고, 이 사람이 또 다른 한 사람을 세우고, 그리고 또 다시 이 한 사람이 또 다른 한 사람을 세우고, 세우고....
이렇게 해서 이 세상의 모든 사람들이 하나님의 자녀로 거듭나 그 은혜를 찬양하며 오직 하나님을 위한 삶에 헌신된 존재가 되기를 원하셨습니다. 왜냐하면 그것이 우리 영혼이 되어야 할 그 모습이기 때문입니다.
가정으로 비유를 하자면 자녀들이 부모의 그 은혜와 사랑을 깨달아 늘 감사하며 어떻게 하면 어머니 아버지를 기쁘시게 해드릴까 염려하는 삶을 사는 것입니다. 그래서 아버지 어머니께서 기뻐하시는 것을 하고, 싫어하시거나 섭섭히 여기시는 것은 삼가 행하는 모습으로 부모님을 높여 드리는 길을 가는 것과 같습니다. 그래서 이러한 삶을 통해 부모님은 부모다운 모습으로 행복하고, 자녀들은 자녀다운 모습으로 행복한 모습이 되는 이치와 같습니다.
우리가 예수 안에서 하나님의 자녀가 되어 하나님의 그 놀라운 은혜를 깨달을 때 우리 안에 하나님을 향한 감사와 찬양이 가득 차게 됩니다. 동시에 하나님을 모른 채 지나온 세월들이 하나님 앞에 얼마나 큰 죄였는가를 깨닫습니다.
하나님 앞에 영광과 존귀와 감사와 찬양과 예배를 드리지 않고 지나 온 시간들이 얼마나 하나님을 괴롭게 한 죄인가를 깨닫습니다. 오직 하나님을 위해 나의 모든 것을 다 드려 영광과 존귀와 경배를 드린다 해도 그 은혜 앞에 얼마나 작고 초라한 것인지를 깨달으면서, 그렇게 하나님을 섬기지 못한 자신의 모습 앞에 회개합니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들을 내어주시는 하나님의 사랑 앞에 엎드려 자신의 전 존재를 다해 하나님을 찬양하기 시작합니다.
모든 것을 다 드려 섬겨도 다 갚을 수 없고, 또 그렇게 섬길 수 있는 능력도 없는 한 없이 부족한 존재이기에 오직 하나님의 은혜로 섬길 수 있는 존재임을 고백합니다. 그래서 오직 하나님의 은혜를 겸손히 구하는 사람이 됩니다. 일생을 그렇게 하나님을 위하여, 하나님의 은혜를 구합니다. 하나님의 은혜로만 죄인 된 육신의 욕망을 이기고 순수한 하나님을 향한 사랑을 지킬 수 있기 때문입니다.
나아가 주 예수님과 동일한 꿈을 꾸게 됩니다. 내 주변의 한 영혼, 한 영혼, 이 땅의 모든 영혼 영혼이 하나님이 이 놀라운 사랑으로 채움을 얻어, 자신과 같이 오직 하나님을 위하여 사는 은혜의 기쁨 가운데 거하는 영혼들이 되기를 위해 눈물로 기도하는 사람이 됩니다. 자기가 지은 죄가 아니면서도, 같은 한 인간으로서 하나님을 모른 채 살아가는 그 큰 죄를 인하여 용서를 대신 구하며 눈물 흘리는 사람이 됩니다. 원수도 사라지고 도리어 그 영혼을 위하여 기도로 위로하고 하나님 앞에 회개하는 영혼이 되는 것입니다.
이처럼 존귀와 모든 권세와 능력과 영광을 받으시기에 합당하신 창조주 하나님께서 사랑하는 아들을 죽음에 내어주시기까지 내 영혼을 사랑하시는 그 사랑은 한 인간의 인생을 완전히 바꾸어 놓습니다. 모든 사상과 철학과 종교의 참된 것과 거짓이 무엇인지 분명해지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모든 것을 버리고 오직 하나님의 영광과 그 뜻을 위해 자신을 드리는 길을 가게 됩니다. 오직 하나님 앞에 합당한 마음과 삶의 길을 갑니다.
