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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삶 속에 변화가 필요할 때" (요한복음 5:1-9 / 20060813)2007-03-21 15:38
작성자 Level 10
2006년 8월 13일 주일예배 설교 - 서장원목사

"삶 속에 변화가 필요할 때"(요한복음 5:1-9 / 20060813)

  현재 미국의 백악관 국가장애위원회 정책 차관보 자리에는 한국인 강영우박사가 앉아있습니다.
이 분은 참 훌륭한 분입니다. 그는 시골학교를 다녔는데 축구를 하다가 그만 공이 눈에 맞아 실명을 했습니다.
그 충격이 얼마나 컸겠습니까? 보통 사람 같으면 좌절하고 낙심하고, 불평과 원망, 반항아의 삶을 살았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의 마음속에는 하나님이 계셨습니다. 그는 늘 이렇게 고백했습니다.
‘실명은 나의 장애가 아니다.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사명을 수행하기 위한 거룩한 도구’라고 고백하곤 했습니다.
그는 맹아 학교에 들어가서 점자를 배웁니다.

  그리고 연세대학교 교육학과에 당당히 입학하고 차석으로 졸업합니다.
미국에 유학을 가서 교육학 박사 학위를 받았습니다.
그리고는 적극적인 사회 활동을 펴면서 대통령의 눈에 띄었고, 차관보라는 고위직의 자리에 오르게 되었습니다.

  그가 맹인으로 높은 관리가 되었다는 것이 그의 자랑이 아닙니다.
그는 종종 시간만 되면 한국에 와서 많은 교회와 단체에서
<하나님의 축복과 섭리 가운데 내가 오늘날 이런 인물이 되었다>고 간증합니다.
그는 하나님을 믿는 믿음을 가지고 자기의 인생을 변화시켰습니다.

  여러분, 오늘 나는 어떤 사람입니까? 주어진 환경에 지배당하는 환경결정론자입니까?
아니면 주어진 환경을 변화시키고, 개척하며 살아가는 환경가능론자입니까?
오늘 우리가 읽은 하나님의 말씀은 삶 속에서 변화를 경험한, 한 사람의 이야기를 전해주고 있습니다.

  유대인의 명절을 맞이하여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에 올라갔습니다.
예수님은 예루살렘 성 양문 곁 베데스다 연못을 찾아가십니다. 이 양문이란 것은 양이 들어가고 나가는 문입니다.
예루살렘 성전에서 제물로 쓰일 양들이 그 양문을 통해 들어가고 나갑니다.

  이 양문 곁에는 베데스다 연못이 있는데 그 연못에는 많은 병자들이 모여 있었습니다.
왜냐하면 1년에 한번 천사가 내려와 물을 흔드는데 그 때 들어가면 누구든지 병을 고친다는 전설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많은 환자들이 거기 모여 있었습니다.

오늘 성경에 보니 소경, 절뚝발이, 혈기 마른 자들이 모여 있다고 했습니다.
그들은 명절과는 상관없는 사람들입니다. 절기가 되어도 가족 곁으로 돌아갈 수 없는 사람들,
소외되고 고독한 사람들이었습니다. 그 곳에 예수님의 마음이 있었습니다. 바로 거기, 38년 된 병자가 있었습니다.

  그는 가까운 친구 하나 없었습니다. 예수님이 그에게 가서 “네가 낫고자 하느냐?”라고 물을 때
그는 “물이 동할 때 나를 들어서 옮겨 줄 사람도 없습니다.” 라고 말합니다.
영어로 보면, I have not a man, 그는 자기 몸 하나 옮겨 줄 사람도 없는 고독한 사람이었습니다.
전환점이, 변화가 필요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바로 그 병이 이미 오래된 줄 아시고, 이미 그의 마음을 아시고
이 38년 된 병자를 찾아오셨습니다. 그리고 그의 인생을 바꿔주셨습니다.
어떻게 그의 삶 속에 변화가 일어났을까요? 어떻게 하면 우리가 삶 속에서 변화를 경험할 수 있을까요?

  첫째, 예수님을 만나야 합니다.

여러분,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을 만난 후에 삶 속에서 변화를 경험했는지 모릅니다.
성경 안에는 마태복음, 마가복음, 누가복음, 요한복음이라는 부분이 있습니다.
예수님이 어떤 분이시며, 어떤 일을 하셨는지에 대해 많은 부분을 할애하고 있기 때문에,
예수님에 대해서 알려면 이 부분을 읽어야 합니다.

