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주의 말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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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고난 주간 첫째날 -기도하는 예수를 본 받는 제자2016-03-28 12:25
작성자 Level 10

오늘 말씀은 예수가 십자가 죽음을 앞둔 예수님의 고뇌와 번민이 얼마나 깊었는가를 우리에게 보여줍니다. 37-8절에 보여주고 있는바 예수님은 고민하고 슬퍼하셨습니다.

 

고민하다는 단어는 극심한 불안과 근심을 말합니다.

슬퍼하다는 단어는 마음의 갈피를 잡을 수 없을 만큼 깊은 슬픔을 말합니다.

이제 다음 날이면 죽음에 이르게 될 것임을 뻔히 보고 있는 처지에 안 그렇겠습니까? 예수님도 마음의 결단이 서기 전까지는 이렇게 죽음 앞에서 극심한 불안과 근심과 마음의 갈피를 잡을 수 없을 만큼 깊은 슬픔에 싸여 있었습니다.

 

예수님은 이 마음을 숨기지 못하고 함께 동행한 베드로와 야고보와 요한에게 내 비치며 이렇게 말씀합니다. 내 마음이 매우 고민하여 죽게 되었으니 너희는 여기 머물러 함께 깨어 있으라

 

얼마나 마음에 번민이 되고 아팠으면 고민하여 죽을 심정이 되었다고 말했겠습니까? 이처럼 예수께서도 우리와 하등 다를 것이 없이 십자가 죽음에 처하여지게 될 그 끔찍한 고통과 절망의 죽음 앞에서 고뇌 하셨습니다.

 

예수님께도 십자가의 그 끔찍한 고통과 절망의 죽음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습니다. 그 반대로 예수님의 그 마음 조차 심하게 흔들리는 갈대와 같이 깊은 번민과 고뇌와 슬픔이란 풍랑에 휩싸인 작은 배와 같았습니다.

 

마치 우리가 어찌 할 수 없어 낙심과 절망과 깊은 슬픔에 빠져 헤맬 수 밖에 없었던 그 때와 같이 주 예수도 똑 같이 흔들리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오늘 본문의 마지막 절에서 예수님은 아주 다른 모습으로 나타납니다.

 

45-46절에서 보는 바와 같이 37-38절에서 묘사하고 있는 예수님의 그 모습은 간데 없고 일어나라 함께 가자 보라 나는 파는 자가 가까이 왔느니라하시며 십자가를 향하여 담대히 나아가는 예수님의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쓰러질 것 같고 패할 것 같았던 모습은 사라졌습니다. 대신 인간적인 고통과 아픔과 슬픔을 이기고 선 당당한 예수님이 서 있습니다.

 

어떻게 된 것일까요? 처음과 마지막 모습 사이에 어떤 일이 있었던 것입니까?

39-44절에 의하면 예수님께서는 그 고뇌와 번민과 슬픔을 안고 성부 하나님께 나아갔습니다. 성부 하나님께 나아가 자신의 고뇌와 아픔과 슬픔을 쏟아 놓은 것입니다. 성경에는 묘사 되어 있지 않지만 성부 하나님께 깊은 무수히 자기 심정을 아뢰었을 것입니다. 자기 영혼의 전 존재를 다한 그 간절함과 눈물로 성부를 바라 보았을 것입니다. 가장 가까운 제자들 조차 졸고 자며 그 마음을 헤아리지 못하는 가운데, 예수께서는 홀로 그렇게 얼굴을 땅에 대시고 엎드려 성부 하나님 앞에 나아갔던 것입니다.

 

이렇게 나아가 하나님 앞에 이른 예수님의 고뇌와 싸움은 인간적인 관점에서 감당하기 버거운 그 십자가 죽음 대신 다른 길이 있으면 그 길을 가고 싶다는 것이 었습니다. 한 마디로 십자가를 지고 싶지 않았습니다. 십자가를 져야 한다는 명백한 뜻 앞에서 그것을 회피 했으면 했던 것입니다.