그래서 집안의 일도, 직장의 일도 이제는 새로운 눈을 가지고 합니다. 내 일을 통해 한 영혼 영혼 안에, 이 직장 안에, 이 사회 안에 오직 하나님의 영광위한 찬미와 고백으로 가득하기를 소원하며 일하고, 섬기고, 삼가행하는 기도로 일을 하게 됩니다. 모든 영혼이 진정으로 되어져야 할 인생의 모습이란 그 놀라운 은혜와 사랑의 하나님을 만나는 것이요, 그 하나님의 은혜에 영광을 돌리는 삶을 사는 것이 인새의 진정한 목적이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이러한 꿈을 안고 오늘 제자들에게 교훈하십니다. 교훈의 내용은 이렇습니다. ‘나는 이제 너희를 떠나 하나님 아버지께 갈 것이다. 너희를 위한 처소를 예비하고 다시 올 것이다.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를 통하여서만 하나님께로 갈 수 있다. 나를 본 사람은 아버지를 본 것이다. 내 안에 아버지께서 함께 계시기 때문이다. 내가 하는 일을 보고 아버지 하나님께서 나와 함께 있음을, 그리고 나도 아버지 안에 있음을 믿으라. 내가 떠나지만 나를 믿고 내 이름을 의지하여 기도할 때 내가 너의 기도 가운데 함께 할 것이다.’
오늘 말씀에 매우 중요한 말씀이 나옵니다. 그러나 1-14절까지의 말씀에서 핵심이 되는 말씀은 13,4절입니다. 왜냐하면 이 말씀을 하시는 이유가 바로 예수님이 떠나신 이후의 제자들에게 초점이 맞추어져 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 모든 영혼이 하나님께 영광을 존재가 되는 꿈을 가지고 이 말씀을 하셨다는 이유도 거기에 있습니다. 즉 예수님이 떠난 이후 이제 예수님의 이 꿈을 위해 헌신할 이 제자들이 걱정이 되 주시는 말씀이기 때문입니다. 즉, 예수님의 그 꿈을 이 제자들이 흔들림 없이 잘 감당해주기를 기대하셨다는 뜻입니다. 그래서 그 꿈을 온전히 감당하라고 그 길을 가르쳐 주시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 내용이 무엇입니까?
‘너희가 내 이름으로 무엇을 구하든지 내가 시행하니리 이는 아버지로 하여금 아들을 인하여 영광을 얻으시게 하려 함이라. 내 이름으로 무엇이든지 내게 구하면 내가 시행하리라’
요약하면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내 이름으로 무엇이든지 구하면 내가 시행하리라’ 말씀입니다.
그리고 이 가운데 핵심은 ‘내 이름으로’으로 라는 말씀입니다. 예수님께서 왜 여기에서 ‘내 이름으로’라고 두 번이나 강조하여 말씀할까요?
예수님께서 ‘내 이름으로’라고 굳이 두 번이 나 강조하여 말씀하시는 이유는 믿음이 부족한 제자들 때문입니다. 제자들은 예수님께서 떠나신다는 말에 불안해합니다. 그래서 제자들 중 의심 많은 도마가 ‘주여 어디로 가시는지 우리가 알지 못하는데 그 길을 어찌 알겠습니까?’하고 묻습니다.
그러자 예수님께서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다.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하나님 아버지께 올 자가 없느니라.’하고 말씀합니다. 이 말씀은 모든 영혼의 하나님 되시는 그 하나님의 구원에 이르는 길은 예수님 외에는 없다는 놀라운 말씀입니다. 죄에서 벗어나 창조주 하나님께 이르는 생명의 길은 진리 그 자체 이신 예수님 외에는 다른 길이 없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 말씀과 함께 예수님은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너희가 나를 알았더면 내 아버지도 알았으리로다. 이제 부터는 너희가 그를 알았고 또 보았느니라’
‘내가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다’ 라는 말씀도 기가 막힌 말씀인데, 한술 더 떠서 ‘나를 아는 자는 아버지 하나님을 보았다’라고 말씀합니다.
그러자 빌립이 ‘주여, 아버지를 우리에게 보여주옵소서. 그리하면 족하겠나이다.’하고 심각하게 말합니다. 이에 예수님께서는 계속해서 ‘자신과 하나님은 하나임을 말씀하십니다.’
‘9절:나를 본 자는 아버지를 보았다. 10절: 나는 아버지 안에 있고 아버지는 내 안에 있다. 10b,11절:아버지께서 내 안에 계시다.'
이런 말씀을 하시면서 계속해서 ‘믿어라’라고 하시는데 이와 관련된 ‘믿음’대한 말씀이 오늘 본문에서 5회나 반복되어 나타납니다. ‘나를 믿어라, 나를 믿어라’
예수님께서 무엇을 말씀하시려는 것일까요? 당신은 하나님과 동등한 신적 권세와 신적 지위를 가지고 있는 존재임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성경의 구약에서 증거 되는 그 창조주 하나님과 예수님 당신이 동일한 권위를 가지신 분이라고 증거 하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예수님 당신이 실제로 성부하나님과 동등한 권세를 가지신 성자 하나님이시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성부 하나님과 동등한 신적 권위를 가지신 성자 하나님임을 믿으라는 것입니다.