그 내용들은 거의가 예수님을 만난 사람들의 이야기입니다. 그들은 모두 변화를 경험한 사람들입니다.
여러분, 변화라는 말은 긍정적인 의미에서 너무나도 매력적인 말입니다. 회복이고 치유이며 교정이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을 만나서 정신과 마음이 치유되고 회복되고,
육체가 치유되고 회복되고, 영혼이 치유되고 회복되었는지 모릅니다.
또, 불투명했던 미래가, 병들고 고통스러웠던 관계가 회복되었는지 모릅니다.
삐뚤어졌던 삶의 자세와 시선이 교정되었는지 모릅니다.

성경을 보면 사람들은 예수님을 찾아갔습니다. 삭개오는 예수님을 만나기 위해 뽕나무를 올라갔습니다.
니고데모는 체면 때문에 밤중에 예수님을 만났습니다.
백부장이 찾아가서 “주여, 제 하인이 병들었나이다” 하고 찾아가서 고했습니다.
회당장 야이로는 딸이 병들었다고 찾아가서 부탁했습니다.

그런데 오늘 우리는 그 반대의 경우를 목격합니다. 예수님이 사람을 찾아오셨습니다.
38년 된 병자가 스스로 찾아갈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고통 중에 있는 한 사람을 아시고 주님은 찾아오셨습니다.
여러분, 예수님은 우리에 찾아오시는 분이신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여러분, 신이 인간의 눈높이에 맞추어 찾아온 종교는 없습니다.
신은 신이고, 인간은 인간입니다. 인간은 늘 하늘을 바라봐야 하고,
어딘가에 도달하기 위해 애써야 합니다. 여러분, 그러나 기독교는 신이 인간에게 내려온 종교입니다.
신이 인간의 몸을 입고 왔습니다. 그분이 예수님입니다.

그러면 어떻게 38년 된 병자는 예수님을 만났습니까?
자기 존재, 자기 삶에 찾아오신 예수님을 받아들였습니다. 인정했습니다.
그 후에는 그는 예수님을 통해 변화를 경험할 수 있었습니다.

여러분, 우리는 마음을 열고 주님을 영접하면 됩니다. 그것이 바로 은혜입니다.
너희가 그 은혜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었나니 이것은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고 했습니다.
이 선물을 받아들이시겠습니까? 부디 받아들이시기 바랍니다. 인정하시기 바랍니다.

좌우의 분들에게 축복의 인사를 하겠습니다. <예수님 만나고 변화를 경험하세요>.


  두 번째로 삶 속에 변화가 필요하다면, 변화를 향한 열망을 가져야 합니다.

  6절, 7절 말씀을 읽겠습니다.
“예수께서 그 누운 것을 보시고 병이 벌써 오랜줄 아시고 이르시되 네가 낫고자 하느냐
병자가 대답하되 주여 물이 동할 때에 나를 못에 넣어 줄 사람이 없어 내가 가는 동안에
다른 사람이 먼저 내려가나이다” 아멘.

  오늘 예수님이 이상한 질문을 하십니다. 지금 38년 된 환자에게, 병 고치려고 드러누워 있는 사람에게
“네가 낫고자 하느냐?”고 물으십니다. 너무 당연한 질문 아닙니까?

  당연한 질문이지만, 여기엔 예수님의 의도가 있습니다.
예수님은 그의 마음속에 간절한 치유의 열정, 소망이 있느냐를 묻고 계십니다.
마음속에 진짜 네 인생을 변화시키고 싶은 열망이 있느냐를 묻고 계십니다.

  오늘 이 38년 된 병자에게 뭐라고 했습니까? “네가 낫기를 원하느냐?” 그러면 “예!” 하면 됩니다.
그런데 설명이 구구절절 깁니다. “제가 이 물에 들어가야 하는데 저를 들어서 옮겨 줄 사람이 없고
지금까지도 들어가지도 못했고...” 구구한 변명을 늘어놓습니다.

그러나 주님은 이미 그의 마음을 아십니다. 그의 마음속에 자기 병을 고치고 삶을 변화시키고자 하는 열망이 있다는 것을 알고 계셨습니다. 그래서 주님은 그에게 명령하십니다. “일어나서 네 자리를 들고 걸어가라.”

여러분의 마음속에 이런 불꽃이 타오르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그 변화의 갈망, 열망의 불꽃을 태울 때 주님 여러분의 인생을 바꿔주실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세 번째로, 삶 속에서 변화를 경험하려면, 말씀을 믿고 그대로 따라야 합니다. 이것을 믿음과 순종이라고 말합니다.