 

마치 우리가 주의 뜻을 따르자니 손해 볼 것 같고, 따르지 않자니 성도로서 옳지 않은 것 같은 기로에서 갈등하며, 하나님의 뜻을 따를 것인가 말 것인가를 놓고 치열한 영적 싸움이 벌어지는 현실 속에서 갈등하고 있는 모습과 같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경우 그것이 살 것이냐 죽을 것이냐의 문제 였기에 우리와는 비교 할 수 없는 깊은 차원의 무게와 고통과 번민을 동반 되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그 고뇌와 아픔에 찬 기도의 결론은 일찍이 주께서 제자들에게 가르쳐 주신 기도의 내용이었습니다. 뜻이 하늘에서 이루어 진 것 같이 땅에서 이루어지이다 자신의 인간적인 뜻이 아니라, 성부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져야 함에 자신을 내려 놓는 것이 었습니다.

 

문제는 이렇게 기도를 해도 마음과 정서적으로는 아직 그 기도를 따를 준비가 안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그렇기에 예수님의 기도가 한 번으로 그치지 않고 세 번이나 계속 이어졌던 것입니다. 머리로는 하나님의 뜻대로 되어야 한다 하지만 가슴은 아직 그것을 받아들일 준비가 안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세 번 이어지는 기도를 통해 마침내 성부 하나님의 뜻을 완전히 자기의 것으로 삼게 됩니다. 성경에는 자세히 묘사 되어 있지 않지만 두 번 째 기도의 내용을 볼 때 예수님의 태도가 점점 더 성숙한 자세로 깊어지고 있음을 보게 됩니다. 처음에는 피할 수 있으면 피하고 싶습니다 했습니다


그러나 두 번째 기도는 만일 내가 마시지 않고 이 잔이 내게서 지나 갈 수 없거든 아버지의 원대로 되기를 원합니다로 바뀝니다. 인간적인 갈등의 국면에서 벗어나 있는 모습을 보여줍니다. 이제는 십자가 죽음이 반드시 있어야 할 것이거든 그렇게 하겠습니다라고 아버지께 맡기는 모습을 보여줍니다. 그리곤 한 번 더 기도하시곤 이제는 십자가를 향하여 담대히 나아가는 예수님의 모습으로 나타납니다. 일어나 함께 가자

 

성부 하나님 앞에 자기 영혼을 다하여 기도하여 만나는 만남을 통해 어떤 일이 일어난 것입니까? 감당하기 어려운 그 십자가 죽음마저 달게 지려는 마음, 그것도 담대히 그것을 향해 나아가는 모습으로 변화된 것입니다.

기도의 응답이 십자가를 지지 않게 해주는 것이 아니라, 십자가라는 사명을 당당히 감당하게 하는 응답으로 나타난 것입니다.

 

결국 예수님의 승리가 무엇입니까

자신을 내려놓고 성부 하나님의 뜻에 담대히 순종하는 사람이 되는 승리였습니다.

 

이렇게 성령 하나님께서는 예수가 어떻게 그 깊은 고뇌와 절망의 슬픔을 이겨냈고 그 승리의 내용이 무엇인가를 깨우쳐 줍니다. 왜요? 주를 따르는 우리도 이러한 예수님을 알고 본 받아 살게 하기 위해서 입니다. 본문에 나오는 제자들처럼 주님의 뜻 헤아리지 못하고 깨어 있지 못하여 결국에는 시험 들어 주를 버리고 마는 실패하는 제자들이 되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하겠습니까?

첫째 주님처럼 고뇌와 아픔과 슬픔을 안고 하나님께 나아가야 합니다.

둘째 주님의 뜻대로 이루어지기를 기도해야 합니다.

셋째 주님의 뜻이 내 안에 기쁘게 순종 될 때까지 기도해야 합니다.

 

예수님이 하나님의 뜻이 완전히 자신에게 이루어지기를 위하여 기도 했을 때

거기에 성부 하나님의 깊은 은혜로 인하여 십자가를 지는 순종의 승리를 주셨습니다. 그리하여 하늘에서와 같이 뜻이 우리에게 이루어지는 역사 일어났습니다.  

 

이 예수님을 본 받아 그 기도의 길을 갈 때,

나를 내려놓고 하나님의 뜻으로 담대하게 사는 승리, 곧 뜻이 하늘에서 이루어진 것 같이 우리 삶과 이 땅에 이루어지는 역사가 임할 것입니다.

 

말씀에서 하나님의 뜻을 찾고, 그 뜻을 순종할 담대함을 위해

끝까지 깨어 기도하십시요. 앞서 가신 주님이 아시고 도우실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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