3년이나 제자들을 데리고 다니며 온갖 기적을 다 보여주시고 천국의 말씀들을 깨우쳐 주셨음에도 불구하고 막상 예수님께서 죽으시고 떠날 시점에는 제자들이 믿음이 부족하니 이렇게 ‘나를 믿어라, 나를 믿어라’말씀한 것입니다.
‘내가 길이다. 진리다. 생명이다’
‘내가 창조주 하나님과 동일한 권세를 가진 자이다.’
‘나와 아버지 하나님은 하나이다.’
예수님은 하나님 아버지로부터 보냄을 받은 성자 하나님이십니다.
예수님은 이것을 제자들에게 믿으라고 말씀하십니다.
이 후 예수님은 십자가에 못 밖혀 죽으셨습니다. 그러나 다시 부활하셨습니다. 성부 하나님께서 성자 예수님을 다시 살리신 것입니다. 성부 하나님께서 보내신 성자 하나님이심을 하나님께서 부활로 입증하신 것입니다. 예수님이 바로 모든 영혼이 믿고 따라야 할 ‘하나님이요 구원자’이심을 하나님께서 확증하신 것입니다. 예수님은 우리가 믿어야 할 구원자시오, 진리와 생명의 길입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내가 곧 구원자이니 나를 믿어라, 나를 의지하여 기도하라’ 말씀하십니다.
‘그렇게 하면 내가 그 기도에 함께 하겠다. 듣고 응답하겠다.’라고 말씀하십니다. 예수가 ‘하나님이요, 구원자요, 진리와 생명이 길임을 믿고 따르는 자들에게’, 그리고 예수께서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시며 품으셨던 꿈, 곧 ‘모든 영혼이 하나님의 그 놀라운 사랑과 은혜를 알아 오직 하나님의 그 영광을 위해 살아가는 하나님의 사람으로 세워지는 꿈을 위해 깨어 기도하는 영혼들에게’ 응답하시겠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들로 하여금 예수님 보다 더 큰일을 하는 존재가 되게 하겠다는 것입니다. 예수의 제자들이 예수보다 더 큰 존재가 되는 것이 아니라, 지금까지 보아 왔던 예수님의 이적들 보다 더 큰 이적과 능력으로 예수님이 함께 하시겠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하나님이시오, 구원자시오, 길과 진리와 생명 되심을 믿고 예수님을 의지하여 기도할 때 그런 역사가 일어날 것이라는 약속입니다.’
그래서 실제로 예수님은 떠나셨지만 성령께서 오신 이후 제자들은 예수님의 그 이름의 권세를 의지하여 수많은 기적과 놀라운 일들을 일으켰습니다. 그대 표적인 예가 사도행전 3장에 나오는 ‘나면서부터 앉은뱅이로 태어나 성전 문 앞에서 구걸을 하는 불쌍한 영혼을 일으켜 세운 기적’입니다.
그리고 이보다 더한 기적은 베드로 사도가 설교할 때 하루에 3천명이 죄를 회개하고 예수를 주와 하나님으로 믿은 것입니다.
오늘 본문 말씀 2-3절 말씀대로 예수님은 십자가 죽음과 부활하신 이후 하나님 아버지께 돌아가셨습니다. 이제 제자들만 홀로 남았습니다. 이들에게 두려움과 염려가 가득합니다. 그러나 이들은 성령 강림 이후 ‘십자가에 죽으시고 부활하신 예수님만이 주이시오, 하나님이시오, 구원자시오, 오직 유일한 진리와 생명의 길 되심을 담대히 증거 하기 시작했습니다. 예수님의 하나님 되심을 의지하여 기도하고 복음을 전했습니다. 그러자 거기에 놀라운 일들이 일어나기 시작했습니다. ‘사람들이 변화되고 병이 치유되고 오직 예수가 참 구원의 하나님이시다’라고 고백하는 기적이 일어났습니다.
심지어 이 복음이 조선 반도에 들어왔을 때도 마찬 가지입니다. 그토록 미신에 빠져있고, 불교에 빠져있고, 유교에 빠져 있던 조선 민족에게 이 복음이 전달 되었을 때도 사도행전과 동일한 역사가 나타났습니다. 성령이 임하고 죄를 회개하고 새 사람이 되고, 이전 믿던 헛된 신들을 다 버리는 기적이 일어났습니다. 참 하나님을 만나자 이전에 믿던 것들이 얼마나 허무한 것이었는가를 깨달은 것입니다.