  8절,9절 말씀 읽겠습니다. “예수께서 가라사대 일어나 네 자리를 들고 걸어가라 하시니
그 사람이 곧 나아서 자리를 들고 걸어 가니라 이 날은 안식일이니“ 아멘.  

  만약 제가 38년된 병자라면 저에게 예수님이 일어나서 자리를 들고 걸어가라 그러면 아마 쳐다봤을 것입니다.
‘이상한 사람 다 보겠네 내가 38년동안 누워있었는데 내가 어떻게 걸어가?’라는 생각이 있지 않았을까요?
아니면 '날 들어서 옮겨주든지, 동전을 던져 주든지...뭘 일어나 걸어가? 38년동안 못 걸었는데...'
하는 마음이 있지 않겠습니까?

  그런데 이 사람의 믿음이 참 대단합니다. 그는 예수님의 말씀을 듣는 순간,
마음의 감동을 느꼈던 것 같습니다. 그리고는 일어났습니다.
그의 굳었던 다리가 힘을 얻고 움직이기 시작했습니다.

  그는 자리를 들고 일어났습니다. 오늘 주님은 우리에게 말씀하십니다.
“일어나 자리를 들고 걸어가라!” 너희 주저앉았던 그 상황에서 박차고 일어나라, 믿음으로!“라고 말씀하십니다.
열망만 있다면 주님은 우리를 도우십니다.

  여러분, 기적은 순종에서 출발합니다. 이 사람은 순종했습니다.
예수님 말씀에 순종할 때, 기적이 일어났습니다.
베드로는 깊은 데로 그물을 내리라는 예수님의 말씀에 순종했을 때,  많은 고기를 잡을 수 있었습니다.
아람의 장군 나아만은 요단강에 일곱 번 몸을 씻으라는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할 때 어린 아이와 같이
깨끗한 피부를 갖게 되었습니다. 바로 순종입니다.

  여러분이 믿음으로 순종할 때, 여러분의 열망의 불꽃이 꺼지지 않을 때,
여러분에게 놀라운 기적의 역사가 일어날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지금 당장 이루어지지 않는다 해도 기다리십시오. 준비하는 자에게 반드시 기회는 올 것입니다.
여러분이 성공할 수 있는 기회, 건강할 수 있는 기회가 반드시 올 것입니다.

  미국의 유명한 카네기 홀을 만든 자선 사업가 카네기에게 아주 유명한 일화가 있습니다.
그는 원래 영국 출신입니다. 그의 아버지는 가난한 방직공이었습니다.
카네기는 미국에 건너와서 여러 가지 일을 해 봅니다. 기관 조수도 하고,
전보 배달원도 하고, 전신기사도 하고 외판원도 합니다.

  어느 날 너무 피곤하고 지친가운데 외판원 일을 하다가 한 사무실 앞에서 그림을 하나 보게 됩니다.
그 그림엔 바닷가 모래사장 위에 배가 하나 덩그러니 놓여져 있는 그림이었습니다.
그 배 위엔 노가 걸쳐져 있습니다. 그 배는 지금 항해할 수 없습니다. 그런데 그 아래에 이렇게 적혀 있었습니다.

  “반드시 밀물 때가 오리라! ”

  지금은 썰물입니다. 물이 없습니다. 배는 항해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반드시 때가 되면 밀물이 올 것입니다.
곧 밀물이 들어오면 그 배는 보란듯이 물 위에 둥실 뜰 것입니다.
그것을 보는 순간, 카네기는 굉장한 도전과 용기를 받습니다.
그래, 내 인생에도 반드시 밀물 때가 올 것이다. 성공의 때, 번영의 때, 축복의 때가 올 것이다라고 도전을 받습니다.
그는 절망하지 않고 열심히 일했습니다.

  나중에 그는 제철업을 하게 되었고, 세계적인 대사업가로 변신하고 성공하게 됩니다.
그는 그의 재물을 다 내 놓아서 카네기홀을 만들고, 연구소를 만들고 수많은 사람들을 위해서
자선사업을 하는 인물이 되었습니다.

  여러분, 인생의 소망의 불꽃이 꺼질 때 그 인생은 끝나고 맙니다.
절망하지 마십시오. 포기하지 마세요. 힘을 내세요. 예수님을 만나세요.
변화/회복/성공/행복/치유/교정을 위한 열망과 열정을 가지세요.
하나님의 말씀을 의심하지 말고 믿고 그대로 하세요.
우리의 삶 속에 긍정적인 변화, 그 밝은 아침이 올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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