제가 태어난 고향 서천군 마산면 관포리라는 곳입니다. 이 동네는 여러 마을로 다섯 개의 마을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제가 이곳에서 9살까지 살았는데 얼마나 촌이었는가 하면 버스는 아침저녁 두 번 다녔고, 밤에는 전기가 없어 등잔불로 살았습니다. 학교에 가려면 산을 넘어가야 했고, 어쩌다 동네 앞에 생긴 신작로에 차가 한 대 들어오면 애들은 물론이고 어른들까지 나가 구경을 하던 동네였습니다. 그런데 이런 촌구석에 복음이 들어왔습니다. 다섯 개의 마을이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곳에 예배당이 세워졌습니다.
제가 어렸을 때는 이 곳 예배당에 가서 노는 일이 제일 재미있었습니다. 교회울타리로 세워진 나무에 올라가 놀고, 교회당 처마 밑구멍 속에 참새들이 새끼를 치면 그것을 잡는 재미가 여간 아니었습니다. 그리고 교회 소풍가면 선물도 주고 어렸을 때의 재미있던 추억으로 남아 있습니다.
그런데 이 예배당을 세울 때 재미있는 일화가 있습니다. 예배당이 세워진 곳은 모든 마을이 다 내려다보이는 언덕인데, 그곳에 예배당을 세우려 할 때 동네 사람들이 반대를 했다고 합니다. 거기에 큰 나무가 있는데 동네 사람들은 그 나무를 베면 재앙이 온다고 생각하고 반대를 했습니다. 하지만 이미 예수님이 참 하나님이시오, 참 신이시심을 믿었던 믿음의 사람들이 두려움 없이 그 나무를 베어버렸습니다. 그리고 거기에 터를 깍고 예배당을 세웠습니다.
재앙은 없었습니다. 이후 동네 사람들에게 믿음이 새롭게 들어가기 시작했습니다. 서서히 지난 오랜 시간동안의 조상신과 미신을 버렸고 제가 살던 동네의 모든 가정이 다 예수를 주와 하나님으로 믿게 되었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왜 서양종교를 믿느냐고 합니다. 저는 이런 분들이 민족을 사랑하고 정기를 사랑하는 마음에서 하는 얘기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참 신인가 아닌가 하는 문제는 서양이냐 동야이냐의 문제가 아닙니다. 진리의 문제는 서양 것이냐 동양 것이냐가 문제가 아닙니다. 인생의 이치, 역사의 이치에 관한 문제는 문화의 문제가 아닙니다.
무엇이 진리이고, 무엇이 인생의 길이냐의 문제는 내 영혼의 문제요, 내 생명의 의미의 문제인 것입니다. 이런 문제는 진리가 아니면 답을 줄 수 없습니다. 진리가 아닌 것이 내 영혼이 묻는 ‘진리가 무엇이냐, 인생이 무엇이냐?’에 대한 답을 줄 수 없고, 설령 준다 한들 그것은 허상에 불과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이러한 우리의 궁극적인 영혼의 질문에 대하여 예수님이 말씀하십니다.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다.
본래 성부와 성자와 성령 하나님으로써 이 우주와 역사를 창조하시고 우리 인생을 지으신 하나님이시기에 당신은 그렇게 말씀하실 수 있었습니다. 그렇기에 제자들에게 ‘나를 믿으라’ 말씀하셨습니다. 모든 인생이 따라야 할 진리와 생명의 길임을 믿으라 말씀하십니다.
이제 이 예수님은 우리 곁에 안계십니다. 눈으로 볼 수 없습니다. 그러나 약속의 말씀을 믿고, 예수님의 이름을 의지하여 기도할 때 우리 영혼은 더욱 힘을 얻을 것입니다.
예수님이 함께 계심을 경험하게 될 것입니다.
이 진리를 위해서 우리가 기도할 때 예수님은 우리와 함께 하사
이 땅을 새롭게 하는 교회로 인도하여 주실 것입니다.
‘나를 믿으라’하시는 예수님의 말씀을 가슴에 새기고 ‘모든 영혼 안에 하나님의 놀라운 은혜가 임하고,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사는 역사가 일어나도록 깨어 믿음으로 기도합시다.’
주님께서 우리를 사용하사 당신의 꿈을 이루실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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